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31 23:59

2019년 대문짝 객관성 담보 불가


2019/11/12 04:24

더 코브 - 슬픈 돌고래의 진실, 2009 대여점 (구작)


나온지 어느새 딱 10년이다. 10년 전 이 다큐멘터리를 본 뒤로, 난 돌고래 쇼를 마음편히 볼 수 없었다. 

다큐멘터리가 찍는 이의 연출을 모조리 배제하고 오로지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을 담아낸다는 것은 다 개뻥이다. 극영화에서 조차, 연출의 가장 첫 시작은 카메라를 어디에 둘 것인지로부터 시작된다. 카메라를 어딘가에 위치 시킨 뒤, 그 위치에서 어떤 피사체 혹은 사건을 담아내는 것. 그것부터가 연출이기에, 다큐멘터리라고 한들 모든 것이 다 사실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영화는 다큐의 그러한 속성을 오히려 맹렬하게 이용한다. 일본의 작은 어촌 마을에서 벌어지는 비밀스런 돌고래 학살. 그 진상을 담기 위해 감독과 제작진은 이른바 그들끼리의 '오션스 일레븐' 팀을 꾸리고 하이스트 영화의 주인공들 마냥 행동한다. 거기서 오는 재미가 큰 작품인데, 재밌게 보면서도 참 기묘한 기분이다. 다큐멘터리임에도 장르 영화 뺨치는 이야기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한 방. 그리고 이번엔 완전히 반대의 시각으로, 장르 영화를 보는 듯한 쾌감을 받는 중에 머리 한 번 굴려 생각해보면 '아, 이거 진짜 있었던 이야기였지!'라는 지극히 다큐적인 감상이 도출되어 결과론적으로는 극영화 이상의 서스펜스와 스릴을 준다는 점에서 두 방. 

일본이라는 나라의 이상한 속성이 다시 한 번 관찰되는 영화다. 지금 시국과 우리 나라와의 역사적 관계를 모두 따져본다면 일본이라는 나라를 곧이 곧대로 좋게 볼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한 국가의 모든 사람들을 싸잡아서 욕하는 것도 다른 의미로 무식한 방법이고. 허나 이 영화를 본 뒤엔 어쩔 수 없이 그런 생각이 들게 된다. 일본 사람들은 죄다 변태거나, 위선자거나. 어쩌면 그 생각이 맞을지도 모르고, 아니라해도 최소한 타이지의 그 인간들 만큼은 분명히 그럴 것이리라.

후반부에 펼쳐지는 살육의 대현장. 비유적 표현이 아닌, 정말 피로 물든 바다를 볼 수 있다. 처음 봤을 때 거기서 거의 전율이었던 기억이 난다. 그거 보고 소름 안 돋기는 힘든 거지. 하지만 오랜만에 다시 보니 마음을 울리는 장면은 역시 가장 마지막 장면이다. 맞다. 세상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설사 세상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 해도, 그 안에서 잘못된 것을 바꿔나가기 위해 꿈틀대는 그 움직임은 아름다운 것 아니겠는가.

2019/11/04 15:27

터미네이터 - 다크 페이트 극장전 (신작)


이 영화는 과연 전편으로부터 28년만에 돌아온 영화인가? 아니면 그냥 4년만에 돌아온 영화인가?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였던 <터미네이터2 - 심판의 날>. <터미네이터 - 다크 페이트>는 그 영화의 직계이자 적통임을 천명한다. 근데 왜 이러냐. 암만 봐도 난 <심판의 날>은 커녕 그 이후 나와 흑역사 취급받고 있는 영화들 보다도 더 못하게 느껴지던데.

스포일러의 날!

<스타워즈 에피소드 8 - 라스트 제다이>를 개인적으로 좋게 봤음에도, 그 영화에 실망한 코어 팬들의 감정에도 역시 공감한다. 그들의 실망감은 타당하다. 지금까지 사랑해왔던 인물들과 설정들이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라는 미명 하에 싸그리 갈려나가는 꼴을 봤으니 빡칠 만도 하지. 근데 딱 <다크 페이트>가 그렇다. 더 웃긴 건 이 세계를 낳은 것이나 다름없었던 이가 돌아와 이 꼴을 만들었다는 거임. <라스트 제다이>로 치면 감독이 라이언 존슨이었던 게 아니라 조지 루카스였던 셈.

영화 시작하자마자 에드워드 펄롱의 얼굴을 한 존 코너를 죽여버리는 충공깽한 전개. 근데 이 아이디어를 제임스 카메론이 낸 거라며? 이 양반은 <에이리언3>에서 영화 시작하자마자 전편의 히로인인 뉴트 죽여버리는 설정 당시에 엄청 반대 했다던데 왜 <다크 페이트>에선 그딴 아이디어를 낸거지? 

거기서부터 정이 그냥 확 떨어졌다. 간신히 지켜낸 존 코너를 초장부터 그렇게 죽여? 아, 물론 충격요법도 있었고 나름 새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 전개 방식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냥 정 떨어져버려서 그 이후 전개는 어떻게 되든 별 관심 없게 되어버림. <라스트 제다이>는 그나마 무언가 새로운 걸 보여주기라도 했었다. 욕을 먹었을지언정, 새로운 시도를 했고 새로운 전개를 꾸려내려 노력을 했었다. 허나 <다크 페이트>는 초반에 존 코너를 죽여버린 것이 무색하게도, 이후 전개가 <심판의 날>과 똑같다. 존 코너라는 이름을 가진 캐릭터를 죽인 것일 뿐, 결국 그 존 코너 역할을 대신할 대니 라모스를 그냥 만든 것 아닌가. 초장부터 존 코너 죽였으면 이후로는 그냥 앗싸리 초월전개 해버렸어야지. 결국은 에드워드 펄롱의 자리를 나탈리아 레이즈라는 배우가 대신한 것 뿐.

각본의 문제가 있다. 뻔한 건 둘째치더라도, 너무 못 쓴 각본이다. 너저분하다. 필요없는 게 무척 많고, 개연성 없이 작위적으로 설정된 부분 역시 다수다. "우린 이제 꼼짝 없이 죽게 생겼군!" "걱정 마!"라고 하며 생면부지의 사라 코너 등장. /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밀입국 해야하는데 어떡하지?" "걱정 마! 우리 삼촌이 밀입국 브로커라구!" / "놈이 너무 강해. 강력한 에너지 무기가 필요하다구!" "걱정 마,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그거 갖고 있는 장교 있음." / "우리가 무단탈취한 수송기 주변에 전투기가 떴어!" "걱정 마! 감히 우리를 격추 시키지는 못 할테니까." / "이런 젠장! 내 주사기를 폭발한 비행기에 두고 왔어! 그거 없으면 난 끝장인데!" "걱정 마, 칼이 챙겨 왔다구!" / "소령한테 뜯은 에너지 무기가 박살났어!" "걱정 마! 내 몸 안에 그거에 필적하는 에너지체가 있다구!" 시발 영화가 내내 이런 식이다. 존나 작위적이고 편리한 각본이다. 이 정도면 각본가들 태업한 거 아니냐고. 뭔 전개가 필요할 때마다 원래 그런 거 있었어!-로 떼울 각본이면 결코 잘 쓴 각본이 아닌 거라고.

각본은 그렇다쳐도, 오락 영화로써 액션 시퀀스에도 문제가 크다. 영화의 첫 카체이스. 시리즈의 전통을 계승하긴 했다. 거대한 중장비로 펼치는 자동차 추격전이라는 점에서. 허나 그 박력감과 실재감은 심지어 <터미네이터3>의 그것에도 미치지 못한다. 가장 돈을 많이 들인 듯한 추락하는 수송기 내부 액션 시퀀스. 그것 역시도 최근 많이 본 그림들 아닌가.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서, 이미 <미션 임파서블 - 로그네이션>, <미이라>, <램페이지>에서 다 했던 것들이잖아. 심지어 그 영화들이 더 잘했음.

악역은 문제가 무척이나 큰데, 일단 이번 터미네이터의 가장 큰 특징은 다름 아닌 친절하다는 것. 재밌는 접근법이긴 하지만, 그다지 재미있게 살려내지도 못했고 배우의 서글서글하고 착한 외모 때문에 카리스마 역시 증발 됐다. 등장할 때마다 모습도 똑같음. 영화의 배경이 이동하면 몇몇 경비들이 죽어있고, 그 옆에서 이 터미네이터가 컴퓨터하고 있는 모습으로 반복. 캐릭터의 액션 설계도 그다지. 사실 이미 나올 건 다 나왔었지. <심판의 날>에서 액체 금속, <터미네이터3>에서는 조금이라도 차이를 주고자 외형을 여성형으로 변경 했었고, <미래 전쟁의 시작>은 제목 그대로 미래 전쟁을 다루다보니 각양각색의 터미네이터들이 몰려 나왔었다. 심지어 <제네시스>에선 나노 터미네이터도 나왔잖나. 때문에 제작진 측에서도 아마 골머리를 싸맸을 것이다. 어떤 새로움을 추가해야하나- 하고. 결국 그들이 가지고 나온 건, 액체 금속 터미네이터이되 분신술 기능이 있다! 정도였던 것 같은데, 이것 역시 효과적으로 사용 되었는가는 의문.

오랜만에 시리즈로 복귀한 사라 코너 역의 린다 해밀턴. 마케팅의 중심이 되어 있는 것 치고는 별다른 활약이나 인상적인 뉘앙스가 별로 없다. 주지사님의 T-800의 설정엔 실소만 나옴. 이제서야 존을 죽인 것을 후회 한다고? 아니, 막말로 그 말도 안 되는 심경적 변화 설명하려고 T-800 가족 붙여준 거 아니냐? 그 아들과 아내에게 무슨 캐릭터성이 있냐. 조연도 아니고 단역이던데, 그냥. 알고보니 T-800이 후회하고 있어-라는 거 하나 전달하려고 그 두 캐릭터 막 집어넣은 거지. 봐 봐, 잘 쓴 각본 아니라니까.

말은 무슨 적통이네 뭐네 하는데, 정작 창조주가 돌아와도 결과물이 이렇다면... 솔직히 까놓고 말해 <터미네이터3>, <미래 전쟁의 시작>, <제네시스>가 아주 근소한 차이로 더 재미있었다. 최소한 킬링타임은 해주는 영화들이었으니까. 근데 이 영화는 보느내내 힘들기만 했음. '우린 메이저리그다!'하며 만들어진 영화인데, 어째 만듦새는 여전히 마이너리그. 원작자가 돌아왔는데도 여전히 너저분한 팬픽같다.

2019/11/04 14:56

버티고 극장전 (신작)


고층 빌딩 속 회사 생활이라는 갑갑한 현실에서 고소공포증과 현기증에 시달리는 여자. 그리고 우연히 그 여자와 조우하게된 고층 빌딩 외벽 청소부 남자. 여기에 제목이 '버티고'. 알프레드 히치콕의 <현기증>을 떠올리게 하는 제목이란 점에서 사소한 불만이 생기지만, 그럼에도 이 정도면 정말 괜찮은 설정에 잘 지은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설정은 현실적이면서 운명적이고, 제목은 다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점에서 꽤 잘 기획된 영화라는 거지.

근데 시발 설정과 제목만 좋으면 뭐하냐고. 영화는 결국 밑도 끝도 없이 슬픈 일기장 같다. 끝없는 자기연민의 늪 같은 영화. 얼마 전에 <벌새>를 보곤 비슷한 감상을 남겼었지. 테크닉과 스타일이 뻔한데, 거기에 내용을 작가의 회한만으로 꾹꾹 눌러담아 보는내내 지치는 느낌 같았다고. 나름 소신 발언이었다면 소신 발언이었다. 근데 이 영화도 똑같다. 아니, 어떻게 보면 <벌새>보다 더 해.

열려라, 스포 천국!

세상의 모든 불행이 주인공에게 달려든다. 눈치 보느라 바쁜 직장 생활, 잦은 야근과 회식, 매일 같이 걸려와 남탓 넋두리하기 바쁜 알콜 중독 엄마의 전화, 비밀스러웠던 사내연애의 실패, 동성 섹스에 따른 연인의 외도, 회사 내에 퍼진 자신의 섹스 동영상, 직장 상사의 성추행, 친한 동료의 재계약 실패, 여기에 현기증에 따른 구토와 보청기 착용까지.

'이 세상 너만 힘들게 사냐?'라고 주인공에게 따져 묻고 싶은 게 아니다. 주인공이 불행한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허나, 관객으로서 최소한 그 주인공에게 공감할 수 있게끔 만들어줘야지. 영화가 너무 피로하다. 관객들이 주인공에게 채 몰입하기도 전에 이 세상 모든 불행을 주인공에게 쏟아부어버리니, 이입하기도 전에 지친다. 타자화 되어버린다. 그러다 보니 이 모든 게 너무 힘들다. 심지어 영화적 재미도 없어. 그렇게 되니 또 지루해지고 몰입이 더 안 돼. 이 악순환의 사이클.

주인공은 내내 수동적인 태도로 삶에 임한다. 상사가 하라는대로, 의사가 하라는대로, 친한 동생이 하라는대로, 남자친구가 하라는대로, 심지어는 삐뚤어지고 싶어 찾은 클럽에서도 다른 남자가 하라는대로. 이렇게 타인이 하라는대로 수동적인 삶을 살던 여자가, 영화 후반부에 자기 스스로를 위한 선택을 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영화적인 성장 아니겠어? 그런데 주인공이 이 영화 결말부에 하는 유일한 선택이 무엇인가? 자살이다. 아니, 엄밀히 따지면 실패했으니 자살미수라고 해야할까. 어쨌거나 자살은 자살이다. 더 웃긴 건 자살만 해도 환장할 판인데 혼자 옥상에서 뛰어내리거나 연탄 가스로 죽으려 했던 게 아니라는 거다. 수호천사 마니또처럼 자신을 지켜봐왔던 빌딩 외벽 청소부에게 가서, 외벽 청소용 트레이에 자신을 태워달라고 한다. 그리고 시발 거기서 떨어져. ............자살도 하면 안 되겠지만, 너가 거기서 그렇게 떨어져 죽어버리면 그 남자는 어떻게 되는 거냐......

다 떠나서, 영화적 재미가 전무하다. 사내 연애의 스릴감이나 멜로 드라마로써의 알콩달콩함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직장 생활을 다룬 영화로써도 영 뻔해서. 그냥 존나 힘들고 우울한 주인공의 브이로그 보는 기분이다. 아, 요즘 이런 영화가 왜 이렇게 많지.

2019/11/04 14:39

배트맨 - 허쉬 극장전 (신작)


원작 그래픽 노블이 가지고 있던 초월적인 분위기. 작화가 화려한 아메리칸 코믹스 중에서도 유난히 눈이 부셨던 원작. 어떤 사람들은 결말부의 반전이 너무 뻔하고 작화 역시 지나치게 화려하다-라며 불호의 메시지를 표하기도 했었지만, 그럼에도 난 원작을 정말 좋아했다. 때문에 이 애니메이션에도 기대가 꽤 컸었는데...

열려라, 스포 천국!

일단 작화가 원작을 못 따라간다. 물론 안다. 이것은 DC 애니메이티드 시리즈 세계관의 일부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그 이전 작품들과의 비주얼적 일관성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거. 하지만 다른 작품도 아니고 동명의 원작을 리메이크 하는 건데! 짐 리가 표현해낸 원작의 초월적 분위기에는 필적하지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 힘을 줄 수는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뭐니 뭐니해도 가장 아쉬운 부분.

문제는 작화풍만 다른 게 아니라는 거다. 결말의 반전이 확 바뀌었다! 본 작품의 최종 흑막인 허쉬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 하나만으로 달려가는 작품인데. 그 허쉬의 정체를 바꿀 줄은 꿈에도 몰랐다. 원작을 읽은 사람 입장에서는, 예상했던 결말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1차적 충격을. 그리고 그 바뀐 결말이 기존 결말보다 더 구리다는 점에서 2차 충격.

허쉬의 정체가 리들러였던 것은 크나큰 실책이다. 일단 리들러라는 기존 캐릭터의 고유성과 일관성을 박살내 버리는 전개이기도 하거니와, 이 에드워드 니그마가 허쉬로 각성하게 된 계기와 과정이 너무 단순하며 억지다. 베인도 아니고, 리들러가 라자러스 핏에 몸을 담근다?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기왕 할 거면 설득력 있게 잘 했어야지. 지금 버전은 너무 후루룩 아니냐고.

이거 한 시간 반 동안 볼 바엔 정발된 두 권짜리 원작 다시 정주행하겠다. 원작보다 폼도 떨어지는데 결말까지 이렇게 쌉구리면 어쩌라는 거냐고. 가뜩이나 원작의 그 결말도 뻔해서 좋은 결말 아니었는데, 그것보다 더 밑바닥이 있다는 것만 증명한 셈.

2019/10/31 21:46

판소리 복서 극장전 (신작)


포스터와 제목만 보곤, 신비로운 자신만의 비기로 개나 소나 다 줘패고 그걸로 권투계 접수하는 스포츠 영화인 줄 알았다. 자진모리 장단이나 휘몰이 장단을 타며 리듬감 넘치는 잽과 훅으로 사각의 링 제패하는 영화인 줄 알았다고. 막상 보니 그런 영화는 아니었던 걸로. 기대했던 것처럼 화려한 액션과 신비로운 잔기술로 승부하는 영화가 아니었다. 영화는 그저, 붙잡을 수 없는 시간의 흐름에 덩달아 떠내려 가는 것들을 나직하게 이야기하고 싶었을 뿐.

제목에서부터 드러나는 판소리와 복싱이 비주류 문화라고 이야기 하면, 아마 국악협회와 권투협회에서 현피 제안 들어오겠지. 허나 솔직히 말해서, 우리 주변 사람들 중 판소리와 복싱 둘 중 하나라도 하는 사람이 어디 흔한가? 이미 영화가 말하고 있듯, 소리꾼들은 사라졌고 복서들은 UFC 등의 이종격투기에 밀려난 실정인데.

영화는 판소리와 복싱을 쌍두마차로, 시간과 시대의 흐름에 잊혀지고 무뎌지고 또 버려진 것들을 추억한다. 거기엔 사람들이 더 이상 필름 카메라를 쓰지 않아 문을 닫게된 낡은 필름 현상소가 있고, 이젠 공장에서 생산하지 않아 고장나도 부품 수리비가 더 드는 브라운관 TV, 재개발에 밀려 사라지는 오래된 동네, 누군가에게 버려진 유기견, 그리고 나이 들고 병이 든 할머니가 있다. <판소리 복서>는 나름의 호흡과 리듬으로 그 오래된 것들을 조금씩 보듬는 영화다.

그런데 그 특유의 호흡이 다소 느리다는 건 감상자에 따라 단점이 될 수도 있겠다. 종종 실소 35% + 현웃 65% 정도의 애매한 비율을 가진 유머들도 있긴 하지만 대개는 그냥 풉-하며 지나가게 된다. 그리고 어쨌거나 스포츠 영화의 탈을 쓰고 있는 건데, 바로 그 장르의 쾌감을 조금이라도 주지 않는다는 것은 꽤 치명적. 만드는 사람들이야, 원래 복싱이 메인인 영화가 아니다-라고 변명해봤자 어떡해. 이미 스포츠 영화처럼 마케팅 되었는 걸. 기대 포인트를 잘 못 잡았다고 관객을 혼낼 순 없는 것이다.

상술했듯 여러 단점들이 있는 영화지만, 그럼에도 어떻게든 흘러가는 것들을 붙잡으려드는 주인공의 짠내 나는 모습에 살짝 뭉클함을 느낀 영화다. 대신 막판에 리얼 판소리 복싱 한 번만 존나 신나게 보여줬다면 더 좋았을 것을.

2019/10/31 21:23

녹터널 애니멀스, 2017 대여점 (구작)


성격 차이로 갈라섰다기엔 그 모든 것이 에드워드가 느끼기에 너무 잔혹했다. 언제나 그의 꿈을 응원해줄 거라 믿었던 그녀는 냉정하고 뾰족한 평가로 에드워드의 소설을 갈기갈기 찢어댔고, 함께 일구고 꾸려나가자던 왜소하고 얇은 집에 대한 약속은 지갑 두껍고 얼굴 낯은 더 두꺼운 바람둥이에 의해 무너졌다. 제 아무리 양보해 아내가 바람나 이혼했다고 스스로의 자존심을 갈구해봐도, 결국 그 끝의 치명상은 그녀가 멋대로 낙태해 지운 나의 아이 때문 아니었던가. 이쯤 되면 장르 영화인데도 에드워드가 수잔을 칼로 안 찔러 죽인 게 신기할 지경이다.

그러나 칼 대신 정성껏, 그리고 한(恨)껏 써낸 소설을 통해 에드워드는 수잔에게 복수한다. 나의 입장에서 쓴, 그리고 내가 당했던 일들에 대해서 쓴 소설을 그녀에게 선물한다. 그녀는 그의 귀기가 서려있는 것도 모른채 소설을 읽고, 독자로서 너무도 당연히 주인공에게 몰입한다. 아-, 그 때 그가 느꼈던 감정과 상처는 이런 것이었군. 조금 늦었지만, 그래도 직접 만나 내가 그 아린 마음을 어루만져주어야지. 허나 어림도 없지. 그는 약속 장소에 끝내 나오지 않았다. 그녀에게 그녀 자신에 대한 혐오감만을 한껏 부추겨 놓고, 끝내 그걸 해소해주지 않았다. 존나 작가다운 복수라 말할 수 밖에.

외도에 낙태까지. 에드워드가 수잔을 미워할 만한 이유는 세고 셌지만, 그럼에도 그것 때문에 몇 달 혹은 몇 년에 걸쳐 썼을 소설로 복수를 준비했다는 것. 에드워드의 그 계획은 짐짓 무모해보이기도 하고 심지어는 다소 찌질해 보이기도 한다. 나야 충분히 해볼만한 복수였다- 라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몇몇 관객들은 좀 많이 나간 것 같다고 불평하더라. 뭐, 그렇게 느낄 수도 있지.

그럼에도 그 계획의 크기를 차치하고 본다면, 존나 세련되고 멋진 복수인 것은 맞다. 자신의 직업이자 꿈이었던 것으로 과거 그 직업에 대한 꿈을 짓밟았던 사람에게 날리는 강력한 어퍼컷. 작가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릴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집필할만큼 충분한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하여튼 작가라는 게 본질적으로는 텍스트로만 자신을 표현하는 직업인 건데, 바로 그 점에서도 이 복수는 충분히 아름답다. 직접 만나거나 전화 통화한 것도 아니고, 그냥 우편으로 보낸 소설 원고랑 이메일 한 통으로 다 완성한 거잖아. 그야말로 오직 텍스트로만 구성된 복수.

독서의 매커니즘을 신비롭게 해부하는 영화이기도. 우리는 책을 읽을 때 너무도 당연히 주인공에게 몰입하고, 그 주인공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에게 사실적인 탄력을 부여하기 위해서 그들 얼굴에 상상을 더한다. 보통은 친구나 가족, 지인 등 주변 인물들의 얼굴로 상정하거나 아니면 그냥 배우나 가수 등 연예인으로 하는 경우가 많겠지. 이 영화 속 수잔의 경우엔 전자였다. 그녀는 소설 속 주인공인 토니의 얼굴로 자신의 전 남편 에드워드를 선택한다. 아무래도 주인공이 남자니까, 그리고 소설을 쓴 사람이 에드워드니까 당연한 거겠지. 이에 덩달아 소설 속 토니 아내의 외모가 암만 봐도 수잔과 비슷하게 느껴지는 것 역시 어쩌면 필연일 것이다.

외도와 이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살인과 추적에 관한 이야기였다는 점도 재미있다. 에드워드에겐 수잔의 말 하나 하나가 모두 총알 한 발 한 발과도 같았으리라. 대놓고 간통 로맨스가 아니었기 때문에 수잔이 더 젖어든 것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과거에 그 짓거리 하고도 에드워드 다시 만나러 그 중국집 갔던 거지.

이 영화 극장에서 처음 보았을 때 그런 생각을 했었지. '톰 포드 재수 없어.'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고. 디자이너면 옷만 잘 만들면 될 것이지, 뭣하러 영화까지 잘 만드는 거냐고. 암만 생각해도 그건 재수 없는 거라고.

2019/10/29 22:28

람보 - 라스트 워 극장전 (신작)


1편으로부터 어느덧 40여년의 세월이 흘렀고, 바로 직전에 나왔던 4편 이후로도 어느새 11년. 그렇게 람보가 돌아왔다. 그것도 이것이 마지막임을 천명하며.

내용적인 측면에서, 볼품없는 데다가 기시감도 쩐다. 친딸처럼 애지중지 키우며 유사부녀 관계를 형성하던 소녀가 멕시코 인신매매단에게 납치되고, 그런 그녀를 구하고자 람보가 동분서주한다는 내용. 그리고 막판 최후의 라운드는 람보의 농장에서 벌어지는데, 홈그라운드라는 이점을 활용하여 여러가지 부비트랩으로 적들을 해치우는 게 포인트. 전체적인 형식면에서 보자면 <레옹>이나 <아저씨>, <테이큰> 같은 영화들이 떠오르고 배경은 <시카리오>, 여기에 마지막 대결전은 <나홀로 집에>와 <스카이폴>이 떠오르는 실정이다. 그 어느 것 하나 새로울 만한 게 없다.

전형적이고 뻔하다는 것 외에도 다른 문제가 하나 더 야기된다. 이것이 과연 이 시리즈에 어울리는 이야기인가- 하는 것. 지금까지의 시리즈들에서, 타인과 람보가 맺는 관계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시리즈 고유의 NPC인 트라우만 대령은 차치하고, 각 편마다 나오는 여성 캐릭터들이 모두 단발 소모성 캐릭터들이였던지라 람보랑 아주 큰 감정적인 교류까진 엮어내지 못 했거든. 근데 이번 영화는 대놓고 유사부녀 관계를 위시해 람보에게 가족을 만들어준다. 바로 그 점에서, 시리즈 전체의 맥락과는 아주 이질적인 동시에 야심찬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리즈는 원래 대쪽같은 쾌속 전개가 일품인 영화들 아니었나? 내가 세어보기로는 이전 영화들 모두 람보가 작전지에 투입되기까지 15분을 안 넘겼던 것 같은데. 특히 2편은 영화 시작 후 거의 10분 만에 베트남 드랍할 걸? 허나 이 영화는 람보와 그 주변 인물들 간의 관계를 다지고 쌓는데 초반 시간을 할애한다. 때문에 액션 폭주 기관차였던 2편에 비해서는 전체적인 액션의 양이 많이 줄어든 건 사실. 허나 막판 몰아주기를 위해 이 모든 관계와 감정을 설명한 것이었단 점에서 썩 나쁘지 만은 않게 보이는 선택과 집중이다.

결국엔, 람보 버전의 <로건>을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한 소녀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노인의 모습. 참회와 속죄, 그리고 다시 불붙는 분노와 복수. 영화를 아주 재밌게 본 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4편 같은 영화로 시리즈를 마무리하기 보다는 이 영화로 시리즈가 마무리되어 조금이나마 안심이 되었다고나 할까.

영화의 클라이막스 액션 씬은 괜찮다. 사실 액션 묘사가 투박하고 세련되지 못한 점, 무언가를 다양하고 재미있게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 등은 분명 단점이다. 그렇지만 감정 하나만큼은 잘 쌓았다고 본다. 그 감정조차도 되게 투박하고 본능적인 분노일 뿐이지만, 그럼에도 고구마 100개 먹여놓고 사이다로 마무리하는 기분이라 괜찮았다. 다만 악당 보스와의 결전은 좀 더 길게 다뤄져야지 않았을까. 살아있는 상태에서 심장 뽑는 것보다 어떻게 더 하드할 수 있겠는가- 싶지만, 그럼에도 그 새끼는 좀 뒤질 때까지 괴롭히고 싶었단 말이지.

역시 썩 훌륭한 영화는 아니다. 1편만한 시리즈가 또 없지. 허나 여기서 더 길어지면 분명 더 추해질 것이다. 딱 여기까지가 바람직하다. 스탤론 형, 수고 많았어. 이 정도면 우리 그냥 만족하고 람보를 놓아주자. 그래도 될 것 같아.

2019/10/29 16:12

람보4 - 라스트 블러드, 2008 대여점 (구작)


오랜만에 돌아와 팬들을 열광시키는 영화들이 있다. 특히 요즘에 더 그렇지. <쥬라기 월드>도 그랬고, <깨어난 포스>도 그랬고. 허나 어째 왕년의 형님들이 나온 시리즈들은 죄다 흥행과 평가 면에서 각박한 상황이다. <인디아나 존스 -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이 그랬고, <터미네이터3>가 그랬지. 하지만 그 중 최고는 바로 이 영화일 것이다.

일단 20여년 만에 나온 메리트를 하나도 못 살렸다. 기존 시리즈의 팬들이 20여년동안 기다렸다는 건데, 그렇다면 우선적으로는 그 단순하고 본능적인 기대감을 충족 시켜줄 액션 묘사가 있었어야 했을 거다. 근데 액션이 형편없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시리즈 전체를 부정하는 느낌도 든다. 이 시리즈의 액션 시퀀스에서 기대하는 건 각종 트랩과 매복 기술로 악당들을 하나 하나씩 제거하는 람보의 서스펜스 호러적 연출 아니야? 그게 이 영화엔 없다! 그게 가장 말이 안 되는 부분. 영화 중반부 적들의 소굴로 들어가 몇몇 놈들을 죽이긴 하지만, 우리가 기대한 건 그런 모양새가 아니잖아. 1편2편의 숲 속에서 했던 그런 것! 3편의 동굴에서 했던 그런 것! 그 그런 것이 이 영화엔 없다. 가장 큰 문제는 람보가 머신건을 들고 그것만 줄창 쏴댄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가장 큰 규모의 후반부 액션 씬에서 그것만 쏘고 앉아있다. 그리고 탄약 다 소비하니까 영화 끝남. 화살 좀 더 쏴주고 매복 좀 더 해주고 그랬어야지, 왜 이리 인심이 각박해지셨나.

좋아. 백 번 양보해서 액션 영화적 쾌감은 그렇다치자. 그럼 20여년만에 돌아온 시리즈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그 캐릭터 자체를 온전히 보여주며 감정적인 드라마를 안겨주는 것. <로건>에서 우리가 보았던 그런 것. 그런 건 좀 해줄 수 있었던 것 아니냐? 영화 중간에 람보가 악몽을 꾸는 장면이 있는데, 거기서 이전 시리즈의 클립들이 편집되어 보여진다. 그래... 그렇게까지 했는데 람보라는 인물에게 좀 더 감정적으로 접근해보지 그랬어... 지금 버전은 그냥 동어반복에 심지어 이전 것들보다 캐릭터가 더 안 보이잖아...

영화가 그냥 처절하고 너절하다.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면, 왜 스탤론이 5편을 만들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이 영화로 이 시리즈 종지부 찍기엔 너무 아쉬웠던 거지. 너무 아까웠던 거지. 스탤론 형, 나 지금 <람보5 - 라스트 워> 보려고 극장 앞 카페에 나와있어... 부디 그 영화로는 시리즈의 막타를 잘 때려주길 바라...


감독이 스탤론인데 현장에서 이렇게 연출하고 있으면 감히 누가 감독님께 태클을 걸 수 있을까.

뱀발 - 가지 말라는 데에는 좀 가지 마라.

2019/10/29 15:58

람보3, 1988 대여점 (구작)


1편이 미국 본토의 록키 산맥 근처 마을. 그리고 2편은 베트남. 그렇다면 3편은? 이전의 두 편 모두 녹음이 우거진 숲과 정글에서 벌어진 이야기라 그랬던 걸까? 다소 뜬금 없게도 3편은 사막을 배경으로한 아프가니스탄이다. 근데 이 영화 개봉 후 2년 뒤 걸프전 터짐 그건 아프가니스탄 아니잖아

대쪽같은 전개는 시리즈의 전통이다. 영화 시작하자마자 람보는 격투가가 되어 상대를 절구떡으로 만들고, 그걸 임재범 마냥 멀찍이서 지켜보는 트라우만 대령의 표정이 아련함. 여기에 묻고 더블로 갈 필요도 없이 단도직입 용건만 말하는 트라우만 대령. '람보야, 나 소련놈들 상대하러 아프가니스탄으로 출장가는데 파티 맺고 같이 갈래?'

1편에선 람보를 뜯어 말리러 온 것에 가까웠지만, 어째 시리즈가 지속될수록 트라우만 대령의 역할은 그냥 NPC가 되어가는 인상. 잘 살고 있는 람보를 주기적으로 찾아와 일거리 던져주는 실정... 이러다보니 이 양반이 진짜 람보를 애제자로 아껴서 이러는 건가 아니면 그냥 흥신소에서 해결사 찾듯 람보 찾아오는 건가 헷갈릴 지경. 이 정도면 트라우만 대령이 아니라 람보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트라우마 대령이다. 심지어 람보가 거절해 그냥 혼자 아프가니스탄 갔는데 가자마자 개털리고 포로로 붙잡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모든 과정이 단 몇 씬만에 설명되는 마법. 그리고 그 뒤가 더 가관이다. 가뜩이나 더운 나라 태국인데, 여기에 양복까지 쫙 빼입고 그 먼 곳까지 찾아와 람보에게 트라우만 대령의 소식을 알리는 남자. '트라우만 대령이 붙잡힌 상황이니 꼭 좀 도와주시오!'도 아니고, 뭐라 말하냐면... '그냥 알려주러 왔어요' ............ 그거 그냥 알려주러 그 먼 곳까지 찾아왔다고요, 지금? 누가봐도 존나 부담주러 온 거

이런 이상하고 개연성 없는 설정들이 자잘하게 있지만, 그럼에도 영화는 적당해 나쁘지 않은 오락물이다. 람보의 카리스마를 깎아먹진 않으면서도,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기개와 의리를 잘 묘사하기도 하거든. 그런 기질이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순도 100%의 팍스 아메리카나 영화라고만 보기엔 무리가 있는 부분.

2편에서의 람보 1인이 전체 군대를 털어버린다는 설정에 뒤늦게라도 부담을 느꼈던 건지, 이번 영화에서 람보는 다수의 동료들을 얻는다. 때문에 약간 특공대 영화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럼에도 결국 막타 치는 건 죄다 람보이기 때문에... 뭐... 그나마 막판 기병대 합류 장면은 <미이라2>의 그것을 보는 것 같아 좀 향수 어리기도 했다. 재밌었다는 건 아님

그래도 딱 여기까지는 VHS 바이브가 잘 서려있었다 할 수 있겠다. 그나저나 1편이 82년도 작품인데 3편이 88년도 작품... 정말 스탤론은 1980년대 내내 람보로 살았던 거구나. 4편이 나오기까지 대략 20여년 정도의 갭이 있었는데, 어쩌면 스탤론은 그냥 쉬고 싶었던 게 아닐까. 

뱀발 - 2편부터 코카콜라 PPL 오지게 털어먹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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