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20 13:12

베이비 드라이버 극장전 (신작)


태초부터 그 쇼트가 그 길이로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그야말로 쫙쫙 달라붙는 신묘한 편집. <설국열차> 찍고난 후에 크리스 에반스가 마스터 샷과 커버리지 샷에 대해 특출난 계획을 갖고 있던 봉준호를 추억하며 머리 속에 모든 계획들이 들어있어 집을 지을 때도 못 여러개가 필요하다고 말할 사람이 아니라 정확히 못 62개가 필요하다고 말할 사람이라며 치켜세워줬던 인터뷰를 기억한다. 아마 에드가 라이트도 비슷한 사람이 아닐까. 


에스 피 오 아이 엘 이 알 스포일러!


이야기는 뻔하다. 솔직히 예고편 볼 때부터 전개 결말 다 예측 되더라. 범죄 조직에 연루된 남자가 그 일로부터 벗어나려 발버둥 치다가 마지막 한 탕이라는 약속을 믿고 다시 범죄로 뛰어드는 이야기. 거기에 적절히 여주인공과 사랑의 도피 계획도 추가되어 주시고. 까놓고 말해 케빈 스페이시가 "이번이 마지막이야"라는 대사 칠 때부터 알아봤다. 범죄 영화에 저런 대사 들은 놈들 치고 진짜 그게 마지막이였던 놈들 몇 없다.

이야기는 이토록 뻔한데, 캐릭터는 괴상할 정도로 좋다. 하긴, 지금까지의 에드가 라이트 작품들 모두가 이야기는 뻔하더라도 캐릭터로 밀고 나가는 영화들이였지. 이 영화는 특히 그게 심함. 그래서 좋음. 원래부터 몽타주나 롱테이크를 자유자재로 쓰는 감독이긴 했지만 주인공 베이비를 소개하는 카페 길 롱테이크는 진짜 멋지더라. 그 정도의 캐릭터 소개라면 기꺼이 흔쾌히 즐겨줄 수 있다.

존 번설은 여기서도 나오네. 역시 불안정한 내면을 가진 캐릭터 연기는 존 번설 따라갈 사람이 없다. 그러면서도 특별출연급 분량 요정..... 좀 길게 나와주세요, 당신 제대로 본 게 <퓨리>랑 <데어데블> 밖에 없는 느낌이야. 제이미 폭스는 등장하는 모든 쇼트마다 불안감을 심어주는 특급 돌아이 역할로 나온다. 기가 막히게 잘함. 크게 할 말 없음. 죽을 때 엄청 꼬시더라. 케빈 스페이시도 멋지다. 후반부 베이비에 대한 박사의 태도 변화는 케빈 스페이시 캐스팅이 아니였다면 관객들이 느끼하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어쨌거나 정말 멋짐.

하지만 가장 의외의 캐릭터는 버디인데, 존 햄이 멋지게 연기하기도 했지만 캐릭터 자체가 알쏭달쏭이였다. 첫 등장부터 베이비와 나누는 대화까지 들어보면 베이비의 가장 큰 조력자로 포지셔닝 될 것 같은 인물이였는데 뜬금없게 최종 보스였어. 하여간에 에드가 라이트가 이런 건 참 잘한다.

솔직히 음악이 좋긴 하나 잘 기억은 안 난다. 특정 포인트에서 딱 딱 나오고 끊어주는 음악이 아니라 시종일관 귀를 때리는 느낌이라 즐겁긴 했지만 다시 듣고자 하는 욕구가 솟아나오진 않더라. 역시 이 방면 짱은 <킹스맨>이랑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카체이스도 소품 느낌이 나긴 하지만 적어도 공산품인 <분노의 질주> 최신작들 보다야 더 재밌다. 알뜰살뜰한 규모로 이 정도 리듬을 구현한 게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됨. 하지만 누가 뭐라해도 이 영화는 그냥 편집의 영화. 아, 진짜 편집 끈덕지게 잘 했더라.

전체적으로 재밌게 즐긴 영화인 것은 맞지만 그럼에도 에드가 라이트의 <뜨거운 녀석들>에 비할 바는 아닌 것 같다. 그냥 <앤트맨>에 묶여있던 세월에 대한 보상으로써 적절한 정도. 하긴, 어쩌면 에드가 라이트는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이 정도는 기본이라고,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에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계속 함께 작업해왔던 워킹 타이틀과 이번에도 함께 하긴 했지만, 처음으로 미국을 배경으로 삼은 영화잖아? 한 번쯤 에드가 라이트의 규모 큰 영화가 보고 싶기도 하다.

핑백

  • DID U MISS ME ? : 콜래트럴 2017-09-20 14:13:19 #

    ... 04년 쯤이였던 것 같다. &lt;레이&gt;도 2004년에 개봉했었지, 아마? 그야말로 최고의 해였네. 제이미 폭스는 진짜 작품마다 다 다르다. 최근작 &lt;베이비 드라이버&gt;에서는 톰 크루즈의 빈센트 뺨치는 싸이코 범죄자로 등장해서 그가 나오는 매 쇼트마다 불안감을 줬었는데, 또 &lt;콜래트럴&gt;에서는 세상 착함. ... more

  • DID U MISS ME ? : 2017년 대문짝 2017-09-20 14:13:48 #

    ... 사 / 이집트의 톰 아저씨 / 봉준호 돼지 / 우리들의 친절한 이웃 / 지옥섬 /놀란 철수 대작전 / 택시 드라이버 / 원숭이올시다 3 / 닉 퓨리 + 데드풀 / 애기 운전자 / 영국 양복남 /드니 2049 빌뇌브 / 눈사람 / 스트레인저 띵즈 2 / 토르vs헐크 / 정의 연맹 / 은하전쟁 8 이전 글 ... more

  • DID U MISS ME ? : 겟어웨이 드라이버 2017-11-14 14:29:45 #

    ... 넷플릭스 오리지널. 제목이나 설정만 보면 에드가 라이트의 &lt;베이비 드라이버&gt; 또는 &lt;분노의 질주&gt; 마이너 버전이 아닐까 예상해보게 되지만, 실상 카체이스나 액션 보다는 한 인물의 생각과 감정 변화를 집요하게 따라 ... more

  • DID U MISS ME ? : 다키스트 아워 2018-01-25 17:52:19 #

    ... 끼는 남자의 모습까지도 번뜩번뜩 비춰준다. 게리 올드만이 이번 아카데미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전쟁날 일일 것이다. 게리 올드만 외에 &lt;베이비 드라이버&gt;에서도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던 릴리 제임스 역시도 괜찮다. 배우는 참으로 작품 선택이 중요하구나 라는 걸 느끼게 만들어준 배우이기도 한데, &l ... more

  • DID U MISS ME ? : 드라이브, 2011 2018-03-16 17:41:22 #

    ... 근데 그것보다 더 놀라운 건 나중에 블루레이로 다시 보고 기겁을 했었다는 거. 너무 좋아서. 넷플릭스의 &lt;겟어웨이 드라이버&gt;와 에드가 라이트의 &lt;베이비 드라이버&gt;가 있기 이전에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이 영화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테다. 애초에 '겟어웨이 드라이버'라는 직종을 내게 알게해준 작품이니. 초 ... more

  • DID U MISS ME ? : 새벽의 황당한 저주, 2004 2019-10-06 16:31:43 #

    ... 다르냐-라고 묻는 듯한 감독의 미적지근 뜨거운 태도가 좋으면서도 존나 웃기고. 에드가 라이트가 이런 영화 하나 더 해줬으면 좋겠다. &lt;베이비 드라이버&gt;도 좋았지만, 그럼에도 이런 B급 영화적 패기는 없었거든. 지금 찍고 있는 차기작도 이 영화보다는 &lt;베이비 드라이버&gt;의 세련된 ... more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