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6/30 21:05

박열 극장전 (신작)


이미 차고 넘치는, 그러면서도 다 비슷비슷한 톤 앤 매너를 가진 비장+신파 독립투사 영화들 중 한 편이 될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좋은 의미로 가볍고 로맨틱한 영화였다. 경공술을 하는 듯한 영화.

<암살>처럼 특정한 사건을 소재로 하이스트 무비처럼 전개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 '박열'이라는 캐릭터에 좀 더 온전히 집중하는 영화다. 또 그러다보니 박열을 연기한 이제훈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영화기도 하고. 진짜 말 그대로 이 영화의 최대 미장센은 이제훈의 얼굴이다. 심미적으로도 그렇지만, 그만큼 그의 어조와 표정을 포함한 모든 연기가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는 말.

부끄럽지만 솔직히 말하면 영화를 보기 전까진 박열이라는 실존 인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상태였는데, 식민지 출신 아나키스트란 점은 수긍이 갔다. 허나 이 정도로 리버럴한 사람일 줄이야. 진짜 저 포스터의 저 포즈가 저 인물에 대해 다 알려주는 듯 하다. 요즘 말고 쿨내나고 풍류를 아는 사람.

중간중간 가볍게 들어간 유머가 과하지 않아 좋다. 특히 일본 관료들이 발을 동동 구르는 장면은 먹이가 부족한 펭귄들의 부족 회의 같은 느낌이 들었다. 뭔 소리야 그 자체로 귀여우면서도 재미있다. 그들 입장에서 보면 박열은 진짜 피곤한 사람이었을 거다.

'후미코'와 박열의 강조된 관계가 특히 좋은데, 그러면서도 그 둘이 함께 지내온 세월들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적은 부분은 아쉽다. 그 부분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아야 후반부 둘의 관계가 설득력을 얻거든. 뭐, 지금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수준이긴 하지만.

그나저나 이준익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거의 일 년에 한 편씩 찍어내고 있는 수준. 이 정도면 작품의 수준은 떠나 근성 가이로 상 줘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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