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31 23:59

2021년 대문짝 객관성 담보 불가


2021년의 주요 타겟


스나이더컷 / 완다비전 / 매형&겨울군인 / 로키 / 만달로리안 / 만약에...? / 카밀라 칸 / 
제레미&헤일리 / 아신전 / 수리남

소울 / 페어웰 / 승리호 / 톰&제리 / 미나리 / 신vs왕 / 서복 / 노매드랜드 / 테일러 쉐리던 / 흑과부 /
원더랜드 / 비상선언 / 퍼스트 에이전트 / 모가디슈 / 스페이스잼 / 웨스 앤더슨 / 피랍 / 깐느박 / 
MI7 / 샹치 / 브로커 / DUNE / 정글 크루즈 / 자살특전대R / 매트릭스4 / 쉿2 / 소호 / 외계인 / 
웨스트 사이드 스필버그 / 고스트버스터즈 / 노타임투다이 / 이터널스 / 스파이더맨3 

2021/04/13 16:40

썬더 포스 극장전 (신작)


두 주인공 모두 여성이라는 점, 백인과 흑인으로 나름의 인종적 균형도 맞추었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둘 모두 과체중에 가깝다는 점. 근데 이 둘이 수퍼히어로야. 그 자체로 환영할 만한 시도이고 무엇보다 또 코미디 만들기에도 용이한 설정이지. 근데 그런 거 다 떠나서 일단 영화가 재밌어야 하는 거 아니냐? 새로운 시도 할거면 일단 장르의 기본기를 잘 다져놨어야지. 서양엔 온고지신이라는 사자성어도 없나보다. 

주인공의 어린 시절, 교내에서 그녀를 괴롭히고 왕따 시키는 소년의 이름으로 '웨인'이 제시된다. 어차피 같은 장르인데 이건 뭐 노린 거 맞지? 주인공의 스파링 파트너 이름은 또 '토니'고, 그 스파링 장면은 <아이언맨2>의 그것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혐의가 더 짙다. 심지어 토니는 붉은색의 스파링용 풀수트 착장. 여기에 최종 보스로 <앤트맨>에서 주인공의 연적 아닌 연적으로 출연했던 바비 카나베일도 나오고, MCU의 맨티스인 폼 클레멘티에프도 출연. 이어서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 나왔던 "랭귀지" 드립도 나옴. 주인공이 혈청 맞아 수퍼 파워 얻는다는 것도 그렇고, 기존에 존재하는 여러 수퍼히어로 장르 영화들의 설정을 끌어모아 농담으로 쓰고 있는 영화인 것이다. 

문제가 뭐냐. 패러디는 존나 하는데 정작 코미디 영화로써 웃기지는 못한다는 것. 사실 이 영화 한 편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요즘 코미디 영화들에는 확실히 잘못된 방식의 전략이 이미 자리 잡아 버린 것 같다. 재미있는 대사와 연기의 타이밍, 상황 편집 등으로 코미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저 유명 코미디 배우를 주연으로 내세워 그 또는 그녀의 개인기와 애드립에만 의존해 코미디를 만드는 것. <썬더 포스>가 딱 그 트렌드를 잘 보여준다. 주인공 자리를 다른 이도 아닌 멜리사 멕카시가 차지하고 있잖나. 물론 그녀는 좋은 코미디언이고, 꽤 괜찮은 배우다. 허나 두 시간 좀 안 되는 장편 영화 전체의 코미디를 SNL식으로만 책임지기엔 그녀 혼자 너무 버겁다. 

예전의 할리우드 코미디 영화들은 확실히 시각적인 감각이 출중 했었다. 패럴리 형제는 좀 더럽고 노골적이긴 했어도 작은 설정을 스노우볼 마냥 굴려가며 큰 상황으로 이어가는 코미디를 통해 당시의 메인 스트림을 장악 했었고, 그래도 근래의 젊은 감독이긴 하지만 에드가 라이트 역시 키치함이 잔뜩 묻어나는 탁월한 촬영 및 편집 센스로 새로운 척도를 세웠다. 근데 그 후임자들은? 그냥 요즘 유행하는 타 장르 영화의 궤를 패러디란 형식으로 빌려와 유명 코미디언을 주인공으로 그저 꽂기만 함. 그리고 그 코미디언이 무언가를 할 수 있을 때까지 카메라를 들이밀고 계속 찍고 있는 모양새다. 그게 관객인 나에게도 보이고 또 느껴질 정도로.

사실 위 문제는 <썬더 포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요즘 코미디 영화들이 대개 다 그렇다는 거지. 그러니까 <썬더 포스>가 더 뻘쭘해 하기 전에 이쯤하고. 코미디 영화이긴 해도, 수퍼히어로 또는 자경단의 인간적 조건을 한 번쯤은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란 점에선 나쁘지 않았다. 물론 영화가 그걸 의도했던 건 아니었던 것 같지만 초인적인 힘과 능력을 얻었을 때,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무엇을 위해 사용해야하는지가 중요하단 거지. 그러니까 누구에게 그 힘을 쥐어줘야하는지가 관건. 막말로 주인공인 리디아가 정의롭긴 하지만 막무가내에 다혈질인 것 역시 팩트잖아. 범죄자 잡겠다고 시내버스 냅다 던져버리던데, 그거 잘못 맞춰서 누군가가 죽기라도 했으면 그게 수퍼히어로냐? 그냥 수퍼빌런인 거지. 그렇기에 따지고 보면 배트맨의 진정한 힘과 능력은 인내심 & 자제력인 것이다. 엄청난 능력이 있어도 결코 선을 넘지 않는. 수퍼맨 그 새끼가 소련 땅에 떨어져서 공산주의자 된 우주만 봐도 존나 무섭잖아. 아울맨도 마찬가진데?

뱀발 - 하프 코리안 드립이 나온다.

뱀발2 - 두 주인공의 초기 수퍼히어로 로고가 왠지 묘하게 나이키 같음.

2021/04/13 16:23

모탈 컴뱃 극장전 (신작)


원작이 되는 게임 이야기는 아직도 못해봤으니 빼고. 폴 앤더슨의 첫번째 실사 영화는 그야말로 無근본의 대 향연이었다. 판타지와 SF 장르의 모양새를 대충 따와 주형틀을 만들고, 거기에 각종 무협 영화의 센스와 오리엔탈리즘을 가득 끼얹은 뒤 믹스했던 작품이었지. 정말 놀라운 건, 이번 리부트에서 그런 無근본적인 감각은 대부분이 거세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여전히 말도 안 되는 세계관인 건 맞음.

원작 게임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소리 하는 게 맹꽁이 같아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건 아무리 봐도 하사시 한조의 스콜피온과 비한의 서브제로 이 두 캐릭터 중심으로 갔어야만 했던 영화다. 포스터에서도 그 둘이 메인인 것처럼 그려지고 있고, 이 영화에서 그나마 좋다고 할 수 있는 15분여의 오프닝 장면도 그 둘의 과거사를 담고 있거든. 아닌 게 아니라 진짜로 오프닝 장면은 나쁘지 않다. 물론 좀 더 파괴적이고 창의적으로 만들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긴 하지만, 그래도 엔딩이 아니라 오프닝에서는 이 정도의 페이스가 맞지. 사나다 히로유키와 조 타슬림의 맨 얼굴을 그대로 전시하며 단검부터 맨주먹까지를 아우르는 액션이 멋지다. 게다가 이 오프닝에 담겨있는 감정과 그로인한 동기가 그나마 이 전체 영화의 맥락들 중 가장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 가족에 대한 복수! 아, 물론 존나 뻔한 거 맞지. 이미 죽은 가족을 위해 복수귀가 되는 주인공 그린 영화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데, 이미. 그러니까 내가 말했지, '그나마'라고. 그나마 이 영화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동기가 바로 이 오프닝에서 깔린다니까?

허나 정작 하사시 한조는 이 오프닝에서 죽어버린다. 물론 후반부에 부활하긴 해. 근데 진짜 후반부에 부활함. 영화 끝나기 한 10분 전쯤? 생뚱맞게 부활해 서브제로와 리매치를 벌이거든. 그러니까 바로 이게 문제인 것이다. 간지가 철철 넘치는 두 캐릭터, 여기에 그 둘을 연기한 각각의 배우들도 액션과 연기가 모두 다 되는 유명 배우들이야. 심지어 원작 게임에서도 이 두 캐릭터가 가장 인기 많은 편이라며. 그럼 이 둘로 그냥 듬직하게 갔으면 안 되나? 물론 원작 게임의 팬들이야 난리를 칠 수도 있겠지. 대전 격투 액션 게임의 리메이크인 거니까 다른 캐릭터들도 서로 싸우는 모습 좀 많이 보여달라고 바닥에 누워 땡깡 부릴 수도 있겠지. 거기까지도 다 인정이라 이거다. 그러니까 그냥 스콜피온이랑 서브제로 위주로 하되, 여기에 다른 캐릭터들 살짝 살짝 끼워넣어서 버무리면 됐던 거잖아. 그러나 영화는 초장부터 스콜피온을 죽여버리고, 서브제로는 최종 보스 포지션으로 두어 중반부에 등장하는 것을 막아두었다. 그리고 이 자리를 주인공이랍시고 꿰차 앉은 것이 바로 그 우리들의 콜 영...

콜 영은 정말 더럽게 재미없는 캐릭터다. 하사시 한조의 피를 이어받았단 것 빼고는 별 캐릭터성이 없다. 그냥 납작 하기만 하다. 그에게는 지켜야할 가족이 있다? 뻔한 데다가 잘 살리지도 못했음. 그는 언제나 버티지 못하고 지레 포기하는 캐릭터이므로 성장의 여지가 있다? 그럼 성장하는 순간을 잘 묘사 했어야지, 지금은 그냥 얼렁뚱땅. 아... 그것도 안다. 이런 종류의 영화에서 이야기는 그저 장식일 뿐이란 것을. 그럼 콜 영의 액션은 어떠한데? 스콜피온은 단검을 줄로 감아 휘두르는 액션이 멋지고, 서브제로는 특유의 능력으로 얼음송곳들을 순간적으로 만들어내 그것으로 우위를 점하는 액션이 대단하다. 그럼 콜 영은? 이 새끼는 액션에서도 주인공 답게 굴지를 못한다. 이 놈의 특수 능력이라고 해봤자 요상한 갑옷 두르고 곤봉으로 줘패는 거임. 그 자체로 매력적이지도 못하고, 연출로써 잘 묘사해내지도 못했다. 그냥 여러모로 어정쩡한 놈이 주인공 행세하고 있는 거.

아까 이런 종류의 영화에서 이야기는 그저 장식일 뿐이라고 했었는데, 사실 폴 WS 앤더슨의 <모탈 컴뱃>에 비해서도 그 부분에서 더 형편 없다고 생각한다. 구 <모탈 컴뱃> 역시 여전히 형편없는 이야기를 간신히 붙들고 서 있던 영화였지만, 그럼에도 극중에서 대부분의 세계관 병맛설정들은 다 설명을 해놓았었다. 주인공 캐릭터들 각각에게 부여된 이야기와, '모탈 컴뱃'이라는 이 괴이한 대회에 대해서도 어느정도는 그 기원과 과정을 설명 했었다고. 지구 바깥의 세상에 대해서도 직접적으로 묘사 했었고 말이야. 이에 비해 신 <모탈 컴뱃>은 그냥 다 '그렇다 치자' 식으로 진행된다. 이런 대회가 왜 있는 거고 규칙은 뭔데? 아, 그냥 있다 쳐. 두 팔을 잃은 잭스는 대체 어떤 기술로 사이보그화에 성공한 거야? 아, 그냥 됐다 쳐. 그럼 하사시 한조는 대체 어떤 방법으로 부활한 건데? 아, 그냥 되살아났다 치라고. 그냥 ㄹㅇㅋㅋ만 쳐

뻔한 건 괜찮지만, 액션 오락 영화에서 이야기가 장식이라고 그저 일갈하는 건 다 옹졸한 변명이다. 내가 뭐 크리스토퍼 놀란 급의 플롯 진행을 바라냐? 폴 토마스 앤더슨 느낌의 감정 묘사를 바라? 그거 아니라고. 그냥 이 영화의 오프닝이 보여줬던 정도의 이야기로만 진행해도 된다고. 최소한 앞뒤만 맞고 인물들의 감정만 잘 이해되면 된다고. 뻔해도 된다고. 내가 많은 걸 바라는 거야? 근데 리부트된 <모탈 컴뱃>은 그냥 그걸 할 생각이 없다. 애초에 그게 컨셉이라고 하니 더 할 말이 없긴 한데, 어쨌거나 돈과 시간 쓰며 본 건 나니까 이 정도의 비판은 좀 해도 되는 거겠지.

액션에도 문제가 많다. 하기야, 이 영화 속 액션 장면들에 내가 완전히 불만족한 것은 또 아니다. 앞서 말했듯, 오프닝 액션 장면이 이미 좋거든. 여기에 잭스와 서브제로의 결투도 좋아. 물론 잭스가 거의 일방적으로 발리는 대결이지만, 어쨌거나 서브제로의 다양한 기술들을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만족. 더불어 그 전개가 괴랄하긴 하지만 클라이막스의 마지막 리매치도 좋고. 이거 굳이 따지고 보니까 죄다 스콜피온이랑 서브제로가 관여 되었던 액션들이네. 역시 이 둘이 주인공이라니까? 하여튼 이 세 액션 씬을 빼면 나머지는 그렇게 좋은지 잘 모르겠다. 중후반부 콜 영의 지시에 따라 적들을 갈라놓는 액션 씬들 몽타주는 그 존재 이유를 알 것 같긴 하다. 원작이 대전 격투 액션 게임이니까, 각 캐릭터들이 서로 맞붙는 장면을 조금씩은 보여주어야 하니까 의무감에 넣은 장면들이겠지. 근데 그 액션들이 다 짧기도 하고, 결과가 뻔하기도 하고, 그렇다고 또 원작 게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페이탈리티'를 새롭게 리뉴얼해 창의적으로 그린 것도 아니라서 그냥 다 무감각하게 느껴졌음. 특히 사이보그가 된 잭스와 웬 거대망치 장군의 대결은 너무 짧아서 너무 아쉬웠다. 

그래도 케이노는 존나 웃기더라. 진짜 한치 앞이 예상되는 잔바리 악당. 처음에 등장할 땐 나중에 개과천선해서 츤츤 거리면서도 주인공 도와주겠거니, 했었는데 그딴 거 없음.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개새끼였다. 적들에게 꼬드김 당하는 것도 존나 어이없어서 웃김. 돈 준다고 하니까 일말의 고민 없이 옳거니-하는 거 웃겼다.

개인적으로 사나다 히로유키를 참 좋아한다. 조 타슬림도 <레이드>와 <검객>에서 이미 눈여겨 봤었지. 스콜피온과 서브제로가 더 매력있게 느껴졌던 건 다 그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좋았지만, 클라이막스에서의 리매치는 둘 다 가면을 쓰고 싸웠기 때문에 일단 스콜피온과 서브제로의 싸움처럼 느껴졌었다. 허나 오프닝의 대결에선 둘 다 가면을 쓰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스콜피온과 서브제로의 싸움이라기 보다는 왠지 동양을 대표하는 두 액션 배우 사나다 히로유키와 조 타슬림의 대결처럼 보여 더 근사했다. 난 언제나 얼굴이 보이는 액션을 선호했다. 그래서 성룡을 좋아했고 아이언맨보다는 늘 언제나 캡틴 아메리카의 편에 서고 싶었다. 얼굴은 곧 감정이다. 그러니까, 액션에서 중요한 것은 싸움의 합이 아니라 언제나 감정이라는 거. 바로 그런 의미에서, 사나다 히로유키와 조 타슬림 만이 온전하게 빛났던 영화. 

뱀발 - 구 <모탈 컴뱃>보다 더 과거 수련회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영화였다. 원치 않았는데 강제로 끌려가서 숙소 생활하며 얼차려 받았던 그 기분. 가족 보고 싶다고 징징 대면 실망 했다며 꺼지라고 일갈하는 수련회 교관. 콜 영도 존나 기분 거지 같았겠다.

2021/04/11 20:59

웨이 다운 극장전 (신작)


장르 영화의 설계도, 딱 그렇게 요약할 만하다. 단점 같이 들리겠지만 장점이고, 그렇다고 또 장점이라 하기엔 단점이기도 한 부분이다.

<웨이 다운>은 아주 아주 아주 전형적인 하이스트 영화의 궤를 따른다. 이 거대한 도둑질의 동기를 설정하는 프롤로그와, 천재적인 면모를 지닌 주인공 설정, 그리고 각기다른 전공을 지닌 전문가들의 파티. 그 어느 하나 전형적이지 않은 것이 없다. 한 마디로 뻔하고 빤한 영화. 뭔가 좀 더 장르 내에서 변주를 해가며 전체 조율의 모양새를 띄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영화는 그에 대한 욕심이 전무하다. 고로 어쩌면 게으른 영화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물들의 이러한 설정이 전부가 아니라, 그 외에도 다 어디서 한 번 이상 본 것 같은 장면들이 속출한다. 머리 식히겠다고 놀러간 술집에서 기상천외한 핵심 아이디어를 얻게 된다든가, 홍일점 여성 멤버에 대한 호감을 서정적인 그림으로 표현해내는 주인공의 모습이라든가, 팀내 배신자가 한 명 존재 했다든가 하는 등의 모든 전개들이 다 그렇다. 이 정도면 그냥 기존 하이스트 영화들의 기본 만을 모으고 모아 믹서로 간 수준.

그러나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똑같은 그 이유 때문에 <웨이 다운>은 근근할지라도 생명력을 얻는다. 새로움에 대한 욕심이 0에 수렴해 변주가 전무한데, 다르게 이야기하면 이건 장르 영화란 게 별다른 욕심 없이도 주어진 설명서 대로만 차근차근 조립한다면 최소한 기본기 이상은 할 수 있다는 교훈으로써 작용하기도 하거든. 그러니까 영화가 기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딱 기본 평균 만큼은 해낸다는 소리. 진짜 새로움에 대한 기대를 모두 접고 멍 때리듯이 편하게 보면 그냥 훌훌 넘어갈 수 있는 영화인 것이다.

주인공이 천재 공학자라는 점과, 그가 맞서게 되는 장애물이 기계 공학 & 물리학의 산물이라는 점. 어떻게 보면 그나마 이게 조금이라도 더 살릴 수 있었던 특이점이라 할 만한데, 심지어 여기에서 마저 욕심이 없었다. 굳이 따지고 보면 이게 가장 아쉬움. 근데 뭐 어쩌겠나, 영화 스스로가 욕심없이 검소의 길을 걷겠다는데 내가 말릴 턱이 있나.

성인이 된 이후의 프레디 하이모어를 정말이지 오랜만에 다시 만난 건데, 어째 어릴 때 얼굴이 지나치게 너무 많이 남아있어 좀 어색한 느낌. 얼굴 전체가 마치 CG 같다. 어린 시절의 프레디 하이모어가 모션 캡쳐로 자신의 성인 모습을 연기하는 느낌. 

뱀발 - 팜케 얀센도 뭔가 얼굴이 달라진 것 같다.

2021/04/09 12:20

츠바키 산주로, 1962 대여점 (구작)


이미 수많은 구로사와 아키라의 걸작들이 있지만, 내겐 <7인의 사무라이>와 더불어 <츠바키 산주로>가 최고다. <카게무샤>나 <란> 같은 셰익스피어풍의 클래식 오페라스러움도 좋지만, 아무래도 풍만한 오락적 재미와 절정의 간지가 함께 깃들어있는 쪽이 훨씬 더 내 취향인지라. 

전형적인 반군 스쿼드 이야기다. 적들에게 점령당한 곳에서, 소수의 무리들이 숨어다니며 역습을 꾀하는. 병력 차이로만 본다면야 훨씬 열세에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저항 연합에 루크 스카이워커가 있었듯이 이들에게는 당시 절정의 간지를 자랑하던 미후네 토시로의 츠바키 산주로가 있었다. 근데 이 양반이 얼마나 완성형 수퍼히어로인가 하면, 실력은 루크인데 지략은 팰퍼틴이고, 여기에 배포와 기세는 한 솔로임. 어느 면에서 보나 만능 캐. 등장 하는 모든 순간이 재미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다.

짧은 런닝타임 동안 관객들을 이리 몰고 저리 모는 영화라서 진행 속도감이 장난 아니다. 주먹구구식 허접떼기 9인방이 작당모의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곧바로 츠바키 산주로가 살짝 끼어 듦. 적들과 이 10인방의 기초 설정 따위야 그냥 대사로 줄줄 읊어댄다. 시각 매체인 영화로써 아주 훌륭한 니쥬라고 할 순 없겠지만서도, 그 특유의 속도감과 얼른 얼른 진행하겠다는 패기가 맘에 든다. 이후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딱 주인공 진영 입장과 시각에서만 전체 판도를 묘사하는 것도 흥미롭다. 물론 중간 중간에 악덕 노인 3인방의 회의라고 쓰고 발 동동이라 읽는다를 교차해서 보여주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그 정도 빼면 죄다 10인방 위주의 묘사만 나옴. 얘네가 움직이는 데로만 카메라가 옮겨 가니까, 관객 입장에서는 영화의 이야기가 좀 정갈한 느낌이다. 여러 가지 플롯들과 그 안의 캐릭터들 모습을 교차 편집해가며 진행하는 현대 영화들에 비해서 확실히 덜 산만한 감이 있음.

그 전개의 속도감이나 캐릭터들의 매력 면에서 가히 현대 영화적 진일보라 할만 하지만, 정말 의외인 것은 유머 연출도 수준급이었다는 데에 있었다. 상황이 심각 하게만 돌아가서 죽겠는데, 그와중 불살주의를 설파하고 게다가 꽃타령까지 하고 앉아있는 두 여인네의 모습 자체가 일단 개그. 지금 기준으로 본다면야 백치미로서만 활용된 한정된 여성 캐릭터 운용 방식 쯤으로 욕 먹기 십상이겠지만 영화가 다루고 있는 시대도 그렇고 심지어 영화가 나온 시대도 그러했으니 이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부분. 하여튼 이 두 여인네도 오묘하게 우스운데, 10인방에게 붙잡힌 그 새끼도 진짜 존나 웃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벽장 속에 갇혀있다가 자기 할 말 있을 때만 나와서 한 마디 하고 다시 들어가는 꼬락서니라든가, 포로 주제에 밥 처먹고 "잘 먹었습니다~" 던진 뒤 다시 벽장 들어가는 거 개웃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건 진짜 요즘 영화라고 해도 믿을 만한 유머 센스다. 

바람처럼 왔다가 사건을 해결하고 또 바람처럼 사라지는 고독한 한 영웅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후에 나올 여러 미국 서부 영화들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것은 사실이다. 평행세계의 전작이라고 할 수 있을 <요짐보>도 그랬지만 말이다. 하여튼 거의 무적 영웅 신화에 가까운 영화인지라, <7인의 사무라이>에서의 민중 중심적 시각이나 <카게무샤>나 <란>에서의 허무주의적 요소는 좀 배제되어 있는 것 같은 인상. 다만 구로사와 아키라 특유의 동적인 이미지가 잔뜩 들어있다는 점에서는 또 그의 영화가 맞다. <라쇼몽> 때도 느꼈던 것이지만, 당시 정말 무겁고 버거운 필름 촬영용 카메라였을 텐데 대체 이걸 어떻게 이토록 유려한 움직임으로 옮겨냈을까. 인물들이 높은 벽을 따라 종종 걸음으로 달리며 적들을 미행하는 장면에서의 트래킹 샷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여기에 카메라 움직임도 카메라 움직임인데, 정지되어 있는 화면 내에서도 흩날리는 모래나 흔들리는 나뭇잎 등으로 어떻게든 동적인 이미지를 구겨넣은 게 또 멋짐. <숨은 요새의 세 악인>이나 <카게무샤>에 비하면 약소하지만 그럼에도 화면을 다층적으로 꽉 채우는 다인 떼샷도 여전히 대단하고. 그러면서 또 숨죽인 상태로 봐야만 하는 일격필살 장면에서는 그 움직임 다 뺐어. 그래서 더 집중하게 돼. 구로사와 이 양반, 정말이지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다. 

하여튼 정말이지 오랜만에 본 영화였는데, 다시 봐도 극강의 재미였다. 솔직히 구로사와 아키라 지금 21세기에 다시 데뷔해도 손색 없었을 듯. 할리우드에서 대자본 오락 영화 하나 또 찍었으면 다시 난리났을 듯. 아, 다시 태어날 거라면 지금의 일본에서는 안 됨. 그럼 또 애니메이션 실사화 해야 돼... 그럼 망함.

2021/04/09 11:20

노바디 극장전 (신작)


중년 남성들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이른바 '누구도 몰랐던 그의 왕년에' 장르. 그게 소녀를 구하기 위해서든, 아니면 키우던 강아지의 복수를 위해서든 간에 이제 이런 종류의 영화도 앉아번호로 연병장 두 바퀴다. <레옹>으로 시작해 <테이큰>, <아저씨>, <드라이브>, <지옥에서 온 전언>, <더 포리너>, <시큐리티>, <이퀄라이저>, <성난 황소>, <존 윅> 등등. 별 볼 일 없는 것처럼 보여서 온갖 악한들에게 개나 소나 취급 받으며 무시 당하던 중년의 아저씨가, 알고보니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거대 뒷세계의 네임드였다는 설정. <노바디>는 그걸 아주 똑같이 리바이벌 한다. 그럼에도 <노바디>가 매력있는 이유는 뭘까? 그건 무엇보다 캐스팅 덕분이었다고 본다.

대체로 이런 이야기들의 주요 골자는, '평범한 아저씨가 그동안 눌러두었던 자신의 능력과 힘을 어쩔 수 없이 꺼내든다' 정도일 것이다. 누구에게나 무시받던 일반인이 각성해 다 때려눕히며 관객들에게 전달해주는 대리만족의 쾌감. 근데 <존 윅> 등등 대부분의 영화들은 그 주요 골자 중 '-그동안 눌러두었던 자신의 능력과 힘을 어쩔 수 없이 꺼내든다' 아래에만 밑줄을 긋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노바디>가 주목한 것은 그 앞부분이다. '평범한 아저씨가-', 바로 이 부분. 생각해보자. 그동안의 이 '왕년에' 장르 영화 속 주인공들 중 정말 진심으로 평범해보이는 사람은 몇 없었다. 그들은 대개 키아누 리브스의 얼굴을 했거나 채드윅 보우즈만의 얼굴로 특유의 정의감과 스타성을 마구 표출해냈다. 원빈은 말할 것도 없지. 그래도 <레옹>의 장 르노나 <테이큰>의 리암 니슨 정도면 어느정도 평범한 아저씨 얼굴 아니냐고? 천만에. 그 둘은 잘생겼던데다 그걸 떠나서도 위압적일 만큼 큰 키가 있었다. <더 포리너>의 성룡? 아, 그 정도의 캐릭터라면 나름 평범남이라고 할 만하네. 게다가 런던의 중국 이민자라니, 어쩌면 사회적 약자로서 보이기도 하잖아? 그거야말로 천만에 만만에다. <더 포리너>의 주인공은 '중국 이민자'로서의 아이덴티티 보다, 성룡이라는 '액션 스타'로서의 아이덴티티가 훨씬 더 컸거든. 세상에 대체 누가 성룡을 무시하고 또 건드릴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그건 <이퀄라이저>의 덴젤 워싱턴도 마찬가지일 거고.

바로 그 점에서, <노바디>의 주인공이 밥 오덴커크라는 사실은 정말 큰 장점이 된다. 여러 드라마들을 통해 한국 관객들에게도 어느 정도 이미 눈도장을 찍은 배우긴 하지만, 그럼에도 키아누 리브스나 성룡에 비하면 아직은 초면에 가까운 것처럼 느껴지는 배우잖나. 게다가 원빈처럼 잘 생긴 것도 아니고미안합니다 하지만 이건 어쩔 수 없어요, 리암 니슨처럼 키가 큰 것도 아니지. 밥 오덴커크는 그야말로 '평범한 아저씨'에 진정으로 가까운 배우인 것이다. 키아누 리브스 얼굴을 한 평범한 아저씨가 빡 돌아서 다 쓸어 버리고 다닌다는 것과, 밥 오덴커크의 얼굴을 한 '진짜' 평범한 아저씨가 성질 뻗쳐서 다 부수고 다닌다는 것은 정말이지 천지차이인 거라고.

주연배우의 얼굴, 딱 그거 하나 때문에 영화가 더욱 더 신선해지고 활력을 얻는다. 게다가 현실성도 붙지. 또 여기에 어느정도 온전해보이는 가족이 존재한다는 설정 역시 빛을 발하고. 따지고보니 이 쪽 장르 이야기 속 주인공들 중 이토록 온전한 가족을 누리고 살았던 인물들이 거의 전무 했던 것 같은데? 레옹은 혼자 살았고, 브라이언 밀스와 차태식, 콴 모두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었잖아. 키아누 리브스도 그건 마찬가지고. 모두가 그 상실감과 복수심을 동력으로 삼아 움직이던 인물들이었지. 허나 <노바디>의 허치에게는 여러 감정들이 덧대어져있다. 그건 기본적으로 가족이 위협당한 가장의 책임감이기도 하지만, 사회와 늙어버린 자신에 대한 분노, 자신의 왕년을 되찾은 것만 같은 만족감과 활력과 쾌감 등도 포함이다. 그러니까, 단순했던 첫인상보다는 좀 더 디테일한 변화를 추구 했던 작품이라고 할 수 밖에.

본격적인 액션까지 끓어오르는 데에 예열 시간이 좀 걸리긴 하고, 또 <존 윅> 같은 동종업계 최강의 영화와 비교해 그 액션의 물리적 양이 많지도 않긴 하지만 그럼에도 질적으로는 만족이다. 현실성있는 평범남의 얼굴을 했으니, 존 윅 보다야 허치가 훨씬 더 많이 맞기도 한다. 진짜 존 윅이었으면 별로 안 맞았겠지. 그냥 깔끔하게 다 끔살시켰을 텐데, 우리의 허치 멘셀은 기본적으로 평범한 아저씨 컨셉이라 훨씬 더 많이 맞는다. 덕분에 그 육박감의 밀당이 좋다. 후반부는 <스카이폴>이 그랬던 것처럼 사실상 <나홀로 집에> 컨셉의 트랩 액션 위주로 돌아가는데 그것도 나름 만족스럽고.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이 많이 죽어나가고, 또 주인공이나 영화가 그에 대해 별다른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 쿨한 태도만을 보여서 거기에 혐오감이 들 수는 있지만 어차피 이런 장르의 영화들이 다 바로 그런 배덕감을 위해 존재하는 것 아닌가-하는 관점에서 본다면 나 역시도 쿨하게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라 상관없고.

다만 메인 악당 캐릭터가 다소 허술하게 조형된 점, 신나기는 하지만 배경음악으로 너무 많은 노래들이 쓰인 점 등은 아쉽다. 그리고 좋은 소리를 많이 하기는 했는데, 그렇다고 막 열광할 정도로 잘 만든 영화는 또 아님. 그냥 딱 기대치 만큼을 제대로 해준 액션 영화 정도로 생각하면 편하다. 그나저나 <아저씨>의 초기 기획이 그랬다던데, 원빈 같은 젊고 잘생긴 배우가 아니라 최민식 느낌의 평범한 중년 아저씨로 원래는 생각했었다고. 어쩌면 <노바디>가 <아저씨>의 그런 초기 기획의 매력을 정말 잘 보여준 것 같다. 

뱀발 - 우리들의 영원한 브라운 박사, 크리스토퍼 로이드가 주인공 허치의 아버지로 나온다. 그런데 캐스팅이 캐스팅이다보니 역시 비범한 모습들을 보여줌. 근데 생각해보니 이 아저씨는 <빽 투 더 퓨쳐> 때도 이미 할아버지 느낌이었는데 아직까지도 할아버지 역할로 활동 하시네. 이 정도면 거의 할리우드의 김수미 선생님.

뱀발2 - 감독이 <하드코어 헨리> 만든 사람이었네. 역시, 1인칭 시점 영화는 그냥 만들기 어려운 거지.

2021/04/06 18:21

크리미널 스쿼드, 2018 대여점 (구작)


가끔 보면, 이상한 선택의 결과물이 되는 순간들이 있다. 그러니까 예컨대 이런 거다. 호랑이와 사자 사이에서 나오는 라이거는 이해가 된다. 호랑이나 사자나 둘 다 고양이과 동물이니까. 같은 의미에서 말과 당나귀 사이에서 교배로 나오는 노새도 마찬가지. 그런데 강아지면 강아지고 고양이면 고양이지 서로 다른 그 두 종을 합쳐 만드는 건 좀 괴상하지 않나? 캣독 있는데? 아니면 독수리랑 연어를 교배 한다든가... 뭔 소리야

<크리미널 스쿼드>가 딱 그렇다. 강아지랑 고양이 둘 다 하려다 망한 케이스라고 할 만하다. "우리 당은 진보와 보수가 함께 있는 진보수다!" 약간 이런 마인드? 아니면 "우리 종교는 기독교와 불교를 모두 합친 기독불교다!" 뭐 이런 건가.

형식은 하드보일드인데, 정작 그 형식 안에서 뛰노는 캐릭터들은 불타는 감정들로 날뛰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드보일드라고 하면 좀 건조하게 묘사되는 게 맞는 거잖아. 비정함과 냉혹함 만을 남겨두고 나머지 대부분의 사사로운 감정들은 거세함으로써 더 비관적인 동시에 그 세계를 현실적으로 묘사하는 그런 방식이 하드보일드 아냐? <크리미널 스쿼드>의 큰 형식과 이야기의 설정은 그런 하드보일드의 정의에 잘 맞는다고 할 수 있다. 복수나 가족 드라마로 점철된 범죄가 아니라, 그냥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 범죄. 그리고 마찬가지로 그 범죄자와 불구대천의 원수라거나 하는 등의 이유 때문이 아니라, 그냥 그게 자신의 직업이고 일이기 때문에 그들을 막으려드는 공권력 쥔 사내들. 셋팅은 하드보일드로 잘 되어 있다. 범죄자의 아내가 등장하긴 하지만 딱 크로키 마냥 빠르고 간결하게 묘사될 뿐이고, 범죄수사대의 멤버들 역시 그 사이 뜨거운 형제애라든가 이딴 거 전혀 없음. 

근데 또 웃긴 건 범죄수사대의 반장과 범죄조직 두목, 이 둘 사이 셋팅은 감정으로 점철 되는 것이 더 좋은 셋팅처럼 느껴진다는 데에 있다. <무간도><신세계>까지는 아니더라도, 빅 닉과 메리멘 사이엔 좀 더 서로가 서로에게 치달을 수 있는 감정적인 무언가가 있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왜냐면 둘이 존나 엮이거든. 빅 닉은 메리멘의 존재를 알고 있고, 그게 평범한 수사과정 중 하나일 뿐이다-라고 어물쩍 넘어가면 할 말 없지만 어쨌거나 둘이 꽤 자주 만난다. 빅 닉이 식당에서 메리멘을 열 받게 할 때, 심지어 후에 메리멘의 아내에게 접근해 그를 도발할 때 등. 이런 전개는 하드보일드를 약간 빗겨나가는 부분들 아니야? 차라리 거기서 감정적으로 쫙 뺐으면 더 좋았을 것 같은데, 영화는 제멋에 설정한 하드보일드에게 발목을 잡힌다. 상식적으로 웬 썅놈이 나 없는 동안 내 집에서 다 벗은 내 아내랑 함께 있었으면 그게 숨겨진 계획이었든 뭐든 간에 일단 멱살부터 잡고 봐야 정상인 거 아니냐고. 아니, 그리고 애초에 자기 아내한테 그딴 미션을 왜 줘? 그 미션으로 뭔가 엄청난 전개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잖아.

감정을 다 배제해야할 장르에서 오히려 풍부한 감정이 잔뜩 고일 수 있는 셋팅으로 밀고 나갔단 점이 앞서 말했듯 괴상한 것이다. 그리고 어쨌거나 포장은 범죄 액션 영화 쯤으로 되어 있는데, 이건 홍보부의 잘못이겠지만 그 액션이랄 게 별로 없음. 영화가 두 시간 좀 넘는데, 시작하고 20분쯤부터 1시간 20분쯤까지 한 시간 동안이나 내내 지루하다. 여기에 가장 어이가 없는 건 영화의 반전. 사실 구태여 그 놈의 반전이란 걸 집어넣을 필요가 없었던 영화였다. 근데 영화는 스스로도 싱겁다는 걸 알고 있었는지, 그에 대한 타개책을 반전에서 찾았다. 근데 그게 타개가 안 됐음. 반전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을 카이저 소제 마냥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카이저 소제는 개뿔, 그냥 데우스 엑스 마키나 곁들인 호구처럼 밖에 안 보이던데. 술집에서 일하며 그 수많은 고급 정보들을 모두 모았다고? 혼자서? 이게 말이 되냐... 그럼 나도 북창동 술집에서 일하면 근처에 있는 한국은행 본점 털 수 있는 거임? 존버하고 술값 계산하며 한 몇 년 보내면 한국은행 그냥 껌 되는 거임? 내참 진짜 어이가 없어서.

그리고 다 떠나서, 나쁜놈 vs 미친놈 구도로 갈거면 그거 하나만큼은 미치도록 잘 묘사 했어야지 않냐고. 제라드 버틀러의 빅 닉이 그렇게 미친놈처럼 보이지 만은 않던데.

2021/04/01 17:00

자산어보 극장전 (신작)


설경구의 정약전은 일종의 실리주의자처럼 소개된다. 아니, 현실주의자인가? 뭐, 실리가 곧 현실이고 현실이 또 실리로 이어지는 것이니 어쩌면 둘 다라고 하겠다. 정약전을 천거한 정조 역시 그에게 당부하는 것은 오로지 '버티라'는 말 뿐이었다. 국정을 돌보고 신하로서의 도리를 다하여 부국강병을 이룩하라- 따위의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 같은 뻔한 내용이 아니라, 관직 생활 하다보면 앞으로 칼로 베이고 오물을 뒤집어 쓰는 것만 같은 여러 풍파들이 있을지언대 그 모든 걸 그저 묵묵히 버티라는 매우 현실적인 조언. 정말 재밌는 건, 그런 실리주의자이자 현실주의자인 정약전이 천주교인이었다는 데에 있다. 하늘 위의 그 아버지를 단 한 번도 본적 없었을 텐데, 어떻게 실리/현실주의자로서 보지도 듣지도 못한 것을 믿었던 것일까. 

이는 정약전이 느끼기에 조선에서는 하느님이 곧 자유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늘 위에는 유일신이 있고, 그 아래에 사는 인간들은 그저 '인간'일 뿐 차이가 없는 세상. 임금도, 양반도, 상놈도, 노비도 없는 그런 세상. 정약전이 꿈꾸었던 세상은 바로 그런 세상이었고 그에겐 그 꿈이 바로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할 현실이었던 것이다. 근데 한 번 더 웃기게도, 그런 세상을 꿈꿨던 정약전은 끝내 배교 하고야 만다. 그는 결국 모두가 다 죽어나갈 위기 앞에서 순교 대신 배교를 택한다. 단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고자. 그러니까 정약전에게는 사람 사이에 차등을 두지 않는 것과 단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는 것. 이 모든 게 다 자기가 선택했던 바로 그 이상적인 현실이었다는 말이다. 

그랬던 그가 성리학을 필두로한 유교 연구를 제쳐두고 실학의 세계로 뛰어든 것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임금을 모시고 조상을 모시는 것 대신에, 우리가 사는 세상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또 그걸 연구하는 학문. 백날 공자랑 맹자만 읊으면 뭐하냐고, 정작 우리의 삶을 나아지게 만드는 것은 실학이고 과학인데. 그 시절의 왜놈들이 신무기인 조총을 앞세워 우리 국토를 유린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잖아. 지극한 실리/현실주의자였던 정약전이 실학과 과학의 본질을 탐구 했던 이유는 이토록 자명하다. 하여튼 그랬던 그가, 흑산도에서 변요한의 창대를 만난다. 나름 양반의 씨를 이어 받아 학구열은 뛰어나지만 제대로된 기회와 깨달음을 얻지못해 잔뜩 움츠려 있던 그. 정약전과 창대는 서로를 변화시켜 나간다. 정약전은 창대에게 글 공부를 가르치는 것으로, 창대는 정약전에게 어부로서 자신의 지식을 전달하는 것으로.

성리학을 비롯한 유교 사상. 아니, 뭐 꼭 유교가 아니더라도 인간 사회와 관계에 분명하게 존재하는 각종 가치관들과 인문학들을 배우는 것은 반드시 장려되어야 하고 또 존중 받아야 한다. 근데 가끔은 그런 강력하고 단단한 헤게모니들이 진정한 변화를 가로막기도 하는 게 현실이지 않나. <자산어보>는 그것을 곧잘 묘사한다. 그 목적이 출세이든, 흡사 홍익인간의 정신이든 간에 일단 당신이 어부고 상놈이면 애초부터 안 된다는 거잖아. 극중 인물들의 말마따나, 옥수수 따위도 종자보다 밭과 흙이 더 중요한 것일진대 당시 조선은 전혀 그런 사회 환경이 아니었으니.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고, 이로운 방식으로 백성들을 돌보고 싶어? 그럼 그냥 성리학 공부해야지 별 수 있나? 나는 진심으로 조선이 과학과 실학을 더 장려하는 평행 우주가 있었더라면 한일병합의 경술국치는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거라 본다. 

어쨌거나 서로가 서로를 변화 시키면서도, 그 과정이 느끼하지 않고 담백하게 묘사되어 좋다. <아티스트>가 그랬듯이 흑백 화면이 가끔은 지나치게 고평가 되고 있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종종 하는데, <자산어보>에서 만큼은 그런 느낌이 단 1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흑백의 이분법으로 밀려들어오는 파도와 그걸 묵직하게 비추는 윤슬, 어둔 밤 하늘을 환하게 수놓는 별들 따위의 이미지가 일반적인 컬러 영화들에 비해 더욱 더 파워풀했다. 영화 자체가 정약전이 쓴 책 같은 느낌이었다. 아니면 흑백의 수묵화 같은 느낌이거나.

그렇게, 세상을 변화시키는 건 세상의 본질이다. 지구는 둥글고 짱뚱어는 생각보다 맛있다는 바로 그 본질. 그리고 거기에다가, 영화는 그 변화를 완성시키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라는 점을 더해 넣는다. 얻어먹으면 갚을 줄 알고, 배웠으면 가르칠 줄도 알고, 끝내는 조금 늦었더라도 지나간 인연을 다시 되찾는 것. 결국 우리를 구하는 건 세상의 본질과 인간의 마음인 것이다.

2021/03/29 15:22

고질라 vs 콩 극장전 (신작)


괴상하다면 괴상하게도, 나는 2014년작 <고질라>와 그 속편인 <고질라 - 킹 오브 몬스터>를 모두 재밌게 보았다. <콩 - 스컬 아일랜드>는 좀 묘하게 본 입장이고. 하여튼 나는 리부트 된 기존 <고질라> 시리즈를 썩 좋게만 봤었는데, 나 빼고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은 그 두 영화 별로 안 좋아하더라고. 특히 <킹 오브 몬스터>. 그러던 와중에 개봉된 <고질라 vs 콩> 세계관 최강자들의 빅 매치. 아니, 리매치. 이 영화는 또 관객들 평이 좋더라 이 말이야. 그래서 기대하고 봤는데...... 아니, 진짜 내가 특이한 건가 보다. 나는 이 영화 시리즈 중에서 가장 최악이던데.


스포일러 브레스!


내가 기존 <고질라> 시리즈를 좋아했던 것은 특유의 그 육중함 때문이었다. 이전에도 몇 번 밝힌 적이 있었지만, 기존 시리즈는 거대 괴수의 양감과 그 압도적인 풍채에서 나오는 아우라를 제대로 그릴 줄 알았다. 괴수들의 움직임은 느림과 동시에 태산처럼 무거웠고, 또 그들을 담는 앵글들은 대부분이 다 앙각이었다. 여기에 한없이 작은 인간들의 시점에서 올려다보는 쇼트들이 추가되어 그 거대 괴수들의 굉장한 크기가 더 체감될 수 있었지. 바로 여기에서, <고질라 vs 콩>의 문제점이 드러난다. 이 영화에서의 고질라와 콩은 둘 다 너무 날래다. 거대 괴수와 거대 괴수가 맞붙는 느낌이 아니라, 그냥 성룡이랑 이연걸이 맞다이 까는 느낌에 더 가깝다고 해야하나. 물론 거대 괴수 장르의 역사에서 따져봤을 땐, 이제 한 번쯤 이런 묘사를 하는 영화가 나와줘도 괜찮은 타이밍이긴 하다. 그래서 일반 관객들이 느끼는 신선함과 액션에 대한 만족감 역시 이해한다. 허나 기존 시리즈의 묵직한 육박감을 기대했던 나에겐 영화가 너무 경거망동하는 인상이었다. 

여기에 두 괴수의 얼굴을 화면에 가득 남는 클로즈업 쇼트와 내려다보는 부감 앵글이 많이 활용된 것도 그들의 양감을 강조하지 못하는 요인. 심지어 인간 캐릭터들이 그렇게나 많이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괴수와 인간 사이의 사이즈 크기를 체감케하는 장면들이 적은 것도 아쉽다. 막말로 홍콩에서 벌어지는 2차전은 높은 빌딩들이라도 있으니 그 크기 체감이 어느 정도 되는 모양새인데, 바다 한 가운데에서 맞붙은 1차전은 그마저도 없는 망망대해라 좀 난감 하더라. 그나마 항공모함 위에서 서로 죽탱이 날리던 장면은 낫지만 둘이 잠수해 엉겨붙는 장면은 그냥 일반 사이즈의 고릴라와 도마뱀이 싸우는 것만 같이 느껴져서... 타이탄 월드로 건너간 콩이 신전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 역시 그러하다. 콩의 크기가 어마무시한 만큼 그 신전의 규모도 장난 아닐 거 아냐. 근데 지금은 그냥 일반 사이즈의 고릴라가 동물원 우리 실내로 들어서는 느낌이라 아우라가 팍 죽음.

개연성과 당위성의 문제가 있다. 물론 이런 종류의 거대 괴수 영화에서 현실성을 따진다는 거, 별로 의미 없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까본다. 일단 이 세계관의 과학적 비약이 너무 심한 것 같다. 거대 괴수 콩을 가둘 수 있는 인공우리? 두 거대 괴수를 태울 수 있는 항공 모함? 반중력 장치로 운영되는 최신 비행선? 물론 이것들 다 SF 영화에서 충분히 써먹을 수 있는 것들이지. 근데 기존 시리즈의 세계관에는 이런 거 다 없었잖아? <고질라>, <고질라 - 킹 오브 몬스터>, <콩 - 스컬 아일랜드> 셋 다 이런 과학력 없었다고. 그러다가 갑자기 여기서 툭 튀어나옴. 시리즈의 팬으로서 이건 좀 당황스럽더이다.

여기에 원격 충전되는 고효율 에너지의 묘사도 실소를 자아낸다. 원격으로 데이터를 옮긴 거라면 가능하지. 그러나 이건 에너지잖아. 고효율 에너지가 필요해서 타이탄 월드로 조사관들 보낸 건데, 거기서 발견하자마자 원격으로 그 에너지를 홍콩으로 전송한다고...? 이거 그럼 우리 집에 놔두고 온 보조 배터리로 내가 지금 밖에서 들고 있는 스마트폰을 충전할 수 있다는 거잖아? ...... 이게 가능함? 제아무리 SF 속성을 띈 영화라 해도 그렇지, 최소한의 현실성은 담보해주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래, 그래도 과학력에 대한 불만 싹 다 빼자. 그럼에도 여전히 불만들은 남는다. 타이탄 월드엔 타이탄들만 사는 거 아냐? 그럼 그 콩 일족의 신전은 누가 만든 거야? 그 규모로 보았을 때 하찮은 인간들이 만든 것은 아닐 테고... 그렇다고 콩의 종족들이 그런 건축물을 만들 만큼 지능이 뛰어난 것 같지도 않던데... 그리고 에이펙스는 타이탄 월드로 가는 안내자가 필요해서 콩을 스카웃한 거 아님? 철새들이 계절에 맞춰 고향 땅을 찾아 가듯이, 콩도 자연스럽게 타이탄 월드로 가는 길을 우리에게 안내할 거라며? 근데 막상 콩 데리고 남극 가보면 이미 타이탄 월드의 입구엔 진한 인간들의 향기가. ...... 이미 가는 길 다 알고 있었네... 그럼 콩이 왜 필요해...? <퍼시픽 림>처럼 타이탄들의 DNA 코드로만 입장할 수 있는 문도 아닌 거잖아...? 이미 그 반중력 비행선 히브도 갖고 있는데 대체 콩은 왜 데려간 거냐고... 

콩을 데려간 것도 사실 존나 웃기게 묘사된다. 콩은 모나크의 관리를 받고 있었다. 모나크는 어쨌든 국가에 의해 운영되는 기관이고. 근데 그걸 웬 공신력 없는 사이비 과학자의 말 재간 하나에 옮긴다? 모나크엔 관료주의가 없나보다. 콩 담당 과학자가 "옮기자"라고 하면 알 게 뭐야, 그냥 하는 거임. 상관의 허락이나 그 과정 따위 싹 다 프리패스. 물론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그런 거 다 묘사할 필요는 또 없지... 그냥 최소한의 시늉 만이라도 해줬으면 어느정도는 납득하고 넘어갔을 거란 이야기지...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임무에 굳이 자신의 친딸을 파견한 에이펙스의 두목도 웃기고, 전작 세리자와 박사의 아들이라는 상징적인 타이틀로 나와놓곤 정작 별로 활약도 못한채 눈만 뒤집어 깐 오구리 슌의 캐릭터 역시 안습. 하지만 가장 최악은 밀리 바비 브라운의 메디슨 러셀 파티였다. 기껏해야 중학생이나 고등학생 정도일 텐데, 애 둘이 표백제와 차이나타운이라는 힌트 두 개만으로 은둔해있는 한 성인 남자를 찾아낸다? 그것도 말이 안 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약과였다... 아무런 보안 인가도, 특급 능력도 없는 세 명이 그 초특급 기밀 시설에 별 제지도 없이 다 들어갈 수 있다고? 그렇게? Just like that? 게다가 메카 고질라 끄는 법은 컴퓨터에 술 붓는 거야.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이러면 안 됐잖아... 영화의 최종 보스를 이런 식으로 취급하면 어떻게 해...

그래, 메카 고질라가 나온다. 등장 자체는 어느 정도 예견했던 것이고 또 반갑기도 하지만, 디자인은 마음에 안 듦. 차라리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나왔던 디자인이 더 나아보인다. 근데 이거야 개인 취향인 거고. 디자인 빼고 보면 그 화력과 완력은 최강. 매우 만족스러움. 그러나 또 그 최후는... 기도라 연결해놓고 잠식 당한 거 제대로 보여주지도 않을 뿐더러, 이제 막 새 몸의 통제권을 얻은 기도라가 그 많은 미사일과 무기들 어떻게 그리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건지도 의문. 이 영화는 뭐 이렇게 그냥 던지는 게 많냐... 관객들이 알아서 납득하고 추리 하라고 무리수 던지는 게 진짜 한 두개가 아님.

워낙 기대작이었다보니 횡설수설 주절주절 쓴 느낌인데, 하여튼 여러 이유로 내게는 영 불만족스러운 영화가 되었다. 그러나 나 빼고 다른 사람들은 다 좋아들 하는 것 같으니, 밖에서는 그냥 닥치고 있어야지... 내 블로그에서나 이렇게 까야겠다.


뱀발 - 고질라의 팬으로서 내심 고질라가 이기길 바랐는데 실제로 그렇게 된 것 같아 그 부분은 만족. 아무래도 고질라보다는 콩의 서사에 좀 더 집중되어 있는 경향이 있는데, 이건 어쩔 수 없었다고 본다. 애초 고질라는 파괴신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고, 킹콩은 멜로 드라마의 화신이잖나. 드라마 넣기엔 표정 있는 영장류 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하지.

2021/03/29 14:47

케빈 인 더 우즈, 2012 대여점 (구작)


설마 설마 하며 수근대던 관객들을 정말 갈데까지 데려가버리는 영화. 아메리칸 슬래셔 호러의 궤적을 따라가다가 끝내는 좀비 호러, 크리쳐 호러, 호러 코미디, 코즈믹 호러까지 다 해먹는 영화. 이거 개봉 당시에 극장에서 처음 봤었는데, 보고 딱 든 생각이 그거였다. "이거 지금까지 존재했던 모든 공포 영화들의 마지막 시퀄이자 거대한 핑계잖아?"

영리한 각본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고, 그냥 그 컨셉 자체가 대단했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 이 영화의 핵심 트릭 빼놓고 보면 나머지 각본의 질이 그렇게 좋단 생각은 안 들거든. 근데 또 그것마저 멍청했던 지금까지의 호러 영화들 모두 끌어안으려 그랬던 거라면 또 할 말 없어지고. 하여튼 여러모로 치트키 같은 컨셉이었다. 컨셉이 워낙 신선하고 범용성 좋으니 각본 대충 써도 존나 있어 보이는 거지, 이게.

호러 영화로써는 전조 쌓기를 잘하는 편이다. 이젠 클리셰들 중에서도 꼰대 취급을 받을 장면이겠지만, 웬 늙은이가 젊은 주인공들의 불안을 조장하는 묘사부터 시작해서 '골빈 금발' 역할의 등장인물이 박제된 늑대와 찐한 키스를 펼칠 때 역시 마찬가지. 여기에 여러 아티팩트들로 가득찬 지하실 장면은 더 말할 것도 없고. 두번째 보는 입장에서는 이 장면에서 별 거 없었다는 걸 간신히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썩 긴장감으로 충만했던 장면들이었다. 박제 늑대랑 키스하는 장면에서는 그 늑대가 갑자기 살아 움직여 혓바닥 다 뜯어버릴 줄 알았다니까.

감독으로서의 드류 고다드 스타일을 잘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검색해보니 드라마 위주로 활약했고, 영화 연출작은 이거랑 <배드 타임즈> 딱 두 편이더라고. 근데 그 두 편을 다 본 입장에서는 뭐랄까, 쿠엔틴 타란티노와 매튜 본의 하위 호환 버전 같은 느낌이랄까? 아, 여기에 가이 리치와 에드가 라이트도 더할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들으면 알겠지만 이 네 명의 감독들 모두 자기 스타일 확실한 사람들이고, 또 그러면서도 서로 비슷한 구석이 어느 정도 있잖아? 드류 고다드가 딱 그렇다. 영화 곳곳에 묻어있는 B급 코드는 매튜 본의 그것 같고, 장르 믹스하며 키치한 톤으로 타이틀 띄우는 건 타란티노의 그것 같음. 매튜 본과 타란티노 모두 장르의 대가들이고 메타 영화를 다루는 재능이 있었음을 돌이켜보면, 드류 고다드를 비슷하게 느끼는 것 역시 별로 이상할 게 아니다. 여기서 드류 고다드는 그야말로 호러의 서브 장르들을 뒤섞고 핏물 튀기며 놀아제끼니까.

아까 말했듯, 영화가 진짜 재밌었던 건 지금까지 존재했던 모든 호러 영화들의 핑계 같았기 때문이다. 늑대인간과 헬레이저, 킬링머신, 좀비, 인어, 거대 뱀 등의 지옥 생물들이 존재하는 세계관. 그리고 그 크리쳐들을 적재적소에 활용, 분노한 고대 신들을 달래기 위해 일종의 리얼리티 쇼로 그걸 기획하는 비밀 집단. 숨겨져있던 이 설정은 모든 호러 영화들에 그대로 통용된다. <13일의 금요일>? 그것도 이 기관이 제이슨 풀었다고 하면 됨. <나이트메어>? 마찬가지지. 이 기관이 프레디 크루거 데리고 있었다 하지 뭐. 이런 식이면 <프레데터>, <사탄의 인형>, <이블 데드> 등 모든 호러 영화들이 다 가능하다. 그야말로 범용성 쩌는 세계관.

어찌보면 그 비밀 집단은 호러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은유이기도 할 것이다. 희생자들을 어떤 순서로, 얼마나 잔인하게 죽일지를 놓고 토론하며 또 웃는 사람들. 다른 누군가를 만족시키기 위해 핏물을 첨벙대는 사람들. 이게 호러 영화 감독이랑 스텝들 아니면 뭐냐고. 그리고 그렇게 대입하기 시작하면 분노한 고대 신들은 관객들이 된다. 빡친 고대 신들이 그 큰 손으로 화면 움켜잡는 거? 그거 관객들이 못만든 영화 움켜잡고 존나 까대는 거랑 뭐가 달라. 호러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겐 관객들의 악평이 곧 세상의 멸망인 것이다.

마지막에 시고니 위버가 나올 줄은 몰랐었는데, 극장에서 처음 볼 때 너무 반가웠었다. 사실 정말 사소한 역이고, 배경설정을 설명하기 위한 캐릭터로서만 존재하는 배역인데 그걸 시고니 위버가 해주니까 그냥 다 납득됨. 왠지 제노모프들 다 때려잡고 이 기관 채용 되었을 것만 같은 인상.

하여튼 다시 봐도 재밌는 영화였다. 타란티노나 매튜 본이 호러를 만들면 이런 느낌이었을까. 드류 고다드가 이후 만들었던 <배드 타임즈>도 만족스러웠는데 차기작은 언제쯤 만들려고 하나, 이 양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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