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31 23:59

2022년 대문짝 객관성 담보 불가


2022/12/04 11:49

탄생 극장전 (신작)


천주교가 배척 당하던 시대, 조선 근대화의 길을 열어젖혔던 김대건 신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라고 했을 때, 아무래도 나는 마틴 스콜세지의 <사일런스>를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아, 이 영화 역시 고행의 길이겠구나. 근데 막상 본 영화는 조금 다른 포인트로 고행의 길을 걷는 영화였다. <사일런스>처럼 가장 어두웠던 시대, 믿음이란 무엇인가 묻는 영화가 아니었던 것이다. 오히려 <탄생>은 김대건 신부의 전기 영화로써 그 생애를 묘사하는 데에 더 시간을 쓴다. 

그리고 문제가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 실존 했던 역사 속 한 인물의 생애를 그리는 전기 영화, 좋지. 하지만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그 전기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 있어 가장 먼저 결정해야할 일은 다루고 있는 그 실존 인물의 생애 속 어느 부분을 깊게 다룰 것인지 확정하는 일이다. 물론 두세시간 동안 그 인물의 전체 생애 모두를 그릴 수도 있겠지. 다만 그렇게 할 거면 어느 부분을 요약하고 또 어느 부분을 자세히 다룰지 결정 해야겠지만. 

<탄생>이 묘사하는 김대건 신부의 삶은 대략 5~6년 정도인 것 같다. 향년 25세로 순교한 인물이었고, 또 영화는 그가 성인이 되기 이전 시절부터 다루고 있으니 정말 대략 그쯤 되겠지. 전기 영화로써 5~6년 정도면 충분히 잘 다룰 수 있는 시간대였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탄생>은 종종 삐걱거린다. 왔다 갔다 김대건 신부의 실제 동선을 따라 묘사하긴 해야겠는데, 또 그것만 다루고 있다보니 그가 겪었던 각 모험들의 무게감이 좀 빠지는 느낌. 예를 들어 김대건이 무인지대 120리 길을 혼자 걸어 조선 땅에 들어갔다 나오는 부분이 있는데, 그 길을 오가는 모습 자체는 순교길답게 고행처럼 그려지지만 영화 전체로 봤을 땐 정작 그 곳에 왜 다녀왔고 또 가서 뭘한 건지는 빠져있다. 엥? 분명 방금 만주에서 객잔 주인의 배웅을 받으며 출발했는데 화면 바뀌니 어느새 다시 만주로 돌아와 그 객잔 주인의 환영을 받고 있네? 뭐야, 그럼 그새 조선 다녀온 거야?

김대건이 겪었던 각 모험들만이 발췌되어 서로 연결된 느낌. 그러다보니 한 편의 영화로써는 좀 종잡을 수가 없는 모양새다. 게다가 미사를 진행하는 장면 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식 신부 서품을 받은 이후 김대건은 원론적인 의미에서의 종교 활동 보다 그 종교를 널리 퍼뜨리고 불씨를 꺼뜨리지 않기 위해 행했던 모험들로 삶 후반부를 채워나간다. 이게 종교와 그 믿음에 대한 영화인 줄 알고 보기 시작했던 건데, 막상 보니 그냥 모험물에 더 가까웠던 인상. 물론 모험 자체가 싫다는 건 아니지만...

하여튼 영화가 좀 뭉텅뭉텅이다. 차라리 김대건의 유년시절부터 그렸으면 어땠을까란 생각이 든다. 유교와 성리학이 오랫동안 지배했던 땅에서, 인간 사이에 높고 낮음이 없다 말하는 종교의 귓속말은 말그대로 천지개벽이 아니었겠나. 게다가 김대건은 또 굳이 따지면 양반 집안의 자제였잖아. 그러니까 그 종교를 처음 접했던 순간부터 잠깐이나마 그렸으면 어땠을까 싶은 거. 집안 대대로 천주교 집안이었다고 하니 그 부모 세대 이야기를 잠깐 했어도 좋았을 것 같고. 지금 버전도 오프닝 자막으로 그걸 대충 대충 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2022/12/04 11:33

창밖은 겨울 극장전 (신작)


버스 터미널 대합실 의자 위에 덩그러니 놓인 과거의 유물 MP3. 그 구닥다리 물건 이제 누가 쓰냐며, 아마 그 누군가도 버리고 간 것일 것이라 말하는 여자. 하지만 기어코 그 고장난 MP3를 수리해 그 누군가가 다시 찾으러 올 때까지 잘 보관하고 있어야만 한다는 남자. 어느새 찾아온 겨울 앞에서, 그렇게 오래된 MP3로 인해 평소 한 직장 내에서 얼굴만 보던 사이였던 남자와 여자는 조금씩 말을 섞게 된다. 

<창밖은 겨울>은 창원에서 시내 버스를 운행하고 있는 남자와 버스 터미널 매표 창구에서 일을 하고 있는 여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아, 남자와 여자가 만나다. 이것은 멜로 드라마인가? 물론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자꾸 과거에 붙잡혀 사는 남자는 떠나보낸 옛 연인을 그리워하고, 또 짐짓 과거를 쿨하게 두고 온 듯 보이는 여자는 현재 자신에게 구애하는 또다른 인연을 한사코 거부한다. 이런 순간들까지 총합한다면 영화는 영락없이 멜로 드라마의 구성을 띄고 있지. 

하지만 영화는 자꾸 곁가지로 샌다. 한국에서 제작된 소규모 독립 영화 특유의 분위기로 자꾸 나아가려 하는데, 옛 것에 대한 그리움을 통해 과거의 사랑을 은유 한다든가, 복식으로 참여한 탁구 대회를 핑계로 둘 사이의 현재 호흡을 보여주려 한다든가. 그런데 여기에 또 자꾸만 한국에서 제작된 소규모 독립 영화 특유의 세부 요소들까지도 끼어든다. 마치 산신령 따위의 동네 수호신 마냥 묘사되는 간판 없는 가게의 이름 모를 주인장. 그리고 답답하리만치 딱 하나 밖에 모르는 남자 주인공. 게다가 그 남자 주인공은 과거에 영화인이었어. 독립 영화 만들다가 현실과 타협해 현재는 버스 기사로 일을 하고 있는 상황. 이러니까 결국엔, 이 남자 주인공이 감독 또는 작가의 과몰입이 반영되어 있는 인물로 밖에 느껴지지가 않는다. 

아닌 게 아니라, 이런 거 너무 많이 봤어. 조금 과하게 말하면, 솔직히 지겹다. 독립 영화 속 영화인들의 꿈과 사랑. 물론 당연히 영화인들에 대한 영화 역시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유독 한국 독립 영화계에선 좀 심해. 만든 이들의 자의식이 듬뿍 투영되다보니 공감가는 부분도 분명 있지만 그 조금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몽땅 기시감이다. 게다가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았는데도 묵묵히 자기 길만 걷다 다른 여자의 호감을 사는 남자 주인공이라니. 심지어 그 자신은 상대의 호감을 산지도 모르고 있다니. 그러면서 한사코 바보 같은 짓들만 하고 있다니. 이건 그냥 판타지잖아. 

배우들의 연기도 괜찮고, 사실 연출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대규모 예산으로 만든 블록버스터가 아닌,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을 맘껏할 수 있어 그 개성이 중요하게 느껴지는 저예산의 독립 영화에서 지겹다는 생각이 드는 건 많이 잘못된 것 아닐까. 

2022/12/01 16:42

압꾸정 극장전 (신작)


이 영화의 미덕은 딱 하나다. 마동석이 액션을 안 한다는 것. 근데 그것도 완전히 옳은 말만은 아닌 게, 극중에서 적어도 주먹질 두 번 정도는 함. 어쨌거나 저쨌거나 핑크빛으로 머리를 물들인 마동석이 동네 돌아다니며 귀여움 떠는 것 자체는 신선한 시도 아니었겠나. 아, 근데 그렇게 따지면 이미 <시동>이 있었구나. 

귀엽고 발랄한 색깔의 포스터와 그 카피로 관객들을 혼동 시키고 있지만, 내용만 보자면 그 본질은 전형적인 스콜세지식 이야기다. 코폴라식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 한 동네를 주 배경으로 삼아, 새롭게 태동하는 사업 또는 산업 안에서 보통은 돈이나 명예 정도로 국한되는 자신들만의 욕망을 좇다 결국엔 망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말이다. 영화는 그 전형적인 '욕흥좇망' 스토리에 마동석식 코미디를 끼얹는다. 그게 계획만큼 잘 되었으면 좋았겠지만, 마이크 타이슨 말마따나 그 그럴싸한 계획이란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이고 처맞은 이후에도 그럴싸한 것이 결국엔 좋은 계획인 게지. 

영화는 코미디로써도 애매하고, 누아르로써도 애매하다. 마동석 얼굴만 보고 극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액션 장르로써는 더 애매하지. 주먹질 딱 두 번이 끝인 영화인데. 영화는 심각해진 상황 속에서도 별 웃기지 않는 꼴로 무리수 코미디를 던지고, 또 관객들을 박장대소 시켰어야 했던 부분에선 이상하게 무거워지며 혼자 비틀댄다. 중간엔 갑자기 혼자 신나서 뮤지컬도 하더니만 결말가니 또 팡 터지며 어찌 저찌 쌓아왔던 갈등들을 그냥 다 한 방에 보내버리네. 

정확히 뭘 얘기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음. 압구정에서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나는 주인공을 데리고 성형외과 의사 동생과 우정의 무대를 그리고 싶었던 건지, 아니면 성형 공화국이란 별명이 붙은 작금의 대한민국 상황에 대해 비판을 하고 싶었던 건지, 그도 아니면 진짜 욕망의 끝엔 파멸 뿐이라는 걸 설파하고 싶었던 건지 뭔지 진짜 하나도 모르겠음. 대체 이 영화만의 기조가 뭐냐?

한 번도 안 웃었고, 한 번도 안 시원했다. 이럴 거면 <범죄도시><범죄도시2> 정주행 다시 한 번 하는 게 훨씬 나을 듯.

2022/12/01 16:30

스트레인지 월드 극장전 (신작)


<보물성> 이후 근 20여년 만에 다시 등장한 실패작이라는 불명예를 얻은 디즈니의 신작. 예고편으로 보아하니 미학적인 면도 훌륭해보이고, 제이크 질렌할에 루시 리우 등 목소리 캐스팅도 적당히 묵직한데 대체 왜 실패한 것일까 싶었다. 하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 막상 영화를 보니 디즈니의 나태함이 느껴져 실패할만 하단 생각만 들었다. 

진짜 간단하게만 말한다면, 영화가 너무 구태의연하다는 것. 물론 디즈니의 상업 애니메이션 신작으로써 엄청난 신식 기술력이 들어갔다는 것은 알겠어. 극중 등장하는 개의 미세한 털이나 이상한 세계의 괴생명체들을 구현해낸 기술력은 유려하다. 하지만 새 부대에 담는다한들, 헌 술이 새 술 될 수 있을까. 근본적으로 <스트레인지 월드>는 너무나도 평범한 스토리텔링을 보여준다. 

결국엔 또 아버지와 아들 사이, 그리고 또 그 아들과 손자 사이 부자간의 갈등. 가족 관객층을 주 타겟으로하는 애니메이션 매체에서 가족 이야기가 아예 빠질 수는 없었겠지만, 그럼에도 그 설계도가 너무 노골적으로 보인다. 아, 실종되어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 아버지? 이상한 세계에 갇혀 있겠군. 아, 아버지에게 대드는 아들? 나중에 그 아들의 아들도 자기 아버지에게 대들어 똑같은 구도를 형성 하겠군. 아, 그러자면 아버지와 아들 사이 불화가 한 번은 조장되어야 하니까 플롯 포인트상 이쯤 되면 한 판 싸우겠구나. 그럼 화해는 어떻게 하지? 서로 심한 말 왕창 해놓고 서로 등 돌려 앉은채 잠시 쉬는 시간 가지면 또 자연스레 화해의 멘트 나오겠지. 그리고 놀랍게도 <스트레인지 월드>는 마치 정해진 신탁이라도 있는 것인양 그 뻔한 길을 그대로 뻔하게 걷는다.

물론 이는 <스트레인지 월드>만의 잘못은 아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동안의 디즈니 애니메이션들이 다 이런 식 아니었는가. 그러니까 이건 <스트레인지 월드>만의 잘못이 아니라, 지금까지 디즈니가 알게 모르게 쌓아왔던 업보라 하는 게 더 맞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비단 극중 부자 관계 관련 이야기에만 국한되는 건 또 아니다. 극중 등장하는 이상한 세계는, 새로운 세계를 다시 한 번 만들어 내야겠다는 제작진의 부담같은 것들이 너무 느껴진다. 스튜디오 사이의 경계는 분명 있었겠지만, 어찌되었든 디즈니는 픽사를 통해 장난감들의 세계와 옷장 건너편 괴물들의 세계 등을 거쳐 우리네 마음 속 세계까지 만들어왔다. 자체 제작한 애니메이션을 통해서도 동물들이 사는 대도시의 세계나 수퍼히어로 팀이 활공하는 일본+미국의 가상 세계까지 만들었었지. 그러다보니 <스트레인지 월드> 속 지하 세계는 이젠 일종의 강박처럼 느껴진다. "아~ 할 만한 건 이미 다 했는데 하나 더 새로 만들어야하네"라는 피로 같은 것도 삐져나오는 것 같고.

이같은 단점들과는 별개로 하나 더 짚고 싶은 게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이 영화의 PC 농도. 요즈음의 디즈니가 PC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이야 뭐 이젠 놀라운 소식도 아니건만, 제목따라 가는 건지 이상하게도 유독 <스트레인지 월드>는 그 냄새가 진하게 난다. 영화 시작하고나서 단 10여분 만에 영화는 흑인 여성과 결혼한 백인 남성 주인공을 보여주고, 또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게이라는 것 또한 들려준다. 그들이 키우고 있는 개는 다리가 하나 없는 장애견이며, 극중 등장하는 이 가상의 국가 대통령은 동양인. 

혹시나 오해를 살까 봐 말하는 건데, 당연히 백인 남성은 흑인 여성과 결혼할 수 있다. 그 반대도 가능하고. 또한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것도 역시 가능하며, 다리가 넷이 아닌 셋 달린 개 역시도 우리의 소중한 가족이 될 수 있다. 물론 영어 쓰는 나라에서 동양인이 대통령하는 것 또한 가능하지! 하지만 영화는 이 모든 것들을 굳이 굳이 굳이 넣었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영화 시작 후 단 10여분 만에 촤르륵 묘사해낸다. 그러니까 그 자체로 나쁘다거나 싫다는 건 아닌데, 이게 너무 초반에 몰려있다보니 그 의도가 너무 명백히 보여 좀 어색하고 웃겼다는 말. 제일 개그는 마초 히어로 할아버지가 25년만에 처음 만난 손자에게 연애 상담을 해주는데, 게이라는 게 명명백백하게 보임에도 그냥 쿨하게 넘어간다는 점. 영어 대사에서 손자는 분명 그 짝사랑 상대를 'He'로 지칭하기 때문에 할아버지가 그걸 모를 리 없다. 물론 거대 거북이 등딱지에서 살고 있는 가상 세계인데 그게 뭐 어색할까마는. 그런데도 또 주인공은 굳이 백인 이성애자 남성인 게 또 개그.

2022/11/29 10:35

쉬헐크 SE01 연속극


세계관 저쪽 끝자락의 이집트에선 세상의 운명이 걸려 한없이 무겁기만 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는 판국인데, 또 이쪽 미국의 LA에서는 이토록 한없이 가벼운 이야기가. 하지만 언제나 말했듯 장르의 다양화를 선도하고 있는 MCU 세계관이니 이 정도의 시트콤이 하나 나왔다는 것 자체는 너무나 반갑다. 데미지 컨트롤을 소재로 시트콤 만들거라더니만 질질 끌기만 하다, 그래도 결국 이렇게 하나 완성해내긴 해내는 구나. 

그러니까, 이 시트콤 포맷과 분위기에 강점이 있다는 사실. MCU 세계관을 배경으로 이런 거 한 번쯤은 보고 싶었고, 또 주인공이 법조인이다 보니 세계관에 등장한 여러 메타휴먼들을 소재로 생활감 있게 그 시트콤을 꾸렸다는 것 역시 의의 있다. 시리즈를 모두 정주행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이 특유의 가벼운 분위기를 싫어하는 입장이던데, 나는 그게 좋았음. 그래서였을까, 다들 가장 재밌게 여기던 첫번째 에피소드가 나는 제일 별로더라. 브루스 배너가 찬조 출연하는 그 미끼용 첫 에피소드 말이다. 뭐랄까 너무 핑계용 에피소드 같았던 거지. 쉬헐크는 이렇게 헐크가 됐고요~ 아, 그리고 여러분 수퍼히어로가 수퍼히어로랑 싸우는 거 좋아하시죠? 헐크 vs 쉬헐크 한 번 넣어 드립니다~-라는 느낌의 그 스탠스가 너무 숙제 같아서 싫었다. 

때문에 브루스 배너가 빠지고 난 뒤부터가 오히려 재밌더라. 주인공인 제니퍼는 적당히 매력있는 인물이고, 여기에 쉬헐크로서의 모습 또한 멋지다. 매 에피소드마다 그녀가 해결하는 사건들 역시 캐주얼하게 즐길만 했고, 무엇보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다시 만난 맷 머독의 액션 장면들은 하나 같이 다 애정할 수 밖에 없는 종류의 것들이었음. 그러니까 그냥 이 정도의 기조만 쭉 유지해줬어도 괜찮았을 터인데...

문제는 그냥 한없이 가볍기만 하다는 데에 또 있다. 그러니까 분위기가 가벼운 건 괜찮아. 근데 그 안의 인물들까지도 실없이 그래버리면 어떡하냐. 오리지널 캐릭터들 부터가 그렇다. 존나 이제 이 세계에서 초능력을 얻는 건 가벼운 접촉사고 정도 밖에 안 되나 보다. 딸이 수퍼히어로로 각성한 이후 함께하는 첫 가족 식사 자리인데 초능력 생긴 경위나 부작용 이런 건 걱정 하나도 하지 않는 가족. 이걸 쿨하다고 해야할지... 아무리 오리지널 헐크가 나온 집안이라 해도 그렇지 말이다. 아니, 이렇게 되면 <인크레더블 헐크>에서 브루스가 겪었던 존재론적 자기혐오는 대체 뭐가 되는 건데?

<인크레더블 헐크>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어보미네이션도 이러면 안 되는 거잖나. 팀 로스 씩이나 다시 데려와놓고 그냥 냅다 평화주의자로만 쓴다고? 힘에 대한 끝없는 갈망으로 뉴욕 할렘을 초토화 시키고 브루스를 거의 반쯤 죽일 뻔했던 그 양반이 이제와 요가와 명상으로 단련된 히피가 됐다는데 이걸 그냥 받아들여야만 하는 시청자 입장에선 그냥 어이가 털릴 뿐. 또한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에 이어 다시 등장한 웡. 웡이 개그 캐릭터가 되는 건 문제 없다. 원래도 개그 한 스푼 담당이었지않은가. 그런데 소서러 수프림 역할로서 망가지는 건 문제 있지. <닥터 스트레인지> 1편에서는 비욘세 노래를 즐길지라도 적당히 엄근진한 마법 도서관의 사서였는데 이제는 그냥 소파에 누워 밀린 드라마 보는 게 유일한 낙인 미드폐인 됐음. 이 정도 무게감이라면 호그와트에서도 안 받아줄 듯.

이 방면에서 제일 손해를 본 건 역시나 데어데블이겠지. 물론 앞서 말했듯 그에게 멋진 순간들이 부여 되기는 한다. 한 두 세 번 정도...? 그러나 그 외에는 몽땅 잘못된 이미지 변신. 지난 세 시즌의 이미지를 오마주하려 복도에서 깡패들과 조우하는 장면. 당연히 팬으로서 기대했지. 하지만 갑자기 쉬헐크가 난입해 냅다 정리 해버린다. 다만 아쉽더라도 이건 이해함. 어쨌거나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데어데블이 아닌 쉬헐크니까. 그러나 모든 사건이 마무리 된 이후 원나잇 보내는 건? 데이트하는 건? 맷 머독이 지금까지 쌓아왔던 이미지는 다 어떻게 된 거냐? 게다가 수트 입고 벌건 대낮에 그냥 동네 돌아다님. 이 새끼 지난 세 시즌의 맷 머독 맞죠? 스크럴이 변장한 거 아닌 거죠?

그리고 여기에 화룡점정이 되는 마지막 에피소드의 클라이막스 해결 방식. 한 시즌 내내 데드풀 마냥 제 4의 벽을 깨며 시청자들과 소통해왔던 쉬헐크.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가, 갑자기 그녀는 화면 밖으로 이탈 해버린다. 디즈니 플러스의 메인 화면으로 넘어오더니, 끝내는 MCU를 총괄하는 케빈 파이기까지 만나 모든 스토리라인들을 정리해달라 요구하는 그녀. 제 4의 벽을 깨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애초 원작에서 부터 그런 캐릭터라고 하지 않았나. 그러나 알고보면 이 모든 것들이 다 그저 영화와 드라마 속에서의 일이었을 뿐-이라는 것을 대놓고 드러내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렇게 되면 그동안 세계관 내에서 있었던 모든 위기들과 비극들은 그저 한낱 대중문화 속 이야기와 설정들일 뿐이었다는 걸 드러내게 되는 거잖아. 엉엉~ 토니 죽어서 슬퍼~, 네~ 걱정 마세요. 실은 진짜로 죽은 게 아니라 담당 배우 몸값이 너무 높고 오래해서 하차 시킨 거거든요~ 씨바 이건 기만 아니냐? 이걸 드러내지 않는 게 암묵적인 룰인 걸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바로 그 데드풀조차 알고 있었는데 정작 제작진들은 몰랐나보네. 

캡틴 아메리카가 동정이었는지 아니었는지로 농담 따먹기하는 거 그냥 그러려니했다. 별다른 설명없이 갑자기 툭 튀어나온 헐크의 아들? 씨바 그럴 수 있지. 하지만 이딴 식으로 나름 쌓아왔던 갈등들을 일거에 풀어버리는 것도 모자라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을 모두 한낱 '이야기'에 불과하게 만든 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스러운 결말은 황당하기 그지없다. 이렇게 되면 토니의 죽음과 캡틴의 은퇴를 보며 엉엉 울었던 팬들이 좀 머쓱 해지지 않냐? 그거 두고 혹여라도 이거 다 영화일 뿐인데 뭘 또 그렇게까지 울었어-라 답하면 그건 또 그거대로 오만한 거고.

2022/11/28 13:23

올빼미 극장전 (신작)


남한산성에서의 굴욕 이후 8년, 인조의 아들 소현세자가 청나라에서의 오랜 볼모 생활을 마치고 조선으로 돌아온다. 오랑캐라고 여기던 자들의 땅으로 넘어가 고생도 숱하게 했었지만, 그럼에도 신문물을 통해 넓혀진 식견으로 조선을 구하고 싶었던 세자. 그리고 왕과 세자의 관계를 떠나 그저 아버지의 아들로서 인조에게 환영받고 싶었던 세자. 하지만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소현세자는 그 뜻을 제대로 펼쳐보기도 전에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청나라와 조선, 왕과 세자, 그렇게 지각변동하는 거대한 세계와 그 역사. 마냥 휩쓸려 나갈 수 밖에 없을 것만 같은 이 정국 속에, <올빼미>는 아주 작은 한 개인을 혈에 침 꽂듯이 꽂아넣는다. 그렇게 맹인 침술사 경수는 요동치는 역사의 한 가운데 서게 된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고 한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것은 이미 일어나버린 일이기 때문에. 헌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주인공 경수는 힘을 얻는다. 그 누구도 바꿀 수 없는 거대한 역사적 흐름이지만 그럼에도 그 안에서 비틀거릴지언정 더듬어서라도 옳은 선택을 해주십사, 경수를 통해 영화는 읍소한다. 사실 경수가 궁에 들어간 것도 별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입신양명에 대한 꿈은 조선의 장애인 인권을 수호하기 위해, 또는 의술로써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구해내기 위해서 따위의 거창한 것이 아니었지 않은가. 그는 그저 몸이 아픈 동생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의술을 공부하고 또 궁에 들어섰을 뿐이다. 그저 그뿐이었다.

그랬던 그가 소현세자에 의해 일종의 개안을 하며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우리는 이미 일어난 역사를 바꿀 수 없다. 아니, 어쩌면 앞으로 일어날 역사들 조차 바꿀 수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제아무리 용을 써도 이미 패배할 게 뻔한 전쟁에서 갑작스레 극적인 승리를 거머쥘 수는 없을 것이며, 또 제아무리 기를 써도 이미 죽을 게 뻔한 사람을 죽음에서 구해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역사의 큰 물줄기를 뒤틀 수는 없을 것이다. 그건 경수 또한 마찬가지고. 하지만 영화는 거기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다 말한다. 한 개인의 노력으로 역사가 쉬이 바뀔 수는 없다는 것을, 이미 <올빼미> 또한 알고 있다. 그래서 영화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세상을 구하고 역사를 바꾸려 하지 말고, 딱 한 사람을 구하고 딱 한 번의 옳은 선택을 해달라고. 궁을 거의 빠져나왔던 경수가 다시 발걸음을 돌려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뜀박질을 시작했던 것은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을까. 경수 입장에서는 그저, 그것이 옳은 선택이었기 때문에. 

<올빼미>는 군데 군데 아쉬움이 느껴진다. 핵심 사건을 전달하기 위해 지나치게 대사에 의존하는 점, 간간히 등장 하는 유머들 대부분이 불발이라는 점, 또 영화의 에필로그가 지나치게 순진하다는 점 등이 아쉽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빼미>는 시종일관 관객들을 긴장 시킨다. 그를 위해 가져온 주맹증이란 설정을 바닥까지 싹싹 긁어 써먹고 있고, 또 인물들에게 호감을 심어줌으로써 관객들을 감정적으로 연동시킨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단 무력감과 패배주의의 세상에서, 조금 뻔한 말이더라도 바로 한 치 눈앞의 옳은 선택만 하라고 사근사근 부추기는 영화의 태도가 21세기 우리를 조금이나마 일으켜 세운다. 역사를 꺾을 수는 없지만 한 개인을 달랠 수는 있다. 인의예지, 그 당연하지만 어려운 마음의 태도가 구원이 될 수 있다는 것. 유학을 숭상 하던 나라의 왕은 지키지 못했던 그 네 글자를, 소위 아랫것으로 분류 되던 궁 변두리의 소경은 읽어내다못해 가슴에 새겼다. 

2022/11/28 11:27

동감, 2000 대여점 (구작)


리메이크된 2022년의 <동감>을 예상외로 재미있게 보았다. 그러나 그건 내가 원작 영화를 보지 않았기 때문이겠지-라는 의심 역시 자꾸만 피어올랐다. 그래서 봤지, 2000년의 <동감>. 대체 2022년의 <동감>은 2000년의 <동감>에게 얼마나 큰 빚을 지고 있는 거야? 그런데 막상 보니 빚진 건 맞지만... 그래도 잘 갚은 것 같단 생각이 듦. 

한마디로, 오히려 리메이크판이 조금 더 좋게 느껴지더라. 대부분의 내용은 완전히 똑같다. 물론 세부적인 차이야 있지. 일단 시대 배경이 70년대와 00년대로 퇴각했고, 남녀 사이의 시간 속 위치가 달라졌다. 그외에도 자잘한 변경점들... 그중 제일 큰 건 역시나 결말일 것. 2022년의 <동감>이 따뜻하고 친절하되 너무 나이브한 결말이었다면, 2000년의 <동감>은 조금 더 성숙하고 그래서 더 비정하게 느껴지는 결말을 선사한다. 딱 그 정도의 차이랄까?

문제는 2000년의 오리지널이 너무 빛바랜 느낌이었다는 것이다. 개봉 당시엔 어땠을지 몰라도 어쨌거나 영화는 반쯤 영속성을 띈 매체 아닌가. 2022년 현재에 와서도 세련된 2000년의 수많은 다른 영화들이 있을진대, 굳이 촌스럽고 올드한 느낌이 강한 <동감>에 동감하기란 조금 어렵더라고. 여기에 배우들의 그 때 당시 고정된 연기 폭도 조금 난감하고. 

분명 오리지널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니까 또 리메이크가 나올 수 있었겠지. 하지만 적어도 나는, 오리지널 보다 리메이크의 손을 아주 조금 더 높게 들어주고 싶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오리지널 <동감>은 유지태 보는 재미 정도 밖에 없었음. 

2022/11/27 15:51

동감 극장전 (신작)


가장 먼저 짚고 넘어가야할 것. 나는 리메이크의 오리지널이 되는 2000년 버전의 <동감>을 보지 못했다. <봄날은 간다>와 <시월애> 등, 작금의 한국 영화판과는 다르게 멜로 드라마 장르가 강세였던 그때 그 시절의 <동감>.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마지 않는 바로 그 <동감>. 그런데도 나는 그 <동감>을 지금까지 보지 않고 있었다. 별다른 이유는 없고, 세상엔 <동감> 말고도 빨리 봐야하는 영화들이 많았으니까. 서론이 길었는데 이만 각설하고, 여하튼 그러다보니 나는 이 영화의 내용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 상태에서 관람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난 뒤 크레딧이 올라갈 때 몸을 극장 의자에 더 파넣으며 했던 생각은...... '아니, 이거 엄청 흥미로운 이야기잖아?'

대충 만든 또 하나의 그저 그런 리메이크작일 거라 생각했었는데, 그냥 그렇게 퉁치고 넘어가기엔 영화가 품고 있는 핵심 모티프가 너무 흥미로웠다. 서로 20여년의 간격을 두고 과거와 미래 속의 인물들이 전파 무전기를 통해 연결되는 거? 아니, 그거 말고. 내가 혹한 부분은 거기서 좀 더 들어가, 그 전파 무전기를 통해 알아버린 미래의 상황에 대한 것이었다. 90년대 끝자락을 살아가고 있는 용은,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된 지금의 사랑이 20여년 뒤엔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심지어 그냥 사라지고 마는 것도 아니고, 현재의 가장 친한 내 친구가 미래엔 지금 내 사랑의 어엿한 남편이라니! 게다가 그 사이에서 딸도 낳았다니! 나는 그 미래를 알아버린 용의 모습에서 이 영화의 매력을 느꼈다. 

예컨대 그리스 비극 속 주인공과 같은 상황인 것이다. 영웅은 현재의 역경을 헤쳐나가기 위해 신탁을 듣는다. 그런데 신탁은 미래 그에게 엄청난 불행이 있을 거라 예언한다. 그러자 영웅은 그 불행한 미래를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데, 결과론적으로는 그를 피하기 위해 했던 그 수많은 발버둥들이 결국 영웅을 그 불행으로 이끈다. 그렇게 파멸하는 영웅의 이야기. 그리고 <동감>의 용이 바로 그러하다. 용은 20대 초중반에나 느낄 수 있는, 그래서 때로는 그것이 일종의 특권처럼 여겨지기도 하는 그 나이대의 풋풋한 사랑을 느낀다. 콩닥콩닥하는 마음으로 고민하기를 수백번째, 결국 그는 그녀에게 수줍은 고백을 건네게 되고. 성공하게 되고. 그렇게 그 사랑은 영원할 것처럼만 느껴지고. 

물론 20대를 훌쩍 넘겨버린 우리는 다소 꼰대 같은 생각이라 할지라도, 용의 그러한 바램이 귀엽게 헛된 것임을 안다. 20대 초반 첫 연애 상대와 결혼까지 골인해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함께 하는 사람이 세상에 대체 몇이나 되겠는가. 아주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사실상 거의 없다고 봐야지. 그런데도 우리 용이는 그걸 모른채 첫 연애의 단꿈에 빠져있네. 귀엽다, 귀여워. 당연히 우리는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차치하고 보더라도, 용이 겪는 모든 일들은 사뭇 비극적이다.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지금의 이 사람이, 미래에는 내 옆에 없구나-란 생각은 조금씩 용을 갉아먹는다. 그래서 그 역시도 그리스 영웅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 불행한 미래를 막아보기 위해 나름 동분서주한다. 조금 더 여자친구를 붙잡아보려고 하고, 미래에 그녀의 남편이 된다는 내 동성친구를 주먹으로 내려치기 까지 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이 역시도 결과론적으로는 그 미래의 불행으로 가는 속도를 그저 가속화 시킨 것일 뿐, 그 자체의 방향까지 되돌리지는 못하는 행돌들인 것이다. 

바로 그러한 <동감>의 순간들이 흥미로웠다. 아, 이 역시도 당연히 2000년판 <동감>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설정이겠지. 안 봐도 블루레이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찌되었든 이 이야기를 내게 처음으로 전달한 건 지금의 2022년판 <동감>이니까. 그 <동감>이 내게 전한 그 핵심 모티프,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지 못한채 빗속을 헤메는 용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짠했다. 원래 멜로 드라마라는 건, '운명'을 무기화하는 장르 아니던가. 언제, 어디를 가더라도 우리는 결국 다시 만날 거야-라는 무기. <첨밀밀>이나 <시간 여행자의 아내> 등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동감>은 반대로, 그 '운명'이 주인공들에게 가혹한 체벌로써 작용한다. 아, 대체 우리는 운명의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추어야 한단 말인가. 

2022/11/27 15:32

살인 간호사를 잡아라 극장전 (신작)


아무래도 자체 제작한 영화 <그 남자, 좋은 간호사>를 지원사격하기 위한 넷플릭스의 후방지원 전략 차원에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영화가 아니었을까. 영화는 약 400여명의 죽음에 연루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찰스 컬렌의 실체를 드러내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영화 감상 후 접한 다큐멘터리였다보니 대충 어떻게 돌아갈 판인지 다 알게 된 상황이라 그 점에서 약간 김 샌 건 있었다. 물론 이건 실제 이야기를 옮긴 다큐멘터리 포맷이라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겠지만... 하여튼 간에 <살인 간호사를 잡아라>는 실제 있었던 사건을 성실히 뒤쫓고, 그에 연관되어 있던 사람들과 수차례 나눴던 인터뷰 내용들을 풀어 이야기를 전개 시켜 나간다. 바로 그 점에서는 <그 남자, 좋은 간호사>의 부록으로써 미덕이 있었음.

다만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특히 그 중에서도 사회 범죄 분야 다큐멘터리에서 높은 실적을 보여주고 있는 넷플릭스 자체 제작 작품인 것 치고는 조금 루즈하더라. 지금까지는 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을, 더 흡인력 있게 만들어왔던 넷플릭스였는데 어째 살인 간호사라는 엄청난 사건을 두고는 다소 밍밍하게 만들어놨네. 물론 같은 사건을 그린 영화가 훨씬 더 좋았기 때문에 그랬던 것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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