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31 23:59

2021년 대문짝 객관성 담보 불가


2021년의 주요 타겟


완다비전 / 스나이더컷 / 매형&겨울군인 / 로키 / 만약에...? / 만달로리안

소울 / 노마드랜드 / 승리호 / 쉿2 / 노 타임 투 다이 / 마블 뱀파이어 / 미나리 / 페어웰 / 소호 / 
비상선언 / 퍼스트 에이전트 / 신vs왕 / 흑과부 / 교섭 / 스페이스잼 / 웨스 앤더슨 / 피랍 / 깐느 박 / 
모가디슈 / 사일런스 / 샹치 / 브로커 / DUNE / MI7 / 정글 크루즈 / 자살특전대R / 매트릭스4 /
웨스트 사이드 스필버그 / 배트맨 / 고스트버스터즈 / 원더랜드 / 외계인 / 이터널스 / 스파이더맨3 

2021/01/16 12:59

해리 포터와 불의 잔, 2005 대여점 (구작)


애들이 급하게 큰 것도 모자라, 갑자기 장발머리를 하고서 등장했다. 

제작진도 골머리를 앓았을 것이다. 해당 에피소드의 원작 소설이 이전 작들의 그것에 비해 훨씬 더 두꺼웠으니. 네 권짜리 분량을 두 시간짜리 영화에 다 때려박아야만 한다는 강박감에 잘려나간 부분들이 한 두 개가 아니다. 그러나 나야 뭐 언제나 그랬듯 원작 제일주의자와는 거리가 멀고, 소설과 영화의 포맷이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기도 해야하니 그냥 그러려니 할 수 밖에. 다만 해당 에피소드의 원작에서는 출연했던 '도비'가 이 영화에도 잠깐이나마 나왔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이 있다. 딱히 도비를 좋아하는 건 아닌데, 2편 이후 아무 소식도 없다가 7편 말미에 갑자기 튀어나와 그렇게 되는 게 좀 뜬금 없었거든. 3편부터 7편 중반까지 깜깜 무소식이다가 툭 튀어나오니까 꼭 그렇게 만들기 위해 다시 데려온 애처럼만 느껴지잖아.

감독이 또 바뀌었다. 이번작의 연출자는 마이크 뉴웰. 1편 & 2편이 가족 영화의 대가를 감독 자리에 앉혔고, 3편이 성장 영화의 거장을 그 자리에 이어 앉혔다면, 이번에는 멜로 드라마적 감수성을 가진 감독을 데려온 것. 때문에 영화의 액션 묘사나 스릴러적 면모는 다소 들쭉날쭉한 인상이지만, 그럼에도 아이들의 무도회 시퀀스는 확실히 보는 맛이 있다. 그러니까 이게 미묘해. 그 무도회 시퀀스는 통째로 꽤 괜찮은 편인데, 나머지가 다 그저 그래서...

할 말도, 할 일도 많은 에피소드이다보니 영화는 쉴새 없이 달려 나간다. '케드릭 디고리'도 얼른 소개한 다음에 퀴디치 월드컵 가야지, 거기서 또 죽음을 먹는 자들과 맞대면 하며 '바티 크라우치' 1세와 2세도 언급해야지, '빅터 크룸'도 어쨌거나 나와야하고... 그러다보니 퀴디치 월드컵 날아감. 근데 사실 이건 별로 불만이 없다. 영화가 뭔 스포츠 중계도 아니고, 퀴디치 월드컵 보고 싶었으면 그냥 당시 판권 갖다 만든 비디오 게임에서 퀴디치 플레이하는 게 더 나았을 거다. 

트리위저드 시합은 진짜 봐도 봐도 거지같은 올림픽이다. 마법 세계에 이미 인명 경시 사상이 쩔게 깔려있다는 것은 어느정도 눈치채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않냐? 10대 청소년들 보고 입에서 불 뿜어대는 집채만한 야생동물이랑 맞짱 뜨라고 하지를 않나, 도전 과제이자 트로피 만든 답시고 친구들 잡아다가 호수 밑바닥에 꽁쳐두고... 심지어는 <샤이닝> 마냥 미로에 싹 다 몰아넣고 지들끼리 줘패라고 함. 진짜 이건 미친 거 아니냐? 셋 중에 하나만 해도 현실세계에서는 학대 및 방조로 잡아갈 판인데. 용기를 시험하고 말고 나발이고 이딴 시합은 좀 없어져야 한다.

그러나 그 현실성과는 별개로 볼거리는 나름 있는 편. 특히 용과 싸우는 첫번째 시험이 재미있다. 문제는 갈수록 각 단계의 임팩트가 떨어진다는 것. 특히 마지막 단계인 미로 게임은 그 긴장감이나 디자인이 형편없다. 물론 바로 직후에 '볼드모트' 부활 쑈가 있어서 미로 장면을 어쩔 수 없이 축소해야한다는 건 알고 있다. 그러나 축소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성의가 없어보임. 미로 안에 뭐 다양한 트릭들 갖춰놓은 것도 아니고...

북유럽 마법학교인 덤스트랭과 프랑스 마법학교 보바통의 표현이 재미있다. 사실 이런 걸 좀 보고 싶었던 거거든. 각 나라와 그 문화권에 대한 유머 및 코멘트를 이 세계관에 맞춰 적절히 변형시키는 거. 과연 바이킹의 후손답게 덤스트랭 학생들은 오만방자하고 거칠다. 고상한 프랑스인인 보바통 학생들은 관능미가 흐르고.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에서 그게 실망스러웠던 거거든. 미국과 프랑스 마법부 다 보여주면서 그 묘사는 영국 마법부랑 하등 차이 없었던 거.

앞서 말했듯 무도회 시퀀스는 그 리듬과 흐름이 쾌활해 좋다. 이런 풋풋한 장면 이 시리즈에서 처음 보는 것이기도 했고. 주인공들이 어느정도 컸기 때문에 이런 장면도 가능했으리라고 본다. 그야말로 마이크 뉴웰의 연출자적 면모가 제대로 뽑혀나온 그런 시퀀스.

볼드모트가 드디어 부활했다. 남 뒷통수 전세 냈던 시절에 비하면 격세지감. 본격적으로 첫 등장하게 된 대마왕인데, 캐스팅이 무려 랄프 파인즈. 근데 다시 보니, 랄프 파인즈 정도의 명배우 아니었다면 이래저래 웃기기만 했을 것 같은 캐릭터다. 특유의 쇼맨십이나 자뻑이 심한 캐릭터라 자칫 잘못하면 오그라들기 십상이었을 텐데, 랄프 파인즈가 진짜 잘 살려냈다. 뱀 같은 외형을 위해 코를 깎아낸 디자인과 그걸 뒷받침하는 CGI도 훌륭했고. 특히 검은 연기가 그의 몸을 두르며 로브로 변하는 묘사는 그야말로 백미.

바티 크라우치 2세 관련해 '무디'와 엮여있는 핵심 미스테리가 좀 약하다는 평을 듣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만하면 됐지 싶다. 트리위저드 시합이라는 간판 매치와 볼드모트 부활이라는 간판 쑈가 이미 존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스테리는 이 정도로 조율하는 게 최선이었을 것 같기도 하고. 짧게 나오지만 데이비드 테넌트가 진짜 열심히 연기하고 있기도 하고... 다만 앞서 말했던 도비와 마찬가지로 이 양반도 이후 시리즈들에 잠깐이나마 또 나왔으면 어땠을까 싶음. 지금은 너무 일회용 캐릭터처럼만 취급되는 느낌이라.

주인공 3인방의 연기도 좋고 여전히 마이클 갬본의 '덤블도어'도 좋은데, 이상하게 제일 좋은 연기는 케드릭 디고리의 아빠가 가져간다. 아들의 신체를 부여잡고 허공을 향해 소리 지르던 그 쇼트의 연기가 현실적인 동시에 연극적인 비극처럼 느껴져서 좋더라고.

2021/01/16 11:46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2004 대여점 (구작)


영화의 신이 편애하는, 현존하는 영화왕 중 한 명의 연출작. 그리고 판타지 동화로써의 색을 분명히 했던 이전 작품들이나, 액션 스릴러로써의 면모를 더 드러냈던 이후 작품들에 비하면 성장 드라마적 부분에 더 방점을 찍었던 작품. 무엇보다 애들이 정말 많이 컸다.

알폰소 쿠아론이 확실히 연출을 잘한 게, 씬마다 꼭 한 두 개씩은 들어가 있는 유머 요소를 잘 살리고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론 어두운 극의 기조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영화라는 것이다. '마지' 고모를 하늘로 두둥실 띄워보내는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는 차분한 톤 앤 매너를 가지고 있지만 그 내부 유머의 잔잔한 폭발력은 또 다른 방식으로 대단하다. 마지 고모의 몸이 불어나면서 그녀를 옥죄고 있던 단추들이 하나씩 팡팡 터지며 '두들리'의 이마팍을 파박하고 때리는 장면 같은 것들. 예전에 볼 땐 그냥 재밌고 말 뿐이었는데 지금 다시 보니 이런 걸로 어떻게든 유머가 들어갈 구석을 만들어냈다는 게 보임. 박지성 마냥 공간 창출 능력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그러면서도 차분히 가라앉은 영화의 어두운 분위기가 돋보인다. '해리'가 검은 개를 만나는 장면부터 시작해 구조 버스로 런던 시내를 돌아다니는 장면, 이어 펼쳐지는 리키 콜드런에서의 차가운 느낌도 좋다. 1편과 2편이 훌륭한 프로덕션 디자인으로 시리즈 전체의 미술적 방향성을 다잡았던 작품이라면, 이번 3편은 특유의 다운된 톤 앤 매너로 이후 시리즈 전체의 분위기를 새롭게 제시한 그런 영화다. 

촬영도 좋다. 쿠아론이 엠마누엘 루베즈키와 협업한 영화도 아닌데 롱테이크들이 인상적이다. 본작의 촬영감독은 이후 <혹성탈출> 리부트 시리즈의 2편과 3편을 촬영하게 되는 마이클 세러신. 사실, 엠마누엘 루베즈키의 촬영보다 개인적으로는 훨씬 더 취향에 가까웠다. 엠마누엘 루베즈키의 롱테이크가 대단한 것은 사실이지만, 때때로 그게 좀 과해보이기도 하거든. 너무 과시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그러나 마이클 세러신의 롱테이크에는 담백한 맛이 있다. 영화의 오프닝 타이틀 씬도 그렇고, '해리'와 '루핀'이 다리 위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도 오버 더 숄더 쇼트를 따로 배분하지 않고 그냥 찍어냄. 확실히 이런 부분들에서의 연출이나 촬영이 내 취향이다. 

애초에도 복선을 잘 깔아놓기로 유명한 시리즈인데, 이전 작들에 비해 핵심 미스테리가 더 복잡하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다보니 그 복선들의 파괴력이나 그로인한 흥미가 더 커졌다. <마법사의 돌><비밀의 방>은 '범인이 누굴까?'의 미스테리였잖나. 그러나 <아즈카반의 죄수> 속 미스테리는 이미 범인이 특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고 바로 그 때문에 '그가 왜?'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이 구조가 기묘하게 재미있다. 마법사 세계를 뒤흔들고 탈옥한 웬 미친놈 하나가 글쎄 주인공 주변을 배회하고 있대. 거기서 느껴지는 공포감. 여기에 '스캐버스'와 루핀 교수 주위를 맴도는 복선과 힌트들 역시 좋다. 보가트를 활용해 루핀에게 보름달을 제시한다든가...

여기에 '시리우스 블랙' 관련한 플롯과 '벅빅'의 플롯이 효과적으로 잘 얽히고설켜든다는 것 역시 플러스 포인트다. 뜬금없이 튀어나오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시간 여행 테마가 저 두 플롯을 효과적으로 잘 묶어준다. <비밀의 방>에서 일찍 리타이어하는 바람에 클라이막스에서 활약할 기회를 놓쳤었던 '헤르미온느'가 해리의 파트너로 배당되는 것도 좋음. 

시리즈 내에서 유독 거울을 더 많이 보는 시리즈다. 거울은 '성장'을 은유하는 미장센으로 많이 활용되는 오브제다. 해리는 계속 거울을 통해 자기 자신을 비춰본다. 아니, 거울 뿐만이 아니다. 해리는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기도 하고, 벅빅을 타고 하늘을 가르다가 호수의 잔잔한 표면에 비친 스스로를 응시 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칠렐레 팔렐레하며 바실리스크 때려잡고 희희낙락할 수 있던 시절은 끝난 것이다. 해리는 스스로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으로 성장기의 감옥에 갇힌다. 아이와 어른 사이에서 서성거릴 수 밖에 없게된 소년이 여기서 벗어나는 방법은 없다. 다만 그 지난함을 인정하되 그 사이사이, 그 순간순간에 찾아오는 사소한 행복들을 잘 붙잡고 즐기는 것 밖에는. 고생 끝에 얻어낸 대부가 도망자로 추락했지만, 그럼에도 신상 빗자루를 타고 신나게 날아오르던 그의 모습처럼. 질풍노도의 성장기란 그런 것이다.

결론적으로는 총 여덟 편이나 되는 시리즈 중에서 내가 제일 애정하는 영화. 좋은 쇼트, 좋은 씬, 좋은 시퀀스가 너무 잔뜩 산재해있다. 신입생들을 반기는 호그와트 중창부(feat.두꺼비)의 합창 장면도 좋고, '덤블도어'가 손짓 하나 하나로 촛불 온 앤 오프하는 쇼트도 좋고, 찻잎으로 그려진 검은 개가 비구름으로 산화하는 것도 좋으며, 결국 그렇게 아버지가 되었던 해리의 모습 역시 좋았다. 아, 알폰소 쿠아론 만세다.

뱀발 - 오프닝 타이틀 씬인 루모스 장면은 정말 봐도봐도 세련된 것 같다.

뱀발2 - 리처드 해리스의 죽음 때문에 덤블도어 캐스팅이 마이클 갬본으로 변경됐다. 친근한 할아버지 느낌이던 이전 캐스팅과는 달리 좀 더 지적이고 신경질적인 느낌의 현자 캐릭터로 재탄생. 개인적으로는 확실히 이쪽이 더 좋다. 깐깐한 이미지이다보니 중간중간 친절하게 굴거나 드립칠 때가 더 소중하게 느껴짐. 향후 시리즈 내에서 액션도 많이 늘기 때문에 더 강해 보이는 이미지도 필요했을 것이다.

2021/01/15 22:09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 2002 대여점 (구작)


크리스 콜럼버스가 이어간 시리즈 내 마지막 영화. 그래서 동화 지향적인 가족 영화로써의 기조를 품고 있는 시리즈내 마지막 영화. 물론 그렇다고 해도 호그와트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사건들이니 만큼 어두운 부분들도 있기는 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그 어두운 부분들이 훨씬 더 좋게 느껴지더라고.

이후 나올 속편들에 비해서는 여전히 밝은 편인 게 맞는데, 그와중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유독 어두운 순간들이 이상하게 좋다. 물론 '해리'랑 '론'이 하늘을 나는 자동차 타고 호그와트행 급행 열차랑 달리기 하는 장면 같은 것도 좋지. 근데 난 그 이후 그 자동차가 해리랑 론 냅다 뱉어버린 다음에 금지된 숲으로 홀연히 들어가는 그런 순간들이 더 좋더라고. 그러니까 분명 이야기의 톤 앤 매너는 밝은데, 인물들이 바라보는 쪽에 도사린 어둠들이 더 흥미롭게 느껴지는. 직후 나올 3편부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두워질테니 안전벨트 매고 준비나 잘 하라는 의미였을지도 모르겠다.

1편에 비해 메인 사건이 좀 더 스릴러적 면모를 띈다. 그래서 그 어두운 부분들이 더 잘 어울리고 좋았는지도. 이번 영화에서는 연쇄 살인 아닌 연쇄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벽 너머에서는 살인귀의 피에 굶주린 목소리가 들려오며, 이에 주인공 3인방은 감쪽 같은 변장을 통해 적진 한 가운데로 돌격하기에 이른다. 심지어 왠 집요정은 해리 못 죽여서 안달임. 이거 판타지 장르만 싹 다 걷어내고 보면 그냥 호러 영화 아니냐고.

스필버그의 옛 영화들이 그랬고 그 바톤을 그대로 이어받은 넷플릭스의 <기묘한 이야기>가 그러고 있듯이, 이번 영화 역시 온전히 아이들끼리만 뭉쳐 해결되는 사건을 흥미롭게 그리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서 오는 재미도 크다. 1편에서 금지된 숲 들어갈 때는 어쨌거나 '해그리드'랑도 같이 갔잖아. '팽'이랑도 함께 했고. 바로 도망가던데? 그러나 이번 2편에서는 진짜 애들끼리만 감. 가서 거대 괴수 군단이랑도 한 판 뜨고, 후반부 들어서는 3인방 중 한 명이 리타이어 하기까지 한다! 그러니까 뭐랄까... 정말 진지한 위협을 어린 주인공들에게 제시했다는 것 자체가 어린 관객들에게는 꽤 재미있지 않았을까 싶은 거다. 어른 없는 우리들끼리의 모험! 그럼 주인공에게 바로 동기화가 되잖아. 20여년 전에는 나도 그 중 하나였고.

사실 굳이 태클 걸자면 클라이막스가 좀 허무한 느낌이라는 거다. 떡밥 거하게 던져 놓았던 것에 비해 '바실리스크'는 그리 위협적이지 않았고, '톰 리들'이 허공에 지팡이 휘적대며 손글씨 쑈 보여주고 있어도 그게 막 무섭게 느껴지진 않더라고. 클라이막스 바로 직전까지 꽤 효율적인 구성으로 이야기에 스릴감을 더하던 차였는데, 정작 막판에 이래버리니까 좀 김새는. 그래도 거기까지 가는 데에 나름 알차게 잔재미를 꾸렸다는 점에서 용서가 좀 되긴 함. 케네스 브레너가 연기하는 '질데로이 록허트'가 존나 때려주고 싶게 귀엽고, 배우의 카리스마에 비해 좀 얼 빠진 구석이 있는 제이슨 아이삭스의 '루시우스 말포이'가 재미있다. 아, '도비'는 개인적으로 별로. 나올 때마다 한 대 치고 싶더라. 물론 7편에서 다 용서된다

매 1년 간격으로 개봉될 것 같던 시리즈는 이번 2편을 끝내고 짧은 공백기를 가진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공백기를 장독대에 김치 넣어놓듯 특유의 어두운 기조를 숙성시키는 시간으로 쓴 것 같기도 하고. 하여튼 그 2년동안 애들은 참 빨리, 많이도 컸다. 원래 사춘기는 어둡고, 질풍처럼 흔들리는 것이니까 어쩌면 성장 드라마로써 제 자리를 찾은 것일지도 모른다. 

2021/01/15 21:47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2001 대여점 (구작)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의 꼬꼬마들과 어른이들을 책벌레로 변태 시켜냈던, 그야말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판타지 소설의 영화화. 개봉 당시 이걸 처음 봤을 때 극장 외벽에 걸려있던 포스터가 아직도 생각난다. 옛날의 지방 극장들이 으레 그랬듯, 이 영화 역시 이 방면 전문가가 다시 그려낸 그림 포스터로 홍보되고 있었거든. 공식 포스터의 대형 인쇄물이 아니라 그걸 보고 다시 그려낸 그림을 극장 외벽에 걸던 시대라니. 정말이지 다시 생각해도 격세지감이다.

시리즈가 뒤로 갈수록 점점 더 어두워지는 경향을 띄었기 때문에, 화사한 동화 같았던 그 느낌을 기억하는 일부 팬들은 여전히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을 그리워할 것이다. 사실 나는 알폰소 쿠아론이 연출했던 3편 이후부터의 시리즈 기조를 더 좋아했기 때문에 이 1편에 대해선 그다지 큰 추억이 없었는데, 정말이지 오랜만에 다시 보니 크리스 콜럼버스가 연출도 꽤 괜찮게 했던 편이더라고. 향후 무려 7부작으로 전개되는 대서사시의 첫편으로써 캐릭터 소개는 물론 자질구레한 세계관 설정들까지도 다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을 터인데, 크리스 콜럼버스가 그걸 빼어나진 못해도 꽤 안정적으로 해냈다는 인상이다.

실제로 영화의 초반 이야기 전개가 꽤 빠른 편이다. '해리 포터'가 어떤 아이인지, 왜 그는 고모와 고모부에게 미움 받으며 계단 아래 벽장에 살고 있는지, 그가 마법사로서의 능력을 발현했던 첫 순간이 언제인지, 그리고 그런 해리가 호그와트로부터 입학 편지를 받게 된 경위는 어떠한지 등이 나름 빼곡하게 묘사된다. 원작 소설이 그랬던 것 마냥 이 모든 걸 각잡고 설명 해냈으려면 꽤 긴 런닝타임이 물리적으로 필요했을 터인데, 크리스 콜럼버스는 설명이 꼭 필요한 부분들에 대해서만 딱 알맞은 키 비주얼로 표현해냈다. 그리고 그게 썩 잘 먹혔다.

아니, 말 나온 김에. 거의 비주얼로 다 해먹었던 영화다. 촬영이나 조명적 측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각자의 나이나 세대가 어찌되었든, 우리가 이 시리즈에 대해 이야기 나눌 적에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건 어쩔 수 없게도 대부분 이 1편에서 파생된 것들일 것이다. 무거운 소포를 들고 하늘을 가르는 부엉이, 벽난로와 우체함 곳곳에서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편지 봉투들, 몇 번을 돌려보아도 질리지 않는 호그와트 성의 외관과 쉴새없이 펄럭거리는 퀴디치 경기장, 여기에 하염없이 따뜻하고 아늑하게만 느껴지는 그리핀도르 기숙사의 모습까지. 의상과 소품을 비롯한 전반적인 프로덕션 디자인의 체계를 워낙 잘 잡아놨기 때문에, 이후 나오는 일곱 편의 시리즈가 모두 이 1편에서의 그것을 그대로 계승하는 모습을 보인다. 풍문에 따르면 이를 위해 크리스 콜럼버스가 원작자인 조앤 K 롤링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고 하는데, 사실이야 어찌되었든 이 정도면 진짜 잘 만들어놓은 거지.

이렇게 잘 깔아놓은 판에 흥미를 돋구는 이야기가 꽂힌다. 사실 이 시리즈는 언제나 장르물이었다고 생각한다. 대놓고 판타지 영화인데 당연하지 않냐고? 아니, 내 말은 판타지 외의 장르가 꼭 하나씩은 더 있었다는 거다. 그건 바로 미스테리 스릴러. 따지고 보면 매 시리즈마다 미스테리 스릴러로써의 공식이 꽤 잘 잡혀있는 편이었다. 이야기 전반에 복선이 깔리고, 누군가가 다치거나 뭔가를 도둑맞는 등의 사건이 발생하며, 이에 해리와 친구들은 여러 능력들을 사용해 추리에 추리를 거쳐 용의자를 특정 해낸다. 영화가 이것도 꽤 잘해냈다고 본다. 마법사의 돌까지 가는 데에 깔린 복선들과 그것들을 활용해 주인공 일행이 추리를 완성해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 자체로 스릴감이 든다. 어린애들이 주인공인 학원물에서 이 정도 스릴러를 뽑아냈다는 건 확실히 특기할 만하다. <추리영역 4교시> 같은 영화들 보면 그게 얼마나 어려운 건지 감이 잡히잖아.

벌써 20년이나 된 작품이다보니 영화 곳곳에 묻은 CG나 특수효과가 촌스러워 보이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은 관객들이 이후 못해도 30여년은 더 추억할 수 있는 일종의 물리적인 공간을 제시했다. 말그대로 그냥 호그와트라는 가상의 공간을 실제의 공간으로 바꿔놨다. 줄줄이 나오는 속편들 외에도 스핀오프 영화, 관련 비디오 게임 등 원작 소설과 관계되는 모든 매체들이 몽땅 다 이 영화의 디자인을 베이스로 할 수 밖에 없게 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관객과 팬들, 그들의 머릿속 상상 역시 곧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다. 지금 보면 아이고, 귀여워라- 라고 할 수 있는 영화지만 그와 동시에 너무나도 강력한 비주얼 역시 제시했던 영화. 막말로 이거 말아 먹었으면 제아무리 원작 소설 시리즈가 날고 긴다 했어도 그 영광이 지금까지 지속 됐었겠냐고. 시리즈의 최고작을 만든 감독까진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이 당시의 크리스 콜럼버스를 우리가 치하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2021/01/15 12:45

디스 민즈 워, 2012 대여점 (구작)


현재의 맥지에게 가진 건 실망감 뿐인데도, 이상하게 이 영화는 괜찮게 보았던 기억이 있다. 아무래도 그건 배우들 덕분이겠지. 배우들에게 '이미지 변신'이라는 다섯글자가 얼마나 큰 무기인지 내게 다시 일깨워줬던 영화. 물론 크리스 파인 이 양반은 애초 데뷔가 <프린세스 다이어리 2>였으니 이 영화에서 대단히 획기적인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건 리즈 위더스푼도 마찬가지고. 그러니까 고로... 내 취향 타겟은 오로지 톰 하디에게만 맞춰져있었다는 말... 

권총 들고 굴러다니는 스파이 역할 그 자체는 톰 하디에게도 그리 색다른 배역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간에, 이 영화는 액션이 가미된 로맨틱 코미디잖나. 나는 톰 하디가 이렇게 가벼운 분위기의 영화에 나온 거 별로 본 적이 없었거든. 그래서 그 특이함이 좋았던 것 같다. 마치 마이클 섀넌이 코미디 영화 찍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지...

영화의 구도는 지극히 전형적이다. 한 여자를 두고 다투는 두 남자의 구도. 그러나 영화는 이 전형성을 재미나게 변주해냈다. 그 두 남자에게 CIA 스파이 스킨을 씌워버린 것. 그렇다고 진짜 둘이 죽이려드는 것까진 아니고, 배우들도 가볍고 통통 튀는 방식으로 연기해내고 있어서 그냥 귀여움. 근데 그게 크리스 파인이랑 톰 하디인 것이지. 막말로 여자 배우 보는 맛보다 남자 배우 둘 보는 맛이 훨씬 더 큰 영화. 

어쨌거나 '액션 < 로맨틱 코미디'라는 대전제는 알겠는데, 그래도 수퍼 스파이를 둘씩이나 주인공 삼아놓은 것 치고는 액션이 많이 빈약하긴 하다. 그런 상황이다보니 메인 악역으로 틸 슈바이거씩이나 캐스팅 해놓고도 잘 못 써먹음. 특유의 구겨진 듯한 인상만 남은 느낌이다. 

결국 가장 핵심이 되는 건 주인공이 둘 중 어떤 남자를 선택할 것인가- 일텐데, 이 결말이 다소 뻔하고 안전 지향적 전개라 김이 샌다. 할리우드 특유의 그런 거 있잖아, 가족으로 돌아가는 남자의 이야기. 뜬금 없지만 <2012>도 그랬지. 이혼한 남자 주인공이 전처의 현 남편이 사망하자 바로 그 자리 다시 꿰차고 들어가는 거. <디스 민즈 워> 역시 마찬가지라 좀 민망하다. 주인공은 솔로인 크리스 파인 캐릭터와 연결되고, 실연 아닌 실연을 당한 톰 하디의 캐릭터는 결국 헤어져있던 가족에게로 되돌아가는 결말. 겁나 안전한 선택인 건 맞는데 오히려 그래서 너무 실망스럽고, 근데 이 정도 사이즈의 대중 상업 영화가 안전 지향적인 태도 보이는 게 또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고... 여러모로 복합적인 감정이 들게 만드는 결말.

근데 리즈 위더스푼 좋은 배우인 건 맞는데 크리스 파인이랑 톰 하디 두 남자를 후릴 위치에 적합한 이미지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청아도 겁나 예뻤었지만, <늑대의 유혹>에서 무려 강동원과 조한선의 픽을 동시에 받을 만했나-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과 마찬가지의 느낌.

2021/01/14 11:53

스파이 게임, 2001 대여점 (구작)


토니 스콧이 자신의 절정기를 거의 다 소진 했을 때쯤 나온 명작. 그리고 여러 의미에서 장르적인 영화.

내용은 생각보다 별 게 없다. CIA 은퇴를 앞둔 '네이선 뮤어' 앞에, 자신의 부하 직원이자 업계 제자였던 '톰 비숍'이 중국 내 감옥에 투옥되어 처형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이 들어온다. 이를 막기 위해 긴급 소집된 CIA의 간부들. 이들 앞에서 뮤어는 자신이 비숍을 처음 만났던 순간부터 가장 최근에 이르기까지 그 둘 사이의 썰을 브리핑 하게 된다. 그렇게 현재 시점의 CIA 회의실과, 뮤어의 입을 빌어 묘사되는 과거 시점의 뮤어 & 비숍 관계가 끊임없는 교차 편집으로 얽히고설키며 진행되는 영화. 그러니까 <007>이나 <본> 시리즈 식의 액션이 가미된 첩보 영화를 기대했다면 말짱 꽝인 영화다. 굳이 따지면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와 <본> 시리즈 그 사이 어디쯤엔가 존재할 법한 영화임.

근데 이 단조로우면서도 복잡한 이야기 구조가, 당시 절정기였던 토니 스콧의 손에서 매끈하게 재조립됐다. 여러 시점을 날래 오가는 데도 영화의 편집 리듬과 흐름이 유려해서 관객 입장에서는 헷갈릴 일이나 지루할 일이 별로 없게 된다. 여기에 너무 닮아서 진짜 부자 사이라고 해도 믿을 법한 로버트 레드포드 & 브래드 피트 조합이 덩달아 좋기도 하고. 특히 로버트 레드포드가 정말 좋다. 브래드 피트도 물론 대단하지. 그러나 영화의 결말까지 보고 나면, 결국 이 영화는 온전히 로버트 레드포드만의 것이구나- 하게 된다. 좀 다른 시각에서 보면, 이 에스피오나지 장르 그 자체가 인격화 된 존재로서 이 로버트 레드포드의 네이선 뮤어 캐릭터가 존재하는 것 같기도 하고. 

말 나온 김에. 에스피오나지 장르, 그러니까 첩보 장르의 세계에서는 '정보' 그 자체가 무기로써 존재한다. '어떠한 사실'에 대해 내가 상대보다 얼마나 빨리,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가 이 세계에서는 드래곤볼로 작용하는 것이다. 더 좋은 연사력을 가진 소총이나 볼펜 폭탄 따위로 승부를 보는 곳이 아닌 것이다. 네이선 뮤어는 이 장르의 화신이라도 되는양 그걸 너무 잘 보여준다. 그의 늙은 몸뚱아리는 영화 내내 CIA 본부 근처만을 맴돈다. 그러나 자신이 갖고 있는 정보와 상대방으로부터 빼앗은 정보를 조합하고 활용해 지구 반대편의 문제를 막아내는 데에 최선을 다한다. 물론 그 상대방의 정보 빼앗는 묘사들도 다 기가 막힘. 따지고 보면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데 오히려 그래서 더 현실감 있었다. CIA 생활이 거의 30년이라는데, 짬에서 나온 바이브란 과연 이런 것일까 싶었다.

여기에 그 정보들을 다 조합해서 활용해내는 것도 능력이지. '정보'는 그 자체만으로는 무기화되지 않는다. 어느 타이밍에 이 정보를 터뜨릴 것인지부터 시작해, 언론 등을 위시한 여론은 어떻게 바꿔 만들어낼 것인지, 이역만리 땅에 있는 인맥 네트워크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까지 정보 무기화의 다양한 측면을 네이선 뮤어의 짬밥 정신을 통해 볼 수 있다. 

이렇게 장르적인 재미가 출중하지만, 품고 있는 메시지 역시도 맘에 들었다. 에스피오나지 장르, 그러니까 첩보 장르의 세계에서는 '사람'이 수단으로써만 존재한다. 이런 종류의 영화들 속 등장인물들이 매번 하는 말 있지 않나. 더 큰 대의를 위해서라고.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거라고. 이른바 애국과 세계 평화라는 미명 하에서, 그동안의 이 장르는 수많은 개인들을 포기해왔다. 작전 노출을 핑계로 애지중지 키워온 요원들을 적진 한 가운데에 버리고 비정하게 떠났으며, 그들이 체포 되었을 땐 국가가 전면에 나서 이들과의 관계를 부정해왔다. 정보원들에게도 신변 보호를 내세웠지만 결국 단물이 다 빠지면 그들을 버렸으며, 개인의 희생은 전체의 이익을 위해 필수적인 것임을 자주 합리화해왔다. <스파이 게임> 속 톰 비숍도 네이선 뮤어에게 말하지 않나. 그들을 보호해주겠다고 한 말 다 거짓이었냐고. 이딴 짓을 우리가 계속 해야하는 거냐고.

여기에 네이선 뮤어는 칼같이 대답한다. 그게 이 세계의 현실이고 어쩔 수 없는 생리라고. 우리는 앞으로도 쭉 이럴 것이고, 설사 너가 그런 상황에 처한다해도 나는 널 가차없이 잘라낼 것이라고. 그러니까 <스파이 게임>의 중반까지만 보면, 여러 의미에서 네이선 뮤어가 이 장르의 화신처럼 느껴지는 것이 당연해 보일 지경이다. 에스피오나지 장르가 인격화 되어 나타나 자신의 여러 고유 특성들에 대해 변명하고 어쩔 수 없다며 배 째라는 식의 태도로 일관하고 있으니. 그러나...

영화가 결말에 들어서면, 이 생각 역시 조금씩 바뀐다. 아, 물론 여전히 네이선 뮤어가 이 장르의 인격화된 화신처럼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네이선 뮤어는 결국 현재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또 희생해 끝내는 톰 비숍을 구해내지 않나. 그러니까 바꿔 말하면, 에스피오나지 장르가 스스로의 과오를 인정하고 어쩔 수 없다 변명 하면서도 결국 마지막엔 반성하는 태도를 보인다는 것. 원래 하던대로 그냥 버리고 가면 됐을 톰 비숍을 끝내는 구해내며 반성적인 모습을 견지한다는 것. 결국 나는 여기에서 인간적인 감동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정리. <스파이 게임>은 정보를 무기로 삼는 장르의 지적 쾌감이 있는 영화인 동시에, 사람을 수단으로 쓰는 장르의 진한 죄책감이 머물고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장르의 쾌감 끝에 다가온 가장 인간적인 감동. 저녁 외식 작전은 그 작전명처럼 사뭇 설레는 작전이었다. 

2021/01/14 11:23

분노의 역류, 1991 대여점 (구작)


TV 뉴스나 대화를 통해 많이 듣고 또 쓰게 되는 표현, 화마. 불 화()에 마귀 마(魔)를 쓴다. 이렇게 불을 마귀에 비교할 정도로, 우리 인간은 불을 원초적으로 두려워한다. 때문에 소방관을 주인공으로 삼는 일련의 영화들에서는 이 '불'이라는 존재를 마귀나 악마에 비할 정도로 의인화해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 소방공무원들의 원픽 영화라는 이 영화 역시 마찬가지.

영화의 전개는 넓게 보면 투 트랙이다. 우선, 화염과 싸우는 소방관들의 모습을 담아낸 재난 장르 영화로써의 한 줄기가 존재한다. 이건 뭐 이 영화의 기본이라 사실 당연한 것. 그리고 이에 이은 두번째 스토리 줄기는, 연쇄 방화범을 잡기 위한 화재 감식반의 활약을 다룬 미스테리 추적극으로써 전개된다. 여기에 이 두가지 줄기를 하나로 단디 묶어주는 두 형제의 인간 드라마.

불끄러 다니는 소방관들의 이야기에 형제의 드라마적 요소만 더해놨었다면 이 정도의 풍미는 생기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는 그 세 가지 요소의 밸런스를 비교적 잘 잡아내고 있다. 소방관들의 활약을 다룬 부분에선 1991년 영화라는 것을 잊게 만드는 압도적인 스펙터클의 화염과, 그 안에서 고군분투 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제대로 담아낸 연출이 있다. 커트 러셀이 연기한 주인공이 어린 아이 안고 슬로우 모션으로 걸어 나올 땐 그냥 내 모든 걸 다 그에게 줄 뻔 했다. 신병 교육대나 예비군 훈련장에서 정훈 교육의 일환으로 <라이언 일병 구하기> 같은 영화들 자주 틀어주는데, 아마 실제 소방관들 역시 이 영화 속 그 장면 교육 훈련 때 많이 보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다.

더불어 미스테리 추적극 파트도 인상적이다. 여기서는 로버트 드 니로가 주축이 되어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아무래도 재난 장르 영화로써의 속성이 좀 더 강한 영화이다보니 이 미스테리 추적극 파트는 약간의 양념 정도로 느껴짐. 근데 딱 그 배분이 좋았던 것 같다. 어쨌거나 미친 전직 방화범으로 도널드 서덜랜드가 나오는데, 이 인간과 로버트 드 니로의 화재 감식반 반장 캐릭터 사이 관계가 마치 <양들의 침묵> 속 '한니발'과 '스털링' 관계처럼 느껴져서 기묘 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쪽 이야기도 꽤 많이 신경을 쓴 편. 진짜 범인의 정체가 밝혀질 때 관객으로서 마음 한 구석이 뜨끔 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좋은 배우들이 은근히 많이 나오는 영화지만, 커트 러셀을 제일 좋아해서... 커트 러셀은 정말 <다이 하드>의 브루스 윌리스 다음으로 하얀 런닝이 잘 어울리는 사내다. 블루 칼라 노동자 계열의 영웅이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 여기서도 달리고 뛰어오르는 등의 육체파 공무원 영웅으로서의 모습을 성실하게 잘 보여준다. 더불어 황소처럼 고집스런 면모도. 무엇보다 정말이지 젊다. 이 영화 처음 봤던 게 대략 20여년 전이었던 것 같은데, 그 때만해도 이런 생각 안 했었지. 근데 내가 좋아하는 배우의 젊은 모습 다시 보니까 마냥 좋더라고...

현재는 할리우드의 주류 감독으로서 다작 감독이기도 한 론 하워드. 비록 <분노의 역류>가 그의 데뷔작인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그의 필모그래피를 되짚어봤을 때 일종의 구두점이 되는 작품이었던 건 맞는 것 같다. 이 작품 이전에 찍었던 영화들은 대부분 제작 규모가 작은 소품 느낌의 영화들이었던 것 같은데, 이 작품을 연출한 이후로 점점 더 큰 제작 규모를 배당받는 감독으로서 거듭나게 되니. 물론 개봉 당시의 흥행은 어중간 했다고 하지만 말이다. 

2021/01/09 17:05

맥클레인의 마성에 걸려든 남자들 객관성 담보 불가


주기적으로 불운한 남자, 존 맥클레인. 존 람보나 존 매트릭스처럼 한 세대를 풍미했던 어나더 존씨들과 맥클레인이 다른 점은 자의/타의의 차이에 있다. 물론 존 람보도 첫편에선 그러고 싶지 않았겠지. 그러나 시리즈가 계속 되면서, 어쨌거나 그는 전쟁과 전장을 스스로 선택했다. 뭐, 딸 구하러 간 것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존 매트릭스도 그러함. 그에 비해 우리의 맥클레인 옹께서는 전혀 그럴 의도가 1도 없었음에도 항상 테러리스트들에게 엮여든다. 이 정도면 그냥 테러에 맥클레인이 꼬이는 게 아니라 맥클레인에 테러범들이 꼬이는 거 아님?

어쨌거나 상황이 이렇다보니, 개고생의 늪에 빠지는 건 그 뿐만이 아니다. 항상 주위 누군가와 함께 빠진다는 것이 포인트. 오늘은 맥클레인의 역대 파트너들이라고 쓰고 피해자들이라 읽는다을 알아보자.



가장 유명한 건 역시 포웰. 근무 후 아내랑 함께 먹을 밤참 사서 가다 무전 받고 나카토미 빌딩으로 순찰 나가게 되며 맥클레인과의 인연을 1 적립한다. 맥클레인이 무뚝뚝하면서도 순한, 한국으로치면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 느낌이라면 포웰은 맘씨 따뜻한 강원도나 전라도 스타일뭔소리야. 맥클레인과 얼굴 맞대고 함께 하진 못하지만, 무전기 뒷편에서 언제나 그를 응원하고 대변했던 인물.

1편이 연출을 진짜 잘했던 게, 주인공인 맥클레인이나 홀리 제나로 뿐만 아니라 물리적인 분량이 그리 많지않은 포웰에게조차 작은 사연을 하나 만들어줬다는 데에 있다. 과거 현장 근무 중 어린 소년이 총기를 꺼내는 것으로 오인해 선발 사격함에 따라 그를 죽였고, 그로인해 사무직으로 옮기며 죄책감 때문에 총을 잘 만지지 못한다는 트라우마 설정. 그리고 이 개인의 서사를 조금 거칠지만 깔끔하게 봉합해준 영화의 결말 한 방까지. 그러니까 이 포웰의 삶에서는 포웰이 주인공이라는,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를 잘 묘사해냈다고 본다. 하여튼 서로를 위해주는 콤비 플레이가 좋았는지, 이후 포웰은 2편에서도 잠깐 얼굴을 비추게 된다.



1편의 아가일은 뺄 거임. 나름 임팩트가 세긴 하지만 맥클레인과 본격적으로 쿵짝을 맞춘 건 별로 없어서.



2편에는 레슬리 반즈가 있다. 사실 콤비 플레이라고 보기는 좀 뭣하다. 다른 편들에 비해 2편은 버디 무비로써의 정체성이 가장 옅은 편인지라, 파트너라고 하기 보다는 그냥 맥클레인과 잠깐 같이 다닌 조연 1 정도의 포지션. 인상을 봐도 알겠지만 착한 사람이긴 하다. 그러나 어쨌든 공항 소속이었다보니 처음에는 맥클레인과 대립각 아닌 대립각을 세운다. 그치만...


T-1000한테 죽을 뻔한 거 맥클레인이 살려준 이후로는 거의 맥클레인 편이 됨. 실제로 나중엔 상관들 몰래 맥클레인을 도와주기도 하고... 일단은 엔지니어에 가까운 포지션이라 기계치인 맥클레인과 조합이 꽤 괜찮았다. 전투 능력이나 체력은 거의 0에 수렴하는 캐릭터라 4편에 나오는 매튜와 비슷한 편.



카마인 로렌조. 대니 드 비토를 닮은 이 양반은 사실 맥클레인의 파트너는 커녕 조력자라고 보기에도 문제가 있다. 도와주는 거 진짜 1도 없고, 오히려 사사건건 훼방만 놓는 인간이라... 그래도-


맥클레인에게 고귀한 크리스마스 정신을 설파 하셨다는 데에 의의를 두고 싶다.



다음은 3편의 제우스. 사실상 최고의 콤비 후보 1순위에 가까운 인물이다. 일단 담당 배우인 사무엘 L 잭슨과 브루스 윌리스의 조합이 썩 괜찮기도 하고, 기계치인데다 퀴즈엔 젬병인 맥클레인과 정반대되는 인물로서 사건 해결에 도움을 주면 줬지 깽판 놓은 적 한 번도 없음. 여기에 타고난 인간애도 있어서, 자기 동네인 할렘에서 흑인 혐오 피켓 들고 서 있었던 존 맥클레인을 구해주기도 했다. 일면식도 없는데!


아, 왜 보면 볼수록 둘이 잘 어울리는 것 같지? 생각해보니 <언브레이커블>에도 같이 나왔었네. 거기서는 브로맨스 전혀 없었는데...

그나저나 3편까지 보면 흑인 파트너들이 많았네. 뭔 의도가 있는 건가?



12년 간 쉰 맥클레인은 4편에 이르러 젊은 파트너로 갈아타게 된다. 역대 최연소 맥클레인 파트너, 매튜 패럴. 싸움 1도 못하는 현피 불가 키보드 워리어. 근데 직업이 직업이니 만큼 기계치에 컴퓨터 맹인 맥클레인과는 꽤 좋은 조합이 된다. 그러다보니 포지션이 2편의 레슬리 반스와 유사함. 포웰과 제우스는 말그대로 백업 캐릭터였지, 뒤나 옆에서 맥클레인을 지원하는. 그러나 레슬리 반스나 매튜는 맥클레인에게 문제를 파악해주고 또 그 사건을 해결하는 데에 지침이 되는 인물들이다. 한마디로 싸울 때 도움은 전혀 안 되는데, 그렇다고 안 데리고 다니면 또 안 됨. 


둘이 같이 있을 때도 은근히 잘 어울린다. 쉴새없이 떠들고 배고프다며 치즈 버거와 케찹 찾아대는 젊은이와 무뚝뚝 하면서도 이죽거리는 늙은이의 조합. 근데 매튜가 진짜 끝까지 들이댔다면, 맥클레인은 그를 사위 삼았을까?



이번엔 친아들이다. 불운 유전자 X 불운 유전자 = 불운이 두 배! 잭 맥클레인이자 존 맥클레인 주니어.


현직 CIA 요원 신분이다보니 지금까지의 파트너들 중 전투력 만큼은 역대 최강. 둘이 같이 다닌다면 별로 걱정 안 될 조합이다.


물론 평소 아비 역할 잘 못하던 존 때문에 영화 속 둘의 첫 만남은 다소 땐땐했으나...


이러니 저러니 해도 부전자전이라고, 둘이 합심해서 한 조직을 궤멸 시키기에 이른다...

다만 아빠를 무조건적으로 미워한다기 보다는 표현 못했던 서운함이 더 많았던 캐릭터라 둘이 생각보다 자주 투닥 거리지는 않는다. 영화의 재미를 떠나서는 가끔 좀 안쓰러워보이기도 했음.




이건 그냥 망상인데, 역대 파트너들 다 모아다가 존 맥클레인 피해자 연합 정모 같은 거 해도 참 재밌겠다.

2021/01/08 20:11

오 형제여 어디 있는가, 2000 대여점 (구작)


항상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온 것처럼 보인 코엔 형제. 이번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오래 살아남은 이야기 중 하나를 건드린다. 오프닝 자막에도 썼듯이, 호메로스의 '오디세이'를 현대적으로 어레인지한 이 영화. 때문에 고대 그리스의 신화적 속성을 많이 띄고 있기도.

얼간이 하나와 까칠이 하나, 그리고 이와중 그나마 나아보이는 뺀질이 하나. 이 세 명의 죄수는 입감 전 세상 어딘가에 어마어마한 액수의 보물을 묻어두고 왔다는 뺀질이의 골드 D 로져 풍 멘트에 홀려 탈옥을 결심한다. 허나 그 보물은 타임 어택 레이드를 해야하는 물건이었는데, 다름 아니라 묻혀있는 곳이 곧 댐 공사로 물바다가 된다는 것. 이에 얼간이, 까칠이, 뺀질이는 경찰과 시간에 쫓기며 로드 무비를 시작한다. 

앞서 말했듯 고대 그리스의 신화적 요소들을 재조립한 영화라 관련해서 눈에 띄는 부분들이 많다. 여정이 시작되는 순간 등장하는 흑인 장님 아저씨는 그리스 신화에서 숱하게 나오는 신탁 전달용 예언자 혹은 메신저로서 주인공들에게 혹독한 시련을 예고한다. 이어지는 여정에서 3인방은 파토스에 빠진 무법자와 현을 다루는 음악가, 표리부동한 양아치, 유혹의 노래로 먹잇감을 홀리는 세이렌 여성들과 비밀 결사단을 마주하게 된다. 현대적으로 어레인지했을 뿐, 모두 그리스 신화의 좋은 재료들이다.

근데 가는 길에 만난 인물들 뿐만 아니라 이 모험 자체 역시도 그리스 신화스럽다. 결국 여정의 끝에 놓여있는 아내의 모습이라든가, 홀로 붙잡혀 배신의 기로에 서게 되는 상황이라든가... 사실 이 모든 게 굳이 할 필요가 없었던 모험이었다는 점에서 역시 마찬가지다. 말 나온 김에, 암만 생각해도 빡치네. 뭐? 보물 그딴 건 다 뻥이었고 그냥 족쇄로 함께 묶여있었기 때문에 속일 수 밖에 없었다고? 그러니까 얼간이와 까칠이와 뺀질이가 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한데 묶인 것은 겨우 '우연'의 힘이었다는 건가? 허나 누가 또 말하지 않았나. 우연이란 신이 스스로 서명을 하고 싶을 때 쓰는 가명이라고. 어쩌면 이 셋이 묶인 것은 다른 말로 말해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아, 운명! 이 얼마나 또 그리스와 잘 어울리는 단어인가!

존 터투로의 퀭한 얼굴도 좋고 팀 블레이크 넬슨의 나사빠진 모습도 좋은데, 진짜 뺀질이라고 밖엔 표현할 수 없는 조지 클루니의 뺀질거리는 표정이 일품. 언덕 위의 피크닉 장면에서 표리부동 양아치에게 죽빵 터질 때 그 얼빠진 듯하면서도 새침한 표정 존나 웃겼다. 나라도 한 대 치고 싶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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