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05 17:24

침묵 극장전 (신작)


우마차에서는 보통 앞에 있는 소가 뒤에 있는 마차를 잡아당겨 끈다. 본디 앞에서 탄력있게 당겨주어야 뒤에 있는 것이 힘을 받아 따라오는 것이다. 허나 이 영화는 반대다. 이 영화에선 뒤에 있는 마차가 앞에 있는 소를 끌고 간신히 목적지에 도착 해낸다.


스포마차를 언급하지 않고서는 이 소 같은 영화에 대해 말을 할 수가 없다.


중화권 영화인 <침묵의 목격자> 리메이크. 아직 원작은 보지 못했지만, 듣기로는 법정 스릴러로써의 재미에 치중해 장르적 성향이 더 강한 영화라고 들었다. 그래서 더 의문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왜 이런 장르 영화를 한국의 정지우가 리메이크 하려는 걸까, 라는 의문. 그 때부터였다. 어쩌면, 이 영화가 스릴러로써 이야기를 풀어낼 것 같지 않다는 예감. 애초에 나홍진이나 최동훈 같은 감독이 각본을 쓰고 연출한다 했었으면 나로서도 스릴러와 미스테리물로써 장르적 재미가 쫄깃한 영화를 기대했을 것이다. 근데 나홍진, 최동훈 아니잖아. 그렇다고 데이비드 핀처나 브라이언 싱어가 만드는 것도 아니잖아. 이건 정지우 영화잖아.

역시 멜로 드라마였다. 그것도 정지우 스타일의, 인물이 공기밥 마냥 꾹꾹 눌러담은 감정이 중요한 멜로 드라마. 내 이럴 줄 알았어. 애시당초 정지우 역시도 재미난 장르 영화를 만들겠다는 욕심으로 접근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에게는 법정에서 펼쳐지는 구강액션 썰전이나, 결정적 증거와 목격자를 찾기 위한 추리와 추격에 큰 관심을 갖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모든 미스테리를 풀어주는 반전 뒤에 숨겨진 인물의 동기와 감정이 더 중요했을 뿐이었던 거다.

우선 이 영화가 갖고 있는 '반전'은 쉽게 말해 무리수에 가깝다. 설득력은 있으나, 그 스케일이나 방법 면에서 다소 뻔하고 작위적인 데다가 조금 오버스럽기까지 하다. '결정적 증거를 조작하기 위해 사건이 벌어졌던 공간을 레플리카 세트로 만들어 팩트를 재구성한다'라는 트릭은 스릴러 영화나 소설을 많이 읽어본 관객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어디선가는 접해봤을 것이다. 그렇게까지 새로울 트릭이 아닌 것이다. 물론 현실적인 방법이기는 하다. 허나 대부분의 관객은 이 영화의 반전을 보면서 벙찔 것이다. 대체로 이렇게 얘기할 걸? "이렇게까지 해야 돼?!"

이 무리수 반전 때문에 영화 전체를 나쁘게 본 사람들이 꽤 많았던 것 같다. 이해한다. 나로서도 이 반전은 무리수라고 할 수 밖에 없으니. 허나 나는 이상하게도, 이 영화가 싫지 않다. 어쩌면 조금 좋은 것에 가까운 것 같기도 하다. 반전이 무리수일지언정, 이 반전 뒤에 숨겨진 인물의 감정이 너무나 애달프고 섧기 때문에. 최민식의 깊이 있는 연기로 더해진 그 감정에 내가 어쩔 수 없이 동화 되었기 때문에. 영화의 전체적인 결은 다르지만 스콜세지의 <셔터 아일랜드>나 나카시마 테츠야의 <고백>과 비슷한 느낌이다. 반전이 무리수이든, 무리수가 아니든 간에 그 반전 뒤에 숨은 인물의 감정에 전도되어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그런 느낌. 그래, 그래서 어쩌면-, 이 영화는 최민식이라는 배우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그 무거운 주름 사이로 그 억눌린 감정들을 관객에게 욱여 넣으니까. 애초에 좋은 연기가 없었더라면 성립할 수 없었던 반전인 것이다.

덕분에 나머지 배우들은 쩌리 신세를 못 면한다. 류준열의 '케이블 가이'는 순전히 배우의 티켓파워 때문에 분량 뻥튀기 된 작위적 캐릭터라고 생각하고, 박신혜의 변호사 캐릭터는 영화에 잘 녹아 들지 못한채 주변만 배회한다. 그나마 박해준은 배우로서 반갑더라. <4등> 재밌게 봤는데. 정지우도 거기서 확 꽂혔나 보지?

후반부 반전의 정서가 너무 강해서, 반전이 나오기 전까지의 내용들은 모두 헛것처럼 느껴진다. 졸지에 반전이 가까스로 영화 전체를 이끌고 있는 셈. 자동차의 엔진이 후방에 있는 경우라 할 수 있겠다. 그 반전을 관객에게 조금이라도 더 납득시키기 위해서 영화 중반부까지의 인물들이 모두 작위적으로 놀고 있거든. 앞부분까지 뛰어났다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반전 이후, 태국 장면이 유난히 길게 느껴지더라. 반전의 트릭을 설명할 필요는 있지만, 이렇게까지 물리적인 분량을 늘리면서까지 자세히 보여주어야만 했을까 싶던 찰나-. 갑자기 툭 튀어나온 이하늬와 최민식의 상상 속 짧은 재회. 아, 결국 이 장면을 위해 존재했던 것들이구나. 정지우는 이 장면을 위해 영화를 만들었겠구나. 감독의 관심사가 절절하게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하여튼 미스테리 법정 스릴러 기대하고 본 관객들은 실망했을 거다. 알고보면 이 영화는 그냥 멜로 드라마거든. 그것도 졸라 비극적인.

뱀발 - 나였으면 내 딸이여도 진즉 감옥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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