2020/12/31 23:59

2020년 대문짝 객관성 담보 불가


2020년의 주요 타겟


에피소드 9 / 배드 보이즈 III / 버즈 오브 프레이 / 1917 / 투명인간 / 사냥의 시간 / 뮬란 / 비상선언 / 탈출 / 다악구 /
승리호 / 조용한 곳 2 / 흑과부 / 노 타임 투 다이 / 1984 / 고스트 버스터즈 / 놀란 / 반도 / 베놈 / 퍼스트 에이전트 /
정글 크루즈 / 서복 / 소울 / 리빙 뱀파이어 / 신 vs 왕 /이터널스 / DUNE / 웨스트 사이드 스필버그

2020/07/08 00:00

로보캅, 2014 대여점 (구작)


폴 버호벤의 원작이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견지하면서도 과격한 폭력 묘사로 쾌감 아닌 쾌감을 전달했던 영화였다면, 호세 파딜라의 리메이크는 멜로 드라마적 요소가 더 강조된 영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아예 안 한 건 아님. 오히려 기업주의, 극우주의적인 요소까지 같이 넣고 더 깠으면 더 깠지. 근데 확실히 액션은 좀 모자란 편.

새롭게 리뉴얼 되어 더더욱 AT-ST 같은 모양새가 된 ED 209 등, 여러 전투 기계들이 이미 상용화된 시대. 존나 웃기는 건, 그 기계들을 미국 내에서는 못 쓰고 해외에서만 군사용으로 줄창 쓰고 있다는 것. 세계 경찰 노릇을 자청하는 미국의 모습도 보여주지만, 또 한 편으로는 자칭 '효율적인 도구'라 부르는 그 기계들을 자국민들 대상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단 점에서는 내로남불의 기상마저 느껴진다. 근데 그마저도 선 넘어서 국내 배치 가능하게 만들려고 하는 악덕 기업인들의 마인드가 포인트.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은 여전히 유효하다니까.

원작에 비해 주인공의 인간적인 면모가 좀 더 강조된다. 아내와 어린 아들을 비롯한 가족들과의 관계, 생사를 함께 했던 파트너와의 의리와 우정, 그리고 자신을 배신하고 죽음으로 몰아넣은 부패한 경찰 동료들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 등. 폴 버호벤이 알렉스 머피의 인간사를 최소화했던 것과는 다르게, 호세 파딜라는 순도 100% 인간일 때의 알렉스 머피에 좀 더 집중한다.

그러다보니 액션 장면이나 클라이막스 보다도 더 기억에 남게되는 장면이 알렉스 머피의 현실 자각 씬이었다. 죽은 줄 알았던 내가 아직까지 살아있다는 자각. 처음 보는 장소, 처음 만난 사람들 앞에서 눈 떴을 때의 당혹감. 두꺼운 강철 수트인 줄 알았던 것이 결국 내 몸이었다는 데에서 오는 비현실감과, 이어지는 신체 분리 쇼의 충격. 그 묘사들을 호세 파딜라는 한 씬 내에서 켜켜이 쌓아간다. 끝내 몸의 모든 부분이 분리되고 간신히 남은 신체 기관들만을 목도하게 되는 알렉스. 근데 진짜 무서운 게, 관객들은 그 전 장면에서 사고 이후의 알렉스 머피 모습을 잠깐이나마 봤었거든. 그 땐 분명 화상 입었을지언정, 비교적 온전한 몸으로 병상 위에 누워있었거든. 허나 지금 남은 건 머리와 폐, 그리고 한 쪽 손 뿐. 제아무리 '기능'이 중요했다 한들, 그들은 효율적인 기계를 만들기 위해서 대체 얼마만큼의 신체를 잘라낸 것일까. 어쩌면 멀쩡히 기능했을지도 모르는 신체 기관들조차 효율성을 위해 더 잘라냈을 것만 같은 느낌. 때문에 그 씬에서 알렉스 머피가 내지르는 비명과 신음이 더 절절했다.

이렇게 좋은 장면 이후, 영화는 계속 멜로 드라마적 요소로 관객을 이끈다. 불구이되 불구 아닌 몸으로 아내와 조우하는 알렉스 머피. 그리고 끝내 다시 만나게 되는 아들. 그 장면에서의 대사 사이 여백들이 좋고, 이후 파트너와 다시 만나 실없이 구는 알렉스의 표정과 대사들도 굉장히 좋게 느껴진다.

리뉴얼된 로보캅 디자인은 호불호가 갈릴 만하다. 좋게 이야기하면 일단 현대화가 잘 됐다. 세련되고 쿨해졌다. 흡사 아이언맨처럼 보이기도. 그러나 또 나쁘게 말하면, 원작의 그 둔탁하고 거친 느낌은 많이 휘발된 게 사실. 이건 추억이나 취향에 따라서 아마 좋게 느껴지거나 나쁘게 느껴질 것 같음.

그러나 액션 부분에서만큼은 거의 호불호 갈릴 것 없이 나쁘다고 생각한다. 일단 전체적으로 요즈음의 블록버스터답지 않게 액션의 함량이 적다. 스케일도 작고. 그리고 무엇보다 개별 액션 시퀀스들의 디자인이 재미없다. 불이 꺼져 어두운 범죄자 소굴에서 악당들과 로보캅이 일대다수로 한 판 붙는 장면은 그야말로 잘 보이지 않아 그 감흥이 덜하다. <킥애스 - 영웅의 탄생> 속 힛걸 액션 시퀀스를 벤치마킹한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 영화의 그 장면은 격발되는 총구의 불꽃과 번짝이는 손전등의 불빛으로 굉장히 멋지게 연출된 장면이었다고. 이 영화는 그냥 그걸 어설프게 따라한 정도에서 그친다. 더불어 ED 209 여러대와 대치하는 클라이막스 장면도 좀 무미건조. 좀 더 영리하고 다채로운 방식을 사용해 싸우는 연출이 필요했을 것 같은데.

가장 이해 안 가는 부분은 클라이막스의 마지막 부분이다. 마이클 키튼이 연기한 악덕 CEO과연 악덕 기업가 연기의 본좌를 주인공이 죽여버리는 장면. 분명히 격발하지 못하게 프로그램 되어 있어 힘들어하는 묘사가 있는데, 이내 그냥 별다른 아이디어없이 쏴버리고 상황 종료. '주인공의 인간적 자유의지와 노력이 끝내 격발을 성공시켰다!'로 이해하기엔 너무 끙끙 대기만 하다가 쏴버린 것 같아서 좀 별로.

명색이 액션 영화임에도 액션의 분량과 파괴력 면에서 구린 영화. 그러나 그 외의 인간적인 요소들이 너무나 내 마음을 때려서 마냥 나쁘게 만은 보고 싶지 않은 영화. 다른 건 몰라도 원작에 비해 그 사유력만큼은 업그레이드 되었다고 생각한다.

2020/07/07 23:46

로보캅3, 1993 대여점 (구작)


주연배우도 바뀌고, 감독도 바뀐 시리즈의 3편이자 최종편. 감독인 프레더 데커는 연출가보다 각본가로서 더 오래 활동한 인물인데, 최근에 어떤 작품에 참여했었나- 하고 살펴보니 셰인 블랙의 <더 프레데터>가 눈에 걸리더라. 시팔 이 양반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하고만.

2편이 제작 당시의 사회적인 마약 문제와 히피 문화들에 대해 언급하는 영화였다면, 3편은 버블 경제 당시 경제적으로 미국을 위협했던 일본의 모습을 노골적으로 피어오르게 만든 영화다. OCP는 일본 대기업에 인수되었고, 덕분에 CEO는 하염없이 모기업 일본 사람들에게 머리를 조아린다. 그리고 그런 묘사에 화룡점정을 찍는 사무라이 악당 로봇의 등장. 이전 시리즈들의 로보캅이나 ED 209 등이 확실한 기계적 움직임으로 정체성을 피력했던 것과는 다르게, 이 사무라이 로봇은 그 사이 외계기술이라도 갈아넣은 건지 존나 인간처럼 굴어 짜증남. 사용하는 검은 또 어찌나 날카로운지, 로보캅의 손가락마저 한 번에 다 절단신공. 자네 칼 비브라늄인가? 근데 제아무리 동양 사상을 비롯해 사무라이 정신을 녹여낸 놈이라고 해도 로봇 주제에 명상하는 건 대체 뭐란 말인가. 무선 충전할 때 그냥 그 꼴로 하는 거라면 인정. 아니면 절전 모드 폼이라든가.

제작사의 간섭으로 아동용이 된 3편이다. 이제 로보캅은 농담 따먹기를 즐긴다. 그나저나 뭐 설계도가 오픈 소스로 유출되기라도 한 건가. 어린 꼬마애가 처음 보는 로보캅의 부품 내역과 그 위치는 어떻게 아는 거냐. 이건 뭐 명백하게 어린 관객들 이입하라고 만들어둔 영웅적 꼬마인 거지. 총탄이 날아다니는데 어린 소녀의 도움으로 다시 일어서는 로보캅! 애들은 환호했겠지만 어른인 나는 그러지 못했다.

이전 영화들도 자본주의의 어두운 면에 대해 끊임없이 조소를 던졌었지만, 3편에서는 그게 좀 더 노골적으로 바뀌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아예 집을 빼앗긴 채 내몰리고, 거대 기업과 정부는 그들을 압박하려 든다. 이어서 발생하는 연대와 대립. 사회적인 메시지를 좀 더 구체화하려고 그랬나- 싶다가도, 영화의 아동영화적 태도에 그냥 깔끔한 선악구조가 필요했던 것 뿐이구나- 하며 탄복하게 됨.

비행 키트까지 장착해 날아다니게 된 로보캅의 모습은 좀 웃긴다. 근데 개봉 당시에 봤으면 존나 어썸했을 것 같음. 아이언맨 뺨치는 기동력이던데.

마냥 망작같은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앞선 두 편의 영화에 비해 너무 어린 영화였을 뿐. 그래도 시리즈가 좀 더 지속 되었더라면 어땠을까. 분명 더 아름답고 깔끔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아니면 더 구질구질하게 끝났거나

뱀발1 - 로봇이 담배도 피우는 세계관. 하긴, 전작에서는 마약도 했는데 담배 못 피울 이유는 또 없지.

뱀발2 - 젊은 시절의 브래들리 윗포드를 볼 수 있는 영화이기도. 근데 레지스탕스 리더로 나오는 CCH 파운더랑 브래들리 윗포드는 최근 <고질라 - 킹 오브 몬스터>에도 같이 출연했다. 이런 기묘한 인연이.

2020/07/07 23:36

로보캅2, 1990 대여점 (구작)


돌아온 로봇경찰. 그러나 폴 버호벤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빈자리를 꿰찬 건 다름 아닌 어빈 커쉬너. 전작을 뛰어넘었던 <제국의 역습>의 연출자라는 것만으로도 어느정도 안심되지만, 굳이 또 따져보면 <로보캅2>는 전편을 못 넘은 느낌이 강함. 그래도 제몫을 충분히 해낸 속편이긴 하다.

미디어 묘사로 오프닝을 가져갔다는 점에서 시리즈의 연속성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그 뉴스가 다루고 있는 소식들이 여전히 영화의 내용과 구체적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단 점에서 좀 아리송하기는 함. 이제 그냥 혼란한 세계관을 묘사하는 데에서 만족한 것 같기도 하고.

결국 경찰 파업에 들어간 디트로이트시는 그야말로 난장판. 살아있는 고담 시티 그 자체처럼 느껴질 정도다. 고담이야 뉴욕을 베이스로 했다지만 어찌되었건 가상의 도시인데, 디트로이트는 아니잖아. 이 시리즈 외에도 캐서린 비글로우나 다른 감독들이 많이 다루기도 했으니 정말로 치안이 막장이었던 동네는 맞는가보다. 실제로 미국 여행 갔을 때도 디트로이트 이야기하면 다들 위험하단 말밖에 안 하던데.

하여튼 DC 영화 속 고담시 묘사 뺨치는 디트로이트의 막장성. 이것 역시도 1편의 경찰서 장면처럼 롱테이크로 담아낸 부분들이 있다. 길거리를 옆으로 트래킹해서 보여주며 물고 물리는 범죄자들의 생태계를 묘사하고 있음. 근데 시발 고담시는 아무리 무섭고 강경해도 사람 줘패 불구로 만드는 데에서 그치는 배트맨의 도시지만좋은건가, 디트로이트의 로보캅은 다르다. 경찰이고 브루스 웨인 마냥 총에 대한 거부감도 없다보니 좀만 말 안 통한다 싶으면 바로 그냥 총부터 쏘고 봄. 반쯤은 기계이니 범죄자들에 대한 동정이나 연민도 기본적으로 별로 없고, 굳이 따지자면 또 정당한 법 집행관인 거라 범죄자들 좀 쏴죽이고 다녀도 다들 별로 신경 안 쓰는 느낌. 막말로 고담시 뒷골목에서 박쥐인간 만나는 것보다 디트로이트에서 로보캅 마주치는 게 범죄자들 입장에서는 더 무서울 것 같음. 그냥 둘 다 무서움

그래도 명색이 주인공이라 진짜 '기계'에 불과할 것이라고는 관객으로서 생각 안 했기 때문인지, 로보캅이 사이비들에게 붙잡혀 말그대로 오체분시 당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고어무비스럽게 느껴진다. 그리고 제작진들도 그걸 알고서 노골적으로 이용해먹은 느낌이 듦. 쇠껍데기가 잘려 분해되는 것 뿐인데도 마치 오장육부를 지닌 인간이 잔인하게 죽임 당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주인공의 꽉 깨문 이가 더 고통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시리즈를 통틀어 가장 또라이인 것 같은 진또배기 미친년의 등장. 근데 상점 털고, 사람 죽이고 다니는 마냥 범죄자가 아니라서 더 짜증난다. 그야말로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본좌. 이 또라이가 내놓은 새로운 로보캅 모델에 대한 아이디어가 존나 가관이다. 알렉스 머피처럼 책임감과 의무감이 강한 다른 경찰을 새 로보캅 후보로 데려와도 모자랄 지경인데, 얘가 1순위로 생각하고 데려온 건 다름아닌 컬트 범죄 집단의 교주이자 두목. 심지어 그 이유도 충공깽이다. 이 새끼는 마약중독자니까 마약만 주기적으로 제공해주면 우리 말을 잘 들을 거라나? 그리고 혹시나 통제에서 벗어나려해도 만능 리모컨이 있으니 괜찮을 거라고? 시발 너 박사 맞냐?

마약만 주기적으로 제공해주면 말 잘 들을 거라고? 얘가 마약을 지들한테서 뺏을 거라고는 생각 못해본 모양이다. 심지어 꼭 지들한테 빼앗을 필요도 없지. 유일한 공급처가 지들 뿐이야? 지금 디트로이트 시내 나가면 널린 게 마약인데. 그리고 뭐? 리모컨?  시팔 그 리모컨을 얘가 잡아 박살낼 거라는 것도 예측가능한 상황 리스트에 들어있지 않았던 모양이다. 명색이 박사고 전세계적 거대기업이라더니 하나같이 다 빡대가리들만 모아놓은 듯.

누가봐도 해선 안 되는 짓처럼 보이는 사이비 교주 악당의 사이보그화 뿐만 아니라 악당들 개연성이 전체적으로 심각하다. 일개 꼬맹이 하나가 범죄 조직의 두목으로서 군림하게된다는 설정도 존나 어이 털리잖아. 그와중에 재밌는 건 OCP 로고가 들어간 깃발이 존나 나치 같다는 것 정도. 아, 메인 악역은 아니지만 학교 야구부 코치가 자기 야구부원들로 가게 터는 거 존나 웃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시작된 조지 플로이드 시위 사태가 미국 내에서 전개되고 있는 현 상황. 그와중에 보기엔 좀 그런 영화이지만, 극중 경찰들의 영웅적 면모가 유난히 돋보이는 영화인 것은 어쩔 수 없다. 주인공부터가 애초에 경찰인데 뭘... 하여튼 같은 동료인 주인공을 구하기 위해 서로 뭉쳐 출동하는 장면은 80년대 스타일 의리 가득 장면이라 뭔가 복고풍 같고 좋았음.

글라이막스 액션이 과격하고 혜자스러워서 또 좋다. 이 정도만 해도 배부른데-라는 생각이 드는 와중 또 고봉밥을 내미는 할머니 같은 영화라고 해야하나. CG 기술이 득세하기 딱 직전에 나와 마지막 스톱모션 액션 영화로써 불꽃을 태운 그 기술력이 대단함. 그리고 액션도 꽤 길어. 기술의 발전 때문에 지금보면 그저 귀여운 수준에 불과해보이는 게 사실이지만, 개봉 당시 극장에서 봤던 관객들은 확실히 놀라 까무러쳤을 것 같다.

전설이 되어버린 1편의 아성을 넘기기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 자체로 꽤 재미있는 영화. 딱 여기까지였더라면 그래도 박수칠 때 떠나는 모습이 되었을 텐데, 제작사의 끝없는 욕심은 그 때나 지금이나 다 똑같았던 모양이다.

2020/07/07 23:22

로보캅, 1987 대여점 (구작)


세기말 기운이 충만했던 폴 버호벤의 1987년 클래식 무비. 그 옛날 동네 꼬꼬마들 모두가 문방구 앞에 모여 로보캅 동작을 따라하게끔 만들었던 영화였지만, 실상은 염연한 청소년관람불가. 다시 봐도 애들이 볼만한 물건은 아니다 싶다.

당시 잘 나갔던 다른 감독들이 연출했더라면 없지 않았을까- 싶은 부분들이 꽤 있다. 대표적인 게 바로 영화의 오프닝을 장식하는 TV 뉴스 장면. 그 자체로 영화 속 아슬아슬한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단시간 내에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기능도 출중했었지만, 따지고 보면 매드 미디어에 대한 폴 버호벤의 지속적 비판이 짙게 깔려있는 부분이다. 그러니까 굳이 없어도 이야기 굴러가는 데엔 하등 상관없는 부분이었지만, 감독인 폴 버호벤의 작가주의적 인장이 깊게 새겨진 장면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스타쉽 트루퍼스>에도 이런 거 있었으니.

초반부 경찰서 장면이 재미있다. 폴 버호벤이 정말 연출을 잘하는 게, 쇼트를 잘게 나눠갔어도 상관없었을 부분에 롱테이크를 집어넣음으로써 영화 속 분위기를 잘 전달했다는 것. 뭐, 롱테이크라고 해서 <버드맨>이나 <1917> 급으로 긴 건 당연히 아니다. 그래도 나름 긴 길이의 쇼트들로 경찰서의 정신없고 바쁜 상황을 잘 묘사한게 재미있음.

개봉 당시 마케팅이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주인공인 줄 알았던 사내가 영화 시작하고 20분 만에 죽어나가니 극장에서 본 관객들은 얼마나 놀랐을까. 근데 암만 생각해도 노 튜닝 상태의 순정 머피는 정말이지 대단했던 것 같다. 지근거리에서 그렇게 많은 총알들을 맞고도 살아남았다는 거 아닌다. 그걸 살아남은 거라 할 수 있나? 어쨌든 정신은 간신히 붙어있었잖아

이어지는 머피 튜닝 과정. 이 시퀀스를 철저히 머피의 시점으로만 묘사한 게 진짜 신의 한 수였다고 본다. 존나 시대를 앞서가는 연출 아니었나 싶음. 다른 영화였다면 로보캅 프로젝트 개발자들의 시점으로 수술대에 누운 머피가 점차 변해가는 과정을 몽타주로 담아냈을 법도 한데, 이 영화는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머피의 고정된 시점 샷으로만 응수한다. 덕분에 내 몸이되 내 몸이 아닌 것 같은, '나'이지만 자유의지가 없는 것 같은 느낌을 잘 전달했다고 생각해. 그래서 더 끔찍한 상상들이 머릿속에서 돌아가기도 하고.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정말이지 ED 209 첫 시연 프레젠테이션은 충공깽이다. 호기롭게 나선 젊은 사원을 죽사발 낸 것도 충격적이지만, 이후 그 결함이 이끌어낼 사업 부진만을 걱정하는 사내 고위층의 사고방식과 그 리액션이 더 쇼킹. 근데 개발자 이 미친놈들은 사내 시연을 하는 자리에서 실탄이랑 미사일까지 실제로 장전해놨다. 진짜 개미친놈들이네, 이거. 이후 시리즈의 전통이 된다는 게 함정

다음은 로보캅으로 재탄생한 머피의 활약 묘사. 말이 공권력에 정당한 법 집행이지, 범죄자 인권 따위 안중에도 없는 쿨하고 거친 묘사가 일품. 경찰 신분인데다 이름마저 로보'캅'이니 공무원인 것은 맞지만, 행하는 폭력의 강도로만 보면 자경단이 따로 없어 보일 지경이다. 게다가 여기에 초반부에서 주인공을 죽여버린 악당들을 잡는 내용이 추가되니 타란티노스럽게 '복수' 테마까지 들어가 더 좋음. 진짜 정의와 복수는 한 끗 차이여. 하여튼 첫 부임한 날 조져버린 상가털이범이랑 성폭행 미수범, 인질범은 끝내 불쌍해보일 지경. 존나 나쁜 새끼들인 건 맞는데 하필 로보캅 첫 기동식 날 그 지랄들 떨어서... 범죄에도 운이 필요하다.

범죄자 집단과 결탁한 거대 기업, 경찰력 등의 공권력을 민영화 하려는 움직임 등. 자본주의의 그림자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가하는 영화이기도. 그러나 영화의 주인공인 로보캅 역시 자본주의 거대 기업의 투자와 서포트가 없었다면 그 존재가 애시당초부터 불가능했을 터이니 여러모로 아이러니.

기계에서 인간으로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이고, 또한 한 명의 인간으로서 자유의지를 찾아가는 과정을 다루는 영화다. 다만 생각보다 그 묘사나 강도가 진하지는 않은 편. 차라리 이건 2014년에 만들어진 리메이크작이 더 깊게 다뤘던 것 같다. 폴 버호벤은 그냥 어른 취향의 존나 폭력적인 영화를 만드는 게 더 우선순위였던 것 같기도 하고.

뱀발 - 계단에게 패배하고 땡깡부리는 ED 209의 모습은 언제 봐도 졸귀. 언제 봐도 한심

2020/07/04 18:14

사라진 탄환 극장전 (신작)


프랑스에서 제작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포스터랑 예고편만 봤을 땐, <분노의 질주> 시리즈나 <데스 레이스> 스케일까지는 안 되어도 <베이비 드라이버>처럼 소소한 추격전과 액션으로 진행되는 범죄 액션 드라마인 줄 알았지. 그러나 정작 본 영화는 '액션 영화'라기엔 그 '액션'의 함량이 그리 높지 않은 편.


스포일러 탄환!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있고, 둘 중 하나만 제대로 해결봤더라면 좀 더 사랑해줄 용의가 있는 영화였다고 하겠다. 첫번째 문제는 영화가 존나 뻔하다는 것. 상점털이의 공범인 동생을 살리려고 혼자 감옥에 입소한 주인공. 그러나 특출난 자동차 정비 능력으로 이내 마약반에 스카웃 되고, 자신을 진심으로 믿어주는 마약반장과 우정을 다지게 된다. 그리고 끝내는 그 마약반장이 조기출소도 주선해줌. 교도소 나와서는 같이 일도 하자고 치근덕 댐. 그럼 이제 이쯤에서 보이는 거잖아, 이 마약반장 뒤지겠네.

실제로 바로 죽는다. 그리고 이후로도 뻔하디 뻔한 전개로의 질주. 정작 흥미로울 수 있었던 셋팅들도 죄다 무시한채 내달림. 이렇게 뻔하디 뻔한 누명 추격극으로 갈 거였다면 주인공이 교도소에서 출퇴근하는 범죄자란 설정 왜 넣은 거임? 이거 잘만 하면 탈옥물하고도 믹스 매치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이렇게 안 쓸 설정이었다면 애시당초 왜 구겨 넣은 거냐고.

두번째 문제. 앞서 말했듯 액션이 많지 않다는 거. 영화가 존나게 뻔해도 액션이 끝내준다면 눈 감아줄 수 있다. <존 윅> 시리즈가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이 영화는 액션 자체도 많지 않고, 그나마 있는 액션의 파괴력도 쌀보리 수준임. 나름 실력있는 정비사로 설정된 주인공이 나오길래 아무리 못해도 <분노의 질주> 1편급 추격씬은 보여주려나- 했었는데 그딴 거 1도 없음. 그냥 클래식카 본네트에 무쇠 갈고리 하나 달고 그걸로 끝까지 간다. 경찰차 몇 대가 뒤집히고 끝내는 폭발까지 하지만 이렇게 소소하고 귀여운 자동차 추격전은 정말이지 오랜만에 본 것 같음.

이야기는 뻔해, 액션은 약해, 여기에 캐릭터도 매력없어. 이 정도 되면 넷플릭스 오리지널이 넷플릭스 오리지널했다-로 기억하는 게 끝일 것 같다. 신선하게 만들던지, 아니면 뻔하더라도 존나 끝까지 가면 어땠을까 싶어.

2020/06/30 16:41

#살아있다 극장전 (신작)


하이컨셉은 꽤 좋았다고 생각된다. 이거 완전 아파트를 배경으로 한 <캐스트 어웨이>나 <김씨 표류기>로 풀기에 딱 좋았던 설정 아니냐? 맞다, 나는 이 영화에서 좀비가 맥거핀에 불과했어야 된다고 보는 입장이다.


#스포있다!


<엑시트>랑 여러모로 비슷하게 느껴지는 영화다. 20대의 젊은 두 남녀를 주인공으로 삼아 달려가는 재난 영화. SNS나 유튜브 등의 최신 플랫폼을 가감없이 사용하고, 스마트폰과 드론 등의 최신 기기들이 생존 도구로써 기능하는 설정. 좀비 창궐 사태의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 점도 <엑시트>가 유독 가스 상황을 퉁치고 넘어간 점과 비슷하다. 나는 그거 괜찮다고 봤다. 이제 국내에서만도 제작된 좀비 장르가 한 두 편이 아닐진대, 뻔할 수 밖에 없는 내용으로 오프닝 굳이 낭비할 필요는 없지.

가장 중요한 건 시의성이다. <엑시트>는 끊임없이 뛰고, 또 기어오르는 두 20대 남녀의 모습을 통해 요즈음의 젊은 세대들이 느끼는 현실 속 재난 상황과 그들의 상태를 잘 은유해 보여주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일상 자체가 재난인 상황이잖아. 기성 세대의 성공 신화와 그 시절은 절대 돌아오지 않는단 걸 그들은 이미 알고 있다. 부모 세대처럼 소위 '회사에 뼈를 묻는다' 정신은 그들에게 있을 수가 없는 거야. 왜? 취업도 어렵거니와 막상 회사 들어가도 그 부품으로만 살고 싶지 않아진 것이거든. 살아남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막연한 미래보다, 지금 내 눈 앞의 현재에 집중하는 경향. 금수저와 흙수저를 논하며 절망 끝에서 보이지 않는 희망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 모습. 그게 요즘의 2,30대 모습이고 <엑시트>는 그걸 썩 잘 보여줬었다.

<#살아있다> 역시 초반 기획 지점은 비슷했을 걸로 예상된다. 근데 이게 뭔 느낌이냐면... 지금의 2,30대 문화에는 1도 관심없고 잘 알지도 못하는 중년의 제작 & 기획자들이 그냥 대충 이렇겠거니-하고 만들어낸 2,30대 타겟 영화인 것 같음. 요즘 관심종자들 많은 거 나도 알아. 하지만 영화에서 나오는 모든 젊은이들은 죄다 SNS 통해 멍청한 짓들만 업로드하고 있다. 수상쩍은 상황이 터졌는데도 20대 주인공은 다른 유저들과 온라인 게임을 하고, 그 와중에 음성 채팅으로는 '~하삼' 등의 이미 지난 유행어와 말투들이 마구 던져지고 있음. 더 웃긴 건 갑자기 주인공이 빈지노의 힙합에 맞춰 춤을 춘다는 것.

기획했던 사람들도 존나 트랜디하다-라고 자화자찬 하면서 만들었을 것 같다. 선 없는 블루투스 기기들이 곧 젊은 것이라고 생각했던 건지 뭔지 갑자기 무선 기기들 까는 순간 나오는 것도 예상되다 못해 좀 깼다. 영화 전체가 그런 느낌이야, 옛날에 PC로 했던 파이프 게임. 출발지와 목적지만 딱 정해놓고, 그 사이 구간은 각기 다른 모양의 파이프 부품들을 모아 연결해야만 하는 게임. 이 영화가 딱 그렇다. 분명히 넣고 싶었던 장면이나 설정들이 있었고, 그 사이를 잇기 위해 다른 내용들을 급조한 느낌. 그러니까 개연성이 떨어지지.

가족들이 다 죽은 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고 해도 그렇지, 주인공은 갑자기 발악하며 바깥 세상과의 유일한 연결고리인 TV를 마구잡이로 부순다. 그러더니 또 갑자기 아빠 골프채 들고 나가서 좀비들 어그로만 진탕 끌다가 다시 집으로 복귀함. 그것도 가까스로. 이건 그냥 고구마 캐릭터인 것이 아니라, 보여주고 싶었던 특정 장면이나 설정을 위해 캐릭터가 희생 당한 거다.

이런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뉴스에 따르면 전체 감염자는 약 5만 명이라는데, 100만 명도 아니고 겨우 5만 명이면서 서울 시내에 미사일이 날아다녀? 빡대가리가 아니고서야 수도 끊길 건 예상 했어야지. 갑자기 물 끊어지니까 당황해? 아니, 그리고 블랙 코미디라도 넣고 싶었던 모양인데 긴급 재난 방송 중간에 라면 광고 넣는 건 뭐냐? 이거 그냥 이후 이어지는 주인공의 라면 취식 먹방으로 잇고 싶었던 것 뿐 아니야? 블랙 코미디는 개뿔. 이외에도 분명히 전기 끊어졌다는 묘사가 나오는데, 이후 주인공은 스마트폰이랑 드론들 잘만 사용함. 하루 이틀 갇혀 있던 것도 아니고 거의 한 달이 넘는 기간이었는데 대체 충전은 어떻게 해서 쓴 거냐. 보조 배터리라도 한 다스씩 집에 보관해두고 있는 건가.

액션 설계도 끔찍하다. 그저 우리네 '평범한 사람'처럼 느껴졌어야 할 박신혜 캐릭터는 갑자기 밀라 요보비치가 되어 좀비들을 학살한다. 좀비를 연기한 배우들의 표정이나 몸짓 연기는 좋다. 그러나 전체적인 몹씬 관리가 안 되어 있다. 주인공이 쓰러져 있으면 좀비들 걸음걸이가 늦어짐. 그러다가 주인공이 벌떡 일어나면 그제서야 달려들고. 청력 관련된 묘사도 존나 오락가락임. 어느 순간엔 엄청 무디다가, 또 어떤 순간엔 쿠팡맨 마냥 동호수까지 파악해 찾아올 정도로 소머즈 됨. 이거 뭐야, 시발.

하지만 가장 박살난 건 메시지다. <엑시트>는 두 주인공이 처한 암울한 상황을 통해 영화 바깥의 현실을 꼬집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달리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통해 영화 바깥에서 분투하고 있는 젊은이들을 위로했다. 근데 <#살아있다>는? 시발 막판에 갑자기 두 주인공이 자살하려 한다. 특히 박신혜 캐릭터가. 얘는 유아인 캐릭터가 자살하려고 들 땐 바보라고 일갈하며 제지 했으면서, 막판엔 갑자기 태도를 바꿈. 그러다 갑자기 바깥에서 들리는 헬기 소리 듣고 또 입장 바꾸고. 그리고 이 결말은 그렇게 읽힐 수도 있는 것이다. '젊은 너네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돼. 존버해도 안 된다고. 너네는 나랏님과 어른들이 구해줄 때만 구제받을 수 있어' 이렇게. 근데 솔직히 이것도 존나 잘 봐준 거다. 처음에는 그냥 '이거 살고 싶으면 인스타그램 열심히 하란 소리인가?'란 생각 밖에 안 들더라. 페이스북이 투자한 영화인 줄 알았다고. 페이스북 오리지널 영화

좀비든 상황이든 죄다 필요에 따라 변덕 부리는 영화. 다시 말하지만, 좀비는 그냥 맥거핀으로 두고 주제적 + 묘사적 측면에서 <캐스트 어웨이>나 <그녀>처럼 갔어야 되었다고 봐. 군중 속의 고독, SNS 묘사 등을 더 강조해서 갔어야 했다고. 지금 버전은 재밌긴 커녕 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희망마저 무참히 꺾는 것 같아 기분이 개운치 않았다.

2020/06/29 23:59

사라진 시간 극장전 (신작)


난해한 영화란 평이 주를 이루던데, 그냥 생각없이 봐서 그런가- 걱정했던 것보다는 무탈하게 봤다. 근데 아무리 영화를 처음 찍는 신인 감독의 데뷔작이라 해도 그렇지, 첫 인상이 이렇게 개판이면 어쩌쟈는 거냐. 

배우로 유명한 정진영의 감독 데뷔작 되시겠다. 출신이 배우든 작가든, 자기 영화를 처음 찍는 신인 감독들은 대개 서툴기 마련이다. 당연한 거지,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는 거니까. 그러니까 이 영화도 많이 거칠 수 있고, 여러 면에서 부족할 수 있다. 다만, 그럼에도 꼭 해냈어야 하는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출신도 아니고 감독이 배우 출신인데다 그 경력마저 30년이 넘어가는 상황이라면 최소한 자기가 연출한 영화 속 배우들의 연기 톤이나 대사는 좀 잡아줬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물론 중반부가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조진웅을 위시해 다른 배우들의 연기에는 큰 불만이 없다. 근데 어떻게 영화 시작하자마자 등장하는 두 배우의 연기가 그럴 수 있단 말인가. 배수빈과 차수연, 이 둘이 끌고가는 영화의 초반부가 참으로 복장 터질 노릇이었다. 시팔 이 두 배우만의 잘못은 아니었다는 점에서 더 어이가 털리는 거지.

극중 시골의 작은 분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 역할의 배수빈. 첫 등장한 시퀀스에서 이런 대사가 있다. 퇴근 중 학교 건물을 바라보며 하는 혼잣말, "참 좋다". 여기서 일단 실소 한 방. 그리고 이어지는 아내 역할의 차수연 대사, "마음씨가 참 고와". 여기서 비웃음 두 방. 다른 것도 아니고 배우 출신 감독인데 직접 이런 대사를 썼다니 정말 복장과 함께 분통도 같이 터져버림. 이후 조진웅의 인터뷰에서 봤다. 정진영이 쓴 시나리오가 참 순수해서 좋았다고. 그래서 토씨 하나 바꾸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캐스팅에 임했다고. 거기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 그럼 이 모든 게 다 조진웅의 잘못인 건가? 그게 순수함으로 느껴졌다면 할 말 없지만, 적어도 내가 느낀 감상은 순수함보단 촌스러움에 더 가깝던데.

판타지스러운 난해함을 제하더라도, 개연성과 현실성이 없어뵈는 건 저 대사들 뿐만이 아니다. 생각해보자. 당신이 아내를 둔 남성인데, 그 아내가 무당 마냥 매일 밤마다 접신해 다른 사람이 된다. 그래도 아직까진 나에게나 남에게나 피해 준 적 없고. 근데 그게 시골 마을 사람들에게 알려진다. 그리고 내 아내가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그래, 뭐 거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지. 근데 시발, 그 마을 사람들이 제안하는 게 다락방에 쇠창살 달기? 그래서 밤에만 아내 가둬두고 다음 날 아침 일찍 풀어주기? 시팔... 진짜 백 번 양보해서 그것까지도 이해해줄게. 근데 내 뚜껑이 날아간 부분은 바로 그 다음이었다. 그 잠긴 다락방의 열쇠를 남편에게 주는 것도 아니고 마을 사람 중 한 명이 관리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시팔 펑이다.

그러나 그 외 부분들에 있어서는 평이하되 안정적인 영화다. 무엇보다 '내'가 아닌 '나로 살아가는 슬픔과 두려움을 잘 보여주고 있기도 하고, 지금의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오는 막연함마저 잘 느껴진다. 그리고 좀 난해하게 해석되고 있는 것 같은데, 단순하게 생각해서 그냥 이 모든 것들이 죄다 일장춘몽이었다-로 읽어도 상관없을 듯. 개인적으로는 조진웅의 인물과 이선빈의 인물이 초반부의 그 부부에게 접신한 느낌으로 읽혔다. 근데 뭐 어떻게 해석해도 상관없지 않나. 이미 이렇게 꼬아놨으니. 하다하다 평행우주로 읽어도 상관없을 것 같던데.

결국은 순응할 수 밖에 없는 운명에 공감으로 대꾸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것이 경제적인 것이든, 계급적인 것이든, 아니면 하다못해 의학적인 것이든. 피할 수 없는 불치병 같은 운명에 끝까지 저항하지 않고 이내 순응해버리는 사람들. 그 와중에 서로를 유일하게 위로해주는 건 겪어본 자들끼리만 던질 수 있는 공감 뿐. 

뱀발 - 후반부 카페 테라스 장면에서 펜스에 붐마이크랑 스텝들 반사되어서 다 보이던데. 이런 것까지 신인 감독의 non눈썰미로 이해하고 넘어가야 하는 건가.

2020/06/20 00:29

나의 희망 일기라기엔 너무 낙서


정체모를 외계존재들에 의해 인류는 절멸의 위기를 맞는다. 그나마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우수한 청력을 지닌 외계존재들로부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사력을 다해 숨을 죽인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라도 났다가는 어디선가 외계존재가 튀어나와 나를 낚아챌 터이니.

이런 배경 설정이 존재하는 영화인데, 내가 이야기 나눠본 대부분의 사람들이 항상 꼭 걸고 넘어지는 게 바로 주인공 부부의 임신 설정이었다. 인류가 망해가는 판국에 섹스가 웬말이냐- 라고 일갈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 중 대부분은 주인공 뱃속의 아기를 걱정하는 것이었다. 태어나자마자 울텐데, 자라면서도 매일 울고 떼쓰고 소리 지를텐데 어떻게 키우냐는 것. 조그마한 소리라도 나면 죽는 상황에서 아기 키울 생각을 하다니 무책임 하다는 것.

백 번 양보해도 사실 현실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항상 생각해왔다. 희망은 일순간 장렬히 산화하고 곧 사라져버리는 저 하늘의 불꽃놀이 같은 것이 아니라, 조그마하고 보잘 것 없지만 마음 한 켠에 깊이 남는 성냥불 같은 것이라고. 그리고 희망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나온다고. 나는 언제나 그렇게 믿어왔다.

때문에 주인공 부부가 아이를 갖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생존에 있어 최악의 결정이나, 우리가 꼭 '생존'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만은 아니지 않은가. 'Survival'이 아니라 'Live'가 중요한 것 아닌가. 그리고 아이 없이 생존하기만 한다면 그게 무슨 의미란 말인가. 늙어죽든 외계존재들에게 잡아먹히든, 내가 죽으면 그 때야말로 인류는 끝나는 게 아닌가.

희망을 키우고, 희망을 살아남기고, 또 그 희망을 움켜쥐는 것. 나는 그게 언제나 아이들을 키움으로써 가능해진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콰이어트 플레이스>의 그 설정은 불리하지만 결국 옳은 결정이라고 생각하고, 끝까지 아이들을 살아남기는 <설국열차>와 <더 플랫폼>의 결말을 믿는다. '나만 아니면 돼'라는 신념을 갖고 있는 사람조차도, 자신의 자녀를 생각한다면 절대적으로 그 신념을 버릴 수 밖에.


2020/06/17 16:10

죠스, 1975 대여점 (구작)


떡잎부터 달랐던 스필버그를 볼 수 있는 그의 초기작. 그리고 불세출의 여름 영화. 모름지기 유럽 여행 가기 전엔 <테이큰>이랑 <호스텔> 한 번 봐줘야 되고, 해수욕 가기 전엔 <죠스>를 봐줘야 하는 것이다. 


열려라, 스포 천국! 45년 전 영화인데?


지금 시점에서 다시 보면 조금 뻔한 구석이 있는 게 사실이다. 주인공들을 옥죄어 오는 수면 밑 괴생명체의 존재,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사건을 덮으려고만 하는 지역 이기주의의 발현, 좁은 폐쇄공간 안에서 극명하게 다른 성격의 캐릭터들을 활용하는 방식 등. 그러나 앞서 말했듯 45년 전 영화이니, 그 클리셰들이 다 어디에서 왔는가-를 역추적하면 결국 <죠스>가 나올 것이다. 때문에 현재 기준으로 봤을 때는 다소 전형적인 부분들이 존재하지만, 개봉 당시 시점에서는 나름대로 혁명적인 영화였다는 것.

그 와중 스필버그가 존나 대단한 게, 연출을 개쩔게 만들어놔서 전형적으로 볼 수 밖에 없는 현재 시점에서 이 영화를 다시 봐도 그냥 존나 재밌게 볼 수 밖에 없다는 것. 정말이지 스필버그는 떡잎부터 달랐던 것이다. <대결> 같은 TV 영화들을 제외하면 이게 두번째 극장용 장편 영화인 셈인데, 나름 신인으로서 이 정도 예산을 굴려가며 이 정도 퀄리티를 뽑아냈다는 게 정말이지 대단하게만 느껴진다.

타고난 연출력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은 많다. 개중 몇 개만 따져보면. 일단 롱테이크 연출이 있을 것이다. 언제나 말했듯 롱테이크로 찍었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장면, 좋은 영화가 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전체 전개의 흐름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도전적이고 미학적인 촬영이 존재하고, 그 안에서 롱테이크의 최대 약점인 지루함마저 줄일 수 있다면 정말이지 금상첨화겠지. 근데 젊은 날의 스필버그는 그걸 그냥 해내버렸다. 초반부, 상어의 습격을 걱정해 해변으로 향하는 주인공과 그를 설득하기 위해 나선 시장이 대화하는 장면. 그 부분이 꽤 길게 롱테이크로 연출되어 있는데, 단순 대화 장면이라 그냥 오랫동안 촬영하기만 했다면 다소 간에 지루했을 것이다. 그러나 스필버그는 그냥 그들을 한꺼번에 바지선 위로 태워 카메라 위치는 고정되어 있되 배가 움직이도록 해 그 단점을 보완했다. 배우의 연기를 담보하는 방식으로 롱테이크를 썼다는 게 정말 멋진 부분이기도 한데, 기껏 롱테이크로 다 찍어놓은 쇼트를 굳이 둘로 갈라 그 사이에 인서트를 넣기도 한다. 어렵게 롱테이크로 찍어놓고 아깝지 않았을까- 싶지만, 이런 편집 자체가 다른 데에 별로 욕심 없다는 이야기처럼 들려 납득하고야 말았음. 스필버그는 그저 배우들에게 마치 연극처럼 단숨에 연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것일 뿐. 

괴수의 모습을 최대한 숨긴다-라는 괴수 장르의 공식대로 움직이는 영화이기도 한데, 스필버그는 서스펜스 만드는 데에 워낙 도가 튼 사람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그 장르적 클리셰가 잘 먹힌다. 수면 위를 가르는 백상아리의 지느러미, 수면 바로 아래를 스치는 백상아리의 회색빛 몸통 등을 강조하면서 공포감을 조성하는 방식이 실로 대단하다. 아닌 게 아니라 <죠스>만 봐도 이 양반이 왜 대성 했는지 바로 알 수 있다니까.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침몰했던 인디애나폴리스함의 생존자, 퀸트가 죽음을 맞이하는 게 참 공교롭다. 구조를 기다리던 젊은 날의 퀸트는 자신과 전우들을 위협했던 상어떼에게 트라우마 아닌 트라우마를 갖게 되고, 이후 일평생 상어만을 사냥하는 것으로 복수를 대신한다. 그랬던 그를 기다리고 있던 최후가 결국 거대 백상아리에게 잡아 먹히는 것이었다니. 복수를 위해 한평생을 던져넣었던 사람이 맞이하는 최후로써는 썩 괜찮은 결말이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영화가 거의 2부 구성이었네. 전반 한 시간동안은 마을과 해변에서 벌어지는 사고 위주고, 후반 한 시간동안은 바다 위에서 벌이는 직접적인 사투. 구성도 지루할 틈 없게 잘 했다고 본다. 하여튼 스필버그 당신은 정말이지 대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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