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31 23:59

2021년 대문짝 객관성 담보 불가


2021년의 주요 타겟


스나이더컷 / 아신전 / 완다비전 / 매형&동군 / 로키 / 만달로리안 / 만약에...? / 호크아이 슨배임

베놈 / DUNE / 라스트 듀얼 / 웨스 앤더슨 / 퍼스트 에이전트 / 이터널스 / 소호 / 깐느박 /
브로커 / 고스트 버스터즈 / 비상선언 / 매트릭스4 / 노 웨이 홈 / 웨스트 사이드 스필버그

2021/10/22 11:29

극장전 (신작)


원작을 굉장히 오래 전에 읽었는데, 그마저도 다 읽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린 꼬맹이였던 당시의 나에겐 꽤 길고 현학적인 작품처럼 느껴졌을 테지. 아닌 게 아니라, 스페이스 오페라라고 해서 <스타워즈>나 최소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정도의 분위기를 기대 했었거든. 그러나 소설은 그런 내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었다. 아니, 어찌보면 내가 소설에 미치지 못한 것이었으리라. 그랬던 나와는 달리, 지구 반대편에서는 이 소설을 찬양해 영화로 만들려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그 중에는 데이비드 린치도 있었지. 하지만 지금은 드니 빌뇌브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기로 한다. 린치의 버전까지 내가 이야기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일단 난 그 영화 안 봤거든.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원작 소설에도 흥미가 일지 않았었는데 대체 그 작품을 볼 이유가 어린 내게 얼마나 있었겠는가. 그리고 이러한 변명은 내가 이번 <듄>을 관람하고 또 기대한 부분이 어디인지 정확하게 짚어준다. 텍스트로 매료된 적 없는 <듄>이 내 구미를 당긴 것은 순전히 드니 빌뇌브의 이름 때문이었다는 소리다. 


스포일러 들어갑니다.


<블레이드 러너 2049>는 내게 양가적인 감상을 끌어낸 작품이었다. 높은 수준의 완성도를 보여주는 마스터피스처럼 느껴졌던 동시에, 불행히도 대중성은 완전히 쌈싸먹은 작품 같았지. 영화사에 남을 만한 작품인 건 맞는데 한편으로는 존나 지루했다는 소리다. 때문에 <듄>도 걱정 했었으나, 다행히 <블레이드 러너 2049>의 그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근데 사실 그조차도 내가 과거에 원작을 조금 읽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막말로 원작 소설에 손도 안 댔고 이 세계관의 기초 설정 따위 역시 하나도 모르는 관객들에게는 <듄>이 <블레이드 러너 2049>의 뺨따구를 후려치는 작품일 것이다. 드니 빌뇌브 특유의 건조하고 넉넉한 연출 때문에 그냥 말하면 확실히 지루한 감이 있거든. 감독 양반은 인터뷰를 통해 지금까지의 작품들 중 가장 대중적인 면에 초점을 맞춘 영화라고 입 털고 있지만 확실히 대중적으로 넓게 환영받을 수 있는 영화는 여전히 아닌 것이다. 영화가 서둘러 설명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세계관 내의 여러 고유명사들이 난무하는 영화라 기초 설정을 모른다면 스크린 속 인물들이 대체 뭔 이야기를 씨부리고들 있는 건지 파악하기 어렵다. 그나마 '스파이스'나 '프레멘' 정도는 간단하게나마 설명해주고 있고, 아트레이데스 가문 vs 하코넨 가문의 대립구도 역시 눈치껏 파악할 수 있으나 '베네 게세리트'의 존재 같은 것들은 그냥 마구 던지기만 해서... 하여튼 영화라는 분명한 시각매체의 틀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 안의 내용물은 다분히 문학적이라 거기에서 오는 갭이 확실히 있다. 여러모로 불친절한 각본이다. 

그럼에도 그런 부분들을 가뿐히 넘긴다면 영화는 황홀한 시각적 만찬을 제공한다. 물론 어떤 이는 그 비주얼에서도 여전히 지루함을 느낄 수 있겠다. 끝없이 펼쳐지는 황량한 사막의 이미지가 대체 뭐가 멋진 것이냐 채근할지도 모른다. 사실 맞다. 이미지의 밀도나 화려함에 있어서는 차라리 <블레이드 러너 2049>가 더 스펙터클하지. 프레임 곳곳을 세계관이 가진 특유의 이미지들로 밀도 높게 채웠던 <블레이드 러너 2049>와는 완전히 딴판인 영화인 것이다. 그러나 그린 대상이 다를 뿐 그 화풍과 정성은 여전하다. <듄>의 비주얼적 미학은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데에 있다. 그리고 이러한 미학은 실제 로케이션 촬영을 고수한 제작진의 노력에서 빛난다. 황무지인 동시에 노다지인 사막의 아름다움. 그리고 거기서 물결치는 모래 벌레의 공포스러울 정도로 압도적인 면모. 그 옛날 그리스 신화 속 신전을 방불케 하는 건축 디자인 등등이 <듄>의 아름다움이다. <블레이드 러너 2049>가 화면 이곳 저곳을 적극적으로 구경하는 맛이 있었다면, <듄>은 그저 관조하고 관망하는 맛에 보는 영화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여기에, 주인공의 선택이 있다. 사실 드니 빌뇌브가 연출해서 있어 보이는 거지, <듄>의 내용 자체는 뻔하고 전형적인 영웅 서사다. 운명에 의해 선택된 고귀한 영웅이, 일련의 사건과 시련을 겪고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는 이야기. 고대의 신화들이 그랬고, 최근의 장르 영화들 역시 다 마찬가지 아니었던가. 영화의 황량한 배경과 장르적 공통점 때문에 아무래도 <스타워즈>의 루크 스카이워커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확실히 루크와 <듄>의 폴은 닮은 구석이 많다. 고귀한, 또는 강력한 혈통을 갖고 태어났다는 점. 특정 세력 간의 싸움을 그 부모나 조상으로부터 물려 받았다는 점. 가족을 잃고 모험에 투신한다는 점. 초능력에 준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점. 그리고 제국과 황제에 맞선다는 것까지. 이쯤되면 루크와 마찬가지로 폴 역시 전형적인 영웅 서사의 뻔한 주인공처럼 보인다. 

하지만 다른 게 있다. <듄>의 폴은 선택을 내린다. 폴은 예지 능력을 통해 미래를 엿본다. 그 덕분에 그는 자신이 앞으로 가야할, 가게 될 방향을 잘 알게 된다. 한마디로 운명이 계속 그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다. 허나 내가 영화를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다면, 그는 미래에 친구가 되고 또 자신의 조언자가 될 자미스를 죽인다. 예지되어 있던 미래의 폴은 자미스에게 필시 많은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폴은 스스로에 대한 우상화를 경계하며, 그리고 현재의 자신에게 닥친 결투에서 생존하기 위해 자미스를 죽인다. 폴 귓속에서 웅웅대던 신탁은 말했다, 죽음으로써 살게 될 것이라고. 누구라도 혹할만한 말이었으나 폴은 끝내 운명을 꺾는다. 아니, 엄밀히 따지면 운명을 받아들이되 그마저도 칼자루를 자신의 손에 쥐려하는 주인공이라 해야할 것이다. 바로 그 점이, 기존의 다른 영웅 서사 주인공들과 폴의 다른 지점이다. 그리고 물 흘러가듯 순리대로 따라가야할 땐 따라가지만, 결정적 선택의 순간에는 항상 자신의 판단을 믿고 그에 따라 행하는 폴이 멋졌다. 

계속 말하지만 아쉬운 부분도 없진 않다. 마케팅 측면에 있어 화려한 캐스팅을 내세웠지만, 몇몇 배우들은 그 존재감을 제대로 발산할 새도 없이 사그라든다. 아까 말했듯 각본의 불친절함 역시 확실한 문제고. 이러한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듄>은 드니 빌뇌브 스스로의 말대로 그가 지금까지 만들었던 영화들 중 그나마 가장 대중적인 영화다. 그리고 여기에는 드니 빌뇌브의 야심찬 비전이 있고, 무엇보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큰 서사시가 존재한다. 보기 전까지만 해도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여파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는데, 막상 보고나니 2부가 더욱 더 궁금해졌다. 이렇게 만들어놓고 속편 제작 안 하면 그건 유죄다. <반지 원정대>만 만들어둔채 <두 개의 탑> 찍을거란 기약 없이 그냥 튀면 어떡하란 소리냐. 그러니까 워너는 빨리 속편 제작 허가 때리라고. 

2021/10/21 16:33

브라이트 - 무사의 혼 극장전 (신작)


데이비드 에이어 연출, 윌 스미스와 조엘 에저튼 주연으로 2017년에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 되었던 <브라이트>의 스핀오프 애니메이션. 허나 <브라이트> 재밌게 본 것도 아니었고 관심조차 없었음. 그럼 이 영화를 왜 봤냐... 나도 잘 모르겠다. 일본을 배경으로한 사무라이 영화라서? 그러기엔 평소 재패니메이션 특유의 감성 잘 안 좋아하는 걸. 최근 꽤 괜찮게 봤던 <사이다처럼 말이 톡톡 솟아올라>의 감독 신작이라서? 또 그러기엔 그 영화 엄청 재밌게 봤던 것도 아님. 짧은 시간동안 유추해본 결과, 내가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오로지 신작으로써 넷플릭스 홈페이지 상단에 걸려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시간은 때워야 하고, 또 그렇다고 너무 긴 영화는 보기 싫고. 런닝타임이 90분 좀 넘어가는 애니메이션이니 부담없이 볼 수 있을 것 같고, 게다가 예전에 이미 본 영화의 스핀오프라면 더더욱 소화가 빠르겠지-라는 계산 하에서 관람한 것 같음. 첫 문단부터 혀가 왜 이리 기냐고? 본문에선 별로 할 이야기 없을 것 같아서 그런 거임.

<브라이트>가 가진 그나마의 장점은 그런 거였다. 엘프와 오크 등, <반지의 제왕> 같은 중세 느낌 배경의 하이 판타지 장르 영화에서나 존재했던 가상의 존재들을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현재 21세기의 LA를 배경삼아 등장 시켰다는 것. 그리고 그를 통해 조금 뻔하긴 해도, 현대 사회에 만연해있는 계급과 인종 갈등에 대해 직설적인 코멘트를 시도했다는 것. 그게 그 영화의 장점이자 강점이었지. 딱 거기까지였던 게 흠이지만. 그런데 스핀오프인 이 영화는 그 장점을 초장부터 갉아 먹고야 만다. 메이지유신 시절의 일본을 배경으로 삼아버린 것. 물론 대부분의 판타지 게임들이 근간으로 삼고 있는 유럽풍 중세 시대완 거리가 있지. 그러나 시대적인 선 긋기만 딱 그러할 뿐, 오크와 엘프들이 칼과 활을 들고 싸운다는 것은 기존 이미지의 답습처럼 느껴진다. 자동차와 스마트폰이 일상화 된 시기를 배경으로한 <브라이트>와는 다르게 기존 판타지 작품들과의 별다른 차별점이 없다. 

여기에 메시지도 그냥 그대로 갖다 썼다. 뭐, 메시지가 중요하거나 크게 드러나있는 작품은 아니긴 한데... 그래도. 오크를 흑인 또는 히스패닉에 빗대어 현대 사회의 인종 갈등을 풍자했던 <브라이트>의 그것이 <브라이트 - 무사의 혼>에서도 똑같이 반복된다. 그게 재밌기나 하면 또 몰라. 그냥 동어반복에 뻔한 소리 가득. 결국엔 모두의 혐오를 받는 오크와 엘프가 인간 주인공과 힘을 합쳐 세상의 평화를 되찾아온다-는 간결한 스토리인데, 그 안에서 인물들이 겪는 개인적 갈등이 하나도 드러나지를 않는다. 오크인 라이덴은 그냥 힘 좋고 사람 좋은 아저씨로만 묘사되고, 엘프인 소냐는 그냥 질질 짜대는 어린애인데다 구출되어야 하는 전형적 공주님 역할. 그럼 인간 주인공인 이조는? 이 새끼도 후까시만 겁나 잡지 뭐 별다른 건 없음. 계속 숨기고 있는 과거에 뭔가 대단한 미스터리나 이야기가 있을 줄 알았는데 그딴 거 설명 1도 없고 그냥 가오만 잡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열 받았던 게, 촬영이 너무 오두방정이란 거다. 감독의 전작 또한 비슷한 기세였으나 이 정도로 까불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브라이트 - 무사의 혼>은 거의 모든 쇼트들이 다 역동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는 병에라도 걸렸는지 전후좌우로 마구 까불어댄다. 보는 동안 '굳이 이렇게 어지러이 잡을 필요가 있었을까?'란 생각이 들었음. 

악당의 동기나 목적은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 주인공들은 그 속내와 이야기를 쉬이 꺼내주지 않고. 그나마 액션이라도 화려하고 좋으면 몰라, 그것마저 뭔가 어정쩡 하기만 하다. 대체 이 뜬금없는 기획은 무엇이란 말인가. 4년 전에 만든 미국 영화의 하이 컨셉만 홀랑 벗겨다가 일본 배경의 애니메이션으로 개작 해버린 이 사연은 대체 무얼까. 데이비드 에이어가 이거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고 넷플릭스 본사에 찾아가 땡깡이라도 부렸던 것일까. 매번 느끼지만 인생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하여튼 영화는 존나 재미없음. 

2021/10/16 11:48

베놈 2 - 렛 데어 비 카니지 극장전 (신작)


정말 신기한 일이다. 한화로 1,000억 원이 훌쩍 넘어가는 제작비를 들인 영화가, 그것도 요즘 시기 가장 유행하고 있는 수퍼히어로 장르 영화가, 심지어 한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사활을 걸고 만들어진 영화가, 게다가 톰 하디 같은 수퍼 스타가 출연하는 영화가 이토록 B급 감성의 쌈마이한 완성도로 나왔다니. 8,90년대에 많이 나왔던, 극장 개봉 했던 1편과는 다르게 적은 제작비를 책정받아 비디오용 영화로만 만들어진 액션 영화 속편들 중 하나 같다. 

<스파이더맨 2>가 그랬고, <엑스맨 2>가 그랬으며, <다크 나이트>가 그랬듯이. 수퍼히어로 프랜차이즈에서 보통의 2편은 걸작 포지션이지 않나. 물론 이런 경우도 있다 이미 주인공의 기원과 능력 등에 대한 설정은 1편에서 다 숙제 끝냈을 테니, 이제 제대로된 아치 에너미만 하나 구해 붙여주고 주제 의식 더 강하게 밀어붙이면 아주 불가능한 것도 아니잖아. <베놈 2> 역시 잘해낼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1편이 훌륭한 영화인 것은 물론 아니였지만, 이번에는 카니지가 나오니까. 카니지는 원작의 팬들이 오래도록 염원해온 스파이더맨과 베놈의 숙적이었다. 공공의 적이었다고. '대학살'이라는 뜻의 이름답게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죽이고 그 자체를 즐기는 싸이코패스 연쇄살인마의 등장. 여기에 캐스팅은 우디 해럴슨. 이 영화에는 희망이 있어보였다. 

하지만 결국 또 시작된 건 에디 브록과 베놈 사이의 브로맨스 아니, 이제는 브로맨스라고 하기 보다 그냥 대놓고 로맨틱 코미디라 말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에디 브록과 베놈의 기묘한 동거 생활, 그리고 이어지는 별거와 재결합 과정이 영화의 핵심이고 전부다. 자비심 조금 베풀어서, 베놈의 캐릭터가 원작과 딴판이 된 점은 이제 그러려니 할 수 있다. 원작 반영을 제대로 하지 않았을 뿐더러 왜 팬들이 그 캐릭터를 사랑해마지 않았는가를 제작진이 제대로 파악해내지 못한 점은 물론 여전히 아쉽다. 허나 이미 1편이 그렇게 나왔는 걸 이제 와서 어떡하겠나. 이제 소니 마블 유니버스의 베놈은 원작의 베놈과 아예 다른 캐릭터가 된 거지. 서운하지만 받아들이기로 한다. 고로 베놈이 착한 것도, 귀엽게 굴며 에디 브록과 투닥 거리는 것도 넓은 아량으로 참아줄 수 있다. 그래도 카니지라는 역대급 악역을 모셔다두고 대우는 커녕 찬밥 신세 만든 뒤 에디 브록과 베놈의 사랑 이야기에만 집중한 건 분명한 문제지. 

카니지는 베놈이나 전작의 악당 라이엇과 구분될 수 있는 캐릭터였다. 카니지는 숙주와 심비오트 모두 싸이코인 캐릭터다. 에디와 베놈이 목표는 같을지언정 그 수단과 방법에서 합의를 보지 못하는 관계라면, 캐서디와 카니지는 목표와 수단 모두에서 죽이 잘 맞는 커플이다. 사람을 죽이고 싶어하는 공통점이 그들에게는 있다. 하지만 캐서디는 이상한 각색의 결과로 로맨티스트가 되어버린다. 자신의 사랑을 찾기 위해 카니지를 이용하지만, 나중에는 그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 카니지와 불협화음을 낸다. 목적과 수단 모두 같아 그 싱크로가 어마무시할 것 같았던 카니지는 그렇게 베놈이나 라이엇 등과 똑같은 존재가 된다. 원작에서 갖고 있던 개성이 모두 휘발된 것. 그리고 씨발, 차라리 우주 정복이나 지구 정복을 한다고 그러지 악당으로서 뭔놈의 계획이 고작 결혼식이냐. 그것도 미친 싸이코패스 연쇄살인마 캐릭터인데, 결국 하고자 했던 게 우리 사랑 인정 받고 다 죽여!-라니. 거기서 신부님 갖고 농담 따먹기 하고 있던 것 자체가 문제다. 지금 여기 악당은 조커나 로키가 아니라 카니지라고, 씨바.

액션 블록버스터라고 하기에도 뭐한게, 일단 스펙터클이 현저히 부족하다. 엔딩 크레딧 빼면 겨우 1시간 20여분짜리 런닝타임을 갖고 있는 영화인 건데, 이와중 제대로된 액션이라고 해봤자 클라이막스 베놈 vs 카니지 장면이 다임. 근데 그마저도 어두운 배경에 액체 괴물 찐드기 둘이 치고받는 거라 1편에 이어 잘 보이지도 않고. 가시성은 진짜 최악이다. 물론 중간에 꽤 괜찮아 보이는 아이디어들도 있다. 성당의 종이 내는 소리와 소리 사이의 짧은 텀 동안 두 심비오트가 잠깐씩 싸우는 전개는 흥미로워 보인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일 뿐. 아이디어가 있으면 뭘해, 그걸 써먹질 않는데... 그리고 무엇보다 클라이막스 액션 장면의 배경으로 성당이 나오는 순간 "또?"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리고 그 이후엔 이제 또 성당 첨탑에 있는 종으로 지지고 볶고 하겠구나...라는 생각 밖에 안 들었음. 

그냥 나오미 해리스의 슈리크 역할을 아예 빼버리고 베놈 vs 카니지의 단순한 전개로 갔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무엇보다 에디 브록과 캐서디가 대체 무슨 관계인지 잘 나오지 않아 그게 답답하다. 캐서디는 대체 왜 감옥으로 에디를 부른 걸까? 수많은 기자들 중 왜 그를 굳이 콕 찝어서? 그렇담 둘이 무슨 원한 관계가 있든지, 아니면 원래 친구였다거나 일면식이 있었다는 식의 설정이 있었어야지 않냐? 근데 왜 서로 모르는 사이였는데 굳이 에디를 부르는 거냐고. 둘의 관계가 먼저 제대로 안 서니까 이후 액션이나 드라마들도 죄다 실패잖아. 왜 자꾸 캐서디가 에디에게 집착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그래도 이 두 캐릭터는 나은 편이다. 미셸 윌리엄스가 연기한 앤 웨잉은 정말로 최악임. 쿠팡 잇츠나 배달의 민족도 아닌데 그냥 에디 브록에게 베놈 딜리버리 해주는 역할로만 나옴. 에디와의 사이에서 뭔가 제대로된 로맨스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방식으로 각성해 그를 돕는 것도 아니고... 그저 시다바리 심부름꾼 역할. 그리고 또 클라이막스 액션 장면에서는 쿠파에게 잡힌 피치 공주 마냥 전형적인 여성 인질 캐릭터로서의 모습도 보여준다. 겨우 이 역할 시키려고 또 미셸 윌리엄스 불러들인 거냐고...

의문이 두 가지 들었다. 왜 앤디 서키스는 이 작품의 연출 제안을 수락한 것일까. 아, 실제 배우와 CG 캐릭터 사이의 연기 케미스트리 연출이 재밌을 것 같아서? 본인이 이런 거 많이 해봤으니까? 그리고 이어드는 또다른 의문. 대체 왜 제작사는 이런 중요한 작품의 연출 자리에 앤디 서키스를 앉힌 것일까? 앤디 서키스 감독으로서는 지금까지 딱 두 편 만들었을 뿐이고, 그 중 한 편은 이런 종류의 액션 블록버스터완 거리가 먼 멜로 드라마였잖나. 심지어 그 두 편 모두 평이 아주 좋았던 것도 아닌데. 그게 가장 큰 의문이었다. 

쿠키 이야기를 안 할 수는 없겠지. 그런데 생각보다는 그냥 무난하게 느껴지던데. 1편 나왔을 때부터 스파이더맨과의 만남은 언젠가 이루어질 필연이겠구나 싶었거든. 그래서 덜 충격적. 그렇다고 그 쿠키 영상 연출을 오지게 잘한 것도 아니라서... 그래도 지금까지 기존 MCU 세계관과는 다른 멀티버스에서의 이야기였다-라는 게 확정적으로 밝혀진 것 자체는 반갑네. 중요한 건 이제부터겠지만. 그런데 그럼 둘이 언제 만나는 건가? 곧바로 이번 <노 웨이 홈>부터? 그렇다면 너무 급한 것 같긴 한데. 뭐 하여튼 이제 MCU로 넘어왔으면 아비 아라드 대신 케빈 파이기가 알아서 잘 하겠지. 

1편을 두고 그런 평을 했던 기억이 난다. 비싼 스포츠카 사서 달구지로 쓰는 기분이라고. 그 평에 이어, 이번 2편에 대해서는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달구지로 쓰던 그 비싼 스포츠카, 결국 도랑에 빠져 폐차합니다-라고. 이렇게 매력적인 캐릭터로 고작 이 정도 밖에 못 만드는 것도 이젠 능력이라면 능력이라 하겠다. 

2021/10/13 15:24

용과 주근깨 공주 극장전 (신작)


<용과 주근깨 공주>는 얼핏, 호소다 마모루의 총합처럼 보인다. 그가 지금까지 만들어온 영화들 속에서 우리가 이미 한 번쯤은 봤던 것들이 <용과 주근깨 공주>에서는 익숙하게 재조립 되기 때문이다. 천변만화하는 구름의 이미지, 덥지만 건조하게 느껴지는 여름, 개와 함께하는 시골살이, 왁자지껄 대가족 혹은 유사가족, 부모의 부재, 수줍은 짝사랑, 모두의 부러움을 받는 완성형 미인 선배 혹은 친구, 0과 1로 이루어진 거대한 디지털 세계, 수인, 여고생 주인공,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힘써 달려나가는 이미지 등등. 장편 기준 가장 오래된 연출작 <디지몬 어드벤처 - 우리들의 워 게임!>부터, 가장 최근작인 <미래의 미라이>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작품들에서 숱하게 반복되어온 요소들이 <용과 주근깨 공주> 안에 녹아든다. 그러니까 우리는, <용과 주근깨 공주>를 두고 호소다 마모루 작가주의의 집대성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러 과거의 경험들을 통해 이미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좋은 것들을 모두 욱여넣는다고 해서 그 작품의 질이 무조건적으로 좋아지진 않는다. 그동안의 모든 것들을 넣었지만 제대로 녹아들지 못한채로 뭉툭뭉툭한 만듦새가 된 작품. 이쯤 되면, <용과 주근깨 공주>를 호소다 마모루의 과잉된 총합이라고 부를 수 밖에. 


스포일러 공주!


등장 하는 인물들은 모두 저마다의 이야기와 주제를 한가지씩 품고 있다. 주인공 소녀 스즈는 엄마의 부재에 대한 트라우마와 더불어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에 대한 콤플렉스까지 갖고 있는 인물이다. 여기에 그녀의 절친한 친구 히로는 극중 존재하는 가상 세계 'U'를 대변하는 인물이며, 시노부는 스즈의 소꿉친구이자 짝사랑 상대다. 혼자 카누 동아리를 만든 카미신은 우정과 열정을 동시에 상징하는 인물이고, 또 이와 엮이는 루카는 완벽해 보이는 외관 이면에 의외의 허당끼를 가진 미인으로 설명된다. 여기에 스즈와 함께 동네 합창단을 결성한 동네 이모들이 넷이나 추가.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이미 사망해 현재 시점에서는 존재하지 않지만 스즈의 엄마 역시 과거 회상을 통해 트라우마의 근원으로서 보여지며, 홀로 남은 스즈의 아빠 역시 묘사된다. 그리고 왜인지 그 이유는 나오지 않지만 다리 한 쪽을 심하게 다친 스즈의 애완견 또한 등장. 이젠 정말로 끝이라 생각하는가? 천만에 말씀. 지금까지의 리스트는 모두 스즈의 현실에만 존재하는 인물들이다. 이젠 가상 세계 U 안의 인물들도 언급해야지. 심지어는 아직 제목에 명기된 '용' 이야기는 나오지도 않았잖나. 

인물들이 그냥 많은 것과, 각자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인물들이 많은 것은 다르다. <용과 주근깨 공주>의 모든 인물들은, 각자의 성격과 전사와 역할이 분명하다. 그리고 바로 그게 문제가 된다. 이것은 '스즈'와 '벨'이라는 정체성 사이에서 고민하는 한 소녀의 성장기인가? 아니면 가상 세계의 익명성과 권력 등을 비판하는 블랙 코미디인가? 하지만 <레디 플레이어 원>처럼 그 가상 세계 안의 낭만과 행복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는 영화인 걸? 그럼 짝사랑 상대를 두고 고민하는 한 여고생의 하이틴 로맨스일까? 완벽해보이는 타인과 불완전한 자기 자신을 비교하는 슬픈 이야기? 가상 세계의 액션을 토대로 현실 세계의 가정 폭력과 아동 학대를 고발하는 고발 드라마이기도 한 것 같은데? 게다가 이를 밝히기 위한 추리 요소도 나오잖아. 그리고 U 안에서 벨로 활동하는 스즈는 온전한 익명성으로 노래에 대한 자신의 꿈을 펼쳐나간다. 벨이 부르는 노래들도 다 좋네, 이거 음악 영화구나? 그런데 용과 벨의 로맨스 아닌 로맨스는 또 <미녀와 야수>에 대한 노골적인 패러디잖아? 어라? 수퍼히어로 컨셉의 악당들도 나오네? 수퍼히어로 액션 장르 영화인 건가? 

놀랍게도 <용과 주근깨 공주>는 그 모든 걸 다 소화하려고 한다. 그럴듯한 주제와 소재 몇개를 취사 선택해 버무리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 모든 걸 다 채택해버렸다. 그러다보니 이야기가 놀랍도록 중구난방이고 산만하다. 전형적이고 뻔한 선택이었을지언정, 현실 세계의 연애 대상인 시노부가 알고보니 U에서 활동하던 용이었다-라는 전개였다면 이 정도로 헷갈리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 둘에게 다른 정체를 부여했다. 용은 가정 학대의 피해범으로, 스즈와는 전혀 일면식조차 없던 도쿄 거주 한 14살 소년이다. 그리고 시노부는 그저 시노부일 뿐. 여기서 멜로 드라마에 어깃장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가상 세계 속에서 사랑하는 대상과 현실 세계 속에서 사랑하는 대상이 다른 것. 그 점을 깊게 파고드는 2인 3각 멜로 드라마였다면 차라리 나았으리라. 하지만 영화는 그냥 순진한 척으로 일관한다. 벨이 용을 사랑했던 것 아닌데? 그냥 순수하게 좋은 마음으로 챙겨주고 싶었던 것 뿐인데? 이런 말들로 영화가 변명하는 것만 같다. 

영화는 화려한 시각적 스펙터클을 제공하고, 또 앞서 말했듯 극장을 나선 직후 곧바로 음원 사이트 검색창을 켜게 만드는 삽입곡들로 시청각적 성찬을 제공한다. 하지만 이 과한 스펙터클이 다수의 이야기들과 붙어버리니 곧바로 산만해진다.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노래를 부름으로써 타인을 구원한다는 이야기와 전개는 그럴 듯하지만 연출이 구태의연하고 역시나 나이브하다. 영화를 만든 이들이 의도했던 대로라면 그 장면을 보며 눈물 흘렸어야 했는데, 정작 극장 안에서의 나는 미간을 찌푸릴 수 밖에 없었다. 감정적으로 전혀 동요되지 않았는데, 영화가 먼저 동요 해버린 탓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지점. 스스로의 신상을 자발적으로 드러낸 스즈가 U에서 희망과 사랑의 노래를 부른다. 그런데 이어지는 전개에서, U를 가로지르는 거대 고래의 등에 탄 스즈는 어느새 다시 벨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건 안 되는 거잖아. 스스로를 인정하고, 스스로를 사랑하고, 그렇게 스스로를 드러냄으로써 타인과 자신의 꿈을 구해낸다는 상황인데 거기서 본 모습인 스즈가 아니라 벨의 얼굴을 하고 있으면 대체 어떡하냐. 

물론 흥미로운 부분들도 있다. 여러 영화들 속 일반적인 가상 세계에서는 이용자가 자신의 아바타를 선택하거나 커스터마이징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용과 주근깨 공주>의 U는 생체 인식 기술을 기반으로 이용자에게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일방적으로 부여한다. 스스로가 선택한 정체성이 아니라, 이것 역시 현실 속 '나'와 마찬가지로 고를 수 없는 정체성인 것이다. 가상 세계를 다루는 영화들이 잘 하지 않는 선택. 이 선택으로 인해 영화는 더 깊은 주제를 탐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일 뿐. <용과 주근깨 공주>는 이미 다룰 테마가 많아 과식한 상태다. 

<디지몬 어드벤처 - 우리들의 워 게임!>을 필두로 <시간을 달리는 소녀>, <썸머 워즈>, <늑대아이> 등 호소다 마모루는 좋은 작품들을 이미 많이 만들어낸 명장이다. 그러나 최근 <미래의 미라이>부터 이번 <용과 주근깨 공주>까지, 실망스러운 건 실망스러웠다 솔직하게 말해야 하겠지. 부디 다음 작품에서는 그가 각본에 조금의 다이어트라도 시도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2021/10/11 23:22

스틸워터 극장전 (신작)


이것은 딸이 누명을 썼다 믿고 그것을 벗겨내려하는 한 아버지의 추적극이다. 동시에 최강대국 미국의 문제 해결 방식을 두고 의문을 제기하는 비판적 우화이기도 하며, 또한 그저 인내하고 감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때론 가장 큰 고통으로 느껴질 수 있음을 전달하는 인간 드라마이기도 하다. 


스포일러 워터!


믿고 있던 모든 것들이 흔들리는 와중, 그럼에도 끝까지 지켜내야 하는 것은 양심과 사랑이라고 <스틸워터>는 말한다. 매순간 기도를 실천하는 독실한 기독교도 빌 베이커. 그러나 그녀의 아내는 자살했고, 프랑스로 유학보낸 하나뿐인 딸은 살인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 되었다. 심지어 죽은 피해자는 딸의 레즈비언 연인이었던 이슬람교도. 자살, 살인, 동성애, 이교도. 빌이 믿는 신 입장에서는 그 어느 것 하나 봐줄 구석이 없어 보인다. 물론 이역만리 타국의 감옥에 갇힌 딸은 끝까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고 있긴 하지만. 

결정타를 먹이는 것 역시 딸이다. 결말부, 빌은 자신의 딸이 아주 무고한 것은 아님을 알게 된다. 진짜로 죽일 줄은 몰랐다는 나이브한 변명으로 눈물을 보이지만, 어쨌거나 딸은 당시 자신의 연인을 죽여줄 것을 다른 남자에게 청부 했다지 않나. 오클라호마 출신 무뚝뚝한 블루 칼라 노동자 빌은 이같은 딸의 충격적 고백에도 그 다부지고 무거운 몸으로 끝까지 버티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미 그는 딸을 구했을지언정 자신이 다시 쥐고 있던 대부분의 것들을 잃은 이후다. 아버지인 자신을 혐오하고 심지어 결국엔 완전무결 하지도 않았던 것으로 밝혀지는 딸을 위해 빌은 어떤 일들을 벌이고 또 무엇을 잃었는가. 그는 자신의 인간적 양심과 종교적 신념을 모두 포기한채로 주요 용의자인 남성을 잡아 사적 복수 비슷한 짓을 행하였다. 그리고 이로인해 자신을 다시 온전하게 만들어줄 여자와 어린 아이를 또 모두 잃었지. 물불 안 가리지 않던 집념으로 믿고 있던 모든 것들이 흔들리는 와중, 그럼에도 빌은 끝까지 양심과 사랑만큼은 잡고 놓치지 말았어야 했다. 

빌 베이커라는 한 남자의 관점으로만 보아도 충분히 흥미로운 영화지만, 빌과 처음 만난 마야가 그의 팔뚝에 새겨진 문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에서부터 <스틸워터>는 미국적 우화로도 읽히기 시작한다. 빌은 과거의 미국을 상징하는 사람이다. 독실한 기독교도고 가족을 제일 아끼면서도 무뚝뚝하고 보수적인. 그런 빌이 자신의 팔뚝에 새겨진 독수리를 '미국'의 상징물로써 마야에게 설명하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스틸워터>의 빌은 곧 미국 그 자체인 것이다. 프랑스에서 벌어진 일련의 일들을 빌이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지 보고 있노라면, 외국에서 벌어진 자국 관련 일들을 현대의 미국이 어떻게 풀어나가고 있는가가 훤히 보인다. 소위 말하는 '좋은 이유'와 '좋은 의도'를 위해 거짓을 일삼고 불법적인 일들을 저지르며 끝내는 그 의도성과 관련성을 부인하는. 나중에 제대로 정착한 뒤부터는 조금씩 배워나가긴 하는데, 그럼에도 빌이 프랑스에서 오직 영어로만 소통하려 하는 초반부 모습 역시 썩 미국인 같다. 

맷 데이먼은 정말로 다부지게 연기하고, 카미유 코탱은 자신의 매력을 십분 뽐내며, 아비게일 브레슬린은 <미스 리틀 선샤인>의 그 꼬맹이가 언제 이렇게 컸는지 그냥 대견하기만 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조화롭게 섞어낸 토마스 맥카시의 연출력에 박수를. <스포트라이트> 때도 느꼈던 것이지만, 건조하고 느린 동시에 감정적으로도 충만한 영화를 정말로 능히 만들어내는 연출자인 것 같다. 다음 영화로 얼른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2021/10/10 23:22

쁘띠 마망 극장전 (신작)


지금까지 시간 여행을 다루는 영화들은 많았고, 또 그와중 과거로 간 주인공이 자신의 어린 부모와 조우하는 영화들 역시 많았다. 그럼에도 이 관련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빽 투 더 퓨쳐>겠지. <빽 투 더 퓨쳐>의 주인공 마티 맥플라이는 들로리언을 타고 돌아간 과거에서 자기 또래인 아버지를 만난다. 그런데 그 아버지란 양반은 어린 시절부터 속칭 찌질이였고, 장차 마티의 어머니가 될 그녀에게 고백 한 번 못 건네는 그런 작자였다. 이어지는 마티의 우당탕탕 아버지 체인지업 대소동. 이렇게 마티가 과거에서 만난 자신의 아버지에게 멘토 아닌 멘토, 큐피트 아닌 큐피트가 되어주었다면 <쁘띠 마망>의 넬리는 자기 또래로 만난 엄마 마리옹과 그저 허물없는 친구가 되어준다. <빽 투 더 퓨쳐> 정말 재밌고 좋은 영화지만, 그 영화에서 보여지는 부자 간의 역전은 다소 잔소리 복수 같은 느낌이 있거든. 부모 세대에게 잔소리를 듣던 자식 세대가, 거꾸로 부모 세대에게 잔소리를 역으로 되돌려준다는. 하지만 <쁘띠 마망>은 그저 어렸던 부모와 친구가 되어주는 자식의 모습으로 반대 노선을 취한다. 그래서 그런가,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 과연 나는 그 때의 부모와 친구가 될 수 있었을 것인가. 

부모가 자식에게, 또 자식이 부모에게 서로의 가치관과 생활 양식 등에 기반한 이른바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 상쾌하고 맑게 느껴진다. 어린 시절의 엄마를 만난 넬리가 마구 호들갑을 떤다거나, 대체 이게 어찌된 영문인지 이 시간 여행에 대한 과학적 이유를 찾아 나선다거나 하지 않는 점 역시 좋다. 어린 넬리에게 어린 마리옹은 그저 친구일 뿐인 것이다. 그걸 가지고 놀라 자빠질 일도, 조금이라도 말이 되는 이유를 찾기 위해 전전긍긍할 필요도 그녀에겐 없는 것이다. 그녀들은 그저 순수한 모습들을 보여주고, 또 영화는 그 순수함에 응할 뿐. 

사실 셀린 시아마의 전작인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세간의 평가만큼 재밌게 보질 못했었다. 당시 그 영화 재미없게 본 사람이 나뿐이었던지라 내가 이상한 건가 싶었었지. 그럼에도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인상적인 몇몇 이미지들을 끝내 관객들에게 남기고야마는 미덕을 가진 영화였음만은 인정한다. 그리고 런닝타임을 훨씬 더 간결하게 정리해낸 이번 <쁘띠 마망>은 영화가 가진 리듬감과 생기도 훨씬 좋게 느껴지고, 무엇보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 이어 몇몇 따뜻한 이미지들을 이번에도 기어코 남겨내고 만다. 엄마, 아빠, 어머니, 아버지, 부모, 부모님 등과 같은 호칭이 아니라 오직 그들의 이름으로만 그들을 불러보는 경험. 장유유서의 나라 대한민국에서는 감히 상상도 못할 망상이겠지만, 그래도 영화를 보고나니 괜시리 넬리를 따라해보고 싶어졌다. 

2021/10/10 23:07

브리트니 VS 스피어스 극장전 (신작)


사실 브리트니 스피어스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아니, 물론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누군지는 알지. 그런데 팝 스타로서 누렸던 이 양반의 최전성기 시절이 2000년대 초반인 것 같더라고. 그 당시 나는 어렸고 음악을 그리 넓게 많이 듣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팝송에 문외한이었다. 고로 브리트니 스피어스라는 이름은 들어봤으나, 그리고 또 그녀 히트곡의 후렴 정도는 들으면 "아, 이거!"라며 따라 흥얼거릴 수 있으나 정작 그 노래 제목이 무엇인지와 그 노래 속 목소리가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것이었는지는 전혀 구분할 수 없는. 나는 딱 그 정도 수준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적어도 이 다큐멘터리가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소개하고, 또 그녀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해나가다가 그 이후에나 그녀와 그녀 가족들 사이 법적 갈등에 대해 이야기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 거 없더라고. '세상에 브리트니 스피어스 잘 모르는 사람은 없잖아?'하는 태도로 영화는 냅다 돌진 해버린다. 그녀가 얼마나 대단한 음색을 가졌는지, 어떻게 가수가 되었고 또 어떤 대표곡들을 냈으며 이후 대중음악사에 끼친 영향은 어느정도인지 등등. 설명이라고 하기 보다는 간단한 인트로? 정도는 해줄 거라 기대했는데 그딴 건 다 최소한도로 축약하곤 곧장 그녀의 트라우마와 공포로 파고든다. 

<노팅 힐>이 그랬고, 최근엔 <스타 이즈 본><보헤미안 랩소디>가 보여주었듯이. 영화는 유명인의 삶, 그리고 그 유명인의 연인으로 잠깐이나마 사는 일이 얼마나 피곤하고 힘들고 괴롭고 또 무서운 일인지를 잘 묘사 해낸다. 사실 앞서 언급 했던 영화들은 상대가 안 되지. 그건 극이거나 최소 극화한 극 영화들인데 반해, <브리트니 VS 스피어스>는 다큐멘터리잖아. 그 안에서 보여지는 모든 풋티지들은 죄다 '리얼'인 거잖아. 그래서 더 무섭다. 그저 가벼운 차림으로 동네 식료품점이나 주유소에 들렀을 뿐인데, 영화제 레드카펫 뺨치듯 밀려오는 파파라치들의 파도. 아파서 구급차에 실려가는 와중인데도 좀비 마냥 끝까지 따라붙어 카메라를 구급차 창문으로 들이미는 미친 인간들. 할리우드에서 셀러브리티로 살아본 적 없는 나조차도 몸서리치게 만드는 불편한 실제 풋티지들. <브리트니 VS 스피어스>는 그 당시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받았을 스트레스와 공포를 보는 이들에게 그대로 전이 시킨다.

그리고 곧바로 이어지는 브리트니와 스피어스 일가의 법리 다툼. 그런데 여기서 브리트니가 겪은 대부분의 공포들에 원흉으로 제시되는 그녀의 아버지, 제이미 스피어스의 존재가 참으로 미스터리하다. 이게 다큐멘터리라고는 해도, 거짓 이면의 진실까지 확실하게 팩트 체크 해가며 발굴해내는 포맷의 작품은 아니거든. 그러다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의심과 문제만 제기할 뿐, 그리고 제이미 스피어스의 캐릭터만 일방적으로 조형할 뿐 뭔가 속 시원하게 해결되거나 밝혀지는 게 없다. 물론 마지막에 재생되는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법정 발언이 그 모든 의혹들을 어느 정도는 밝혀내긴 하지만, 다큐멘터리로써 뭔가 완전무결하게 해결해주는 건 없음. 

다큐멘터리로써 더 큰 문제가 있다. 긴 시간적 배경에 여러명의 인물들이 마구잡이로 튀어나오는데, 보는 이들이 알기 쉽게 쏙쏙 이해시켜주며 정리해야했던 부분에서는 실패한 듯 보이거든. 변호사에, 친구에, 동료에, 가족 등등 관련 인물들이 마구 언급되고 또 마구 등장해 한 마디씩 하는데 편집 템포도 너무 빠르고 정보량 역시 너무 많아서 관객 입장에서는 이야기 흐름이 잘 정리 안 됨. 말 그대로 두 눈 부릅뜨고 뇌 회전 팽팽히 굴려가며 봐야하는 영화. 인생을 저당 잡힌 사람 VS 소재에 저당 잡힌 다큐멘터리 구도라고 해야할까. 

그런데 다른 건 몰라도, 제목 하나는 끝내주게 지었다고 생각한다. 제목 하나만큼은 진짜 엄청 잘 뽑았음. 

2021/10/10 22:46

미나마타 극장전 (신작)


수은 중독과 대기업 비리의 대표적 이미지를 전세계 사람들의 머릿속에 박아버린 폭로 사진. 그 배경이 되는 실제 사건 역시 굉장히 유명한 사건이고, 여기에 주인공의 얼굴을 도맡은 조니 뎁의 얼굴까지 추가. 작품 면면만 따져보면 코로나 19 시국이었다 할지라도 좀만 더 욕심내서 충분히 극장 개봉 할 수 있었을 법한 영화였음에도 결국은 티빙 독점으로 공개. 일단은 코로나 19도 문제였겠지만 현재 조니 뎁의 이미지가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이 극장 개봉 불발의 가장 큰 이유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다 보고나니 상기했던 문제점들 외에도 일단 영화 만듦새가 그냥 그럭저럭이었다는 게 가장 큰 문제 아니었을까 싶음. 

첫 문단에서 이미 눈치챘겠지만, 기획은 정말 좋았다고 생각한다. 제작 당시만 하더라도 미래 조니 뎁의 이미지가 이렇게까지 나빠질 거라고는 예상 못했겠지. 고로 그 점을 차치하고 봤을 때, 캐스팅도 나쁘지 않았다. 정확한 제작 시기가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조니 뎁은 할리우드 스타 배우의 자리에서 오랫동안 군림한 사람이었으니까. 여기에 내가 좋아하는 사나다 히로유키, <곡성>을 필두로 최근 <케이트>까지 발판삼아 여러 할리우드 영화들에서도 얼굴을 내비치기 시작한 쿠니무라 준. 그리고 조니 뎁과 꽤 오랜만에 해적 케미를 보여주는 빌 나이까지. 캐스팅이 좋고, 무엇보다 소재가 가진 파급력 또한 실제로 대단했잖나. 특히 유진 스미스가 촬영한 토모코의 목욕 사진은 대기업의 자연공해 비리 사실을 알리는 폭로 사진으로써도 훌륭했고, 그와 동시에 부모 자식간의 인간적이고 가족적인 감동까지 느끼게 하는 작품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영화가 전반적으로 뭉텅뭉텅인 듯한 느낌이 든다. 구워먹으려고 뭉텅뭉텅 토막낸 고등어 같음. 조니 뎁이 연기한 유진 스미스는 전형적인 신경질적 예술가로 묘사되는데, 동시에 그에게 인간적인 매력을 부여하고자 만든 가족 사연이 너무나도 대충 언급된다.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이는 가족 관계는 간접적으로 찔끔찔끔 언급될 뿐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 그러다보니 대체 왜 이 인물이 이역만리 타국에서 그런 고생까지 해가며 미나마타의 사람들을 끝까지 도우려고 하는 건지 잘 공감이 가질 않는다. 아니, 물론 미나마타의 사람들과 인간적인 교류를 했고 또 거기서 정까지 느꼈기 때문에 도우려고 하는 건 알아... 근데 그럴 거면 그걸 좀 더 제대로 묘사하든가... 장애를 가진 동네 소년과의 인간적 교류 역시 대충 두세번에 걸쳐 피상적으로 묘사될 뿐이고, 여기에 더불어 아일린과의 로맨스는 너무나도 갑작스러움. 

폐수를 무단으로 방류한 칫수 기업의 비리와 부정도 다뤄야하고, 그들에 맞서 투쟁하는 마을 사람들의 패기와 결기도 다뤄야하고, 또 미나마타 마을 사람들이 겪는 인간적 고통과 그 안에서의 감동도 다뤄야하고, 그 사이에서 폭로 사진을 위해 불철주야 뛰어다니는 유진 스미스의 첩보 영화적 모멘트도 다뤄야하고, 또 그와중 유진과 아일린 사이의 멜로 드라마도 다뤄야한다. 이렇게 나열만 하면 한 영화에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 한 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지만, 면면히 따져보면 또 아주 못할 분량도 아니었다. 상술한 소재와 주제들이 모두 서로 어느정도는 연결되어 있는 이야기들이거든. 그러니까 잘 엮기만 했으면 됐던 모양새인데, 영화는 이거 하다가 또 저거 하다가 갈팡질팡하는 느낌이다. 소재들이 동시에 컨트롤 안 되는 상황이라고 해야할까. 

무엇보다 다른 건 몰라도 토모코의 목욕 장면, 그리고 그걸 촬영하는 유진의 모습만큼은 좀 더 제대로 깊게 다뤘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가장 감동적이고, 가장 숨죽였어야 했을 장면이 뭔가 그냥 밍밍하다. 이 소재로 이렇게 파급력 못 갖추기도 참 어렵겠지 싶다. 

2021/10/10 12:22

더 길티, 2021 극장전 (신작)


동명의 원작을 리메이크한다고 했을 때, 그것도 할리우드의 안톤 후쿠아가 연출한다고 했을 때. 걱정 먼저 하는 게 어쩌면 당연했다. 그런데 그 걱정이 비단 원작을 망칠 것 같아서만은 아니었다. 난 일단 안톤 후쿠아가 너무 안쓰럽게 느껴지더라고. 리메이크 각본의 상태가 어땠는지는 잘 모르지만, 원작을 떠올렸을 때 바꿀 만한 구석이 그다지 많지 않았거든. 고로 리메이크 연출자로 내정된 안톤 후쿠아가 과연 무엇을 얼만큼 바꿀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들었다. 아마 이 사람도 당황했을 거다. 별다른 변화없이 원작과 똑같이 가자니 리메이크의 의의가 없고, 그렇다고 또 할리우드식으로 무분별하게 바꾸자니 원작의 에센스를 잃게 되는 것 같고. 


더 스포일러!


결국 안톤 후쿠아의 선택은 원작의 기운을 95% 정도 유지하고 나머지 5%의 변화를 양념 삼겠다는 것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영화의 전체적인 줄거리는 원작의 그것과 똑같다. 심지어 특정 쇼트는 원작에서 가져오기도 한 것 같고, 대사는 또 어찌나 똑같은지. 때문에 원작을 아직 안 본 사람들이 있다면, 덴마크의 <더 길티>와 미국의 <더 길티>를 두고 크게 고민할 필요는 없어보인다. 막말로 두 작품이 너무나도 유사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둘 중 무얼 보아도 상관없는 것. 두 작품을 면밀히 비교해보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면, 굳이 두 편 다 볼 필요는 없단 소리다. 

때문에 이 리메이크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원작과의 차이점에 주안점을 둘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무엇이 다른다. 리메이크는 원작과 비교했을 때 세 가지 정도가 다르다. 첫번째는 현장의 모습이 얼추라도 제시된다는 것. 원작은 처음부터 끝까지 집요하단 생각이 들 정도로 상황실 내 주인공의 모습에만 집중하는 영화였다. 현장의 사건들은 모두 주인공이 든 수화기를 통해서만 존재했다. 그리고 바로 그 점 덕분에, 원작은 관객의 상상력을 자신의 무기로 둔갑시킬 수 있었지. 사실 리메이크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다만 고속도로 순찰대가 하얀색 밴을 세웠을 때의 상황 등이 딱 한 컷씩의 직접 묘사로 드러나있다. 재밌는 건 그걸 많이 넣은 것도 아니란 점이다. 줄곧 액션 영화들을 찍어왔던 안톤 후쿠아로서는 꽤나 욕심 났을 수도 있잖나. 하지만 그는 나름대로 절제를 해냈다. 원작처럼 아예 안 보여주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관객들 상상력에 불을 붙일 부싯돌 정도의 역할을 할 쇼트들을 박아넣은 것. 

두번째는 주인공의 사연이 구체화된 점이다. 나이가 어린 용의자를 무분별하게 사살한 경찰이란 점은 원작과 동일하지만, 리메이크작은 여기에 가족적 사연까지 끼워넣는다. 다행인 건 주인공의 이러한 가족 관련 사연이 단순 감동 코드로써 사용되진 않는단 점이다. 아내와는 별거 중이고, 때문에 아끼는 어린 딸을 자주 보지 못하고 있다는 주인공의 이러한 설정은 그가 걸려온 전화 속 상대 여성을 좀 더 쉽게 받아들이고 좀 더 쉽게 믿게하는 일종의 동기 부여고 또 각본적 장치다. 소위 말하는 공감의 마법. 아내와 싸워도 봤고, 또 어린 딸을 애틋하게 느끼고도 있는 주인공 베일러의 입장에서 에밀리의 사연은 몰입 100% 가능한 상황이지. 이 부분은 원작보다 좀 더 낫게 느껴지기도 한다. 원작을 보면, 최근 직업 윤리 마저도 저버렸던 주인공이 자신의 모든 커리어를 끝장내는 것까지 감수하면서도 상대를 돕는단 설정이 잘 이해 가지 않았거든. 리메이크작은 이 빈 자리에 가족적 사연을 집어넣음으로써 주인공의 폭주에 개연성을 부여해냈다. 

이제 세번째, 마지막 차이점. 물리적 분량으로는 이 마지막 차이점이 가장 작고 약소할 것이다. 하지만 이 사소한 차이점이 원작과 리메이크작의 분위기를 완전히 벌려놓는다. 그건 바로, 에밀리의 어린 아들이 적어도 일단은 살아남는다는 것. 원작의 어린 아들은 그 창자가 밖으로 터져 나왔을 정도로 잔인하고 확실하게 죽었다. 바로 그 때문에 원작이 더 밑도 끝도 없이 어둡게 느껴졌던 것이리라. 하지만 리메이크작의 어린 아들은 중상을 입었을지언정 일단은 살아남는다. 자기변명에 가까워보이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주인공이 자기반성을 결심하고 또 이행하자 끝내 소복소복 찾아온 희망. 모든 걸 끝까지 감내하고, 버티고, 노력하고, 용기내면 결국엔 작디 작은 희망이라도 우리에게 도래할 것이란 믿음. 원작과 비교해보면 그래도 해피 엔딩에 아주 조금은 가까운 엔딩이라 왠지 이것이야말로 할리우드식 엔딩이 아닐까- 또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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