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02 16:44

12 솔져스 극장전 (신작)


번역 제목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다. 원제는 '12 strong''. '12명의 굳센 자들' 정도의 의미이겠다. 물론 이걸 곧이 곧대로 수입 번역해 개봉한다면 그건 그거대로 또 어색할 거다. 그럼 그냥 음차대로 수입해오던지, 멀쩡한 영어 제목이 떡하니 있는데 그걸 굳이 또 '솔져스'로 바꿔야하나. 하여튼 가장 이해 안 되는 건 영어 제목을 다른 영어 제목으로 바꾸는 제목들이다. 심지어 포스터에도 영어 제목 'soldiers'로 표기해놨구나. 

일단 가장 걱정했던 것은, 다름 아니라 미국 우월주의적 시각이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 물론 조금 있었어도 그걸 가지고 꼬투리를 잡고 물어질 생각은 없었다. 개인적으로 반미주의자도 아닐 뿐더러, 어린 시절부터 워낙 미국 영화를 많이 보고 자라와 그 정도의 미국뽕에 대해서는 별 거부감이 안 든다. 게다가 워낙 전쟁 영화를 좋아하기도 하는데, 대부분의 전쟁 영화들은 모두 미국을 주인공이자 아군으로 설정해 먹고 들어가기 때문에 이것에 대해서도 이미 어느정도 단련이 되어 있다 하겠다. 심지어 9/11 테러에 대한 보복으로 쳐들어간 작전을 다룬 영화잖아. 9/11 테러에 대한 보복으로 시작된 침공과 그에 이어진 전쟁 자체에서 선악을 따지고 싶지는 않으나, 어린 시절 TV 화면으로 중계된 9/11 테러의 모습은 꽤 쇼킹 했기에 의도치 않게 이 부분에서만큼은 조금 미국인의 입장이 되어 본 것도 있다. 내가 비행기 타는 걸 조금 무서워하기도 하거니와 가족들이 모두 여행업 쪽에 종사해 비행기 탈 일이 워낙 많다 보니 조금 더 이입한 것도 사실이고. 어쨌거나 미국 자본 들어간 미국 영화인데 그깟 미국 우월주의 정도는 우습게 이해해줄 여력이 있었다는 말이다.

근데 이 영화의 나쁜 점은 다른 곳에 있다. 미국 우월주의가 없다고는 볼 수 없지만 그렇게 심하지도 않다. 담백한 정도. 문제는 영화 자체가 올드하다는 것이다. 딱 10 ~ 20여년 전 제리 브룩하이머 표 전쟁 영화스럽다는 게 의외의 문제다. 그럼에도 영화가 재밌고 만듦새에서 떨어지지 않는다면 그깟 올드함 역시도 빈티지로 받아들여 줄 수 있었다. 허나 이 영화는 그게 안 된다. 일단 편집이 너무 산만하다. 말이 12명의 군인들이지, 이 12명이 각자 떨어져나가 유닛활동을 하기도 하는데 그 부분에서의 교차편집이 가관이다. 이렇게 긴장감 없고 전황중계가 안 되는 전쟁 영화는 또 오랜만이다.

탱크와 기관총을 상대로 말을 타고 돌진한 기병 실화라고 한 것에 대해서도 기대가 좀 있었는데, 기병 러쉬는 개뿔 융단 폭격으로 한껏 조져놓고 시작하는 전투에서 말이면 뭐 어떻고 낙타면 또 어떻냐. 한마디로 '21세기의 기병 전투'라는 컨셉이 줄 수 있는 특별함과 그 재미를 별로 캐치 해내지도 못했다. 아무리 실화라지만 이럴 거면 뭣하러 말타고 전쟁한 겨.

사실 상술한 문제들은 영화적 만듦새에 대한 문제들이고, 이 영화의 진정한 올드함은 대사와 상황에 있다. 진정 가장 강력한 무기는 용기라며 동료의 가슴 한 가운데를 손으로 툭툭 쳐주는 모습이라든가, 절체절명의 전투로 이어질 수도 있는 라이벌과의 대립 상황에서 쿨하고 자칭 타칭 '사내'답게 악수로 모든 일을 해결한다든가... 아, 진짜 이런 것들 90년대 감성 아니냐. 멋진 대사 한 줄 날릴 시간에 직접 몸을 던져 폭탄 점화를 막는 이단 헌트와 간지나는 대사는 개뿔 주먹구구식으로 모든 걸 해결하는 제이슨 본이 암약하는, 게다가 그 올드함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고전적 스파이 제임스 본드 마저도 허세와 간지를 양복 소매 한 번 터는 걸로 자제하는 이런 시기에 이리도 올드한 이야기라니... 

크리스 햄스워스는 별다를 게 없다. 그래도 최소한 '토르' 생각은 안 나더라. 멀끔하게 잘생겨서 좋음. 마이클 페냐는 분량면에서 조금 아쉽고, 마이클 셰넌은 악역으로 안 나와 좋다. 하긴 그러고보니 이 양반의 악역 안 본지 꽤 된 것 같네. 최근에 <녹터널 애니멀스>나 <미드나잇 스페셜> 이런 것만 봐서 그런가. 어쨌거나 누워서 전쟁하시는 분.

하지만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조금 올드하더라도 전쟁 영화적 재미가 충만하다면 또 좋은 기억으로 남을 영화였다. 문제는 영화 자체가 혼전양상이라는 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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