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13 19:48

남한산성 극장전 (신작)


빼어난 영화는 못 되지만, 나로서는 어느 정도 잘 나온 영화라 평할 수 밖에 없는 종류의 영화다. 숨 막히게 개성 넘치거나 막 나가는 막가파적 유희는 없지만, 전체적으로 고르게 균형 잡혀 있고 진지한 영화. 그런 영화들을 개인 취향과 무관하게 잘 나온 영화라 생각 하거든.


이 글 보다 국사 교과서에 더 많은 스포가 있을진대, 어찌되었거나 스포일러?


전투의 스펙터클을 줄이고 최명길과 김상헌 두 인물의 썰전으로 영화를 진행한 것이 가장 큰 플러스 요인이다. 자칫 소재의 장점을 잘못 파악해서 과시적이고 화려하기만한 전투 씬으로 가득 찬 영화가 될 뻔도 했는데, 그런 함정들을 잘 피해나갔다. 물론 결말부에 자연스레 등장할 것이 예상되었던 삼전도의 굴욕 장면 역시도 부분적으로 생략할 줄은 몰랐다. 삼배구고두례 자체가 좀 길긴 할테지만, 그래도 플래시백 편집이나 부분적인 교차편집으로 그 장면을 다 보여줄 거라 생각 했었거든. 뭐, 그냥 그렇다고. 꼭 보고 싶었던 장면은 아니었던지라 패스-.

흡사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를 봤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 그 영화가 잘했던 게, 관객들이 응원하는 주인공들을 두 패로 갈라 싸움 시키면서도 절묘한 균형 감각으로 어느 한 쪽 편만 들기 어렵게 만들어놨었거든. 이 영화 속의 최명길과 김상헌도 그러한데, 최소한의 역사 교육을 받았다면 당연히 최명길의 주화론이 승리 아닌 승리를 거둘 것임을 알았겠으나, 그걸 떠나서 우선적으로 주화파와 척화파 양측의 입장과 명분이 명확히 보여 어느 한 쪽을 쉽게 지지 하기가 힘들다. 흡사 한 가지 주제로 일주일 간 촘촘히 준비하고 나선 토론 대회에서 유시민과 진중권이 끗발 날리게 싸우는 걸 구경한 느낌. 최명길과 김상헌 둘이 조선팔도를 유랑하며 알쓸신잡 같은 걸 했으면 대박났을텐데. 유희열 역할은 인조?

배우들의 연기 대결이 빛나는 영화이기도 한데, 사실 이병헌과 김윤석에 대해선 두 말하면 입 아플테니 넘김. 박해일은 선방 했고 고수는 여전히 아쉬웠으니 이 둘도 그냥 넘김. 그래, 솔직히 말해서 그냥 박희순이 너무 멋져서 나머지는 다 넘긴다. 박희순 좀 잘 됐으면 좋겠다. 연기도 잘하고 목소리도 좋고 심지어 이번 영화에선 캐릭터 마저도 독보적으로 매력적인데 하아... 이시백 수호사님 절 지켜주세요!

영화 자체도 굉장히 좋지만, 본의 아니게 대한민국의 현 시국 때문에 더 주목받고 깊은 감응을 주는 영화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극 중에서도 임진왜란, 병자호란 죄다 언급되는데, 대륙에서 보자면 영토 진출의 기회이고 섬나라 입장에서 보자면 대륙 진출의 기회인 이 반도의 운명이 참 지독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남들에겐 기회의 땅인데 어째 우리에게는 침략의 굴레인 것이냐. 어찌되었든 요즈음의 한반도 정세와 여러모로 잘 들어맞는 영화. 뻔한 말이지만, 역사와 영화가 현재와 현실에 감응하는 순간이 이 영화에 담겨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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