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27 19:15

위대한 쇼맨 극장전 (신작)


보정. 도울 보(補)에 바를 정(正)을 쓴다. 바른 상태로 갈 수 있게 돕는다는 말. 뭐, 현대에 와서야 SNS 업로드를 위한 사진 보정이라든지 과거의 추억을 미화한다는 뜻으로 추억보정이나 기억보정 등의 용어들을 많이 쓰면서 누구나 알고 쓰게 된 용어. 다만 영화까지 누군가의 보정을 받을 줄은 몰랐지.


딱히 스포랄 건 없습니다만.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고 느낀 첫 생각은, '스크린 포맷보다는 무대 위가 더 잘 어울리겠다'하는 것이었다. 딱 가족관객을 노린 연말용 뮤지컬 영화로써 작지 않은 규모에 화려한 미술과 세트, 의상으로 치렁치렁 치장을 한 영화였기에 그랬던 것도 있었지만, 내가 그런 인상을 받은 데에는 음악의 영향이 컸다. 제목처럼 진짜 '위대한 쇼' 정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볼만하다-라는 느낌이 들긴 했으니. 뭔가 박제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스크린 속 배우들의 모습보다는, 살아있는 활어마낭 펄떡펄떡 거리며 열창을 할 무대 위 배우들의 모습이었다면 또 다른 맛이 있었을 것 같기도 하고.

허나 영화가 지나치게 관습적인 동시에 대충이며, 때로는 헐겁다. 삶의 밑바닥까지 떨어졌다가 재기에 성공해 스스로의 성공신화를 쓴다는 스토리는 21세기 이 시점에 와선 너무 많이 보여지고 들려진 이야기다. 심지어 이 영화는 차별화나 비관습적인 태도 따위엔 관심조차 없어서, 힘겹게 힘겹게 정해지고 예측되는 길을 꾸역꾸역 간다. 보기 버겁고 안쓰러울 정도다. 그렇게 관습적이고 뻔하면서도 정작 관객들의 마음을 후려칠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놀라우리만큼 무심한 영화기도 한데, 초반부 주인공이 해고를 당하는 장면이나 중후반부 오해에 의해 다시 몰락하는 과정 등은 지나치게 생략되어 있다. 물론 그 부분들을 다 보여줬어도 뻔했으리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이미 뻔한 스토리로 가겠다 선언한 이상 그 정도의 뻔뻔함은 장착해줘야 관객들 마음을 자극할 거 아냐.

그래서 솔직히 말하면, 영화를 다 보고 금세 잊었다. 하루만에 휘발되는 영화.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바로 그 '보정'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멜론 앱을 켜 무심코 이 영화 OST들을 쫙 몰아 재생목록에 넣은 것이 화근이었다. 

X발, 노래 졸라 좋네.

뮤지컬 넘버들에게 보정을 제대로, 단단히, 화끈하게 받은 영화가 이 영화 되겠다. 극장에서 볼 땐 느끼지 못했던 희열과 흥을 뒤늦게 되새김질하게 될 줄이야. 음악이 진짜 좋다. 특히 'come alive'와 'from now on' 등 휴 잭맨이 리드하는 곡 대부분은 계속 듣게 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뒤따라 오는 생각, '영화를 한 번쯤 더 보면 좋겠다'. 이게 보정이지 다른 뭐가 보정이야.

연초에 늙은 짐승의 처연하고 우아한 퇴장을 보여주었던 휴 잭맨은, 연말엔 신이난채 뛰어논다. 최근엔 <오리엔트 특급 살인>을 보며 케네스 브레너가 참 자신의 역할을 즐기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위대한 쇼맨>에서의 휴 잭맨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뛰어난 정극 연기는 물론이고 뮤지컬 업계에서도 이력이 단단한 배우답게 노래와 춤, 그 외 자잘한 퍼포먼스 등 뭐 하나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진짜로 자신의 역할을 즐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이 영화는 음악이랑 휴 잭맨한테 진 빚이 너무 많음. <레미제라블> 톰 후퍼 그 냥반도 마찬가지였었지 아마?

잭 에프론은 얼굴도 잘생겼고 몸매도 좋고, 노래도 잘한다. 게다가 몸도 잘 써서, 이런 부류의 대규모 뮤지컬 장르에서는 어느 정도 제 활약을 하는 배우다. 다만 흥행력은 꽝이지만. 그래도 <베이워치> 이런 영화 말고 뮤지컬로 쭉 갔으면. <헤어스프레이> 때도 좋았잖아, 우리.

그나저나 레베카 퍼거슨이었다. 처음엔 신인 배우인 줄 알고 이 영화 잘 되면 캐스팅 콜 꽤나 받겠는 걸 하고 생각했었는데 올해만 벌써 세번째 보고 있는 레베카 퍼거슨이였어. 심지어 그 중 두번째는 최근 <스노우맨>이였는데 왜 못 알아봤지.

어쨌거나 영화는 별로인데 음악과 캐스팅의 위력으로 뇌내보정된 영화. 근데 생각해보니, 어쩌면 영화란 건 보정투성이 예술이구나. 연출 혼자만 잘할 게 아닐테니. 하여튼 다시 음악 들으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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