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13 22:02

리빙보이 인 뉴욕 극장전 (신작)


막장 드라마도 천조국에서 만들면 세련되고 고오오오오급스럽다. 물론 따지자면 세련되고 고급스럽다기 보다는 지나치게 쿨한 거지만. 근데 그것 역시도 또 따지고 보면 애초에 서양 사람들의 생각됨됨이가 그런 것을 뭐 어찌하겠느냐만.

후배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엽기적인 그녀>의 할리우드 리메이크판이 왜 미국에서 안 먹혔는지 아냐고. 이유는 그 여성 캐릭터의 엽기성이 미국에서는 지나치게 일상화 된지 오래라는 것이었다. 한국에서야 엽기적이라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막 나가는 캐릭터였지만, 이미 미국에는 그런 캐릭터들이 많다는 거지. 그 이야기를 듣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할리우드에서 으레 만들어졌었던 청춘 코미디나 섹스 코미디에는 그런 캐릭터들이 한 둘도 아니고 거의 한 다스씩 있더라.

90여분의 장편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웬만한 한국 TV 아침 드라마 뺨칠 정도로 막장의 농축이 잘 되어 있다. 아버지의 불륜녀, 그리고 그 불륜녀와 동침을 하는 아들. 게다가 마지막엔 파란만장하면서도 고리타분한 출생의 비밀까지. 임자 있는 여자와의 하룻밤 로맨스는 가벼운 축에 속할 지경이다. 동일한 이야기를 한국에서 풀었더라면 분명 감정적으로 치닫는 부분들이 많았을텐데, 이 영화는 쉽게 그러질 않는다. 그러다보니 영화의 인상이 쿨해 보이고, 오히려 새로워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미국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어떨지 또 모르겠지만. 오히려 진솔해보이는 태도로 막장 요소를 다루는 영화로써, 문학적인 느낌까지 드니 이것 참 사대주의도 아니고 뭔지 모르겠다. 

칼럼 터너는 이 영화에서 처음 보는데, 덕분에 마크 웹 감독의 남자 배우 취향을 알게 됐다. 조셉 고든 레빗과 앤드류 가필드를 이어 칼럼 터너까지. 어째 마크 웹 감독은 마르고 비실비실해 보이는 이미지에 찌질함과 순수함을 적당히 반반 꾸덕꾸덕 묻힌 남자들을 좋아하는 것 같다. 더불어 알게된 건 마크 웹 감독이 여성을 바라보는 태도. 어째 <500일의 썸머> 속 썸머도 그렇고, 이 영화 속 조한나나 미미도 그렇고 다들 좋게 말해 우유부단하고 나쁘게 말해 남자 마음을 가지고 논다. 마크 웹 감독의 첫사랑 그녀는 대체 어땠을까.

피어스 브로스넌도 멋지지만 역시 제프 브리지스가 더 섹시하게 나온다. 둘 다 각자 영국과 미국의 노년간지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데, 신사적인 섹시함 보다는 아무래도 좀 더 마초적인 섹시함이 내가 보기엔 더 멋졌던 듯. 게다가 졸라 지적이잖아. 대화 중 인용을 막 해대도 귀신같이 알아채는 대마법사. 이 정도면 하이퍼링크 마법사인 거다.

근데 사실 다 필요 없고, 케이트 베킨세일의 위엄만 다시금 증명한 영화라 하겠다. 이번 영화에서 그나마 조금 늙은 느낌이 났지만, 그런들 또 어떠하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토르 - 라그나로크> 보면서 케이트 블란쳇에게 느꼈던 감정과 어째 비슷한 것 같다. 그러고보니 둘 다 케이트네. 역시 케이트들은 위대해!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