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 북한이냐?' 내지는 '이제 한국 액션 혹은 스릴러 영화는 북한 아니면 안 되는 것인가' 따위의 우스갯소리걱정들을 불러일으켰던 또다른 북한 소재 영화. 게다가 감독의 전작이 실화를 근거로 한 휴먼 + 법정 + 드라마 였기 때문에 이런 본격 액션 + 에스피오나지 장르물을 잘 다룰 수 있을지 궁금했었는데...
결과론적으론 매우 잘 다뤘고, 생각보다 기대 이상으로 훌륭한 만듦새를 보여준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영화로 류승완 감독의 <베를린>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영화보다 좀 더 진일보한 부분들이 있다. 물론 좀 더 개개인의 드라마틱한 전사는 <베를린>이 좋다고 생각한다. 허나 <베를린>이 잘 해내지 못했던 게 하나 있었는데, 바로 거시적인 사건 묘사. 그 영화는 남한과 북한, 미국, 심지어 이스라엘 등의 국가들이 엮여있고, 모사드나 CIA 등 꽤 국제적인 조직들이 관여하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그 스케일을 이야기가 따라가지 못하는 불상사가 있었다. 근데 이 영화는 그걸 잘해낸다. 정우성과 곽도원이 연기한 북철우, 남철우 캐릭터 개인들의 사사로운 사건들을 중심축으로 놓은채 관객들을 유도하면서도, 남한과 북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등이 엮여있는 거시적인 이야기 역시 세세하게 잘 그려 나간다. 예컨대 큰 그림을 그릴 줄 알면서도 밑그림 마저 세세하게 놓치지 않는 영화라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최고 특수요원으로서 주인공 캐릭터를 그리는 데에는 다소 관습적이다. 물론 멋있으면 장땡이긴 하지만. 조우진이 연기한 캐릭터는 <터미네이터2>의 T-1000을 방불케 하는 무서운 집착을 보여준다. 자가 목구멍 뚫기 기술로 생명을 연장하는 독기는 덤. 정우성은 멋진 배우긴 하지만, 그 특유의 어눌한 발음, 발성과 이북 사투리라는 난제까지 겹쳐 대사량의 60% 정도를 주위 분위기로 때려맞출 수 밖에 없게 하는 신기를 선보인다. 그러나 지금까지 선보였던 감정 연기들 중에서는 가장 좋고, 무엇보다 액션의 태가 좋다. 배우의 무기는 한 가지가 아니란 것을 다시금 증명해주는 연기자. 곽도원이야 뭐 역시 잘하는데, 특출난 부분을 하나 꼽자면 먹방. 햄버거도 먹고 국수도 먹고 아주... 하정우의 뒤를 이으리.
구성은 좀 미드 같은 부분이 있다. 산부인과 시퀀스에서 등장했던 여성 캐릭터들이 이후엔 전개상 필요없게 되자 과감하게 쳐내는 등, 드라마의 전개를 그대로 따른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전체적인 통일성은 좀 없더라도 긴장감 유지가 잘 되는 편일지도. 어쨌거나 저쨌거나 전체적으로 대담한 상상력을 가지고 있고, 그럼에도 섬세한 터치까지 갖고 있다. 이 정도면 그래도, 꽤 잘만든 세공품.
덧글
dd 2017/12/21 00:19 # 삭제 답글
개인적으로 곽도원이라는 배우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된 영화입니다. 정말 연기 잘하는 배우는 눈빛만으로도 대사가 보이더라고요.
CINEKOON 2017/12/21 2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