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31 23:59

2020년 대문짝 객관성 담보 불가


2020년의 주요 타겟


에피소드 9 / 배드 보이즈 III / 사냥의 시간 / 버즈 오브 프레이 / 1917 / 투명인간 / 비상선언 / 탈출 / 다악구 /
승리호 / 조용한 곳 2 / 뮬란 / 흑과부 / 노 타임 투 다이 / 1984 / 고스트 버스터즈 / 놀란 / 반도 / 퍼스트 에이전트 /
정글 크루즈 / 서복 / 소울 / 베놈 / 리빙 뱀파이어 / 신 vs 왕 /이터널스 / DUNE / 웨스트 사이드 스필버그

2020/12/31 22:21

영화학개론 조별과제 객관성 담보 불가


좋아하던 이들과 함께 영화에 대해 떠들은지 어느새 3주년이 되었습니다.
작디 작은 팟캐스트지만 여러분들의 출퇴근길, 등하굣길을 함께하며 행복했습니다.
영화학개론 조별과제 앞으로도 소소한 사랑 부탁드려요.

팟빵 링크는 여기

2020/01/18 20:58

해치지않아 극장전 (신작)


자, 머릿속으로 천천히 떠올려 보자. 주인공이 있다. 그는 지금 자신이 속한 곳에서 출세 하려 하고, 그를 위해 그들이 원하는 곳으로 가 일종의 외근을 하게 된다. 처음엔 빨리 해치우고 뜨자-라는 마음가짐으로 시작했지만, 점점 일을 하면서 그 곳 사람들과 감정적 교류를 갖게 되고 그 일에 있어 자부심을 갖게 된다. 허나 원 근무지에서는 이제 그를 배제하려 하고, 그를 통해 주인공의 본래 실체를 알게 된 외근지 사람들은 주인공에게 실망감을 표하며 하나둘씩 떠나기 시작한다. 이에 죄의식과 책임감을 느낀 주인공이, 원 근무지를 엿먹이면서도 외근지의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는 내용. 이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심지어는 중간 중간 이야기의 변곡점들까지 대체적으로 무난하게 예상되는 코미디다. 그런 식의 대사도 나오겠지, '우리 이용한 거였어요?' 식으로 주인공에게 실망감을 표하는 대사. 

때문에 결코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라는 점에서 전개보다 장르적으로 코미디의 함량을 얼마나 때려놓고 채웠을까-에 좀 더 관심이 갔던 영화다. 사실, 탈을 뒤집어쓰고 시치미 뚝 뗀채 동물 코스프레를 한다는 설정 자체는 너무 말이 안 되지 않나. 영화 내에서 그에 대해 주인공이 이 악물고 변명하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어쨌거나 썩 말이 되는 그림은 아닌 거잖아. 다만 장르가 다른 것도 아니고 코미디니까, 그 부분의 허술한 설정들도 어느 정도 눈 감아 줄 수 있는 것. 오로지 웃기기만 한다면.

다행인 건 이 영화의 감독이 손재곤이었다는 점이다. 그는 <달콤, 살벌한 연인>과 <이층의 악당>을 만들었던 사람이다. 그 두 영화는 굉장한 코미디 감각을 갖고 있던 영화였고, 아이디어와 전개 면에 있어서도 <해치지않아>만큼 뻔한 영화를 만든 적도 없던 사람이라니까. 근데 오랜만에 들고온 영화가 이런 영화이니, 뻔한 전개 대신에 뭔가 새로운 코미디가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거지.

일단 새로운 코미디라는 것은 별로 없는 영화다. 웃음을 유발하는 대부분의 장면들마저 죄다 어디서 본 것만 같다. 문제는 그 타율과 파괴력이다. 코미디마저 뻔하지만, 그럼에도 결코 약하지 않다. 동물을 주 소재로 삼은 영화이다보니 내내 사랑스러운 터치가 깃들어 있는 영화인데, 바로 그걸 밑바탕으로 깔고 코미디를 전개하니 딱 명절용 가족 코미디를 기대하고 볼 대부분의 관객들에게 잘 먹혀들어가는 것이다. 대표적인 건 편의점 터는 고릴라 장면 같은 거. 말도 안 되는 장면이지만 특유의 분위기로 거침없이 밀고 나가는데, 여기에 하나둘씩 쌓았던 코미디를 일순간 터뜨리는 방식도 효과적이다. 고릴라가 CCTV 들고 나가는 모습에서 안 웃을 관객은 별로 없을 거라고 본다.

이 영화가 잘한 점은, 코미디로써 장르적 쾌감을 어느 정도 전달했을 뿐만 아니라 주제의식이 담긴 메시지도 잘 던져냈다는 것. 동물들과 동물원을 주 소재로 삼은 작품답게, 영화는 동물 권리 또는 동물 복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동물원 시설을 아무리 잘 갖추어 놓는다해도 결국 그들이 본래 살던 야생 환경에 비할 바는 아닌 거잖나. 동물 입장에서는 동물원도 감옥에 불과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동물들의 입장을, 영화가 잘 보여준다. 비록 북극곰 탈을 쓰곤 있었지만, 한 마리의 동물, 한 명의 인간으로서 그 곳에 갇혀 구경 당하는 기분. 영화는 그걸 잘 전달하고 있고, 동물원이라는 필요악적인 존재에 대해 화두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내던진 화두와 주제 의식에 비해, 영화가 명쾌하고 아름다운 답을 내놨다고 보기는 어렵다. 애초 나 역시도 동물원이 필요악이라고 생각하는 만큼, 아무리 나쁘다 생각해도 결국 완전히 없앨 수는 없을 것이라는 입장인데 영화가 딱 그런 결말을 낸다. 그러다보니 무거운 화두를 던져놓고 결말에 와서 안전하게 수습하는 꼴이 다른 이들에겐 못마땅하게 비춰질 수도 있겠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허나, 상업 장르 영화로써 이 정도면 할 건 다 했다고 본다. 상업 장르 영화가 내놓아야 할 것 1순위는 재미다. 물론 메시지와 주제 역시 1위로 동등할 수 있지. 그러나 결론까지 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는 거다. 영화를 다 보고 극장 밖으로 나서는 관객들에게, 그러한 주제는 금세 휘발될 수도 있을 것이다. 허나 아닐 가능성도 아예 없지는 않지 않나. 상업 장르 영화가 결론과 우리가 가야할 길까지 제시한다면 더할나위없이 좋겠지만, 딱 이 정도의 화두를 던진 것만으로도 꽤 괜찮은 성과라고 생각한다. 뭘 그런 마지막 정답까지 제시하길 바라냐, 어차피 그건 다 우리 인간들이 생각해야할 문제인데. 영화의 역할은 딱 거기까지만이여도 괜찮은 것이다.

2020/01/17 16:05

페리스의 해방, 1986 대여점 (구작)


감히 청춘 영화의 교과서라고 불릴 만한 작품. 근데 이후 나온 본격 청춘 영화들에게만 레퍼런스가 된 것은 꼭 아니고, <스파이더맨 - 홈커밍>이나 <데드풀> 같은 타 장르 영화들에도 엄청난 영향을 끼쳤으니 여러모로 그냥 대단한 작품이라고 하겠다.

<데드풀> 언급이 나와서 말인데, 그 영화나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처럼 제 4의 벽을 깬 메타 영화로써 그 시도가 대단한 작품이다. 애초 4의 벽을 깬다는 게 연극계에서나 만화계에서는 빈번한 상황이었지만, 당시 영화계에서는 좀 당혹스러울 수 있을만한 컨셉이었으니. 근데 이 영화는 그걸 대단히 잘 해냈다. 사실 어린 고등학생 주인공이 꾀병 부려 학교 땡땡이 치고 놀러 나간다는 내용 설명이 다인 단순한 영화인데, 여러 실험적인 연출들을 많이 선보이며 신선한 작품이 된 경우.

아마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하며 거들먹거리는 설정이 아니었다면, 주인공은 그냥 존나 일방적인 얌생이 미친놈처럼 밖에 안 보였을 것이다. 막말로 되먹지 않은 새끼인 건 맞지. 꾀병 부리고 학교 땡땡이친 거야 누구나 어린 시절 한 번쯤은 해볼만한 경험이니 괜찮은데, 데이트 핑계로 절친의 엄한 아버지가 아끼고 또 아끼는 페라리 스포츠카를 징집하는 건... 이거 진짜 미친 새끼 아니야, 이거? 그래놓고 친구가 성내니까 적반하장으로 '너 왜 이리 예민하니' 시전. 이런 새끼가 절친이라니, 카메론 그 새끼도 어지간히 복 없다. 근데 영화 결말부에 둘이 화해하고 페리스 뷸러가 괜찮은 놈처럼 끝나 더 짜증남.

별 거 아닌 내용과 설정을 별 거 있는 연출로 불려낸 존 휴즈가 대단하다. 앞서 말한 메타 발언도 그렇지만, 영화 내내 전반적으로 만화적 감수성이 깔려있다. 카메라 패닝 한 번에 배우의 위치나 상황을 바꾸는 코미디 같은 것도 좋음. 결말부 주인공이 집을 향해 달려가는 장면은 진짜 별 거 아닌데도 그 자체로 쾌감 쩔고. 그 와중에 교장이 새끼는 미친놈 아니야, 이거? 미친자들이 너무 많은 영화

그런 거 있지 않나. 어린 시절에는 몰라도 되었던 것들이, 어른이 되어가면서 인생의 무게로 변모한다는 것. 어릴 때는 알 필요도 없었던 전세나 월세의 개념이나 그냥 타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던 자동차의 월 평균 관리비. 마냥 낭만적인 것인 줄로만 알았던 결혼식이 돈 드는 하나의 큰 프로젝트라는 것. 그 밖에도 세금, 관리비, 인간 관계 등등. 어릴 땐 별 거 아니었거나 아예 몰랐던 것들이, 어른이 되면 모두 크게 느껴지게 되는 거. 이런 건 다들 알잖아.

근데 완전히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어릴 때는 엄청 크게 느껴졌는데, 점점 어른이 될 수록 작아지는 것들. 사실 이건 구체적인 예시로 들만한 게 없다. 그냥 그런 거 있잖아. 학교 한 번 안 가면 죽는 줄 알았고, 수능 한 번 망치면 인생이 완전 망가져 돌이킬 수 없게 될 줄 알았으며, 당시 사귀던 이성과 헤어질 땐 그야말로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잖아. 근데 이상하게도, 점점 어른이 되어가면서 그 모든 것들이 살짝 가벼워진다. 그것들이 진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고, 그냥 그런 일들을 받아들였을 때의 마음가짐이나 리액션이 좀 달라지잖아. '뭐, 그럴 수도 있지' 정도의 마인드로. 딱 그 생각 나더라, 영화 보면서. 저 때는 저 모든 게 세상 끝날 일인데, 어른 되어서 보면 별 것 아닌. 어른이 된다는 건, 점점 크게 휘둘리지 않는 일인 것만 같다. 

2020/01/17 15:48

배드 타임즈 - 엘 로얄에서 생긴 일, 2018 대여점 (구작)


추천받고도 그렇게 미루고 미루고 또 미루다가 이제서야 보게된 영화. 변명같지만 그동안 보기 싫어서 차일피일 미뤘던 건 아니었다. 감독의 전작인 <케빈 인 더 우즈>를 재밌게 봤었기 때문에 언젠가 한 번은 봐야겠다- 싶었음. 다만 그런 식으로 '봐야겠다'라 마음 먹고 대기표 발부한 영화들이 한 두 편이 아니라서... 하여튼 드디어 보게된 이 영화에 대한 짧은 소감은...... 이거 왜 이제 봤지? 추천해주신 분 감사드립니다


배드 스포일러!


제목 그대로, 영화는 '엘 로얄'이라는 모텔에서 진행된다. 캘리포니아 주와 네바다 주의 경계 위에 지어진 엘 로얄 모텔. 미국의 모텔답게 시내가 아니라 다소 외진 곳에 위치해 있는 이 곳에, 각기 다른 성격과 목적을 지닌 이들이 모여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는 아무래도 제임스 맨골드의 <아이덴티티>와 타란티노의 <헤이트풀 8>일 것. 물론 그 외에도 이렇게 외진 공간 안에서 다양한 인간군상들을 그려내는 영화가 적지 않았으니 뭐 생각해보면 더 많겠다. 허나 내용적인 측면과는 다르게, 다루고 있는 시대상이나 주제에 있어서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와 더 비슷한 영화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물론 제작 시기상으론 이 쪽이 좀 더 빠르지만. 

<헤이트풀 8>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를 언급했는데, 드류 고다드의 평소 스타일 보다 훨씬 더 타란티노스러운 구성을 띈 영화다. 대화와 상황으로 만들어내는 캐릭터 코미디라는 점에서도 그렇고, 공간을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도 그러하며, 크게 보면 챕터 구성으로 되어 있다는 것도 공통점. 그 중에서도 상술했던 것처럼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와 더 많은 공통점을 이 영화가 갖는 이유는, 영화가 베트남전 당시의 시기와 히피 문화를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야기의 초반부에, 이미 영화가 모텔 카운터 위 TV 화면을 통해 강조를 해준다. TV 뉴스 안에서는 베트남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고, 당시 대통령이었던 닉슨의 얼굴이 등장하며, 찰스 맨슨과 그의 일당들을 연상케하는 살인 사건이 언급된다. 이 짧은 TV 뉴스 화면이 꽤 많은 정보를 깔아주는데, 영화의 시대적 배경과 당시 상황을 확실히 언급해주기 때문에 이후 상황에 대해서 따로 별다른 설명을 안 해준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대체 무슨 변태 모텔이길래 각 호실을 몰래 감시할 수 있는 장치들을 마련해둔 거지? 그리고 남이 섹스하는 걸 왜 카메라로 찍으려 하지? 그걸 주도하고 있는 모텔의 보스들은 대체 누구야? 여기에 갑자기 끼어든 FBI 요원은 여기 왜 왔으며, 빌리 리라는 이 허우대 멀쩡한 놈은 왜 이렇게 비틀 거리는겨. 이런 거 싹 다 설명 안 해줌.

근데 앞서 말했듯, 어차피 당대의 사회적 분위기를 알면 굳이 따로 설명 안 들어도 다 이해가 되는 부분들이다. 베트남전을 지휘했던 닉슨에 대한 뒷이야기는 이미 <더 포스트>를 통해 우리가 알고 있고, 닉슨이 감청 매니아였던 사실과 워터게이트 사건 또한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을 통해 대충 알잖아. 그 당시가 대충 이렇게 돌아가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굳이 영화가 발벗고 나서 모텔 보스들의 얼굴과 이 모텔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 구구절절 다 설명해주지 않아도 대충 그렇겠구나- 하며 넘어가게 된다. FBI 요원의 존재도 그런 식이고, 빌리 리에 대한 설명도 비슷하다. 특히 빌리 리는 영화에서 유일하게 허용된 직부감 두 번의 수혜를 받은 자다. 직부감은 보통 운명론적인 관점이나 전지전능함을 과시하기 위해 사용하는 연출이니, 아예 등장부터 '교주'라는 것을 대놓고 드러내는 셈.

이야기의 전개 면에서 굉장히 훌륭하다. 물론 완벽한 영화는 아니라서 중간 중간에 리듬이 파열되는 부분도 있고, 중반부까지 잘 쌓아올린 미스테리와 스릴을 후반부에 마구잡이로 풀어냄으로써 망가지는 부분도 있다. 허나 어쨌든 초반부 모텔의 비밀이 드러나는 장면에서의 몰입감은 엄청나더라. <기생충>의 그 장면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거의 비슷한 종류의 스릴과 공포였다. 그나저나 드류 고다드 이 양반은 <케빈 인 더 우즈>에서도 그렇고 어릴 때 거울 뒷편에서 뭘 보기라도 했던 것일까? 누군가가 몰래 지켜보고 있는 외딴 집 컨셉 엄청 좋아하네.

허나 이 영화가 진정으로 내 마음에 들었던 건, 주제 의식 때문이었다. 영화는 드니 빌뇌브와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경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엘 로얄은 캘리포니아 주와 네바다 주를 긋는 빨간 경계선 바로 위에 지어졌고, 그 때문에 카운터 직원은 고객들에게 캘리포니아에서 주무실 것인지 네바다에서 주무실 것인지에 대해 장황한 브리핑을 이어간다. 근데, 당시 시대가 그랬지. 월남전이라는 것도 그렇지만 애초 그 당시의 세계는 공산주의와 자유주의의 공존 혹은 대립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 아니었나. 빌리 리도 자신의 집회에서 말하지 않나. 체제와 그를 따르는 인간들이 우리에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끔 강요한다고. 신과 무신론, 옳음과 그름, 선과 악. 그들은 우리에게 그걸 강요하지만, 우리는 둘 중 어느 것도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자유를 쟁취해 내야 한다고. 참으로 히피스러운 연설이지만, 어쨌거나 그의 말이 옳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웃긴 게, 영화의 결말부에 들어서는 빌리 리 마저도 남들에게 둘 중 하나를 강요한다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을 거부하라던 본인 말에 위배되게, 정작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빨강 아니면 검정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 강요한다. 그리고 둘 중 그 무엇도 선택하길 거부한 이에게 그가 선사한 건, 상대의 머리를 관통하는 총알 뿐.

영화는 그 모든 걸 강요한 가해자와 그 모든 걸 거부하며 속박으로부터 탈주하길 원했던 자들, 그리고 그 모든 걸 받아들일 수 밖에 없어 결국 피해자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된다. 제프 브리지스가 연기한 신부 캐릭터는 기성 세대라 할 수 있겠다. 그는 은행 강도였다. 체포되어서 10여년 간 복역도 했다. 그는 분명 잘못을 저질렀다. 허나 우리의 벨보이 마일스 밀러는 무얼 잘 못 했나. 그는 베트남 참전 용사로 이미 PTSD를 앓는 중이었다. 기성 세대들이 강요한 전쟁에 억지로 참여해, 결국 진짜 피해자가 된 사내였던 것이다.

전쟁을 일으킨 기성 세대, 그 전쟁과 그 기성 세대에 휘둘리지 않으려 하며 자신들만의 세상을 세운 영 제너레이션. 그리고 그 사이에 끼어 실제 전쟁의 한 가운데에 내몰렸던 젊은이. 영화의 후반부, 전자의 둘이 피터지게 싸울 때 결국 선택을 내리는 건 피해자였던 젊은이고, 그 역시도 죽을 때 고해의 대상이 되어주는 건 기성 세대다. 그래서 영화가 좋았다. 마치 <설국열차>의 마지막 그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실수를 저지른 어른이 다음 세대의 젊은이에게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 결말. 전쟁을 일으켰던 어른이 전쟁에 나간 젊은이를 영혼으로 보듬는 영화. 비록 그가 실제 신부는 아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진짜 신부의 진짜 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정도의 주제 의식과 이 정도의 장르적 쾌감이라면, 월남전에 관한 가장 일촉즉발의 코멘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020/01/16 12:46

나쁜 녀석들 3 - 포에버 극장전 (신작)


거두절미하고, 개인적으로는 시리즈의 최고작이었다. 물론 안다. 이전 1편2편의 리뷰를 통해 이 시리즈에 대해 그리 큰 애정이 없었음을 뒤늦게야 깨달은 거. 때문에 이번 3편이 엄청난 완성도를 가진 건 아니고, 상대적으로 전작 두 편이 그저 그랬기 때문에 그나마 제대로 나온 이 영화가 시리즈 중 최고작 호칭을 가져가게 된 거라고 할 수 있겠네. 어쨌거나 개인적인 관점이지만.


스포하는 녀석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가장 큰 장점은 마이클 베이가 있는 듯 없는 듯 하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 일단 마이클 베이가 감독 자리에서 내려왔다. 뜬금없는 타이밍에 뜬금없이 등장하는 셀프 카메오는 여전하지만, 하여튼 이번 영화의 감독은 아닌 것이다. 개인적으로 그의 연출 스타일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만큼, 이것은 뚜렷한 장점이다. 근데 재밌는 게, 이번에 새로 연출 자리에 앉은 감독 듀오가 마이클 베이의 기존 스타일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 진짜 이게 설명하기 애매한데... 일단 전작들에서 마이클 베이가 구축해놓은 시그니쳐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두 주인공을 슬로우 모션으로 담는 앙각 트래킹 장면도 여전히 있고, 시리즈 특유의 키 컬러 색보정도 여전하며 마이클 베이 스타일의 액션 장면들이 한가득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결국 감독이 마이클 베이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의 기존 기조를 유지했을 뿐, 감독이 마이클 베이는 아니라는 것. 내게 있어서는 그것이, 일종의 한 번 거른 마이클 베이 필터링 효과처럼 보였다. 마이클 베이가 세워놓은 전통들을 적절히 유지하면서도 결코 마이클 베이 본인처럼 막 나가지는 않는다는 것. 그것은 내게 있어 큰 장점처럼 느껴진다.

성룡의 <폴리스 스토리> 시리즈가 정통 액션의 길을 준수 했다가 <뉴 폴리스 스토리>에서 익스트림 스포츠를 결합 했던 것처럼, <나쁜 녀석들 3> 역시 젊은 피를 수혈하며 좀 더 리드미컬하고 익스트림한 액션 구성을 보여준다. 새롭게 보강된 AMMO 팀의 젊은 멤버들과 두 주인공의 케미스트리가 좋고, 어느 한 캐릭터 하나 대충 쓰지 않는다. 물론 정통 버디 무비니 두 주인공에게 포커스가 확실히 맞춰져 있는 것에 대해선 뭐라 할 수 없지. 그에 비하면 AMMO 멤버들이 심도 깊게 다뤄지지 않는 것도 맞고. 허나 대충 쓰고 버리지 않는다는 게 중요하다. 별로 많이 보여주지 않아도 되고, 깊게 다루지 않아도 된다. 대충 쓰고 버리지만 않으면 된다는 거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들을 대충 쓰고 버리지 않는다. 미약하고 얕게나마 한 명 한 명에게 모두 캐릭터를 주고, 나름의 유머도 던져준다. 

블랙스플로테이션 영화로 시작된 시리즈인데, 3편에 와서는 요즈음의 PC 시류에 잘 얹혀가는 느낌이다. 악당은 이전 작들과 마찬가지로 외국인 멕시코 악당이지만 여자고, 두 주인공은 흑인이지만 그를 보좌하는 AMMO 팀의 멤버 구성은 백인 남성, 백인 여성, 아시안 남성. 여기에 바네사 허진스는 검색해보니 필리핀계 어머니와 아일랜드 원주민계 아버지를 두었다고 하니 여러모로 다인종팀 구성이다. 물론 항상 이야기했듯이 무분별한 PC가 좋은 것도 아니고, 영화적 완성도와 재미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은 더더욱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걸 많이 생색내지 않으면서 사용했다는 게 중요하다. 동양인 남성이 등장한다고 해서 무술을 잘하는 걸로 나오는 게 아니니 된 거라는 거. 

액션성은 여러모로 90년대 바이브를 유지하려고 한 느낌. 여러번 이야기했지만 내가 그 기조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감독이 연출자로서의 인장을 새기려고 나름 노력하는 부분들이 많이 보이더라. 클라이막스 액션 장면에서 카메라를 수직으로 세운다거나 하는 장면들. 그래도 이 사람들이 연출자로서 뭔가를 하려고는 해봤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좋았다. 그 와중 윌 스미스와 마틴 로렌스의 입담은 여전히 좋고. 가끔 좀 과하고 유치한 장면들도 나오지만, 그럼에도 전작들에 비해서는 훨씬 더 적중률이 높은 느낌. 

아쉬운 게 없진 않은데, 가장 크게 생각나는 건 악당과 주인공이 혈연으로 이어졌다는 설정. 그 설정 자체가 나쁜 건 아닌데 시리즈 내내 일언반구도 없다가 이제와서 등장하는 게 뭔가 갖다붙인 느낌이 날 수 밖에 없고, 꼭 가족주의적 결말로 이어져야만 속이 다 편했던 건가 싶어 조금 아쉽다. 근데 자신의 젊은 아들과 싸우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왜 <제미니 맨>이 떠오르냐. 배우가 똑같아서 그런가. 근데 작중에 그런 대사도 나오잖아. 젊은 너와 늙은 너가 싸우는 꼴이라고. 

<다이하드>나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처럼 엄청난 액션 걸작이 나온 것은 아니다. 허나 이 정도면 충분히 준수한 킬링타임 액션 무비고, 이 정도면 충분히 잘 돌아왔다고 생각한다. 후속편이 나올지는 모르겠다. 막판에 떡밥 거하게 깔긴 하는데... 그래도 나온다면 충분히 볼 의사가 있다. 이 정도의 수준만 어느 정도 유지해준다면.

뱀발 1 - 시리즈 내내 개근했던 반장님의 사망. 이 분은 그 긴 시간동안 제대로 진급 한 번도 못하고 이렇게 가시네. 그저 묵념을.
뱀발 2 - 주인공 둘이 부르는 주제가 왜 이렇게 유치한 느낌이지? 번역된 가사 보니까 더 손발이 오그라들어 못 듣겠음. 

2020/01/15 19:09

나쁜 녀석들 2, 2003 대여점 (구작)


전작으로부터 약 8년 만에 돌아온 속편. 흥행으로 꽤 성공한 영화의 속편 치고는 제작 타이밍이 살짝 느린 편이었는데, 그 사이 감독으로서 출세한 마이클 베이는 <더 록>과 <아마겟돈>, <진주만>까지 세 편의 영화를 연달아 연출했다. 그 중 좋아하는 영화는 <더 록>뿐이지만, 8년의 시간동안 이 영화까지 합치면 그 사이 영화를 총 네 편이나 만들었으니 대단하다면 대단하다고 할 수 있겠다.

동시대 또다른 버디무비였던 <러시 아워>가 아시안 배우와 흑인 배우를 투탑으로 기용하며 그 시대 PC함을 줄줄 흘렸던 것처럼, 따지고보면 <나쁜 녀석들>은 20세기 끝자락의 블랙스플로테이션 영화였다. 흑인 관객을 주 타겟으로 흑인 주인공을 설정했던 영화들의 직계 후손이라 할 수 있는 셈. 이번 2편에서는 블랙스플로테이션 영화로써의 정체성을 더 부각 시키는데, 영화 초반부 나오는 KKK단 집회 습격 장면이 대표적인 예. KKK단의 고깔모자 유니폼 입고 있다가 집회 한 가운데에서 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커밍아웃하는 두 주인공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토록 무모할 수 있나 싶다가도 또 이게 말이 되는 설정인가 싶어져 갸우뚱하게 됨. 물론 이후 스파이크 리는 자신의 영화에서 KKK단에 잠입한 흑인 형사 이야기를 다른 식으로 해내지만. 엄밀히 따지면 직접 잠입한 건 아니었잖아

상술했듯 1편 이후 8년 만에 나온 영화이고, 그 사이 마이클 베이는 여러 영화들을 통해 할리우드 주류 감독으로서 당당히 성공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1편에 비해 이번 2편은 감독으로서의 마이클 베이가 훨씬 더 많이 드러나는 영화이기도 하다. 전작과 이후 작품들의 성공으로 인해 훨씬 더 많은 재량권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야 분명하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오렌지 톤으로 키 컬러를 맞춘 색보정이나 전체적인 총격전 교착 상태를 담아내는 방식, 자동차 추격전에서의 카메라 움직임까지도 모두 마이클 베이의 그것. 심지어 드레드 머리를 한 흑인 갱스터들이 도로를 가르며 활개치는 모습은 <트랜스포머 3>에서 드레드 머리를 했던 검은 디셉티콘 일당들의 모습과 직접적으로 겹치고, 검은 벤을 추격하는 큰 트럭의 모습은 <트랜스포머>의 아이언 하이드와 옵티머스 프라임을 떠올리게 할 정도다. 아, 특유의 시그니쳐가 또 있다. 중반부 한 집에서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주인공 둘이 악당들과 맞서는 장면이 있다. 거기서 카메라가 360도 빙글빙글 돌면서 그 두 무리의 모습을 담아 내거든, 좀 정신 없게. 근데 그 똑같은 무빙이 <트랜스포머>에도 있다. 거기선 아마 주인공측 해커 무리와 디셉티콘의 프렌지가 벽 하나를 두고 교착 상태에 빠진 장면이었을 걸? 다시 찾아보면 완전 빼박일 것. 하여튼 이 영화 부분 부분 잘라다가 <트랜스포머> 시리즈 곳곳에 붙여놔도 이음새가 아주 매끄러울 것 같다. 거의 한 시리즈처럼 보일 지경. 심지어 음악도 비슷하다. 쉴새없고 의미없이 쏟아지는 섹드립도 그렇고.

섹드립 이야기가 나온 김에, 영화가 가진 괴상한 유머 감각들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일단 마이클 베이 영화이니 여성 캐릭터들을 단순 눈요깃거리로만 쓰는 것도 많이 나오는데, 그 밖에도 영화가 좀 도덕적으로 위험한 수준의 유머들을 많이 구사하는 느낌이다. 중반부에 두 주인공이 시체 안치소에 몰래 들어가 정보를 캐내는 장면이 있는데, 장소가 장소이다 보니 여러 시체들이 줄줄이 나온다. 문제는 그 시체들을 전시하고 또 사용하는 방식. 여기서 불쾌함의 정점을 찍는다. 장르 영화에서 유혈이 낭자하고 피와 살점이 튀기는 건 때에 따라 괜찮은 일이다. 오히려 쾌감을 동반하는 좋은 방식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얄팍한 수로 쓰면 곤란하지. 끊임없이 죽은 시체들의 인격을 존중하라고 지들끼리 말은 하는데, 그럼에도 이어지는 장면들이라는 게... 큰 가슴을 가진 여성의 시체를 노골적으로 카메라에 담는 방식이라거나, 그저 일회성 상황 코미디를 위해 죽은 남자의 머리 뚜껑을 열어버리는 장면이나... 아니, 이건 현실적으로도 말이 안 되잖아. 대체 어떤 사인으로 죽은 시체이길래 통조림 따듯이 머리를 딴 거냐고. 한니발 렉터가 마이애미 들렀던 게 아닐까? 영안실에 왜 이런 시체가 있는 거냐고. 

불쾌한 건 또 있다. 후반부에 쿠바로 출장 가는 장면도 나오는데, 거기서 주인공들이 악당들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자동차로 빈민가를 그냥 싹 다 밀어버리며 탈출한다. 물론 영화가 나름 변명을 하기는 한다. 이 동네에서 마약을 만든다고. 근데 그렇다고 그렇게 싸그리 밀어버리면 되냐? 빨래한 옷가지들 걸려있고 누가 봐도 누군가의 삶의 터전들처럼 보이는데 그냥 거기를 싹 다 밀어버린다. 폭파 시키며 내려온다. 그러면서 별로 일말의 가책도 안 느낌. 농담조로라도 미안하다 말하는 장면 없이, 그냥 신나서 소리 냅다 지르며 쾅쾅하고 내려옴. 이쯤 되면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는 거다, 그냥.

말 나온 김에, 쿠바 장면이 꼭 필요했을까 싶음. 어차피 주인공들은 마이애미 마약반 소속인데 굳이 시드를 인질잡이 삼는 스토리로 쿠바까지 가야 했을까. 마약반 애들인에 왜 인질 상황까지 직접 해결하려 하냐고. 여동생이 잡혀갔으면 경찰이여도 법 체계 그 딴 거 다 무시해도 된다는 건가. 마이애미를 배경으로 한 경찰 버디 무비에서 영화는 갑자기 국경을 넘나드는 첩보 액션물스럽게 변모한다. 그 와중 으리으리한 의리남들과의 도원결의는 덤. 손가락 오그라들어 죽는 줄 알았네. 근데 여자 하나 구하겠다고 쿠바에서 땅굴 파는 거 이게 말이 됨? 한시가 급해 죽겠는데 지금 굴파고 있을 때야?

그 밖에도 일회성 상황을 위해 억지로 갖다붙인 장면들이 속출한다. <극한직업>에서 마약반 막내가 마약 먹고 개 됐던 것처럼, 마커스가 본의 아니게 엑스터시 먹고 좆되는 상황이 있는데 이 상황을 만들기 위해 한 게 마이크가 굳이 그럴 필요 없는데도 마약이 든 봉투 던진 거임. 

마커스의 딸과 데이트 하기 위해 찾아온 남자 아이를 문 앞에 세워두고 다 큰 어른 둘이 놀리고 괴롭히는 장면. 옛날에 어려서 봤을 때는 나름 재미있었던 것 같은데, 다 커서 다시 보니 어째 께름칙하다. 딸의 첫 데이트 상대 데리고 짓궂게 놀리는 거야 저 쪽 문화이니 그러려니 싶은데, 거기다 총구까지 겨누고 할 건 아니지 않나. 열다섯살이라던데 다 큰 30대 어른 둘이서 그거 하고 있는 거 보니 좀 한심하기도 하고. 

액션 장면도 좋은지 모르겠다. 고속도로 추격 장면의 스케일이 대단하긴 하지만, 내가 워낙 마이클 베이의 스타일을 싫어해서. 그다지 쾌감도 없는 것 같음. 그나마 이 영화에서 웃겼던 건 마이클 셰넌이 등장하는 타이밍. 나오는 거 진짜 1도 몰랐는데 방심하던 타이밍에 갑자기 나와 개터졌네.

어릴 때는 분명 괜찮은 영화였던 것 같은데, 다시 보니 어째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영화. 이번에 나오는 3편 갑자기 기대가 안 되네. 이 일을 어쩐담. 

2020/01/15 13:59

나쁜 녀석들, 1995 대여점 (구작)


이번에 개봉할 신작 3편 관람을 위해 정말이지 오랜만에 시리즈 정주행. 근데 이거 옛날에 봤을 때는 되게 재밌게 봤었는데 오랜만에 다시 보니까 생각보다 좀 별로네. 이렇게 추억 보정이 깨져가는 건가.

일단 마이클 베이 감독이 가장 신선했을 시절이다. 이후 그가 만든 영화들과 비교해보면 마이클 베이의 색깔이 가장 덜 드러나는 영화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때만해도 영화판에서 신인이었으니, 제리 브룩하이머나 돈 심슨 같은 거물 제작자들 옆에서 자기 하고 싶었던대로 못했던 게 당연. 근데 그렇다고해서 또 아예 마이클 베이스럽지 않은 영화라는 건 또 아니다. 마이클 베이스럽긴 한데, 이후 나온 그의 수많은 영화들에 비해서는 덜 마이클 베이스럽다는 거. 쓰고보니 뭔 소린지 모르겠네.

버디 무비로써의 기본적인 재미가 있다. 성격도, 가족 관계도, 심지어는 경제력마저도 서로 다른 두 인물의 케미스트리를 보는 재미가 있는데, 그게 또 각각 마틴 로렌스와 윌 스미스야. 버디 무비는 배우들의 매력이 제일 중요한데, 여기서는 일단 합격점을 줄만 하다. 근데 이 시절의 마틴 로렌스를 진짜 오랜만에 봐서 그러는데, 엄청 날씬하더라. 거의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루다 크리스 느낌이던데. 요즘 마틴 로렌스 떠올리면 대부분이 좀 통통한 이미지인데 여기서만큼은 젊어서 그랬는지 뭔지 엄청 날씬하게 나옴. 윌 스미스야 항상 죽여주게 멋있고.

근데 이 영화의 전체적인 전개가 너무 재미 없다. 마약상을 잡는 두 형사의 이야기 좋다 이거야. 그러다 갑자기 중반부에 주인공 둘의 신분을 바꿔야하는 이른바 <페이스 오프> 전개가 벌어지는데, 이게 너무 유치하고 재미 없더라. 예전에는 그냥 저냥 괜찮게 봤던 것 같은데 다시 보니 왜 이리 재미없지? 어설프게 섹드립치는 거나 주인공 둘의 뻔한 갈등으로 이어지는 거나 다 흥미도 안 생기고.

더불이 어 영화를 짜증나게 만드는 건 80%가 줄리 탓이다. 자기가 직접 단죄하겠답시고 경찰과 범죄자들 사이에 말도 안 되게 껴놓고는 상황이 위험해지니 이게 증인 보호하는 거 맞냐고 성냄. 또 본인은 채식주의자인지, 옆에서 소시지 먹는 것 엄청 까고. 근래 본 캐릭터 중에 가장 얄미운 작자임. 또, 마커스의 아내도 짜증나긴 마찬가지다. 남편이 형사질 6년차인데 지금 상황 파악이 전혀 안 되나? 게다가 싱클레어... 그리고 결정적 정보를 숨기고 있는 경찰 내부 인사까지 모두 여성. 마이클 베이는 여성 캐릭터들에 원수라도 진 것처럼 보이네.

예전에는 마지막 공항 장면의 자동차 추격 장면이 참 박력있더랬다. 엄폐물 없이 시원하게 펼쳐진 개활지에서 오로지 자동차 두 대 가지고 벌이는 추격전. 그 뚝심과 박력이 멋졌고, 두 배우의 조합이 재밌었다. 그러나 오랜만에 다시 본 영화는 정반대의 의미로 충공깽. 그 모든 박력이 허상이었던 것만 같아서 조금은 우울해졌다.

2020/01/15 13:03

닥터 두리틀 극장전 (신작)


제작 당시 부족한 완성도 때문에 재촬영을 진행했던 영화라는 이슈가 있었다. 그걸 알고 봐서 그랬던 건지 뭔지 영화 보는내내 뭔가 만들다 만,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만들다가 포기한 듯한 영화라는 느낌이 계속 들더라.

가족 영화로써 오프닝은 나쁜 편이 아니다. 재미나고 따스한 화풍의 꽤 잘 만든 애니메이션으로 프롤로그를 치고 가는 영화인데, 거기까지는 그래도 잘 따라갈만 하다. 주인공인 두리틀이 겪고 있는 내적 갈등과 현 상황도 대충 뭔지 알겠고. 다만 이후부터 이야기가 너무 많이 편리하게 진행된다. 어린 주인공이자 훗날 두리틀의 수제자가 되는 토미가 영화 상에서 먼저 등장하게 되는데, 이 친구가 두리틀을 만나게 되는 그 과정 자체가 너무 편의적이다. 마지못해 따라나선 사냥에서 실수로 다람쥐를 쏴 다치게 했는데, 그 근처에 두리틀의 앵무새인 폴리가 있었고 또 두리틀의 집 역시 무척이나 가까웠다는 점. 별다른 설명 없이 그냥 이야기가 개연성 없이 과격하게 진행된다는 인상이다. 더 웃긴 건 레이디 로즈의 등장. 아내를 잃고 칩거 중인 우리의 주인공 두리틀을 저택 밖으로 끌어내는 설정이 필요했을 거라는 것은 안다. 그리고 그걸 영국 여왕이 아파서 두리틀을 찾는다-라고 퉁치는 것도 좋다. 허나 분명히 토미는 굳게 잠긴 두리틀의 저택 문 앞에서 서성이다 폴리의 도움으로 비밀통로를 발견해 들어왔다. 그럼 레이디 로즈 문은 누가 열어준 건데? 그리고, 명색이 영국 여왕의 명을 전하는 특사이고 정황상 최소 귀족 최대 왕족인 것 같은데 그렇게 혈혈단신으로 혼자 거기까지 온다고? 어린 아이들을 주 타겟으로 삼은 영화라고 해서 그런 개연성이나 묘사들까지 싸그리 다 무시해도 된다는 건 아니잖나.

허나 어린 관객들을 노린 영화다보니 악당들의 음모라든지 그 캐릭터들이 단순화 되어 있는 것은 충분히 이해 가능한 영역이다. 이런 종류의 영화에서 악당 캐릭터와 그가 꾸미는 음모가 복잡해봤자 별로 좋을 것 없으니. 마이클 쉰이 혼자 발악하듯 연기하는 주 악당과, 짐 브로드밴트가 나름 묵직하게 받쳐주고 있는 최종 흑막까지 배우들의 연기 덕에 그 단순함과 전형성이 충분히 상쇄되고 있는 느낌. 아, 중간 보스로 나오는 안토니오 반데라스도 괜찮다. 오랜만에 봐서 더 좋았고. 하지만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좀 문제라고 본다. 일단 연기를 못하지는 않는다, 결코. 허나 컨셉을 좀 잘 못 잡은 듯한 느낌이 난다. 목소리를 너무 괴이하게 설정한 듯. 여러 CGI 동물 캐릭터들이 나오는 영화이다 보니 여러 배우들이 성우로서 그 동물들의 목소리를 대신해주고 있는데, 정작 인간 주인공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목소리가 제일 더빙스럽다. 왜 이렇게 힘을 빼고 속삭이듯 연기하지? 동물들과 말이 통하고 수의사로서 그들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는 캐릭터라는 점에서 그런 설정을 했던 걸까 싶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목소리가 괴이하게만 느껴지다보니 이게 지금 뭐하고 있는 건가 싶어진다. 

보는내내 재촬영 이슈가 계속 떠오르는 이유. 중간 중간에 컷이 몇 개 비는 듯한 느낌이 계속 든다. 심지어는 씬 단위로도 몇 개 비어있는 인상. 가뜩이나 전개가 빠른 편인데, 거기에 몇 개 컷들까지 없으니 정말이지 영화를 대충 만들었다는 느낌만 계속 듦. 예를 들면 그거. 영화 중반부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연기하는 독재자 라술리 왕의 왕국에 침투하는 시퀀스가 있는데, 일반적인 영화라면 차근차근 보여주었을 것을 영화는 대뜸 침투 작전의 중간부터 보여주고 그 빈자리를 쓸데없어 보이는 내레이션으로 때운다. 그 장면 보고 있으면 '아, 대충 이쯤에서 재촬영 했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달까. 사실 그 장면 뿐만도 아니고, 이후 두리틀이 머드플라이의 군사들에게 포위당했다는 묘사도 나오지 않아서 좀 급작스럽고. 

이건 좀 다른 소리인데, 여기 나오는 동물 캐릭터들. 다 나쁘지 않다. 대단한 기술력으로 꽤 잘 구현되어 있기도 하고. 허나 목소리 캐스팅에서 약간 사기 당했다 느껴지는 게, 마리옹 꼬띠아르가 목소리 연기했다길래 기대했었는데 정말로 대사 한 마디인가 두 마디 한다. 이럴 거면 왜 그리 홍보 때린 거야? 하긴... 이 정도 배우가 성우로서 참여했는데 또 아예 안 쓰기는 좀 그렇고.

전형적인데다 뻔하다. 타겟층이 타겟층이다 보니 성인 관객으로서 보기에 다소 유치하게도 느껴지고. 그러나 진짜 단점은 상술했던 것처럼 중간 중간 급하게 봉한 듯한 느낌의 장면들이 많아 영화가 전체적으로 만들다 만 것처럼 보인다는 거. 아무리 돈이 아까웠어도 그렇지, 재촬영할 거면 제대로 끝까지 하던가 대체 이게 뭐냐, 이게.

2020/01/14 14:15

악당의 신사, 신사의 악당 일기라기엔 너무 낙서


불굴의 액션 걸작 <다이하드> 정말이지 멋진 악역이 있다. '한스 그루버'라는 이름에서 있듯 독일계 유럽인 악당인데, 테러를 저지르러 사람 치고는 고상하게 깔끔한 수트 차림이었다. 맞다. 그는 우아했으며, 지적인 사내였다. 그의 가열찬 협박엔 기품마저 흘렀다. 그러면서도 우락부락한 부하들을 거느렸고 악당답게 적절히 비열한 면모역시 가지고 있었다. 정말이지 아름답도록 멋진 악당. 한스 그루버는 이후 나온 액션 영화 악당들에게 갈래의 새로운 길을 제시한 선배 캐릭터였다. 그렇다면 이토록 고혹적인 악당을 대체 어떤 배우가 연기해낸 걸까? 



알란 릭맨은 영국의 극단 로얄 셰익스피어 컴퍼니의 단원이었고, 미국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던 배우였다. 일생내내 연극쟁이였던 그가 대체 어떻게 <다이하드> 같은 액션 영화로 영화계에 데뷔하게 거냐고? 웃기는 이야기지만, 그건 출연료 때문이었다. 이미 <다이하드> 제작사는 주인공 브루스 윌리스를 캐스팅하는 데에 돈을 써버려서, 나머지 배역들을 캐스팅할 돈이 남아있지 않았다. 이럴 선택할 있는 것은 결국 무명의 신인을 기용하는 것뿐. 허나 어쩌면 바로 소동 덕분에, 알란 릭맨이 우리에게로 와준 것이리라.


오늘 1 14일은 4 알란 릭맨이 투병 끝에 세상을 날이다. 대부분의 우리 세대들에게는 <해리 포터> 시리즈의 스네이프 교수로, <러브 액츄얼리> 불륜남으로 기억되겠지만, 내게는 <다이하드>한스 그루버' 영원히 기억될 사람. '신사적인 악당' 모습을 정립해주신 . 그럼에도 불구하고, 뜬금없이 코미디 영화인 <갤럭시 퀘스트> 그의 모습이 아른거리는 것은 왜일까. 그가 작고한 이후 영화를 때마다, 또는 영화를 머릿속으로 다시 그릴 때마다 이상하게도 나는 울게 된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눈시울은 젖어가고 있다. 'SF영화 자신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경멸해 하면서도 끝내는 모습마저 인정하고 우주를 구하던 배우' 연기했던 그의 모습이 벌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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