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10 15:16

어쌔신 - 더 비기닝 극장전 (신작)


젊은 신작인 줄 알고 봤더니 나이든 구작이었던 영화. 요약하면 미국 및 CIA한테 까불면 어느 나라 어떤 사람이던 간에 다 잡아 족칠테니 알아서 짜져있으라는 내용의 액션 스릴러 되시겠다.

스포일러 더 비기닝!

트럼프가 공개석상에서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떠들어대 안그래도 뜨거웠던 팔레스타인 - 이스라엘 관계에 더 불을 지핀 상황인데, 이런 시점에 개봉된 영화로써는 참으로 미국우월주의에 쩔어있는 영화라 어쩌면 시기적절한 것 같기도. 사실 처음 봤을 때는 이게 무슨 아버지 부시 정권 때나 만들어졌을 법한 영화냐 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지금은 트럼프의 시대잖아? 그러니까 어쩌면 이게 시대를 철저히 더 반영한 결과물일 수도 있는 거야... 졸라 무섭다

미국이 중동 국가들에게 가했던 전쟁 범죄들이 짧게 묘사되고, 결국 영화의 흑막이자 최종 보스는 미국에게 버림받았던 미국 사람이니 이 정도면 적당히 퉁 친 거 아니냐는 이 영화의 태도가 더 언짢다. 냉전 시대 분위기 쩔어줬던 과거 제임스 본드 시리즈처럼 차라리 막가파적으로 가던가. 이게 무슨 안하무인의 태도인지. 이란 권력 상층에 위치한 사람들은 모두 미국에 반대하며 세계 평화를 위협하려 핵무기를 개발하는 악당들로 묘사 되었고, 심지어 죄다 비굴하고 어이없게 죽는다. 게다가 거의 언급 뿐이긴 하지만 플루토늄 도난 당한 것도 러시아임. 왜인지 모르게 만약 속편이 나온다면 요즘 정세에 맞게 북한이 주요배경으로 등장할 수도 있을 법한 패기다. 물론 망해서 속편은 안 나올 듯 다행이다

배우로서 기대가 되는 건 당연히 마이클 키튼이었지만, 영화 전체의 톤을 지배하는 건 딜런 오브라이언이 될 것 같아 그 쪽에 더 기대감이 실렸었다. 보기 전엔 딜런 오브라이언이 주연이란 말을 듣고, 젊은 감각을 내세운 젊은 에스피오나지 장르의 영화가 아닐까 싶었었거든. 근데 아니었음. 심지어 <발레리안 - 천 개 행성의 도시> 때 데인 드한에게 느꼈던 감정을 여기서 딜런 오브라이언에게 느낀다. 뭔가 안 맞는 옷을 입은 느낌. 원숙하고 훌륭한 배우라면 이 마저도 능숙한 이미지 변신으로 성공했을 테지만, 데인 드한이나 딜런 오브라이언이나 아직은 둘 다 어리니 큰 기대는 걸지 않기로 한다.

마이클 키튼은 거의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특히 국내의 일반 관객들은 누군지도 몰랐을 법한 노년의 배우가 근 몇 년 새에 이렇게 재성장하다니. 새삼 손가락을 접어보니, 국내 기준으로 올해 개봉작이 세 편이나 된다. <파운더>, <스파이더맨 - 홈커밍>, <어쌔신 - 더 비기닝>. 하여간에 참으로 열일 하셨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맡은 스탠 헐리라는 캐릭터는 좀 넌센스. 임무에 사적인 감정 섞지 말라고 정색하더니 정작 실전 들어가서는 자기가 가장 사적인 감정 많이 섞어댄다. 그것도 눈알을 부라리면서까지. 사실 이 영화가 갖는 전체적인 태도가 이 캐릭터에 집약되어 있다고 보는데, 첫 소개 될 때 그냥 교관이 아니라 '전사'라고 소개된다는 점. 무(武)를 숭상하는 미국의 한 단면을 상징하는 듯하다. 게다가 이 인물의 과거 이력 역시 이어서 소개되는데, 그 중에서 직접적으로 언급되는 건 다름이 아니라 걸프전 참전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중동을 미국이 헤집어 놓았던 전쟁임을 감안한다면 이 영화의 논조가 좀 더 명확해지는 느낌. 게다가 아버지 부시가 일으킨 전쟁이잖아!

의외로 좋았던 건 테일러 키취. 이 양반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할리우드의 신성이랍시고 웬만큼 큰 영화들 주연 자리를 줄줄이 꿰찼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망작 판별기로 몰락한 게 사실이다. 나도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배우는 아닌데, 이 영화에선 멋있더라. 예비군 가기는 죽도록 싫어하지만 군인에 대한 은근한 로망이 있는 나이기도 하고 그래서 <스타워즈> 내에서도 트루퍼들을 제일 좋아한다, 무엇보다 타락한 인물들을 좀 애정 하기도 해서. 이 영화에서는 옛 스승이었던 스탠에게 앙심을 품고 있는 것으로 나오는데, 왜인지 얀데레적인 면모가 두드러지기도 했다. 마지막 최후에 듣는 말은, '당신에게 사적인 감정은 없다'. 어쩌면 죽기 직전 들을 수 있었던 말 중 그에게는 가장 최악의 비수가 아니었을까. 아버지 같았던 옛 스승에게 버림받고 평생의 복수를 다짐하며 그의 눈길을 끌길 원했었는데, 결국엔 그 아버지의 다른 아들에게 죽음을 맞이하며 듣는다는 말이 '사적인 감정은 없다'라니. 평생 누군가의 감정을 원했을 그가 그 말을 들었을 때의 모습이 더욱 더 섧다.

영화 초반부 이비자 섬에서의 테러 시퀀스 등 꽤나 요소요소 공들인 부분들이 보이기는 하지만, 영화의 맵시가 전체적으로 올드해서 그닥 좋게 느껴지지는 않았던 작품. 한 20년 전쯤 미국 텍사스 쯤의 참전용사 기념관 쯤에서 상영했으면 더 어울렸을 법한 영화.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