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12 14:57

염력 극장전 (신작)


<부산행>을 훌륭하게 본 기억이 없다. 전체적인 만듦새는 좋은 편이었지만, 지나친 한국화신파라던가 신파라던가 신파라던가와 더불어 장르적인 쾌감은 그리 크지 않았다는 데에 그 이유가 있다. 생각보다 좀비 영화들을 꽤 좋아하는 편이거든. 근데 이번엔 다른 것도 아니고 초능력을 주 소재로 한 수퍼히어로 영화다. <부산행>에서 살짝 데었다한들 내가 이걸 기대 안 할 수가 있었겠나. 허나 막상 공개된 영화는 이도저도 아닌 김빠진 콜라 같은 느낌. 덕분에 일반 관객들의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리고 있고, 흥행으로만 따져도 이미 처참히 실패했다. 개봉 일주일 만에 사실상 종영수순이니까.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어째 그 정도 취급까지 받을만한 물건은 아니라고 본다.


스포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만.


이 정도의 대접까지 받을만한 영화는 아니라고 했던 것은, 우선적으로 기본적인 잔재미가 있기 때문이었다. 크게 특출난 건 또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또 크게 모난 부분은 없는 그런 영화랄까. 하지만 그것보다 더 좋았던 것은, 다름 아니라 그 엔딩의 한 방 때문이었다. 염력이라는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들을 이길 수 없다는 자조 섞인 결말. 그리고 이 모든 게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를 돌아보게 만드는 그 한 마디. 여기에 하나를 굳이 더 보태면, 자연재해를 비롯한 실제 우리 현실 속의 비상상황들에서 지켜주지 못한 사람들을 영화 안에서라도 지켜주고 구원해주고 싶다는 그 간절함. 그런 부분들이 이 영화를 꾸역꾸역 먹여살리는 동력이 아닌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허나 그에 못지않게 단점이 더 많은 영화인 것은 분명 확실하다. 용산 참사를 다뤘다는 것이 영화의 마이너스 포인트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이 세상의 어떤 역사적 요소들도 영화화 되지 못할 것은 없다고 본다. 막말로 세월호 참사를 영화화해도 우리가 그것을 막을 수는 없고 막아서도 안 된다. 허나 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사람들은 정말 엄청난 고심을 해야할 거다. 세월호 사건이나 이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용산 참사나, 몇 십 년이나 몇 백 년 전의 역사가 아니라 불과 몇 년 전의 역사니까. 아직 그 역사의 산증인들과 유족들이 살아 슬퍼하는 시대니까. 그래서 더욱 더 조심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용산 참사를 다뤘다는 것 자체로 영화를 까고 싶진 않고, 대신 다룰 것이면 제대로 다뤘어야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일단 용산 참사라는 소재랑 수퍼 히어로라는 장르가 잘 안 붙는다. 장르는 다르지만 이 방면의 모범사례는 닐 블롬캠프의 <디스트릭트 9>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영화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인간들에게 차별받는 외계인들을 장르적으로 다루며, 과거 그 땅에서 있었던 인종 분리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소재를 잘 접합해냈다. 무엇보다 그 영화에서 중요했던 것은 주인공이 백인 남성이라는 사실이다. 관객들의 감정 이입을 위해 다소 어리버리한 인물로 설정해두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그는 기득권층이다. 그런 백인 남성이 점점 외계인이 되어가 제대로된 대접을 받기는 커녕 시종일관 쫓겨 다녀야만 한다는 것이 그 영화의 주된 상황이고, 그 상황으로부터 비롯된 감정을 통해 관객들은 과거 인종 분리 정책을 돌아볼 수 있게 된다.

허나 연상호의 <염력> 속 염력을 얻은 주인공은 용산 참사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니다. 철거민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진압경찰은 더더욱 아니다. 그는 충무로 영화들에서 지지부진하게 많이 다뤄왔던 단순한 부녀 가족 멜로 드라마의 주인공일 뿐이다. 그는 철거민으로서 싸우지도 않고, 철거민들에게 인간적으로 동화되어 싸우지도 않는다. 그는 그저 그 곳에 딸이 있기 때문에 싸운다. 그렇다고 해서 또 딸과의 관계를 대단히 잘 묘사한 것도 아니다. 이 영화가 철거민들의 심정을 헤아려보고, 그 때 그 상황 속에 던져졌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라면 주인공을 이런 식으로 설정하면 아니 됐다. 이건 명백한 패착이다.

현실성에도 아주 큰 문제가 있는데, 나는 이 영화가 최근 수퍼맨을 다뤘던 <맨 오브 스틸>이나 <배트맨 대 슈퍼맨>보다 현실적인 묘사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만 말하면 외계인이 빌딩을 부수는 영화보다 이 영화가 덜 현실적이라는 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는 반문을 들을 수 있다. 나는 지금 외계인이나 염력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외계인이나 염력을 받아들이는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 비현실적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맨 오브 스틸>과 <배트맨 대 슈퍼맨>에서는 초월적인 힘을 지닌 주인공을 중심에 놓고 세계가 요동친다. 하늘을 날아다니고 건물과 상대방을 투시할 수 있는 대상을 두려워하거나 경외하는 등의 묘사가 있고, 그를통해 주인공을 규제 하려는 묘사들도 충실하게 묘사되어 있다. 물론 영화적 완성도는 별개로 치자

하지만 <염력>에서는 그게 없다. 만약 당장 서울 시내 상공에 이 영화의 주인공이 나타나 염력을 부렸다고 가정해보자. 많은 사람들은 공포에 떨면서도 저 능력의 출처가 어디일까 궁금해할 것이며, 정부에서는 규제를 하려들 것이다. 허나 이 영화 속 주인공이 만나는 많은 사람들은 염력을 보고 그저 요술 정도로 치부하고 만다. 그보다 더 깊이 들어가려하지 않는다. 그냥 옆에 있는 중년의 남자가 손짓 하나만으로도 사람을 밀어내고 자동차를 들어 굴리는데 그걸 보고 딱히 궁금해하지를 않는다. 물론 중반부 뉴스 장면에서 웬 돌팔이가 나와 주인공을 보고 북한의 소행이라고 눙을 치는 장면이 있기는 하다. 허나 지나치게 피상적이라 딱히 와닿진 않더라.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크게 불만이 없지만, 류승룡의 연기는 지나치게 코믹화되어 있다. 차라리 좀 진지하고 다크하게 갔더라면 어땠을까. 하긴 그건 지금 주연배우의 문제 뿐만이 아니라 영화 전체의 분위기가 그렇긴 하다. 정유미에 대해서는 할 말이 참 많은데, 간단하게 줄이면 '어떤 캐릭터를 잡았는지는 알겠는데 딱히 와닿진 않네' 정도이다. 제작진과 배우 입장에서는 관객들이 '우와, 저 미친년 뭐야?'하며 덜덜 떨기를 염원 했겠지만, 정작 나온 버전은 '아, 기어코 저런 캐릭터로 잡았구나'라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는다. 애초에 초능력자 주인공에 이어 초능력자 악당이 나오는 구도를 원했던 것은 아니었으나, 이럴 거였으면 그냥 렉스 루터 느낌의 지능형 빌런으로 가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하여튼 일반 관객들의 분노도 이해가 간다. 이건 뭐 얼큰한 돼지국밥 먹으러 왔는데 나온 게 리조또 같은 상황인 거잖아. 팡팡 터뜨리는 한국형 수퍼히어로 영화를 기대하고 영화관을 찾았을 관객들의 눈에 펼쳐진 건 '그것이 알고 싶다'류의 시사 다큐멘터리와 <라스트 갓파더>스러운 요상망측한 슬랩스틱의 콜라보레이션이였으니.

뱀발 1 - 100억원대 규모의 충무로 상업 장편 영화에서 이렇게 구리고 질 낮은 CG 효과는 처음 봤다. 특히 후반부 유치장 장면은 충공깽.
뱀발 2 - 극 중 용역깡패들을 묘사하는 방식이 귀엽고 부분부분 재미있긴 했지만, 아직 10년도 채 지나지 않은 역사를 다루고 있으면서 그들을 그렇게 귀엽게만 다뤘다는 데에는 문제가 또 크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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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아스몽 2018/02/12 21:42 # 삭제 답글

    블룸캠프 감독도 디스트릭트 9 의 호평 이후론
    계속 내리막길이라는 걸 생각하면...

    사회고발 메세지를 담는 것을
    영화 자체의 스토리텔링이나 완성도도 고려하면서 완급조절을 했어야 하는데 실패한 느낌이죠...

    염력을 아직 보진 못했지만 이런저런 평이나 리뷰들을 보면, 왠지 블룸캠프 감독의 채피와 비슷한 느낌일 것 같습니다. 채피 역시 제가 기대한 내용이 전혀 아니었죠.
  • CINEKOON 2018/02/12 22:39 #

    사회적 메시지 담는 것 좋아요. 하지만 우선적으로 영화가 튼튼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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