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6/29 11:41

옥자 다가온 영화들


극장에서 보려 하다가 결국 넷플릭스를 통해 집에서 본 <옥자>. 29일 0시 공개라길래 잠도 안 자고 기다렸다가 요이땅 하고 봤다. 큰 화면에서 본다면 더 좋을 것이다, 허나 작은 화면에서 보기에도 좋게 만들었다던 봉준호의 말 답게 극장의 스크린에서 보지 못한 아쉬움이 조금 들긴 하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았던 경험. 


열려라, 스포 천국!


일단 <옥자>에 대한 내 입장은, '잘 만든 영화인 건 맞으나 기대했던 만큼의 작품은 아니었다는 것' 정도가 되겠다. 우선 '옥자'라는 슈퍼 돼지 캐릭터가 관객에게 재대로 소개되지 않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비슷한 영화로는 스필버그의 <ET>나, 디즈니의 <릴로 & 스티치>, 브래드 버드의 걸작 <아이언 자이언트>, 주성치의 <장강 7호> 정도가 있을텐데, 미지의 존재와 교감을 나누다 외부의 방해로 인해 우정이 흔들린다는 이야기는 이토록 많다. 그리고 이토록 많은 비슷한 영화들에서 유난히 공을 들였던 것은 '미지의 존재'와 주인공 사이의 교감이며, 그 '미지의 존재'를 관객에게 몰입 가능한 상대로 소개하는 일들이었다. 그 점에 있어 <옥자>에서 슈퍼 돼지 옥자와 주인공 '미자'의 교감은 어느 정도 설득력 있다고 생각한다. 허나 나는 옥자를 관객에게 잘 소개했는지는 의문이다. 미란도 코퍼레이션에 의해 끌려가기 전 옥자의 시골살이를 보면, 아무래도 미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옥자의 모습이 더 많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옥자가 끌려가면, 역시 뒤에 남아 사건을 이끄는 것은 미자다. 그러다보니 옥자의 입장에서 관객이 영화 속 사건들을 생각해볼만한 여유가 없다. 그나마 영화 내에서 가장 쑈킹한 사건을 고르라면 역시 옥자의 강제 교미 장면일텐데, 그마저도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영화는 제대로 묘사하지 않아 옥자가 겪은 끔찍한 경험을 우리가 직접 독대할 수가 없다. 그러다보니 옥자는 귀여운 동물 캐릭터로써는 기능하지만, 그 온갖 고초를 겪음에도 관객이 가여워할 뿐 그에게 온전히 공감하지는 못하게 된다.

옥자만큼 미자에게도 문제가 있는데, 우선적으로 주인공 임에도 그녀가 영화 속에서 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왜, 신나게 달리지 않았느냐고? 금돼지 하나 '낸시 미란도'에게 던져주지 않았냐고? 그걸 빼면 얘가 한 게 대체 뭔데? 나머지는 전부 ALF 멤버들한테 끌려다닌 것 뿐이잖아. 폴 다노의 후반부 캐릭터 조금을 미자에게 나눠줬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폴 다노는 딱 하는 만큼 했고, 최우식은 왜 나온 지 모르겠고, 윤제문은 아쉽고, 틸다 스윈튼은 그저 그랬다면, 제이크 질렌할은 여기서도 빛이 반짝반짝 난다. 처음에는 약간 과하게 조형된 캐릭터가 아닌가 싶었었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끝내는 그만이 기억 속에서 오롯이 빛나게 된다. 영화의 톤 앤 매너와 잘 맞아 떨어지기는 커녕 그것보다 약간 좀 더 업 되어 있는데, 그게 이상하게 좋다. 혼자 미친 놈 같아서. 영화를 다 보고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도 도살장의 옥자 장면이 아니라 제이크 질렌할이 연기한 죠니 윌콕스가 옥자와 함께 있는 중반부 장면이었다. 이 캐릭터의 돌아이 같은 콤플렉스가 좋다.

중간중간 허술한 부분이 많은데, 뉴욕 슈퍼 돼지 콘테스트에서 옥자는 왜 별다른 구속구를 착용하고 있지 않는 걸까. 아무리 소녀와 짐승의 하모니를 강조한 쑈였다고 해도, 어쨌거나 코끼리만한 짐승인데 안전을 위한 장치를 최소한이라도 했어야지. 또, 강원도 산골에서 그 큰 슈퍼 돼지는 대체 어떻게 강제적으로 옮긴 걸까? 죠니 윌콕스가 숨 헐떡 거리는 모습 보아하니 어느 정도까지는 차로 올라올 수 있어도 그 이후로는 도보로만 가능했을 것 같은데. 헬기라도 가져왔어야 하는 거 아냐?

전체적으로는 봉준호의 전작이자 내가 최고로 꼽는 <괴물>과 비슷한 장면이 여럿보인다. 윤제문이 트럭 쫓아가다가 옥자 똥 맞는 모습은 영락없는 <괴물>속 병원 탈출 장면에서의 경찰이고, 붉은 옷 하나 입고 시종일관 달리는 여자 주인공의 모습에선 배두나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결말부에서 '희봉'과 미자가 조용히 밥 퍼먹는 모습도 <괴물>의 결말과 비슷. 그리고 ALF 멤버들이 한강으로 뛰어드는 모습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다 보고 나니 생각보다는 채식주의를 권장하는 영화까진 아니었던 걸로. 다만 자본주의 세계에서 가축들이 당하는 비위생적 + 비인도적 시스템에 대한 일종의 반성 같아 보이는 지점은 있다. 후반부 도살장 장면이 좀 더 쎄면 좋았겠지만, 어느 정도 타협한 결과물이겠지. 하지만 그렇더라도 죽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짐승들의 울부짖은 이미지는 너무나도 강렬하다. 뜬금 없지만 보면서 <식객> 영화가 떠올랐었는데, 거기서는 주인공이 몇 년동안 애지중지 키운 황소를 직접 도살장에 끌고간다. 최고의 고기를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데, 직접 키운 한우보다 최고는 없다는 거지. 거기서도 황소가 줄을 서서 죽을 것을 기다리는데, 주인공과 감정 교류의 쌩쑈를 한다. 심지어 도축 당하기 전에 황소 눈에서 눈물 한 방울까지 또르르. <식객>의 그 지점이 최고의 재료를 위해서라면 가족 같이 지내던 황소도 죽일 수 있는, 그러면서도 미안하다는 식의 쌩쑈를 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서 뭔가 거북 했었는데 <옥자>엔 그런 게 없어서 다행이었다. 

결론은 봉준호의 평작. 근데 생각해보면 봉준호는 <괴물> 이후 온전하게 날 만족시키는 작품이 없었던 것 같다. 물론 <마더>, <설국열차> 다 좋은 작품들이긴 했지만, 나에게는 크게 안 와 닿았었거든. 이런 말 어디 가서 하면 내가 이상한 놈 취급 당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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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역성혁명 2017/06/29 18:31 # 답글

    이 영화는 마치 처음에는 음... 그렇네 하다가 나중에 자꾸땡기는 탄산수 같아요. 평점도 나쁘지 않고, 좋습니다.

    저는 좋아서 셔럽 엔 테이크 마이 12,000 원을 외쳤습니다.
  • CINEKOON 2017/06/30 20:15 #

    확실히 토실토실한 초반부 보다는 낮게 으르렁 거리는 듯한 후반부가 더 좋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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