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3/28 00:07

콩 - 스컬 아일랜드 극장전 (신작)

마블 스튜디오의 대성공 이후, 할리우드에서 들린 시네마틱 유니버스 출범 소식만 해도 벌써 다섯 손가락을 다 채우는 듯 싶다. DC 코믹스 원작의 수퍼 히어로 유니버스야 당연한 거고, 여기에 미이라와 프랑켄슈타인 등을 포함한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호러 몬스터 유니버스. 거기에 늦바람 들었는지 뒤늦게 합류한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독자적 유니버스까지. 뭔가 설레고 신이 나기도 하지만, 뭔가 벌써부터 진이 빠지는 듯한 것도 사실이다.

그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눈에 띄었던 프로젝트는 다름이 아니라 바로 거대 괴수 유니버스 였다. 가렛 에드워즈가 감독한 2014년판 <고질라>를 필두로 시작된 프로젝트로, 웬만해선 인간들 깽값 물릴 능력들이 쎄고 쎈 그야말로 괴수들의 대전쟁을 그릴 프로젝트다. 사실 어지간한 장르 영화들을 다 사랑하지만, 그 중에서도 괴수 영화는 정말 멋진 장르라고 생각한다. 쿠오오-, 크고 큰 남자의 로망이여!

하지만 모든 문제는 다 거기에서 시작되었는데…… 스포는 없을지도? 사실 스포할 거리 자체가 없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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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잘라 말해 고질라나 킹기도라 같은 여타의 괴수들에 비해, 콩은 이런 자리에 어울리는 주인공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고질라’라는 캐릭터와 ‘콩’이라는 캐릭터는 그 근본이 다르단 이야기다. 2014년판 <고질라>에서, 인간 주인공들은 모두 그저 기능적 존재들에 불과하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고질라’라는 불가항력을 지닌 대자연의 위력 앞에서 철저히 부서지고 절망하며 관조할 수 밖에 없는 게 바로 인간들이다. ‘고질라’는 그런 캐릭터다. 코즈믹 호러의 정서를 갖고 있는 괴수다.

허나 ‘콩’은 근본적으로 감정을 지닌 괴수로 묘사된다. 그건 1933년의 오리지널도 마찬가지고 그나마 최근이라 할 수 있는 2005년의 피터 잭슨 작 영화도 마찬가지다. 어느 리메이크든 ‘콩’은 여자 주인공과 감정적 교류를 맺었고, 그로인해 촉발되는 애틋한 멜로 드라마의 감정이 존재 전반을 지탱하는 캐릭터였다는 거다. (그런 묘사는 피터 잭슨의 2005년작이 참 뛰어나다)

이런 멜로 드라마적 요소가 더 중요하게 부각되는 괴수가, 이른바 ‘대괴수 유니버스’라는 커다란 프로젝트 안의 부속 요소로 끼워 맞춰지면서 생기는 부작용들은 예컨대 이런 거다. 캐릭터의 전통이라고 할 수 있는 멜로 드라마적 요소의 증발. 물론 이 영화에서도 콩은 브리 라슨이 연기한 여자 주인공과 조금의 교감을 나눈다. 그렇지만 거기까지다. 그 장면은 그저 오리지널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들어간 오마주에 가깝다. 그리고 여자 주인공이 콩의 감정을 얻는 묘사도 뻔하거나 싸구려 스럽다. 한마디로 이 시리즈는 앞으로 킹콩의 연애사를 다룰 생각이 아예 없거나, 깊이 있게 묘사할 생각이 없다.

그러므로 이 영화에서 콩이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액션에 국한된다. 그는 맨 손으로 헬리콥터들을 격추시키고, 대왕 오징어와 혈투를 벌이며, 스컬 크롤러라는 우스꽝스러운 이름의 거대 도마뱀들과 싸운다. 영화 초반까지, 이는 분명 스펙터클로써 작용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 힘은 떨어진다. 거대한 괴수들이 눈 앞에서 싸움판을 벌이는데 어찌 힘이 떨어지냐고? 이 영화의 스펙터클엔 변주가 없다. 모든 액션 장면들이 전부 다 비슷비슷하단 소리다. 콩은 드넓은 분지 한 가운데서 헬리콥터들과 맞선다. 그리고 또 드넓은 호수에서 대왕 오징어와 맞서고, 다른 드넓은 분지의 한 가운데에서 두 마리의 스컬 크롤러들과 맞선다. 그리고 마지막 스컬 크롤러들의 우두머리와는? 그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생각해보면 그에 비해 피터 잭슨은 변주를 참 잘했다. 그는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입에서 시종일관 ‘대체 어떻게 되어 가는 거야’라는 소리가 나오도록 영화를 리드미컬하게 이끌었었다.그 영화에서 콩은 위엄 있게 등장하여 드넓은 정글에서 싸우고, 절벽을 배경으로 수직의 액션을 선보였었으며, 끝내는 추격전까지 벌였었다. 보는 내내 지루하지 않았고, 매 장면이 새로운 액션으로 가득 차 있는 영화였다. 이에 비해 <콩 - 스컬 아일랜드>의 콩은 지루하다. 게다가 멜로 드라마적 요소가 거세 되면서, 영화의 감정적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그저 동물원 철창 안의 원숭이처럼 단순한 구경거리에 그치고 말았다. 그 구경거리 역할도 제대로 못했다는 건 더 문제고.

관객의 마음을 둘 곳 없는 거대 고릴라가 피 터지게 싸우는 동안, 당연하게도 배우들은 낭비된다. 애초에 멜로 드라마의 요소도 없었으면서 액션까지 콩에게 몰아주느라 배우들은 제대로 된 무언가를 끝까지 부여받지 못한다. 톰 히들스턴이 연기한 영국군 출신 용병과 브리 라슨이 연기한 종군 기자의 로맨스는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뻔하고 의미 없다. 심지어 그 여주인공이 영화 후반 콩을 보며 흘리는 눈물 한 방울의 의미까지도 난 잘 모르겠다. 또, 토비 캡벨이 연기하는 군인 장교의 아들타령 역시 마음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이렇게 캐릭터들 모두가 전형적이거나 설득력이 부족해 배우들 역시 갈피를 잡지 못한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전쟁광을 잘 묘사해내는 사무엘 L 잭슨은 실로 대단하다 하겠다. 

아래는 엔딩 크레딧 이후 쿠키 영상에 대한, 열려라- 스포천국!


모든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유행이 되어가는 듯, 이 영화에도 엔딩 크레딧 이후 쿠키 영상이 숨어 있다. 고대 문명을 발굴하는 과학자들의 기록영상이 보이며 동굴 안쪽에 그려진 벽화들을 보여주는 영상인데, 당연하게도 고질라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이어서 등장하는 모스라, 킹기도라를 묘사한 듯한 벽화들.



아무래 봐도 이 영화는 피터 잭슨의 <킹콩> 하위호환 영화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영화 전체보다 엔딩 크레딧의 쿠키 영상 이후 극장 안으로 가득히 울려퍼지는 고질라의 포효가 더 좋았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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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포스21 2017/05/29 00:50 # 답글

    전 개봉당시 신고지라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봤는데 그럭저럭 액션물로서 만족했습니다. 솔직히 기존의 킹콩들이 무리하게 미녀와 야수 스타일의 연애? 노선을 집어넣는 덕에 좀 부담스러웠거든요. 게다가 은근히 여기저기에 게임을 의식한 듯한 장면도 보이는게 나중에 액션겜으로 만들면 재밌을거 같던데?
    그리고 사실 이영화는 헐리우드 정통 킹콩 이라기 보다는 일본의 고지라 영화 중 하나인 킹콩 대 고지라 쪽의 리메이크에 가까운 느낌입니다. 그영화는 저도 본건 아니고 스포일러로 스토리만 아는데 , 스컬섬에서 살던 킹콩이 일본의 흥행사들에게 생포되어 일본에 오고 얼마 안있어 고지라가 나타나 양쪽이 한판 붙는 이야기죠. 이번 킹콩은 노골적으로 그걸 준비하는 이야기로 보였습니다. 말하자면 마블영화의 징검다리 같은 느낌이라 장래?를 기대하면서 만족스럽게 본 편입니다.
  • CINEKOON 2017/05/30 16:02 #

    킹콩 대 고지라는 어린 시절에 본 기억이 납니다. 어쨌든 향후 몬스터버스에서 콩과 고질라를 싸움 붙이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든 것이니 어찌보면 일본의 흥행사들에게 끌려나온 콩이 아니라 레전더리의 흥행사들에게 끌려나온 콩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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