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5/17 15:16

이벤트 호라이즌, 1997 대여점 (구작)

처음 본 게 언제쯤이였지? 영화가 나온건 1997년이지만 그 때는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가까이할 수 있는 영화 부류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성인 영화를 안 본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한참이 지난 뒤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본 것으로 기억.

포스터에 <매트릭스>로 익숙한 얼굴이였던 로렌스 피쉬번과 우리들의 영원한 앨런 그랜트, 샘 닐이 그려져 있길래 별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영화였다고 하겠다.

근데 막상 직접 본 영화는 충공깽.

나보다 먼저 영화를 본 평론가나 다른 사람들이 이 영화보고 “지옥 같다"라고 했었는데, 당시엔 이해를 못 했으나 영화를 본 뒤에는 급 이해. 영화의 완성도가 지옥 같다는 표현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진짜로 영화 속의 우주선에서 지옥이 강림할 줄이야.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까는 것에 비해서는 나름 좋아하는 영화다. 개인적인 취향에 <에이리언>의 많은 영향을 받았던 시기여서 이 영화의 도망갈 곳 없는 우주 한 가운데에서의 특급 재앙 컨셉이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생경한 지옥을 목도할 수 있어서 좋았고. 사실 삭제 분량이 꽤 많은 영화라 ‘그 지옥 같은 장면들을 모조리 되살려 놓았더라면 차라리 더 키치적인 영화가 될 수 있었을텐데’ 라는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많이 들었는데, 난 지금 수준이 딱 좋은 것 같다. 뭐 그렇게 더 알려고 그래. 그냥 이렇게 찔끔찔끔 보여주는 게 더 무섭잖아, 장엄하고.

그리고 ‘무엇무엇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그게 아니라 다른 무엇무엇이었다’라는 이야기 부류를 좋아하는데, 이 영화는 그 분야에 있어서 거의 <에이리언>과 쌍벽을 이루는 영화일 듯. 무선통신 속 수많은 잡음들 사이에서 감지된 ‘나를 구하라'라는 말만 듣고 주인공이 이끄는 구조대가 우주선에 급파 되었으나 알고보니 그 말은 ‘나를 구하라’가 아니라 ‘너 자신을 구하라, 이 지옥으로부터’ 였다. 이게 밝혀지는 순간 내 몸이 어찌나 짜릿하던지. 왜 그런 거 있잖아, 존나 징그럽고 싫은데 그래서 존나 좋은 거. 생각해보면 이 영화야말로 오역이 부른 대참사를 다룬 영화가 아닐까

더불어 좋았던 건, ‘지옥'이라는 공간에 대한 정의. 기독교나 불교에서 말하는 종교적인 관점의 지옥이 아니라, 웜홀을 뚫고 가면 우주 어딘가 실존하고 있는 지옥에 도달할 수 있다는 그 설정이 몸서리쳐지게 무서웠다. 렉스 루터 말마따나 악마는 북괴군 마냥 땅굴 파고 올라올 줄 알았는데 저 우주 어딘가에 있다는 거잖아. 졸라 무섭다 씨바.

후반부가 딸리는 건 뭐 눈에 보이는 큰 단점이라 언급하기가 민망할 정도다. 영상 속 미쳐서 서로 물고 찢어 죽이는 사람들처럼 주인공 일행도 서서히 미쳐가지고 난리 부르스 떨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그런 건 없었다. 그저 샘 닐만이 오롯이 미쳐 날뛰었을 뿐. 그러고보니 박찬욱이 이 영화 책에서 깠다던데. 뭐라 깠었는지 궁금하다.

어쨌거나 다시 보기는 힘들고 싫은데 뭔가 잊혀지지 않는 영화. 잊혀지지 않는 정도라면 뭐, 좋아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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