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19 01:54

혹성탈출 - 종의 전쟁 다가온 영화들


폭스가 대단한 게, 큰 예산의 블록버스터를 만드는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들 중에서 폭스만큼 작가주의적이면서도 드라마가 중요시 되는, 그러면서도 개성이 강조되는 영화들을 만들어내는 곳이 또 없다는 거다. <데드풀>이 그랬고, <로건>이 이어 받았으며, 이번 <혹성탈출 - 종의 전쟁>도 그렇다.

개인적으로 잔재미 같은 경우로는 전작들이 훨씬 더 좋다. 아기자기한 액션 동선들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큰 규모의 스케일도 그렇다. 이번 3편은 '종의 전쟁'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름철 블록버스터의 미덕이라고 할 만한 거대 규모의 액션 시퀀스가 없다. 물론 영화 앞 쪽에 인간들과 유인원 간의 소규모 전투 시퀀스가 위치해 있고 충분히 볼만한 가치가 있긴 하지만, '종의 전쟁'이라고 할 만한 정도는 아니거든. 그래서 블록버스터적인 재미로만 따지자면야 1편과 2편이 좀 더 좋다. 그 중에서도 굳이 나누라면 개인적으로는 1편이 좀 더 우위.

하지만 3편이 주는 압도적인 경험은 화려한 볼거리나 거대한 규모의 액션이 아니다. 3편의 그 압도감은 '시저'라는 캐릭터 자체에서 나온다. 사실 이번 리부트 시리즈는 시저가 성장하는 걸 보는 맛이거든. 전편에서부터 시저는 꾸준히 성장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이번 영화에서는 흰 털이 희끗희끗 나있고 지도자로서도 명성을 얻고 있는, 이른바 완성형 캐릭터로 등장한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다. 끊임없는 자기 의심과 자기 혐오, 끝까지 놓지 않는 과거의 자기 모습, 그리고 그를 통해 비로소 메시아로 등극한 고독한 인물의 긴 여정이 주는 압도감과 위압감이 이 영화에는 실존하고 있다. 

야훼 이야기로 따지면 시저는 모세와 비슷한 점이 많다. 핍박받는 자신의 민족들을 이끌고 가이드해 고난을 뛰어넘어 탈출했다는 결론이 그렇고, 중간 중간 모세가 신에게 의구심을 가졌듯 시저 역시도 스스로를 의심한다. 하긴, 꼭 모세가 아니더라도 성경에서 따온 이미지가 많아 보이기는 한다. 중간에 십자가에 매달려 고난을 당하는 장면은 예수의 모습까지도 떠올리게 하니까. 물론 성경책을 떠나서 조셉 캠벨이 '영웅의 여정'을 통해 어느 정도 영웅적 주인공의 모습을 정립해 놓은 이후로는 비슷한 캐릭터들이 많긴 하지.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웅'이라는 타이틀이 정말 잘 어울리는, 그리고 그에 걸맞는 영화 속 인물들 꼽으라면 난 주저 없이 이 시리즈의 시저를 꼽겠다. 진짜 완전무결한 영웅. 그만큼 시저 보는 맛이 강한 작품이다. 경지에 오른 할리우드의 기술력이 피쳐링한 그의 눈빛 연기는 절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이른바 모든 스펙터클이 눈빛에서 나오는 영화.

앤디 서키스의 연기야 더 할 말이 없고, 우디 해럴슨의 대령 캐릭터 정도만 얘기하면 괜찮을 것 같다. 워낙 이런 돌아이 마초 연기를 잘하는 양반이다 보니 이미지나 연기로써는 크게 불만이 없다. 그러면서도 또 좋았던 건 대령의 과거사. 아, 이 정도 설득력이라면 난 극악무도 무자비한 이 인물을 그나마 조금이라도 이해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싶더라. 하긴, 이건 연기 보다도 그 이전에 각본의 문제겠지. 어쨌든 훌륭하다고.

보다보면 <지옥의 묵시록>도 많이 떠오르는데, 특히 전제군주 비슷한 자리에 오른 우디 해럴슨의 대령 캐릭터가 그렇고, 중간에 'Apocalypse Now'를 패러디한 'Ape-pocalypse Now'라는 문구가 나오기도 한다. 사실 이 영화 뿐만 아니라 떠오르는 레퍼런스들이 워낙 많다. 시저 일행이 말을 타고 배드 에이프를 쫓는 장면과 그 서사는 웨스턴의 패턴이기도 하고, <빠삐용>이나 <알카트라즈 탈출>을 잇는 대탈주 영화이기도 한데, 그것도 썩 잘 해냈다. 강제 노동하는 장면에선 <군함도>가 떠올라서 괜히 피식. 물론 그 이전에 홀로코스트의 이미지를 차용한 것이겠지만. 

안 한다고 했다가도 돈이 되면 또 하는 게 이 바닥이라 조금 불안하긴 하지만, 그래도 3부작의 마지막이라고 해놓긴 했으니 믿어야지 뭐. 더 나와봤자 좋은 이야기가 나올 법 하진 않다. 만약 진짜 나오게 되면 그건 유인원이 지배하는 지구로 오게된 우주 비행사들 이야기가 될텐데, 그게 또 무슨 재미가 있겠어. 이제와서 또 찰턴 헤스턴급 존나 신박한 반전을 가져올 것도 아니고. 맷 리브스는 빨리 배트맨이나 좀 만들어라, 다른 거 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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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leelee 2017/08/20 00:17 # 삭제 답글

    근데 데드풀은 예시에서 좀 빠져야 할것 같은데요.
    애초에 폭스에서 가능성을 낮게보고 기존에도 자금 딸리는 저예산인데 그나마 각본단계에서 더 쳐내서, 주연 겸 제작자인 라이언 레이놀즈가 자기 자금 투자하기도 해고요. 초안에서 등장할 예정이었던 캐릭터들이 예산문제로 인해 현재 개봉판 버전으로 수정되서 나왔죠.
    거기다 애초에 제작 및 개봉 확정된 것도 사전에 제작한 컨셉영상이 공개되면서 팬층 호응도도 높아져서 결국 실제로 영화제작으로 이어질수도 있었던거고요. 개봉 전후로 풀린 이런 저런 썰들만 찾아봐도... 폭스는 그냥 숟가락 얺은게 다라고 밖에 생각되질 않아서요. 데드풀의 성공 뒤에는 라이언레이놀즈와 제작진들의 정성이 있었죠.
    거기다 로건이 성공적으로 나올수 있었던데는 휴잭맨의 헌신과 맨골드 감독의 능력도 중요하게 작용했겠지만, 그 이전에 데드풀이 R등급 히어로무비로서 성공할수 있엇기에 가능하기도 했을테고요.

    거기다 톰로스먼이 사장으로 있던 폭스 시절엔 엑스맨 울버린 오리진 제작 당시 간섭도 엄청 심하게 해댔죠.
    그리고 2015년에 개봉한 판타스틱포 리부트 영화를 보면... 루머인거 감안하더래도 제작과정부터 막장이 따로 없었는데....

    결국 특정 영화사가 작가주의&드라마 중시라고는 딱히 생각되진 않는거 같아요. 헐리우드에선 몇몇 거장급 감독들 제외하면 대다수의 블록버스터 영화들은 윗선에서 편집단계에도 다 관여하고 간섭한다는데...
    제작사별로 회사별 특징이나 선호하는 면이 있을순 있지만, 20세기 폭스가 딱히 작가주의를 중시하는 제작사 같진 않아보여요.
  • CINEKOON 2017/08/20 00:29 #

    폭스가 작가주의를 중시하는 제작사는 절대 아닐 겁니다. 말씀해주신대로 그동안 얘네가 간섭질해서 말아먹은 게 몇 갠데요, 그거에 관해서라면 절대 워너한테 꿇리지 않죠. 저도 폭스가 작가주의적 또는 영화의 개성이나 드라마를 중요시 여겨주는 정책 따위를 만들어 밀어주고 있을리는 만무하다고 생각하고요, 말씀하신대로 소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것처럼 그냥 얻어 걸린 거죠. 근데 어쨌거나 <데드풀>의 흥행적 성공으로 말미암아 그 이후 <로건> 같은 수퍼 히어로 프랜차이즈 영화를 R등급으로 제작해줬어요. 엄밀히 따지면 제작해줬다기 보다는 그냥 허락을 내린 거겠죠. R등급으로 가도 <데드풀>의 전례를 보면 승산이 있을 거라고. 전 그 결정 자체가 마음에 들어요. 물론 그것도 폭스가 제작진의 작가적인 역량이나 욕망을 예술적으로 표출하라는 심산으로 내린 결정은 아닌 거 알아요, 다 그냥 돈 때문이죠. 다만 그거라도 어딥니까, 라는 생각 정도입니다. 어쩌면 어쩌다가 얻어걸린 우발적인 포지셔닝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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