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 혐오나 극단적인 살인 및 고문 묘사 등의 논란들을 다 제쳐두고도, 이 정도면 이건 그냥 못 만든 영화다.
열려라, 스포천국!
우선 김명민이 연기한 '채이도'라는 인물이 왜 존재하는지도 모르겠고, 심지어 왜 주인공인지도 모르겠다. 배우의 연기력을 떠나서 캐릭터 자체의 존재 이유가 없다. 심지어 마지막 묘사까지도 불성실하다. 허무한 퇴장. 이럴 거면 왜 이런 캐릭터를 만들어 설정해놓았는지 의문이다. 장동건이 연기한 국정원 요원의 존재 이유 역시도 채이도 만큼은 아니지만 쉽사리 납득하기 어렵다. 심지어 극 후반부 채이도에 대한 일종의 복수심으로 '리대범'에게 잡혀가는 '김광일'을 고이 보내주는 장면에서의 감정 역시 잘 알 수 없다. 자신과 일종의 인간적 대화를 하던 사람이 자기 앞에서 무참히 사살 당했으니 복수심에 쫓는다? 애초에 장동건의 '박재혁'과 채이도는 감정적 접점이 크게 없다. 김광일을 잡겠다는 동일한 목표는 있을지언정, 서로가 서로에게 공감하고 감정이입할 여지는 크지 않다는 말이다. 실제 그런 감정 교류가 있었다해도 연출에서 성공해내지 못했으니 이건 그냥 미스라고 볼 수 밖에.
차라리 박희순의 리대범 캐릭터가 채이도의 주인공 자리에 놓였다면 더 재밌었겠다. 복수를 위해 탈북한 남자라니. 초반부까지도 리대범이란 인물을 관객에게 잘 각인시켜 놓고, 후반부에선 또 어중이떠중이 재고처리 하듯 퇴장시킨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등장 시켰나. 가뜩이나 인물도 지금 많아서 영화가 미어 터지는데.
사실 이종석의 김광일 캐릭터에 대해선 큰 불만이 없다. 스테레오 타입의 살인마라는 느낌이 조금 남아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배우 특유의 하얗고 생글생글한 이미지와의 갭이 재미있게 느껴진다. 오히려 그런 순딩이 이미지의 배우가 잔혹한 연쇄살인마 역할이라고 해서 더 흥미를 끈 부분도 애초에 있고. 하지만 가장 눈에 띄는 건 역시 유재명과창크나이트 피터 스토메어. 결말부 장동건의 가운데 손가락은 명백히 <콘스탄틴>의 오마쥬로 느껴지던데. 다만 요상시럽게도 평소 연기력과는 달리 피터 스토메어 역시 제 빛을 발하진 못한다. 그냥 눈에만 띌 뿐. 외국인이라 띄는 거 아님?
허나 가장 큰 문제는 이게 도통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그렇다고 해서 느와르나 스릴러로써의 장르적 쾌감이 큰 것도 아니다. 게다가 다들 하나같이 무능력해. 경찰은 경찰 나름대로 무능력하고, 국정원은 국정원 나름대로 무능력하고, 북한은 또 북한 나름대로 무능력하고. 그 중에서도 가장 답답한 장면은, 김광일이 채이도에게 총을 쏘는 장면이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요원이 한낱 평범한 비무장 살인범에게 두들겨 맞고 총까지 빼앗겨? 그리고 다른 요원 놈들은 그걸 그냥 보고만 있어? 아무리 건드릴 수 없는 VIP라 할지라도 애초에 무장한 상태로 등을 보였으면 채이도에게 다가가기도 전에 최소한 다리 정도는 쏴서 공격불능 상태로 만들었어야 했다. 그걸 그냥 VIP니까 이해하라고 하는 거면 그건 그거 나름대로 또 감독의 연출력 부재고.
겉멋 역시도 문제다. 그냥 다 어디서 본 것 같은 것만 실컷 우라까이. <신세계>에서는 그래도 우라까이 하나만은 잘했었는데 어째 이러냐. 솔직히 김광일이 이어폰 꽂고 음악 들으며 책을 읽는 장면은 대 실소. 이게 무슨 순정만화야?
중간중간 나오는 각 장 제목 폰트가 너무 촌스러워 웃을 뻔했다. 심지어 영화 제목은 촌스러운 폰트로 점점 커지더라. 보면서 진심 학생 졸업 작품인 줄.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