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3/28 00:04

신 고질라 극장전 (신작)

첫 등장의 형태가 최종 형태는 아니였다는 점이 재미있다. 처음엔 동태 눈깔을 하고 목에는 힘이 없는 도마뱀 한 마리가 기어 올라와 이게 뭔가 싶었는데, 디지몬도 아닌 것이 점차 진화를 하네. 일본 사람들은 ‘진화’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 대체 어떤 판타지를 갖고 있는 걸까. 지금의 상태보다 좀 더 나은 미래의 상태로 변화하는 것. 그것도 아주 급진적이고 공격적인 변화. 뭔가 메이지 유신을 통해 거듭났던 일본 열도가 생각 나기도 하고. 뭐 어쨌든. 기존 일본 내에서 진행되었던 정통 시리즈와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리메이크작들, 그러니까 정파와 사파 모두를 통틀어 진화하는 고지라의 모습을 처음으로 선보인다는 점에서 새롭지 않다곤 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괴수물이라기 보다는 괴수를 소재로한 재난 영화 베이스에 블랙 코미디적 감각을 덧대 만든 영화라고 할 수 있을텐데, 그래도 괴수가 나오긴 나오니까 괴수에 대해서 먼저 짚고 넘어가자면.

그 기괴한 디자인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지만, 파괴력 하나만큼은 우주재앙급이다. 1954년의 첫 고지라 영화와 최근 2014년의 할리우드 고질라 영화 속 고질라에 갖다대도 절대 꿇리지 않을만한 위력. 사실 기존 고지라들 역시 죄다 미친듯이 강력함을 자랑하는 생체병기급의 괴수들이긴 했지만, 이번 신 고지라는 타의추종 불허급이다. 처음 진화 전에는 팔도 없는 게 기어다니느라 수고가 많다, 정도의 느낌뿐이었는데 이 놈이 진화를 하고나서부터는 사정이 없다. 인간이 가진 모든 병기가 통하지 않는 것은 시리즈의 전통이니 차치하고서라도, 일본 웹 내에서 이른바 ‘내각총사퇴 빔’이라고 불리는 보라색 방사열선의 위력은 상상 이상이였다. 그렇게 쉽고 빠르게 동경을 불바다로 만들 줄이야. 그 씬의 묘사에 관해서만큼은 거의 코즈믹 호러급이더라. 할리우드 CG라도 덧대 발랐더라면 거의 <노잉>의 후반부 장면과 맞먹었을 듯도 싶고.

다만 고지라의 등에서 발사되는 방사열선이라던가, 무인항공기가 접근하는 것을 알아채고 가수면 상태에서도 발사되는 방사열선이라던가 하는 묘사들은 조금 부담스럽다. 뭔가 기계적인 로봇 같잖아. 진짜 살아 움직이는 생물과는 조금 동떨어진 듯한 특징. 뭐, 그래도 도대체가 어찌해 볼 수 없는 생명체를 묘사하는 부분이라고 치고 넘어가자.

이렇게 괴수 소개를 하긴 했지만, 어쨌든 이 영화가 블랙 코미디라는 사실을 부인할 순 없을 것 같다. 고지라라는 듣보잡 거대 재앙 앞에서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거기서는 일본 정부의 무능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묘사들도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을 살리려 죽을 힘을 다해 희생하며 노력하는 주인공들의 묘사도 있다. 아무래도 영화가 다루는 인간군상들이 그러하다 보니 영화의 정치적 입장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는데, 사실 개인적으로서는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정부의 무능함을 보여주는 묘사들과 끝내 국제사회와 협력하는 일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이게 작금의 일본 정치를 까면서도 나아가야할 이상향을 제시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또 부분적으로 보면 집단 자위권 회복을 통한 일본의 부활로 읽히기도 하고. 등장인물들의 노골적인 대사들이 더 헷갈리게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게다가 감독이 안노 히데아키 잖아. 더 헷갈려-.

감독 이야기가 나온 김에. 부분적으로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떠오르는 지점들이 분명 있다. 장르 자체도 그렇지만, 후반부 고지라를 격퇴하기 위해 발동시키는 야시오리 작전은 명백하게도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야시마 작전을 연상시킨다. 또, 중반부엔 아예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음악을 그냥 갖다 쓰고 연출 역시 비슷하게 가는 부분이 있다. 하… 근데 보면 볼수록 빡치네. 안노 이 사람아, 적어도 신 극장판 마지막편은 끝내고 이 영화에 착수 했어야지 않냐…?

정치적 입장이 조금 애매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생각보다 좋은 영화고 재밌는 영화라고 본다. 일본 내에서 한 해 박스오피스 전체 1위를 한 이유도 대충 알겠고. 괴수 영화의 장르적인 재미를 거세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최소화해 블랙 코미디 장르의 재미를 제대로 챙긴. 이 정도면 그래도 꽤 근사한 영화다.

뱀발 - 쿠니무라 준이 비교적 차분하고 믿음직해보이는 군인 장교를 연기한다. 근데 믿음이 안 가는 건 나뿐이냐.

뱀발2 - 등장인물들 중 조금 아니메스러운 인물들이 많다. 알레르기 돋을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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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포스21 2017/05/28 23:49 # 답글

    개봉당시 극장가서 본 물건이네요. ^^ 꽤 재밌었죠. 극장의 대화면으로 동경이 불타는 모습도 인상적이고
  • CINEKOON 2017/05/30 16:01 #

    불타는 동경의 모습을 보니 고지라에게 압도감을 느끼면서도, 한 편으로는 아름답기까지 하더군요. 이런게 파괴의 미학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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