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개봉일 가까이 봤다고 할 수 있을텐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있더라. 못만들고 망한 영화들은 이 자리에 출석시켜놓고 조지고 뚜까 까부수는 게 더 쉬운데, 어째 기대작이었던 영화들과 잘 만든 영화들을 칭찬하기에는 이렇게도 어려울까.
그래, 난 이 영화 좋게 봤다.
스포워즈!
디즈니식 정치적 올바름을 강요하는 영화라는 비판, 그리고 코어 팬들의 숭배 대상이자 우리 모두의 추억인 루크 스카이워커를 그렇게 소비해버렸다는 비난. 이 두가지 만큼은 나에게 있어 절대적으로 수용 불가다.
우선, 디즈니식 정치적 올바름을 강요하는 영화인가? 라는 질문에 있어서는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강요'라는 표현에 있어서는 각자 나름의 차이가 있겠지만. 어쨌거나 정치적 올바름이 깃든 영화인가 라는 질문에는 동의한다고. 근데 내가 되묻고 싶은 건, 'why not?'이란 것이다. 그래, 맞아. 정치적 올바름을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어. 근데 왜 그러면 안 되는데? 왜 여성 캐릭터들이 많은 것에, 왜 유색인종 캐릭터들이 많은 것에, 왜 대다수가 정의한 미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캐릭터가 많은 것에 우리가 비판해야하나. 이 부분을 지적하는 대부분의 관객들은 지금까지 살아오며 봐온 수많은 영화들을 통해 백인 남성 영웅 신화에 너무 지나치게 길들여져 있는 것은 아닌가. 난 남성이지만 남성 보다 여성이 더 많은 활약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근데 왜 이 영화에서는 그걸 부정해야하는가. 애초에 이 시리즈는 다른 것도 아니고 <스타워즈>다. 각양각색의 인종과 종족들이 어우러져 선 또는 악을 위해 피터지도록 싸우는 게 이 시리즈의 내용이라고. '흑형 제다이는 쩔어주게 멋있지만 동양인 저항군은 구려'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가서 <겟 아웃>이나 한 번 더 보고 왔으면. 애초에 이런 마인드가 이 시리즈 악역인 제국의 종족차별주의 관점에 더 부합하는 사상 아니냐.
다만 이 부분에 대해서 나의 유일한 불만이라고 한다면, 오히려 외계종족들이 생각보다 많이 등장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술했던 것처럼, 제국을 이어받은 퍼스트오더는 애초에 종족차별주의 정책을 가진 집단이니 그 집단 내에서라면 인간만 있는 것이 이해된다. 허나 최소한 저항군 측에서는 지금보다 훨씬 더 다양한 외계 종족이 나왔어야 하는 거 아닌가. 이건 뭐 독립운동단체에 죄다 친한파 일본인들만 있는 셈이잖아. 이 부분은 두고두고 아쉬움. 어째 이런 묘사들은 짧막짧막하게 나마 에이브럼스의 <스타트렉> 시리즈가 더 잘했던 것 같기도 하고.
루크 스카이워커 문제가 있다. 크게 세 가지 정도로 정리되는데, 1번은 잠깐이지만 잠들어 있는 조카 뒷통수를 후릴 생각을 했을 정도로 그가 찌질 하다는 점이고, 2번은 진중한 모습은 없고 괴짜스러운 모습만 남았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 3번은 먼치킨급의 능력 묘사가 부재한다는 점.
1번을 간단히 변론 하자면 결국엔 루크 역시도 완벽한 제다이가 아니라는 것으로 귀결되는데, 나는 그게 맞다고 본다. 애초에 루크는 완벽한 제다이가 아니다. 제대로된 제다이 입문 코스를 밟기엔 다소 늦은 나이로 데뷔 했으며, 그나마 오래 배운 것도 아니다. 오비완 케노비와 요다라는 먼치킨 마스터들 밑에서 수련 하긴 했지만 오비완에겐 사막 길거리 캐스팅 된 이후 팔콘호 안에서 딱 하루 정도 속성으로 배웠다. 이후 오비완이 승하하고 중요한 순간들마다 속삭임으로 훈수 겐세이 넣어주긴 했지만 그건 참 교육이 아니잖아. 학교에서 진도도 제대로 못 배운채 쪽지시험 보고 있는데, 감독관인 담임 선생이 와서 귓속말로 너 자신을 믿고 풀라 한다해서 그게 뼈가 되고 살이 되어 시험 점수로 이어지나. 그걸 참 교육이라 말할 수 있을까. 이후 오비완은 루크의 교육을 교장 선생님뻘인 요다에게 짬 시키는데, 정작 그 요다에게도 얼마 못 배웠다. 영화 속 시간들이 리얼타임으로 제시되지 않아 정확한 추측은 어렵지만, 그래봤자 몇 달은 커녕 몇 주 밖에 못 배웠을 거다. 군대를 가도 6주간 훈련을 받는데. 그리고 그렇게 6주간 훈련을 받아도 자대배치 받으면 또 얼마나 얼타는데. 하물며 제다이는! 그렇게 얼마 배우지 못한 채 그저 다스 베이더를 구원하고 제국을 몰락 시켰단 성과주의적 이유로 제다이 영웅이 된 게 지금의 루크인데, 이게 불완전한 영웅이라 이거다. 또 지금으로 치면 장학금 꾀나 받고 4년제 대학에 석박사 과정까지 후려쳤을 제다이 모범생 오비완 케노비도, 에피소드 3에서 자신의 제자가 타락하고 그와 첫 대면을 했을 때 별다른 설득없이 바로 광선검 뽑고 공격 태세 들어갔다. 이번 에피소드 8 속 루크만의 문제가 아니란 말이다.
2번. 애피소드 5의 요다 장면 다시 보면 된다. 애초에 요다도 제다이와 구 공화국을 지키는 데에 실패하고 데고바 계에 은둔해 있었다. 루크도 제자 양성애 실패하고 은둔해 있던 건데 비슷 하잖아. 물론 요다와 달리 루크는 끝내 제대로된 수업을 해주진 않았다
이제 3번. 사실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망한 부분일텐데, 솔직히 이야기하면 나도 아쉽다. 나도 후반부에서 루크가 퍼스트 오더의 개량형 AT-AT들을 손짓 한 번에 빈 깡통 구기듯이 하며 갖고 노는 장면 나오면 좋겠단 생각을 하긴 했다. 하지만 몇 백 광년 떨어져 있을 행성에 포스의 힘 하나만으로 자신의 분신을 만들어 부린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건가. 최고 사양 스마트폰을 사도 아마존 오지에 들어가면 페이스타임이나 스카이프 안 된다. 근데 루크는 그걸로 또다른 포스 유저인 카일로 렌까지 속였고 심지어 대등하게, 또는 그 이상의 실력으로 겨뤘다. 이게 제대로된 포스의 힘 아니면 대체 무엇이냐. 그냥 무조건 무력으로 화려한 초능력 쌍쌍파티 정도는 벌여줘야 포스 장인 대우 받는 거냐. 이게 무슨 엑스맨 판 천하제일포스대회도 아니고.
루크에 대한 불만들은 더 많을거고 그에 대한 나의 변명도 늘어나겠지만, 일단은 이 정도로만 한다. 따지고 보면 골수팬들의 불만도 분명 타당하긴 하다. EU에서의 루크는 은하계 전체를 한 손으로 쌈싸먹고도 다른 손으로는 또 삼겹살을 구울 수 있는 존재였으니까. 하지만 어쨌거나 EU는 이제 폐기된 거잖아. 아직 보여주지 못한 게 많을테니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이외에도 당 영화에 대한 불만들이 꽤나 많은 것으로 안다. 개연성 부재와 고증 오류. 딴지 한 번만 더 걸자면 고증 오류는 그냥 그러려니 한다. 이 영화가 잘했다고 옹호하는 게 아니라, 까면 깔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근데 다른 것도 아니고 <스타워즈>인데? 보면서 히익? 스러운 것만 아니면 다 넘어가도 괜찮지 않나.
다만 개연성 문제는 나도 좀 아쉬운 부분이 있다. 영화 전반에 걸쳐 툭툭하고 튀어나오는 크고 작은 반전들을 꽤 즐기긴 했지만, 그 잠깐의 효과만 있었을 뿐, 결과론적으로는 그 모든 반전들을 개연성있게 설명하기는 어렵고 영화 역시도 그 노력을 최대한으로 안 했다. 특히 저항군 함선 꽁무니를 뒤쫓아가기만 하는 퍼스트오더와 헉스 장군의 모습은... 할 일만큼만 하고 퇴근한다는 공무원 마인드를 보는 것 같아 좀 어이가 털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래도 이 영화 이 정도면 잘 빠지지 않았냐. 우주를 구할 능력이 피와 함께 세습 되었던 기존의 시리즈보다 재능우선주의로 빠진 점이 마음에 들고, 다들 레아 켄트라고 슈퍼맨 비벼가며 놀리는 레아의 포스 활용 장면도 처음엔 나도 뜨악스러웠으나, 이쯤 되면 한 번쯤 나올 타이밍이였단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레아가 미세한 텔레파시 외에는 포스를 제대로 활용하는 장면 안 보여줬으니까. 죽기 직전에 밑져야 본전인데 그 정도는 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고, 무엇보다 그 묘사도 고증에 있어 나쁘지 않다. 무중력 상태의 우주 공간이니까 비행한 것이 아니라, 그저 포스의 힘으로 멀리 손을 뻗어 저항군 함선을 끌어당긴 것이라고, 근데 함선이 너무 크고 무거우니 그 반대로 레아 스스로가 함선으로 쏘옥하고 들어간 것이라 이해하고 있다. 무중력 상태니까 가능하지 않나. 이걸 가지고 또 에피소드 3에서 '오비완이 고지 점령하면 뭐하냐, 아나킨이 레아 마냥 비행 했으면 되는데' 라고 비꼬는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잘 이해되지 않는다.
레아의 이런 모습과 더불어 벤 솔로와 레이가 포스를 통해 화상통화하는 장면 등, 생각보다 포스의 다재다능한 활용도가 많이 묘사되어 좋았다. 지금까지는 포스 설명하기가 애매했던 게, 그냥 돌 띄우는 힘이나 텔레파시 등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라고 할 수 밖에 없었거든. 근데 이 영화에서 자잘한 활용도들까지 다 전수해준 것 같아 좋음.
더불어 모두가 실패를 통해 성장한다는 메시지도 괜찮다. 에피소드 8쯤 되면 한 번쯤 해줬으면 했던 얘기기도 했다. 게다가 모든 인물들에게 일괄 적용되는 주제잖아? 이 정도면 깔끔하고 괜찮지, 뭘.
프리퀄 트릴로지의 광선검 대결을 좋아하는 후배는 이번 시퀄 시리즈의 광선검 대결이 별로라고 하더라. 이해한다. 하지만 동일한 이유 때문에 난 정확히 반대다. 프리퀄 트릴로지의 광선검 대결들은 화려하고 볼만하지만, 너무 쓸데없는 동작이 많아 검술 보다는 발레나 무용에 가까워 보인다. 반대로 <깨어난 포스>의 카일로 렌 vs 레이 대결과 이번 <라스트 제다이>의 카일로 렌 & 레이 vs 근위병 장면은 쓸데없는 동작을 최소화해 그야말로 한 방 한 방이 중요하고 그 무게감이 느껴지는 일기토 같은 연출이라 좋았다. 원체 사무라이 영화들을 좋아하는 내 취향이 들어가기도 했고.
세대 교체 이 정도면 잘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어쩌면 꼰대인 것이 아니었을까. 이게 전통이고 이게 스타워즈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다음 세대의 시작점을 우리가 잘 배려해주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과거에 사로잡혀 끊임없는 자기 복제를 하는 것이 이 시리즈의 약점 아니었던가.
우리가 익히 아는 제다이의 모습으로 귀환한 루크는 광선검을 들고 퍼스트오더를 멋드러지게 작살내지 않는다. 오히려 그 자체는 허상이었다. 구 시대의 제다이 루크가 저항군의 뒤를 막아주고, 신 시대의 제다이 레이가 저항군의 앞을 뚫어준다. 루크의 말에 따르면 그는 더 이상 마지막 남은 제다이가 아니므로, 레이는 새로운 제다이가 맞다. 저항군은 그렇게 구원 받는다. 이것이 시퀄 트릴로지로 시작된 앞으로의 스타워즈 시리즈가 진행될 큰 흐름이다. 애초에 이 무리에서 동떨어진 카일로 렌이야말로 자신의 외할아버지인 다스 베이더에 집착하는 자가 아니었던가. 이 모든 게 스타워즈의 오랜 팬들에게 하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뱀발 - 국내 개봉명은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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