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31 23:59

2019년 대문짝 객관성 담보 불가


2019의 주요 타겟



피카츄 / 괴수의 왕봉&송 / 다크 피닉스 / MIBI / 완구썰4 / 존윅3 / 파프롬홈 / 사자왕 / 강호대왕 /
페니와이즈2 / 타란티노 NO. 9 / Mr. J / 포와로2 / 사라 코너 / 킹스맨 / 아이리시맨 /
에피소드9 / 기묘한 이야기

2019/07/15 22:59

미드소마 극장전 (신작)


장르 편식 하기로 맹세했는데, 호러 하나만은 언제나 예외였다. 다른 그럴 듯한 이유는 없고, 그냥 내가 겁이 많아서. 때문에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유전> 역시 보지 않았고, 애초 영화에도 관심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관심 없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대놓고 무시하는 정도였음. 근데 하필 절친한 인간 하나가 나완 다르게 장르 매니아라서... 그렇게 장르 애호가가 장르 비애호가를 억지로 끌고 봤다는 이야기.


결론부터 말하면 무섭다. 공포 영화 입장에서는 최고로 공포스러운 평가이겠지, 무섭다는 . 근데 진짜 무섭거든. 고어 묘사 때문에 보는 중간 중간 스크린으로부터 눈을 순간들은 있었지만, 어쨌거나 전반적으로 본다면 공포 묘사는 크지 않은 편이다. 근데 호러 장르들 중에서도 오컬트라는 서브 장르가 대개 그렇잖아. 점프 스케어로 승부보는 아니라 이해하는 순간 어느새 등골이 오싹해지고 궁극의 절망에 당도하게 되는. 그게 오컬트라는 장르니까. , 어느 정도 정상참작의 여지는 있겠다.


영화는 공감하지 못하는 자들의 지옥을 묘사한다. 영화를 보며 교훈을 얻어야할 필요는 없지만, 굳이 영화의 교훈을 찾아보자면, 남자 주인공인 크리스티안의 입장에서는 '이래서 남에게 공감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정도의 교훈을 찾을 있겠다. 근데 존나 무서운 , 반대편인 여자 주인공 대니의 입장에서 보면 정반대로 '이래서 무분멸한 공감이 무서운 거다' 느껴짐. 


영혼 없는 연애의 끝자락이긴 했지만, 어쨌거나 둘은 연인 사이 아니였나. 하루 이틀 사귄 것도 아니고 3 정도 사귄. 허나 크리스티안은 끝내 대니에게 진심으로 절절하게 공감해주지 못했다. 건지 건지는 모르겠으나 하여튼 그렇다. 하지만 염병할 스웨덴 마을 공동체의 사람들은 어땠나. 그녀들은 대니를 위해 함께 따라 울어준다. 마치 짐승이 우는 것처럼, 모두가 대니를 둘러싼채 울부짖어 준다. 


이게 무서운 거다. 비록 크리스티안의 외도 아닌 외도를 목격한 맞지만 어쨌거나 3년이나 만난 사이인데. 그게 상대를 죽이는 결말까지 초래한다. 크리스티안의 죽음이라는 골의 어시스트는 죄다 헬싱글란드 사람들이 해준 거다. 그게 진심이였든 아니였든 모두 대니에게 공감해 울부짖어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인이다. 그리고 바로 순간에 보여주는 마지막 쇼트 대니의 표정. 울면서 우는 바로 표정. 근데 이거 누가 봐도 미친년의 모습이잖아. 비하의 의미가 아니라, <웰컴 동막골>에서 보여줬던 것처럼 꽂고 웃으면 미친 걸로 보는데 영화에선 심지어 꽃을 꽂은 정도가 아니라 김밥 마냥 꽃으로 대니를 싸멨음.


장르 영화로써 대담하고 실험적인 선택을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의 주무대를 굳이 북유럽의 스웨덴으로 설정하면서 얻은 '백야'라는 컨셉. 대충 봐도 호러 영화치곤 밝은 배경을 선택한 데에서 오는 실험적 자부심이 느껴지고, 그러면서도 좀만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백야 현상이 사람 미치게 하기 좋아 보이잖아.


허나 외엔 죄다 맘에 든다. 일단 개연성이 없어도 너무 없다. 연로했다고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풍습 시연하고 있는데 거기서 도망가냐고. 아무리 논문 때문이라지만 벌써 기겁하고 내뺐어야지. 여기서 유일하게 정상적인 반응을 하는 미국에서 4인방이 아니라 런던에서 커플 쌍인데, 때문에 그런 생각도 들었다. , 이건 타국의 문화와 풍습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기만 하는 관광객들의 태도에 대한 코멘트인가- 하고. 없어져야할 선입견이긴 하지만, 그런 있잖나. 중국 관광객들은 시끄럽고 통제가 된다- 라던가, 일본 관광객들은 소극적이고 조용하다- 라던가. 중에서 미국 관광객들은 타국의 모든 신기해하고 사진 찍고 싶어하며, 모든 수용하려는 태도를 겉으로나마 보여주고 싶어한다- 라는 느낌인데 영화가 그걸 보여주는 같기도 했다. 굉장히 조심스럽고 예민한 부분인지라 어느 특정 국가를 명시하고 어느 특정 풍습을 찝어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극단적인 예를 들면... 어느 나라가 인육을 먹는 풍습이 있다고 가정해보자고. 그렇다면 우리는 그걸 그냥 그들의 문화이니 존중해야할까? 참여는 못할 망정 망치면 되는 걸까? 개연성을 챙기지 않는 영화의 태도가 마치 이런 문제에 대한 거대한 농담처럼 느껴졌다.


하여튼 그런 빼고 보더라도 존나 말이 되는 마찬가지다. 귀신에 씌였으면 씌인 묘사라도 하던가, 친구들이 하나 둘씩 누가봐도 존나 수상하게 사라지는데 찾냐고. 마을 공동체 안에서 추리 장르물의 플롯을 끼얹었더라면 이렇게까지 지루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냥 말을 들어가면서 다들 순종적이잖아. 때문에 보는동안 내가 영화를 보고 있다는 느낌 보다는 스웨덴식 사이비 종교의 문화 풍습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이었다.


생각해볼 지점도 많고, 장르적으로 대담한 선택을 했다는 것도 높이 산다. 그러나 항상 하는 말인 '장르물에서는 언제나 함의보다 쾌감이 우선이다'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게 뭔가 싶은 영화. 무섭더라도 굉장한 영화처럼 느껴졌었다면 겁쟁이 타이틀 움켜쥐고서라도 <유전>까지 호기심이 동해서 봤을 텐데, 이거 보고 나니 그냥 아무 생각 들더라. 무섭고 재밌기는 커녕 그냥 기분 더럽게 만드는 그런 영화. 허나 어쩌면 바로 때문에, 오컬트 장르물의 팬들에게는 참으로 감사한 영화처럼 보이기도 했다. 근데 어쨌거나 취향은 아님.


2019/07/15 22:58

오, 라모나! 극장전 (신작)


예술, 중에서도 특히 영화라는 판타지 속성을 띄고 중에서도 로맨틱 코미디는 일상 속의 판타지를 극대화해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의 사랑을 받는 장르다. 누구나 그런 생각해보잖아. 크게는 자신이 학교에서 최고의 인기남 또는 인기녀가 되는 상상을, 작게는 짝사랑 상대가 보잘 없는 나의 고백을 받아주는 상상을. <, 라모나!> 같은 경우엔 후자일 알았는데, 어째 이야기가 점점 진행되면서 그냥 주인공 초절정 인기남 만들기 프로젝트가 된다.


전개 자체는 존나 종잡을 없음. 제목부터 명시되는 주인공의 짝사랑 상대 라모나는, 영화가 시작한지 10분도 되지 않아 주인공에게 들이댄다. 심지어 거의 섹스광으로 묘사되는 느낌. 근데 찌질하게 묘사되는 남자 주인공은 그걸 거절해. 여기까지는 그럭저럭 흥미가 동했다. 이거 대체 어떻게 진행하려고 그러나 싶어서.


근데 그게 좋게 말해 신선한 전개인 거고, 그냥 솔직히 말하면 줏대 없이 왔다갔다 하는 전개인 거다. 이해되는 스토리 라인이 없다. 주인공의 내레이션은 무분별한 수준을 넘어 거의 소음 공해처럼 느껴질 정도고, 캐릭터 만드려고 발버둥치는 눈에 뻔히 보이는 주인공 엄마 캐릭터는 뜨고 봐줄 지경. 아니, 그리고 이거 요즈음의 대한민국에서 극장 개봉했으면 엄청 났을 영화다. 젠더 감수성 따윈 저멀리 집어 던지고 그냥 묘사하는 영화거든.


영화의 유머가 존나 부장님 같다. 1 정도만 했으면 그나마 재미있었을 텐데, 자기 딴에는 그게 대단히 신선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는지 2 3 4 애국가 완창 수준으로 반복한다. 특히 성적인 장면에서 과일이나 디저트로 드립 치는 번만 했어야지. 지금 느낌은 존나 풋내기가 섹스하고 싶어 미쳐가지고 남발하는 헛드립으로 밖에 보인다.


나머지는 그냥 죄다 판타지. 찌질했던 주인공은 헤어와 패션 스타일을 바꾼 것만으로 학교를 접수하고, 짝사랑해 마지않던 상대와 밖의 여자들 역시 모두 주인공에게 달려든다. 심지어 다들 진심인 것처럼 보임. 이게 판타지가 아니면 도대체 뭐가 판타지냐. <반지의 제왕> 보다 이게 판타지처럼 보이던데.


원작 소설이 있는 작품이라고 해서 중간은 가겠지 했는데, 잘은 모르지만 이거 원작이 인터넷 소설인 분명해. 보는내내 괴로워서 몸을 베베 꼬다가 영화가 끝날 즈음에는 인간 꽈배기가 되어 있었다.


2019/07/15 22:54

아틀란티스 - 잃어버린 제국, 2001 대여점 (구작)


이거 어릴 적에 굉장히 재밌게 봤던 기억이 있다. 개봉 즈음에 롯데리아에서 장난감 세트 구성으로 출시했던 것도 기억남. 거대 잠수함 장난감 갖고 싶었었는데 그거 품절이래서 대신 조그마한 공격용 소형 잠수함이랑 아틀란티스 물고기 셔틀 선택했던 것까지 기억나네. 하여튼 그런 기억이 있었는데 넷플릭스에 있길래 진짜 오랜만에 봤다.


결론부터 말하면 약간 추억보정 깨짐. 굉장한 대서사시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막상 보니 애니메이션답게 런닝타임부터가 90 안쪽 수준이고, 때문에 서사적으로 꽉꽉 눌러담겼다는 인상이 덜하다. 오히려 대충 설명하고 휙휙 넘어가는 부분도 많음. 특히 키다와 마일즈가 서로에게 가까워지는 부분은 굉장히 날림묘사.


그럼에도 하고 있고, 특히 프로덕션 디자인이 역시 좋다. 아틀란티스 사람들의 문화나 생활상 묘사가 평범하고 다소 오리엔탈리즘에 가깝게 느껴지긴 하지만 아틀란티스 특유의 것들 묘사나 석상 디자인 같은 것들이 좋음. 당시엔 몰랐는데 검색해보니까 마이크 미뇰라가 참여했다더라! 이건 진짜 몰랐던 사실인데. 어쩐지 알고 보니 과거 왕족들의 얼굴을 새긴 조각물들 묘사가 뭔가 헬보이 세계관스럽고 그렇네.


악당의 정체나 동기 따위는 죄다 뻔한데 막판 싸울 눈깔 뒤집어져서 주인공에게 덤비는 장면은 존나 무서웠음. 하나 깜빡이지 않는 광기의 얼굴. 마지막에 얼음 조각 되어서까지도 발악하는 보면 그래도 나름 깡다구 하나만큼은 특출난 악당이었다.


, 근데 아틀란티스 멸망한 거임? 생각해보니 그거 설명이 별로 없네. 오프닝부터 거대 해일이 덮치는 맞는데, 분명 경비대 하나가 다른 경비대에게 이런 대사치거든. ' 때문에 모두 멸망할 거야'였던 같음. 그럼 새끼가 지랄을 떨었길래 제국이 멸망수순 밟냐 이거지... 대충 들어보니까 멸망 직전 당시에도 전기나 공중 부양 기술 갖고 있던 존나 하이테크 문명이더만... 멸망하는데 정작 기술로 발악한 1 없음. 대재앙에서 살아남을 있었던 고도의 SF 기술 때문이 아니라 왕족 희생의 판타지 기술 덕이었다. 


2019/07/12 21:40

멋진 세상 일기라기엔 너무 낙서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최고의 감정은 사랑입니다.

세상이 악하지만은 않아요.

, 우린 몽을 꾸지만 꿈도 꾸잖아요.

세상엔 악행이 있지만

우리에게 위대한 면도 있죠.

세상에 선은 존재합니다.

멋진 세상이에요.


- 프랭크 캐프라 -


2019/07/12 21:37

더 원, 2001 대여점 (구작)


이연걸이 두 명 나오는 평행 우주 영화. 물론 실제로는 평행 우주의 숫자만큼이나 더 많은 이연걸들이 나오지만, 결국에는 선연걸과 악연걸의 다이다이라는 점에서 어쨌든 두 명 나오는 영화라 할 수 있겠다.

포스터에서부터 <매트릭스>를 걸고 넘어지는데, 확실히 <매트릭스>가 나온지 채 얼마 되지 않아 개봉된 영화라 곳곳에 그 영향 아닌 영향들이 많이 묻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근데 굳이 따지고보면 꼭 <매트릭스>가 아니더라도, 요즘 우리가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대충 쓰고 있는 표현인 테크노 액션 영화의 속성도 좀 갖고 있다. 강렬한 음악이 울려퍼지며 초인적인 힘을 가진 주인공과 악당들이 몽환적이고 싸이키델릭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 치고 박고 싸우는 뭐 그런... 영화가 되려나?

평행 우주가 존재한다는 꽤 큰 세계관을 설정한 영화인지라 그 설정에 대한 최소한의 설명이 필요했던 건 팩트. 보통 그런 굵직한 세계관을 가진 SF 작품에서 그 세계관 설정을 오프닝 시퀀스 자막과 내레이션만으로 떼우려드는 건 망한 영화들 전통인데 어째 시작부터 불안하다 했다. 자막은 물론이고 중후한 보이스의 내레이션까지 분위기 쫙쫙 깔며 내뱉는데 거기서 번져드는 불안감이란...

혹시나가 역시나. 결과는 역시 망. 선한 이연걸과 악한 이연걸을 설정해놓고도 정체성 고민 등의 묘사는 거의 전무. 여기에 쓸데없이 설정한 주인공의 주변 인물들은 설정한 만큼이나 쓸데없이 다 죽여 버린다. 아니, 그리고 무엇보다... 이게 꼭 평행 우주라는 설정이 필요한 이야기냐? 제작진이 결국 하고 싶었던 건 그냥 이연걸과 이연걸이 싸우는 그림을 만드는 것 뿐인데 고작 그거 하나 하자고 설정을 이렇게 부풀려? 밑밥을 깔았으면, 그래서 기대감을 심어줬으면 그거에 대한 응당의 책임을 져야지. 이 정도의 소동극에 불과할 거면 그냥 그런 잔설정 다 쳐내고 이연걸 얼굴을 가진 일란성 쌍둥이로 설정했어도 하등 상관 없는 문제 아니야? 그럼 특수효과와 CG에 들어가는 돈도 절약되고 얼마나 좋아.

평행 우주 요원이란 놈들은 죄다 멍청이다. 그렇게 위험한 초능력자 악당인데 안 죽이고 대체 뭐하는 거야. 맨 주먹으로 강철도 뚫는 놈인데 거기다 대고 별다른 트릭 없이 맨 몸으로 덤비는 그 패기 하나만큼은 인정해줘야겠다. 

그나마 이 영화가 잘한 건 특유의 초능력 액션인데, 지금 와서 보니 이게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의 퀵실버 액션에 모종의 영감을 줬을 것 같기도 하고. 근데 그것도 딱 거기까지다. 그걸로 엄청난 걸 또 보여주는 건 아니고, 딱 참고할만한 정도였음. 하여튼 이럴 거면 왜 만들었냔 말이지.

2019/07/12 19:29

스파이더맨 - 파 프롬 홈 극장전 (신작)


페이즈 3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은 왜 <엔드 게임>이 아닌 <파 프롬 홈>인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엔드 게임>이 장중한 마무리를 보여준 것은 사실이지만, '스냅'과 '블립'이라는 세계관내의 역대급 재앙 콤보를 설명할 시간은 없었다. 그 영화는 할 말도, 할 일도 많았으니까. 때문에 본격적인 페이즈 4로 넘어가기 이전에 이거 갈무리를 한 번 하기는 해야하겠는데, 그렇다고 또 이거 설명 하자고 영화 하나를 통째로 갈아넣을 수는 없잖아. 그래서 골라잡은 게 결국 스파이더맨 이야기라고 본다. 전작인 <홈커밍>에서 워낙 통통 튀는 성장물로써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너무 진지한 척 안 하면서 가볍게 설명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이거지.

실제로 영화가 '스냅'과 '블립'을 설명하는 방식은 굉장히 콤팩트하다. 밀린 방학 숙제 하는 모양새 같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이 정도면 되었다- 라는 느낌. 게다가 그 퀄리티를 또 따로 깔 수도 없는게, 이거 진짜 학생들이 만든 교내 뉴스 영상인 거잖아. 대학생도 아니고 고등학생들이. 하여튼 영리하다 싶었고, 디테일한 데에 관심 많은 사람들은 '스냅'과 '블립'이 초래한 경제적 문화적 환경적 피해 등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하지만 상술했듯 사실 그런 거 설명하자고 한 편의 영화 싹 다 갈아넣을 수는 또 없는 것 아니겠어?

캐릭터의 일관성이 없어뵌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짐짓 비판 가능한 지점처럼 보인다. 전작에서의 피터는 자신이 가진 큰 힘을 통해 다른 이들을 구하고자 했다. 그 때문에 그는 생전 처음 독일에 가 웬 공항에서 구국영웅과 싸웠고, 대머리 독수리 코스프레를 하는 악당으로부터 도시를 구했으며, 외계의 도넛이 뉴욕 상공에 뜨자마자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그로 뛰어들었다. 근데 웬 걸, 속편인 이 영화에서는 영화 내내 책임 지기 싫어하고 수퍼히어로 노릇도 그만하고 싶어하잖아. 하나가 더 있다. 전작의 짝사랑 상대가 사리진지 얼마나 됐다고, 5년 됐는데? 갑자기 MJ를 좋아한다고 하잖아. 이것 역시 아니꼽게 본다면 그럴 수 있는 것이다.

근데 생각해보면, 주인공이 아직 어린 청소년이라는 점에서 그런 비판점들은 온전히 반박된다. 어릴 때 이랬다가 저랬다가 안 하는 사람이 어디있어. 특히 수퍼히어로 노릇에 관해서라면, 적어도 이전까지는 피터에게 토니라는 멘토가 있지 않았나. 듬직한 멘토가 있으니 위험 상황에 뛰어들 수도 있고, 혼신의 힘을 다해 싸울 수도 있는 거지. 허나 만약 그 멘토가 죽음 등의 이유로 부재하는 상황이라면? 어린 입장에서는 당연히 겁나서 몸 사릴 수 밖에 없다. 때문에 난 오히려 이 영화 속 닉 퓨리가 더 매정해보이더라. 그래도 아직 애잖아. 수퍼 스파이는 자기지, 피터가 아니었다. 오로지 목적만을 위해 어린 아이를 윽박지르는 닉 퓨리의 모습에서 원작의 그것이 느껴져 캐릭터 반영 같아 좋기는 했지만, 현실적인 측면에서 그렇게 좋은 어른이라는 생각은 안 들더라. 아, 그리고 짝사랑 상대가 바뀌는 문제. 솔직히 이것도 문제라고 해야하냐? 어릴 때 얘 잠깐 좋아했다가 쟤 잠깐 좋아했다가 다들 그러는 거잖아.

따지고 보면 이 영화 속 어른들은 죄다 상징적이다. 아직 어른도 안 된 애한테 화내고 혼내는 어른이 있고, 상냥하고 잘해주는 척 하다가 뒷통수 후리는 어른이 있으며, 그 스스로를 온전히 이해해주는 어른도 있네. 떠올린 김에 내가 사회 초년생으로 막 편입 되었던 시절에 내게 그런 사람들이 누구였나를 함께 생각해보게 된다. 근데 그 중에서 제일 빡치는 건 '척'하는 어른이었어.

말 나온 김에 악당 이야기를 좀 하면. 타이밍 죽여줬다. 영화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미스테리오는 어벤져스를 비롯한 영웅들이 지구에서 자취를 감춘 지금 시점에 알맞는 빌런이었다. 요즘 워낙 가짜 뉴스가 화두이기도 하잖아? 환각과 쇼맨십으로 일반 대중들을 유혹한다는 설정이니 맞았다고 하겠다. 처음엔 진짜 카마르 타지에서 분파 먹었던 마법사 출신인 . 아서 C 클라크의 유명한 말이 떠오르더라. '충분히 발달한 과학 기술은 마법과 구분할 없다'. <토르 - 천둥의 > 나왔던 말이기도 해서 아귀가 들어맞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근데 새끼는 원작에서 그랬던 것처럼 무대 연출가나 영화 특수효과 전문가로 전향했으면 훨씬 성공했을 새끼인데. 아니면 성인VR시장 하긴, 이디스 양도 받자마자 바에 올라가 부하들 앞에서 가오 잡는 보면 어지간히도 관심 종자라서 무대 뒤나 카메라 뒤에 있는 싫어했을 싶다. 암만 봐도 배우 체질. 

미스테리오 제이크 질렌할 개웃김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사실 작정하고 웃기게 만든 포인트는 아닌 같은데... <시빌 >에서의 토니 플래시백 장면 제이크 질렌할 표정이 너무 순간적으로 <나이트크롤러> 그것 같아 극장에서 혼자 터졌다. 근데 그것 빼고 봐도 연기 너무 잘해서 깊은 만족. 좋아하던 배우가 좋아하는 프랜차이즈에 나와 대활약하는 보고 있자니 신나서 주체할 수가 없더라. <홈커밍> 마이클 키튼도 그렇고 하여튼 MCU 놈들이 요즘 빌런들은 뽑는다니까.


스파이더맨 실사 영화들 액션 시퀀스의 포인트는 바로 관중의 유무다. 스파이더맨과 악당이 싸울 언제나 그걸 지켜보는 뉴요커 관객들이 존재한다. 관객들은 스파이더맨을 응원 하면서 악당들에겐 야유를 퍼붓는다. 800여만 명의 인구를 가진 대도시 뉴욕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설정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이는 주인공이 관심 받고 싶어하는 청소년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설정이다. 그렇다. 그의 본질은 수퍼히어로가 아니라 평범한 고등학생이라는 데에 있다. 거대한 힘과 유명세를 가졌을 남들 앞에 나서고 싶어하는 청소년기의 바로 욕구. 그래서 싸울 때도 항상 남이 지켜보길 원하는 바로 욕망. 스파이더맨 액션 시퀀스의 재미는 바로 거기에서 온다.


<스파이더맨 - 프롬 > 거기서 나아간다. 가짜 뉴스와 황색 언론들의 공세를 통해 그저 보이는 것만을 철썩같이 믿게 되는 현대 사람들의 태도도 함께 녹아있다. 영화는 곳곳에서 언론매체들의 모습을 묘사한다. 악당들이 활개치는 모습은 이탈리아 뉴스 프로그램의 TV 화면을 통해 성실히 중계되고, 더불어 주인공의 동급생이 인스타그램 라이브로 죽고 못사는 모습 역시 보여주며 친밀도를 높인다. 여기에 마지막 방을 더하는 영화의 반전. <스파이더맨 - 프롬 > 시리즈의 성장 영화적 본질을 잊지 않으면서도 전편에 비해 스펙터클 역시 키워 훨씬 블록버스터다운 면모를, 그러면서도책임은 회피할 없다 메시지마저 던져주는 만든 영화다. 그리고 다른 배우도 아니고, <페르시아의 왕자 - 시간의 모래> 이후 오랜만에 블록버스터 영화로 복귀한 제이크 질렌할의 멋진 모습도 있다.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2> 작년 <스파이더맨 - 뉴 유니버스> 잇는 웰메이드 스파이더맨 실사 영화. 형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아우가 나타났다.



뱀발 - 그나저나 죽어서도 빌런 제조기 명불허전 토선생...


뱀발 2- 그나저나 이제 플래시는 학교 가는 일을 무서워할까, 아니면 설레여할까? 그동안 괴롭혔던 찐따가 어메이징하고 스펙타큘라한 초인이었으니 무서워해야하는 건가. 아니면 팬이 덕질하던 연예인 싸인회 때처럼 신나해야하는 건가. 


2019/07/09 10:56

평양성, 2010 대여점 (구작)


<황산벌> 괴상하게 대단한 영화였다. 코미디로써 일을 하면서도, 아주 사소하고 짐짓 당연해보이지만 때까지는 누구도 하지 않았던 기막힌 아이디어로 무장했던. 그러면서도 전쟁의 광기와 비극을 그리며 반전 영화로써의 기능까지 해낸. 그야말로 이준익 필모그래피 사상 다시는 나올 없는 그런 종류의 영화였던 것이다. 그리고 말을 증명하기로 작정이라도 , <황산벌> 직계 속편 <평양성> 동어반복인데다 그마저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 괴상하게 만든 영화다.


'평양성'이라는 공간적 배경을 잡아낸 것도 좋고, 이전 시점에서 백제가 멸망했으니 당연한 것이긴 하지만 어쨌든 전편의 백제와 신라 대결구도에 이어 고구려와 신라 대결구도로 설정한 것도 좋다. 아니, 엄밀히 따지면 좋다기 보다는 나쁘지 않고 어쩔 없지 않았는가- 하는 느낌. 백제 사투리에 이어 고구려 사투리 보여줄 됐잖아.


문제는 그것 밖에 없었다는 거다. 경상도 사투리와 이북 사투리를 뒤섞는다는 재탕 아이디어 외에 새로운 전혀 없다. 오히려 전작보다 훨씬 떨어진다. 전작은 철저히 계백과 김유신의 영화였다. 이문식의 거시기나 오지명의 의자왕, 류승수의 김인문 등이 잔재미를 주는 캐릭터로서 존재하긴 했었지만 어디까지나 '잔재미' 주는 '조연' 머물러 있었다. 때문에 전체적인 그림이 깔끔하면서도 명확했고, 조율되어 있는 인상이었다. 근데 영화는 그런 캐릭터들이 많아도 너무 많다. 게다가 전작에서 촌철살인이었던 이문식의 거시기는 거의 주연급의 자리에 올라버린다. 쓸데없는 멜로 드라마 묘사와 필요 이상으로 길어진 일반 백성들의 이야기는 늘어짐에 따라 힘을 잃는다. 


전작에서 희번덕한 광기를 보여줬던 김유신은 일선에서 물러나 있고, 여기에 뭔진 알겠는데 여러모로 과다한 느낌인 이광수의 문디 역시 존나 귀찮게 느껴지는 지점이다. 다시 보니 여기에 강하늘도 나왔었네. 고구려 내부의 분열을 보여주려는 의도였겠지만 쪽도 이미 관객의 이해는 저만치 앞서나가는데 스크린 등장인물들만 구구절절 지지부진한 느낌이다.


아니, 그리고 씨바. 죽이면 죽였지, 대체 대막리지 적통을 투석기로 날려버리는 패기는 뭐냐. 내부 사정 빠삭하게 알고 있는, 살려두면 후환이 두려운 일종의 스파이 같은 놈인데 대체 적진으로 날려버리는 거여. 이건 치트키 던져주는 아니냐고.


그리고 전작에서는 전쟁이 일종의 불가항력적인 것으로 그려졌었다. 때문에 무서웠던 건데 영화 전쟁 묘사는 뭐냐. 전쟁 쉽네. 무슨 온라인 게임 나가듯이 전쟁터에서 나갈 수도 있고. 하여튼 전작의 패기와 센스는 어디간 건지 도저히 찾을 없는 그런 속편. 이거 나왔으면 이준익이 아마 나당 전쟁까지 그리지 않았을까. 근데 그건 막상 나오면 어떡해야하나. 중국 말과 우리 말이 뒤섞이는 판인데. 그거야말로 진짜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 가야하는 건가. 


2019/07/09 10:54

황산벌, 2003 대여점 (구작)


당신이 한국영화의 팬이라면, 이준익을 싫어할 수는 있어도 그것 하나만큼은 인정해야할 것이다. 충무로에서 가장 성실한 감독이 바로 그라는 사실을. 이준익은 감독으로서 발써 십여편의 영화를 만들었고, 대개는 간격으로 개봉되었으니 이쯤되면 개근상이라도 받아야 마땅할 지경이다.


만든 영화의 수가 많은 만큼이나 사람마다 그의 작품들 선호도는 죄다 다를 것이다. 그의 최고 흥행작은 <왕의 남자>였고,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라디오 스타>. 누구는 자리에 <동주> <사도> 놓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작품들 가장 야심있는 영화를 꼽으라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황산벌> 이야기할 것이다.


<황산벌> 괴상한 영화다. 역사 늠름한 장군들이 등장해 영웅적 카리스마를 과시해도 모자랄 판인데 영화는 그들의 이미지를 모두 반대로 꺾는다. 표준말을 쓰며 영웅적 고뇌를 읊조려야할 같은 백제의 계백은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로 "시방 뭐라고 혔냐?" 외치고, 반대 진영 신라의 김유신은 대장군이라는 위엄찬 직책에도 '' '' 발음하며 웃음을 준다.


타란티노가 <바스터즈> 통해 유럽의 지형도를 언어와 제스처로 재구분하여 깨알같은 웃음을 주었던 것처럼, <황산벌> 전라도와 충청도, 경상도 사투리를 각자 다른 나라의 언어로 간주하며 한데 버무린다. 신라 진영에 숨어든 백제의 첩자들이 전라도 사투리를 감춘채 어설픈 경상도 사투리로 첩보전을 펼치다 홧김에 입에서 나온 '거시기' 단어로 인해 파멸을 맞이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지역색 쌍욕 배틀을 비롯해 과감한 패러디를 통해 웃음을 주던 영화는, 중반부에 이르러 과감한 변속을 시도한다. 영화 모든 이들은 각자의 '이름' 걸고 전쟁에 임한다. 신라의 장군들은 가늘고 길게 사는 사람치고 역사에 남는 사람 없다며 자신의 아들들이 자살 돌격대로서 죽기를 강요한다. 백제의 계백은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는 거라 부하들에게 일갈한다. 그렇다. 전쟁은 결국 이름을 남기기 위한 것이다. 미치지 않고서는 없는, 이름을 걸지 않고는 없는 궁극의 공격적 행위. 


때문에 영화 마지막 씬의 주인공이 계백도, 김유신도 아닌 이문식의 이름 없는거시기라는 점은 영화의 여운을 짙게 만든다. 그리고 여기서 불현듯 울려퍼지는 계백 아내의 대사. “호랭이는 가죽 땜시 뒤지고, 사람은 이름 땜시 뒤지는 것이여! 인간아!” 일찍 죽어 후대에 이름을 남기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지금 옆에 있는 사람과 몸을 부대끼며 살아내는 멋진 것이다.


2019/07/09 10:51

다섯이 돌아왔다 연속극 대잔치


넷플릭스가 제작한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2 세계대전이라는 세계사적 이벤트에 일종의 재능 기부(?) 목적으로 참여했던 당대 할리우드 감독 5인의 다큐멘터리다. 2 세계대전과 당대 할리우드의 감독들이란 소재를 따로 떼어놓고 보면 다큐멘터리로 많이 봤던 건데, 둘을 아예 합해 보여주는 아이디어가 무척이나 재미있다. 


5인의 이름은 프랭크 캐프라, 포드, 휴스턴, 윌리엄 와일러, 조지 스티븐슨. 개인적으로는 윌리엄 와일러를 가장 좋아하는지라 아무래도 관심이 쪽으로 많이 가더라. 몰랐었는데 양반 당시 전쟁통에 폭격기 탔다가 극심한 소음으로 인해 귀까지 멀었었다네. 전체적인 기획의 맥락도 흥미로운데 이런 사소한 디테일들 역시 흥미를 더한다.


, 전쟁 있는 곳이나 없는 곳이나 프로파간다는 항상 존재하지 않나. 근데 프로파간다를 당대 최고의 할리우드 감독들이 직접 만들었다는 재밌는 포인트다. 다큐멘터리 곳곳에서 그들이 만든 당시 프로파간다 영화들 클립을 보여주는데 어떤 시대를 앞섰다는 생각이 정도. 특히 포드의 대찬 카메라 워크와 가감 없이 사실을 보여준 연출력을 그린글래스가 소개하는 장면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는 장면이다 싶었다. 시점에서 그린글래스가 제일 잘하는 그런 것들이잖아.


그린글래스 뿐만 아니라 시리즈의 다른 호스트로 스티븐 스필버그, 로렌스 캐스단, 길예르모 토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가 등장한다. 당대 최고의 할리우드 감독들을 기리기 위해 시점 최고의 할리우드 감독들이 나서다니. 정도면 거의 호사 수준 아니냐. 넷플릭스의 기획력에 감탄을 금치 않을 수가 없다. 윌리엄 와일러의 <우리 생애 최고의 > 좋아했었는데 뒷이야기를 알고나니 와닿는 느낌. 그리고 스필버그가 매년마다 다시 보는 영화로 영화를 꼽으니 뭐랄까 기분이 너무 좋아졌다고 해야하나.  


다른 무엇보다 최고의 엔딩을 갖고 있는 시리즈다. 시리즈 내내 재밌게 보긴 했지만 마지막 에피소드의 피날레는 정말이지 감탄을 금치 않을 없는 기막힌 편집이었다. 프랭크 카프라 양반의 인터뷰를 그런 식으로 교차 편집 넣고 버무릴 줄이야. 하여튼 넷플릭스 놈들이 오리지널 영화를 못만들어 그렇지 다큐멘터리 기획력 하나는 먹어준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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