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5/31 02:35

겟 아웃 극장전 (신작)

예전에 잘 모르는 사람 결혼식에 축의금 심부름을 간 적이 있었다. 그래도 결혼식이니까, 간김에 뷔페나 먹자고 식당 입장. 근데 특이한 게, 뷔페가 아니라 자리를 잡아 앉으면 1인분의 코스 요리가 차례대로 놓이는 방식의 식사였다. 문제는 나 혼자 갔다는 거. 잘 모르는 사람 결혼식이다 보니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는데, 큰 원형 테이블에서 생판 처음 보는 사람들과 꼼짝없이 앉아 밥을 먹고 있노라니 불편해 죽는 줄만 알았더랬다. 

이 영화가 그렇다. 히치콕이 말했다지, 공포 영화가 무서운 이유는 '쾅' 소리가 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쾅' 소리가 언제 나올지 불안하고 긴장하기 때문이라고. 대부분의 공포 영화는 이러한 불안감들을 조성해 공포 분위기를 만든다. 헌데 이 영화는 특이하다. 물론 불안함이 내재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만, 그 불안감 보다도 우선 불편 하더라.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둘러앉아 한 시간동안 밥을 먹는 경험처럼. 빨리 뜨고 싶은데 그러지도 못하고, 뭔 이야기 좀 해보고 싶은데 눈치 보여 말도 못 하고. 이런 게 진짜 장인장모 월드인 건가.


스포는 조금.


그 특유의 불편함 때문인지, 꼭 인종차별의 공포로만 만든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꼭 흑인종이 아니더라도 졸라 무섭단 말인 거지. 누구나 불편함을 느낄 만한 상황은 있지 않겠나. 실제로 흑인종을 비하하고 경멸하는 백인종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는 아니지않나. 흑인들의 뚝배기를 까서 뇌 체인지를 통해 그들의 육체를 얻으려 하기도 하잖아. 아무리 그들의 육체가 젊고 좋다 한들 진심으로 경멸 했다면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조던 필레 감독이 스스로 흑인종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녹여냈다곤 했지만 그런 거 하등 상관없이 그냥 무섭다는 이야기다.

일반적인 호러 영화와는 다르게 여러번 볼수록 트릭이나 의미들이 보이는 영화. 한국에서는 어쩐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들처럼 관람 후에 더 분석하는 정서가 형성되어가고 있는 듯 한데 실제로 영화가 그러기 딱 좋게 연출해놨다. 사슴뿔을 그 얄미운 외과의사 가슴팍에 꽂아 버린다던지, 솜을 뽑아 귀에 박아 넣는다던지 뭐 그런 것들. 그만큼 연출이 치밀 했다는 것이겠지. 어쨌거나 분석하기 좋아하는 한국 관객들에게 있어서는 오랜만에 단비 같은 영화를 만났다고 할 수 있겠다. 어쩐지 페이스북 같은 SNS들에서의 홍보가 더 잘 먹히고 있는 것 같더라.

사실 주인공 친구인 공항 경찰 캐릭터가 가장 재미있다. 영화 초반부에서 전화통화를 통해 첫등장 하는데, 그 때만 하더라도 뭔가 싶었다. 아무리 감독이 코미디언 출신이라지만 호러 영화에 왜 이런 뻔한 개그 캐릭터가. 톤 앤 매너에서 너무 튀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감초도 이런 감초가 없더라. 그리고 뒤늦은 깨달음. 아, 호러와 가장 잘 어울리는 장르가 코미디였지. 샘 레이미의 <드래그 미 투 헬>이나 최근 개봉했던 <맨 인 더 다크> 같은 거 보면서 킬킬 거렸던 거 다 까먹고 그런 불경한 생각을 했었다니. 하여튼 공항 경찰의 "천잰데?"는 가히 명대사의 반열에 오를 만하다. 

엔딩에서 경찰차의 사이렌과 경광등이 등장할 때,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아, 비극으로 끝나겠구나. 저기서 총살이거나 체포 당해 억울한 옥살이로 주인공이 나머지 삶을 채우겠구나. 근데 시발 거기서 공항 경찰이 등장할 줄이야. 등장할 타이밍 같기는 했는데 너무 거짓말처럼 귀신 같아서 믿기지가 않았었는데, 실제로 초기 시나리오 단계에서는 공항 경찰 친구가 아니라 실제 경찰이 등장해 주인공을 현장 사살 혹은 체포 하는 결말이였다고 한다. 원래 그랬던 결말이 바뀐 건 조던 필레가 시나리오 집필할 때쯤, 미국 전역 곳곳에서 경찰들이 흑인들을 현장에서 사살해버리는 일들이 빈번히 일어나서. 그런 사건들을 접하며 조던 필레는 영화에서까지 그런 비극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지는 않아서 지금의 결말로 바꾸었다고 한다. 하- 참으로 다행이다. 불안하고 불편하기만 했던 영화 전반부의 답답함이 후반부 들어서 뻥 뚫리는 통쾌함으로 상쇄되어 좋았었는데 결말까지 저랬다면 결코 좋은 기분으로 극장을 나서지 못했을 듯.

북미에서의 어마어마한 흥행 그리고 한국에서의 특별 흥행과는 별개로, 아주 특별하고 뛰어난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정도로 재밌고 신선했던 호러 스릴러들은 쎄고 쌨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훌륭하지 않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불편해서 몸을 배배 꼬다가도 후련한 마음으로 극장을 나설 수 있는 착한 영화가 세상에는 그리 쎄고 쎄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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