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1/22 16:02

코코 극장전 (신작)


난 '인간' 캐릭터가 메인 주인공인 픽사 영화들에 대해 좀 걱정이 있는 편이다. 장난감들을 메인 주인공으로 삼았던 <토이스토리>나 청소 로봇을 주인공으로 설정했던 <월E>, 그리고 추상적인 인간의 감정들을 의인화해 표현했던 <인사이드 아웃> 같은 작품들은 죄다 정점을 찍었다. 물론 <업>이랑 <라따뚜이>, <인크레더블>에도 인간 주인공이 있지 않냐 라고 항변한다면 솔직히 할 말은 없다. 근데 이 모든 건 다 <메리다와 마법의 숲> 때문이다. 그 영화 때문에 뭔가 빌어먹을 징크스가 생긴 것 같잖아. 그렇게 따지면 <굿 다이노>와 <카>는?? 마음 속에서 잊었다

그래서 보기 전부터도 이번 영화 역시 걱정이 많았었는데, 역시는 역시. 작년 픽사 영화 <굿 다이노>와 <카3>가 모두 실망스러워 점점 낮아지는 픽사의 타율에 실망을 금치 못하고 있었는데, 이번 <코코>로 깔끔하게 홈런치며 만회. 픽사는 리 언크리치 잘 잡고 있어야 한다. 이 양반도 실사 영화 찍는다고 설치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고.


스포일러가 있을지도...?


델라크루즈와 헥터로 친조상 야바위한 건 기가막힌 반전이자 알뜰한 캐릭터 활용법이다. 중간 어디쯤부터 이미 어느정도 유추되긴 했지만, 그래도 잘 썼다. 하긴,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픽사의 악당들은 대다수가 정체를 숨긴채 등장해 중반부 또는 후반부부터 그 본색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었지. 이번 영화의 델라크루즈도 딱 그렇다. 진짜 정체와 진실이 공개되기 직전까지는 진짜 재능있고 착한 조상님인 줄 알았잖아, 이런 젠장.

생각보다 저승의 이미지는 평범하다. 물론 화려하고 예쁜 불꽃놀이로 치장된 세계 같지만, 그다지 새로울 건 없는데다 그 세계 곳곳이 속속들이 보여지질 않고 배경 그 이상의 기능을 하지 않는다. 캐릭터 디자인이나 그를 이용한 유머도 생각보다는 전형적인 편. 게다가 중반부 전개도 루즈해진다. 그런데도 이 영화가 왜 좋냐고 묻는다면...

이건 다 헥터와 어린 코코의 자장가 버전 '기억해줘' 장면 때문이다. 아, <신과 함께 - 죄와 벌>과 <1987>을 보면서도 안 울었던 나인데 여기서 눈물을 머금게 되다니...... 하지만 눈물의 무게와는 논외로 이 장면이 정말 좋은 이유는, 대놓고 눈물을 강요하지 않는 장면이란 거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수많은 신파 영화들과 울음 포인트들을 비교했을 때 굉장히 담백하다. 이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게 될 줄은 몰랐다. 픽사 이 망할놈들......

델 토로가 제작했던 <마놀로와 마법의 책>을 재밌게 보았던 터라, 기본 설정과 세계관 묘사의 유사성에 대해서 표절인가 뭔가 궁금했었는데 그렇게까지 겹쳐지는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역시 음악을 하고 싶어하지만 가업을 이어 받으란 가족들의 압박에 괴로워하는 주인공, 그리고 멕시코와 죽은 자의 날 배경에 사후세계 묘사들까지 따지면 또 안 비슷한 건 아니란 말이지. 참으로 신묘하네.

영화적인 완성도로만 따지자면야 <인사이드 아웃> 정도는 아녔지만, 오히려 눈물 포인트 하나만큼은 더 없이 담백하고 센스 있었던 영화. 아직도 멜론에서 그 노래 들으면 눈물이 자동으로 나오더라. 앞으로는 픽사가 안동 하회마을을 배경으로 전통 차례상 찾아오는 조상 귀신들 이야기로 영화를 만든다 해도 믿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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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dd 2018/01/26 23:54 # 삭제 답글

    그 장면에서 디즈니의 세련된 표현에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같은 부성애/모성애라도 이렇게 담백하면서도 감동적으로 그릴 수 있는 것을......
    감상한 지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네요. 더빙판의 퀄리티가 참 좋더군요. 마지막 윤종신씨 버전의 '기억해줘'도 좋았습니다.
  • CINEKOON 2018/01/29 18:23 #

    더빙판은 아직 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습니다. 윤종신 버전의 '기억해줘'도 들을 때마다 눈물을 찔끔하게 만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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