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02 17:38

올 더 머니 극장전 (신작)


예전에 어디선가 읽은 (아마 씨네21이겠지만) 인터뷰에서, 리들리 스콧은 말했다. 실수가 없다면 자신은 무조건 첫 테이크를 영화 본편에 쓴다고. 그게 진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아마 그렇기 때문에 리들리 스콧은 작업 속도가 빠른 것일테다. 이번 신작도 케빈 스페이시의 성추문이 터지자마자 같은 역할을 크리스토퍼 플러머로 교체하고 재촬영한 뒤 개봉시켰다. 근데 정해져있던 개봉일 보다 4일 정도 밖에 안 미룸. 이 정도면 이 영감님이 가진 근자감은 근거 없는 자신감의 줄임말이 아니라 근거 있는 자신말의 줄임말이다.


올 스포일 인 더 무비


자신이 가지고 있던 돈보다 아직 가지지 못한 돈들을 더 사랑했던 남자의 이야기. 이야기의 물리적인 분량 면에서는 유괴 사건이 더 큰 흐름으로 다뤄지고 있고, 미셸 윌리엄스와 마크 월버그가 더 많이 나오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온전히 크리스토퍼 플러머가 연기한 '장 폴 게티'의 영화다. 모든 사건은 그 때문에 시작되고, 그 때문에 전개되며, 그 때문에 마무리된다. 더불어 미셸 윌리엄스에게는 '모성애', 마크 월버그에게는 '프로페셔널함'이라는 다소 정형화된 캐릭터성이 부여되는 반면 크리스토퍼 플러머에게는 다층적이고 속을 알 것 같으면서도 잘 모르겠는 캐릭터가 부여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크리슽토퍼 플러머가 조연 자리에 올라 있긴하지만 암만 보아도 이건 장 폴 게티의 영화 같은 거다.

가장 상징적인 부분은 역시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그림 에피소드겠지. 게티는 유괴된 자신의 친손자 몸값 지불은 돈이 없다고 거절하면서 그보다 더 비싼 그림은 사들인다. 그러면서 그림 속 아기 예수를 향해 '이제서야 찾았구나, 아가야' 식의 대사를 한다. 이 대사는 영화 말미 유괴 협상의 끄트머리 즈음 게티가 죽음을 맞이하면서 한 번 더 반복되는데, 조금 직접적인 은유긴 하지만서도 오히려 그 직접적인 은유를 고급스럽게 해냈다는 점에 있어서는 참으로 대단한 연출과 대단한 연기란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것도 그렇고 다른 것도 그렇고 기본적으로 리들리 스콧의 기본기가 잘 드러나는 영화다. 어느 한 구석에서 압도적으로 높은 개성을 보여주진 않지만 전체적으로 만듦새가 고르고 준수하다. 긴장감을 창출해내는 부분은 사실 별로 없다. 그건 영화가 유괴라는 범죄 요소를 다루고 있음에도 정작 그 자체에는 크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리들리 영감님은 그저 돈의 순수성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할 뿐.

하지만 후반부 인질 교환 협상 이후 추적 시퀀스는 좀 뜬금없다. 폴 게티가 탈출하고 마을 내에서 숨바꼭질이 벌어지는데 이 부분에서 급 스릴러의 풍모. 영화가 갖고 있던 전체적인 결과 확 달라지는 이질적인 시퀀스다. 

급하게 재촬영한 영화치고는 날림으로 만든 티가 별로 나지 않는다. 애초에 장 폴 게티 캐릭터의 물리적인 분량이 많지 않아서 그런 것도 있었겠지만 플러머가 연기를 정말 잘 해냈다. 스콧 영감님도 그렇고 플러머 영감님도 그렇고 이 영화는 두 영감님이 쌍두마차로 이끌어버리셨구만.

미셸 윌리엄스와 마크 월버그의 재촬영 비용 때문에 한동안 이슈화된 영화기도 하다. 케빈 스페이시 덕에 재촬영하게 되었는데 미셸 윌리엄스는 상징적인 금액으로 푼돈만 받고 재촬영한 반면 마크 월버그는 한화로 16억 정도를 요구해서 받아냈다고 들었다. 물론 이후에 여론을 의식해 미셸 윌리엄스의 이름으로 기부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역시 졸렬한 놈이라는 생각은 여전히 든다. 연기를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끝내주게 잘하는 것도 아니고, 작품 선택이 훌륭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출연료가 싼 것도 아닌 이 졸렬한 인종차별주의자를 할리우드에서는 왜 계속 캐스팅해대는지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다. 또, 미셸 윌리엄스 정도면 할리우드의 젊은 여배우들 중에선 거의 탑급의 인지도와 연기력을 갖춘 배우라 할 수 있을텐데 주연임에도 불구하고 남배우와 이 정도로 큰 임금격차를 보여주다니 정말 할리우드는... 미셸 윌리엄스도 이런 대접을 받는데 신인들은 대체 어떤 수모를 겪는 것일까. 

아, 맞다. 로망 뒤리스 연기가 진짜 좋다. 까먹고 있었네. 꼭 한 번 언급은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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