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13 19:30

블레이드 러너 2049 극장전 (신작)


이렇게 양가적인 감정이 드는 영화는 또 오랜만이다. 


2049년 스포일러 러너!


보는내내 감탄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 있었고, 또 보는내내 지루할 수 밖에 없는 부분들이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참 아름답구나', '멋진 촬영과 멋진 연출이구나'라고 감탄 하기도 했지만, 또 한 편으로는 '더럽게 지루하네', '이건 또 왜 넣은 거야' 같은 장탄식도 했다. 내가 뭔가 대단한 영화를 보고 있구나 라는 생각은 드는데 그 영화가 더럽게 재미없을 때 오는 그 아노미 상태. 이로써 잠시 잊고 있었던 사실만 다시 확인했을 뿐이었다, 전편도 그렇게 내 취향이 아니었지 않냐는 바로 그 사실. 

라이언 고슬링이 연기하는 주인공 'K'를 처음부터 레플리컨트로 까고 시작하는 도입부는 나름 신선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 않았나 싶다. K가 인간이었고, 그러다가 또 후반부에 인간인지 인조인간인지 야바위하는 애매모호한 떡밥을 남겼다면 그건 그냥 전편의 동어반복일 뿐 아니겠나. 차라리 대놓고 레플리컨트로 설정 해놓은 다음, 피조물로써 자신의 동족들을 처단하는 일을 하는 블레이드 러너로 설정함으로써 더 많은 함의 설정이 가능하게 되었다. 특히 피조물이자 껍데기에 불과한 K가, 그 역시도 다른 피조물이자 껍데기 허영에 불과한 '조이'에게 감응하는 전개 역시 재미있다. 어쩌면 이건 전편에서의 로이와 프리스 관계를 오마주한 걸까. 거기서도 여자가 죽었었지. 덤블링 묘기 부리다

일단 개별적인 연출과 촬영, 조명, 편집 방식은 나무랄 데가 없다. 로저 디킨스의 촬영은 실로 아름답고, <스카이폴>과 <시카리오 - 암살자의 도시>를 통해 보여주었던 환상적인 조명 사용 역시 이번 영화에서 정점을 찍는다. 드니 빌뇌브의 연출은 또 어떻고. 주인공에게 부여된 미약한 희망과 존재론적 고민마저 가차없이 파괴하는 파괴왕 시바 빌뇌브. 역시, 이 양반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행복 하긴 글렀어.

그럼에도 아쉬운 건, 지나치게 긴 런닝타임과 방만한 각본이다. 우선 영화 내에서 쓸데없이 설정 해놓고 수습 또는 사용하지 않은 잔가지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래서 대사로만 때우는 데커드와 레이첼의 과거는 대체 어떻게 된 건데? 바티스타가 연기한 사퍼는 대체 어떤 존재인데? 월레스는 마지막에 어떻게 돼? 후반부에 갑툭튀한 레플리컨트 혁명군은 또 어디로 증발한 건데? 지금 생각해보면 전편과 속편 사이의 30년 시간대를 설명하기 위해 단편 세 편을 공개 했던 것도 사실 길조는 아니었다. 진짜 좋은 영화는 그런 세계관 설명 단편 없이도 본편 내에서 모든 걸 다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하거든. 그런 단편들은 본편에 큰 영향을 끼치면 안 되는 일종의 보너스 같은 거 거든. 근데 어째 이 영화는 그런 걸 너무 많이 만들었다 했어. 단편 각 편의 퀄리티들을 떠나서 세계관을 설명하기 위해 단편들을 제작했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전편을 본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을 데커드의 등장도 지나치게 늦다. 그리고 그 과정도 굉장히 뜬금없고 납득하기 어렵다. 데커드는 대체 왜 굳이 방사능 피폭 구역으로 들어가 몸을 숨겼나. 방사능 피폭된 체르노빌 비스무리한 그 공간은 대체 어디고 왜 그런 일이 벌어지게 되었는가. 대체 그게 데커드랑 무슨 상관이냐고 이런 젠장.

레플리컨트의 임신 가능 설정을 가져온 것은 흥미롭다. 이것 자체로 여러가지 의미들을 더 내포할 수 있었다. 피조물이 낳은 생명은 생명인가, 생명이 아닌가. 그럼 그런 고민 하나만 캐치해서 쭉 가져 갔어야지, 이것 저것 하고 싶은 건 많아 가지고. 이 설정 자체가 영화 전체의 맥거핀처럼 되어버렸다. 게다가 빌어먹을 전편의 레이첼을 중요 인물로 부각시키기 위해 뒤늦게 이런 설정 첨가한 것도 좀 많이 어이 없고.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운 영화는 아니다. 그저 멋진 연출과 아름다운 이미지들이 방만한 이야기 구조에 희생되는 영화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역시 이 시리즈는 나랑 안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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