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02 13:53

오리엔트 특급 살인 극장전 (신작)


주위에선 다들 별로라고 하는데, 나만 재밌게 본 건가 싶은 그 영화. 


철 지난 스포일러지만 스포일러는 스포일러!


사실 2017년에 와서 이 영화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일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닳고 닳은 이야기 아니겠는가. 게다가 소설 한 편을 쓰는 데에는 종이와 펜, 또는 타자기만 있으면 되겠지만 엄청난 노력과 시간은? 영화 한 편을 찍는 일은 다르다. 일단 품이 많이 든다. 그리고 품이 많이 드니 덩달아 돈도 많이 든다. 그러니까 우리가 맞이하는 웬만한 영화들은 만들어질 적에 꽤 깊은 셈을 하고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영화가 얼마나 사람들에게 먹힐지, 얼마나 돈이 될지 라는 고민을 안 할수가 없는 거거든.

그런 면에서 보자면 진짜 이 영화의 기획은 넌센스가 맞다. 실패할 확률이 너무 높고, 부담스러운 요소들도 한 두가지가 아니다. 좀 손꼽아 보면, 
1. 전세계적으로 지지받는 데다가 팬덤마저 강력한 소설이 원작. 장르는 다르지만 바로 떠오르는 <해리 포터> 시리즈나 <반지의 제왕> 시리즈처럼 원작과 조금만 달라도 골수팬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눈에 훤히 보인다.
2. 원작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들도 웬만해선 다 아는 반전과 결말. 추리 장르 영화로써는 가장 큰 약점일텐데, 진짜 결말이 너무 유명하고 많이 알려져 있는 작품이라 위험부담이 클 수 밖에 없다. 옛날에 소설을 읽은 나도, 읽기 전에 반전과 결말 다 알고 읽었다.
3. 많은 등장인물들. 근본적으로 소설과 영화, 이 두 매체 간의 차이는 꽤 크다. 소설 내에서는 여유있게 모든 인물들의 전사와 감정을 전달할 수 있겠지만, 길어봤자 두 세시간 정도의 런닝타임 한계를 가진 영화에서 이는 분명 약점이다.
4. 열차 내라는 한정적인 공간. 이것 역시도 소설과 영화 간의 매체 차이에서 오는 약점인데, 추리 소설 같은 경우는 이야기의 공간적 배경이 한정적일수록 재밌고 묘사하는 데에 있어서도 유리하다. 허나 영화는 말그대로 '촬영'을 해야한다. 좁고 한정적인 공간에 인물들은 우글 거리는데, 여기서 얼마나 다양한 앵글과 쇼트 사이즈를 만들어낼 수 있겠나. 이 역시도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
5. 그리고 무엇보다, 에르큘 포와로가 안락의자형 탐정이라는 것이다. 포와로 자체가 홈즈처럼 활동적인 육체파 탐정이 아니고, 용의자들을 한 명씩 심문 하다가 증언에서 나온 헛점을 이용해 퍼즐을 맞춰나가는 형식의 수사 스타일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영상화 하기엔 더 평범하고 플랫해 보일 수 있다. 

이처럼 케네스 브레너의 리메이크작은 기획에 있어서 무수한 약점을 가진 영화다. 근데-,

이 영화는 그걸 다 연출과 무드로 뚫었다.

일단 몇몇 등장인물들을 합치거나 비중을 줄이는 정도는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원작을 철저히 따른 편이다. 심지어 그 유명한 반전과 결말까지도. 허나 그 모든 걸 다 연출로 빠갰다. 열차 내에서 다양한 앵글과 쇼트 사이즈를 구사하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한 흔적이 보이더라. <킬빌>에서 타란티노가 그랬던 것처럼, 아예 열차 천장 시점에서 이야기를 진행해 이 모든 사건이 결국 운명적으로 엮여 있다는 것을 암시 하기도 했고, 인물들의 움직임에 따라서 카메라를 조금씩 움직이거나 유리를 통해 인물들의 모습을 분열시켜 감정 전달 역시도 탁월하게 했다. 그러면서도 지나치게 드러나지는 않음. 물론 중간중간에 좀 과시적으로 보이는 부분들도 있긴 하다. 대표적인 게 포와로가 열차에 탑승하는 롱테이크. 그러나 그건 그 자체로 또 보는 맛이 있다. 미술과 세트 디자인 역시 훌륭해서 이 모든 게 딱딱 맞아 떨어진다.

허나 그러면서도 대부분의 관객들이 보냈던 혹평이 이해 안 가는 건 또 아니다. 당 영화를 추리 영화로 여겨 스릴과 서스펜스를 느끼러 왔던 관객들 입장에선 일종의 배신감 마저 느꼈을 수 있겠다. 그런 장르의 영화 치고는 서스펜스가 너무 없거든. 다만 이 역시도, 이미 유명한 그 '반전'에 승부를 걸기 보다는, 그 이면에 숨어 있는 인물들의 감정과 드라마에 방점을 찍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싶다는 생각. 고로 추리 영화 기대하고 온 사람들은 실망할만함.

배우들의 면면이 화려한데, 최소한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는 상황이 연출 되지는 않았다. 전반적으로 모두 훌륭했고, 그 중에서도 미셸 파이퍼는 발군이다. 아, 최고의 캣우먼이여! 사실 가장 걱정했던 건 연출과 주연을 모두 맡은 케네스 브레너였는데, 잘 하더라. 좀 귀염성 있으면서도 비장한 맛을 잘 살렸다는 느낌.

<오리엔트 특급 살인>이라는 제목을 가진 영화에서 스릴과 서스펜스를 추구하지 말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때문에 이 영화에 실망한 대다수의 관객들을 이해한다. 허나 이 영화엔 연기와 촬영, 미술과 프로덕션 디자인 등을 위시한 좋은 연출이 있다. 가끔씩 나오는 고전 리메이크들은 연출의 차이에 따라 그 자체로 영화의 이미지가 결정되기도 하는데, 적어도 이 영화는 날 실망시키지 않았다. 벌써 속편 준비 들어갔던데, 최소한 이 정도로만 계속 뽑아줬으면.

뱀발1 - 케네스 브레너의 최근작 중 가장 만족한 영화라 하겠다.
뱀발2 - 각본을 마이클 그린이 썼는데, 올해 <로건><블레이드 러너 2049> 그리고 이 영화의 각본을 썼고, <에이리언 - 커버넌트>의 원안을 썼다. 최고의 해를 보내는 중. 어느새 반지닦이의 오명은 저 멀리로...
뱀발3 - 남미계 미국인 자동차 딜러는 어디서 많이 봤다 했더니 <매그니피센트7>의 바스케즈였구만.

덧글

  • 2017/12/02 19:4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7/12/10 14:5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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