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22 12:46

마더! 극장전 (신작)


<위플래시> 포스터 이후로 평단의 호평 멘트를 포스터에 빼곡히 박아넣는 것은 이제 하나의 유행이 되었다. <마더!> 역시 그러한데, 저 포스터의 멘트 중에 공감가는 것은-

1.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가장 극단적인 영화'. 이 양반이 만든 지금까지의 영화들은 관람 행위 자체가 칼로리 소모를 꽤 불러일으키는 운동과도 같았다. <블랙 스완>이 육체적 칼로리 소모의 정점에 달해있던 영화라면, <마더!>는 정신적 칼로리 소모가 더 크다는 게 그 차이. 어쨌거나 아로노프스키 필모그래피를 통틀어서 가장 극단적인 영화인 건 맞다.

2. '제니퍼 로렌스는 탁월하다'. 말해 무엇하겠냐만, 제니퍼 로렌스의 연기는 정말이지 탁월하다. 함께 공언한 하비에르 바르뎀의 슬프고 기이한 에너지와, 미셸 파이퍼의 농염미 뿜뿜 에너지 역시 탁월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제니퍼 로렌스의 영화다. 애초에 각본과 연출, 촬영에 이르기까지 모두 제니퍼 로렌스를 위한 셋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단역까지 포함해 등장인물이 꽤 많은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영화는 그녀의 시점으로 진행되며, 감정적 초점도 모두 그녀에게 맞춰져 있다. 게다가 영화의 근 90% 정도가 스테디캠을 활용한 클로즈업 쇼트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클로즈업 역시도 대부분이 제니퍼 로렌스의 것이다. 애초에 클로즈업은 '감정의 쇼트'이므로, 제니퍼 로렌스의 감정에 집중하는 촬영이라고 또 볼 수 있다. 근데 다 떠나서, 배우 스스로가 연기를 잘 해낸다. 진정한 고수는 연장 탓을 하지 않는다 했던가. 셋팅이고 나발이고 제니퍼 로렌스는 영화가 요하는 모든 걸 다 해낸다. 이 나이대에 이 정도의 실력과 이 정도의 커리어를 쌓았던 배우, 특히 '여자' 배우는 지금까지 흔치 않았다. 귀중한 보물이다.

3. 하지만 가장 공감가는 부분은 바로, '당신이 받은 충격이 무엇인지 당신조차 알 수 없을 것'이라는 멘트.


스포!


따지고 보면 내가 받은 충격이 정확히 뭔지는 안다. 머리 속에 많은 미사여구들이 떠돌아 다니고 있지만, 어떻게든 그 단어들을 모아 가까스로 정리해 본다면 '굳이 이렇게까지 했어야 했나' 정도로 귀결될 것이다. 그만큼 이 영화는 과하다. 연출과 연기가 과했다는 말이 아니다. 다름 아닌 아로노프스키 특유의 그 빌어먹을 상징주의가 지나치게 강했다는 말이다. 로만 폴란스키의 <악마의 씨>를 보고 영감을 받아 창세기를 내리 두 번 읽고 시나리오를 써 내려갔다는 이 영화. 딱 그런 티가 난다. 아니, 너무 많이 난다는 게 문제란 말이지. 

당장 떠오르는 부분만 정리해보면 이런 거다. 영화 속의 모든 등장인물들은 고유명사로써 이름을 갖지 않고 크레딧에서 마저 3인칭으로 정의된다. 
우선적으로, 하비에르 바르뎀 = 그. 일단 인물 스스로가 '나는 스스로 존재한다' 식의 대사를 치고, 별 희한하고 억울한 일을 다 겪어도 가해자들을 용서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이 세계의 신이다. 야훼라고 보면 될지어다. 
제니퍼 로렌스 = 마더. 후에 신의 아들을 잉태하는 것으로 보아 기독교적 관점에서 보면야 마리아겠지만, '집'과 '마더'를 동일시할 경우엔 하나의 세계를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선 감독 스스로가 종교인이 아닌데다 환경주의자이고, 영미권에서 대자연을 표현할 때 '마더 네이쳐'나 '마더 어스'라고 칭하니 어쩌면 마더는 지구 또는 자연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겠다.
에드 헤리스 = 남자. 가장 먼저 등장했고, 무엇보다 성별로 보았을 때 남성이며, 옆구리에 설명되지 않는 깊은 상처가 있다는 점에서 빼박 아담. 
미셸 파이퍼 = 여자. 아담의 옆구리 상처가 드러난 이후 다음 씬에서 바로 등장. 빼박 이브.
도널 글리슨 = 형. 도널 글리슨 나오는 줄도 몰랐는데 갑툭튀하길래 처음엔 긴가민가했음. 아담과 이브의 아들로 나오는데다 형제가 있고, 나오는 타이밍을 봤을 때 카인 정도가 되겠다.
브라이언 글리슨 = 동생. 카인 동생이니 아벨이겠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근데 몰랐는데 찾아봤더니 도널 글리슨의 친동생이넼ㅋㅋㅋㅋㅋ 하나도 안 닮았는데. 이 정도면 진짜 지나친 상징주의 세팅 아니냨ㅋㅋㅋㅋㅋㅋㅋㅋㅋ
크리스탈로 보이는, 하비에르 바르뎀의 아주 소중한 물체. 그리고 이후에 아담과 이브의 손에 파괴되어 '그'의 분노를 불러 일으키는 물체. 선악과렷다.
그리고 '그'와 '마더'의 아들이자, 사람들에게 추앙 받다가 죽음을 맞이하고 스스로의 피와 살을 추종자들에게 나눠먹인 존재. 설명이 더 필요하냐?

대충 정리하면 이 정도일 거고. 보다보면 후반부에선 더한 상징들도 휘몰아친다. 보다보면 홀로코스트 비스무리한 것도 보이고, 왜인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대립구도도 좀 보이고, 심지어는 성지순례나 십자군 전쟁, 동방박사 예물 같은 이미지들도 있음. 물론 기독교적인 텍스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의 시작 지점과 종료 지점만 본다면 불교나 힌두교가 떠오르기도 한다. 불교 쪽에서는 윤회 사상이겠고, 힌두교야 그 유명한 '시바' 신이 단순 파괴의 신이 아니라 파괴와 창조의 신이니까. 힌두교는 파괴가 있어야 창조도 있는 것으로 본다 한다. 다양한 종교 텍스트들이 얽혀있고, 감독 스스로도 무신론자이지만, 그 와중에 기독교적 맥락이 크고 많은 것은 아무래도 기독교가 (특히 서양권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종교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크리스쳔이 전체 인구의 0.02% 정도라고 하는 일본에서 쓰여진 각본이라면 180도 달랐을까. 애초에 아로노프스키가 일본인도 아니지만

저밀도의 공포에서 고밀도의 혼란으로 치닫는 과정이 흥미롭고 디테일하게 설계된 사운드 디자인으로 만들어내는 공포 효과 역시 재미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이야기했던 상징 때려박기 때문에 1차적으로 거부감 부터 든다. 종교인이기 때문에, 또는 종교인이 아니기 때문에 드는 단순한 거부감이 아니라, 지나칠 정도로 때려박는 그 '상징', 그 자체 때문에 생기는 부담감에 의해 드는 거부감이랄까. 이 정도면 은유도 아니고 그냥 직유잖아. 그리고 이렇게 직유해서 결국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뭔데?

문제작인 것도 맞고, 어쩌면 후에 재평가될 여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있어보이는 상징주의로 영화를 포장하는 아로노프스키의 개수작에 지쳐버렸다. 장르나 이야기 역시 내 취향에 그리 부합하지 않고. 논쟁거리가 많은 영화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있어보이는 개수작이 영화를 무조건적으로 좋게 만들지는 않는다. 그저 영화 역사상 가장 끔찍한 루프물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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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로그온티어 2017/10/22 19:12 # 답글

    아예 포스터 자체를 악마의 씨처럼 만들었엌ㅋㅋㅋㅋㅋㅋ
  • CINEKOON 2017/10/27 16:18 #

    이게 오마주인지 덕질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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