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까놓고 말해, 다소 과소평가된 경향이 없지 않은 영화라고 본다. 물론 단점도 많다. 배우들의 북한말 대사는 매끄럽지 않고, 후반부 클라이막스 장면의 액션은 이전 것들보다 못하며, 전체적으로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 모사드와 CIA까지 끌어다 소재로 굴리는 것에 비해 정작 이야기는 소극적이라 굳이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나- 싶기도 하다. 이런 점들은 명백하게 단점이다.
하지만 류승완과 정두홍 식 액션을 에스피오나지 장르에 잘 접목 시켜 이른바 '간절한 액션'을 만들어냈고, 배우들의 연기가 좋으며, 무엇보다 여성 캐릭터가 좋다. 맞다. 나는 이 영화에서 전지현이 연기한 '련정희'가 가장 좋다. 원래 전지현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고, 이 영화 속 련정희 역시도 주인공의 아내로서 액션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기는 커녕 악당들에게 인질로 붙잡혀 구해줘야할 대상으로 그저 '짐'처럼 묘사되는 부분도 분명 있다. 하지만 덤덤한 이북 사투리로 한없이 냉정하게만 구는 남편에게 의심 받고, 또 보호받지 못한 여성으로서 련정희가 주는 아련한 감정 같은 것이 있다.
나는 항상 련정희를 두고, 류승완의 속죄 같다는 생각을 해왔다. 물론 과한 해석의 여지도 분명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류승완 영화들 속에서 여성은 그야말로 짐덩어리거나 철저히 대상화되는 존재들이었다. 그의 영화들은 항상 마초적이었으니까. 나는 련정희가 그런 마초 류승완의 어떤 사과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좋았다. 이게 할리우드 액션 영화였더라면 주인공이 죽어가는 아내에게 하는 마지막 대사는 'I love you.'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선 '미안하다'는 사과다. 에스피오나지 액션 장르의 탈을 쓰고 결국엔 순애보였다라는 비판도 무리가 있는 것은 아니나, 나는 그 대사와 순애보가 좋았다.
류승완의 연기는 조금 과시적이지만 그것 나름대로 날 것의 느낌이 나 좋고, 하정우는 언제나 단단하게 연기한다. 이경영은 한글 자막이 없으면 진짜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못 알아 듣겠다. 블루레이로 보면서 진짜 거짓말 안 치고 한글자막 켜놓고 봤다. 그리고 이경영 죽고나서는 한글자막 끔. 이거 극장에서 봤을 때도 진짜 뭔소린지 감으로 다 때려맞췄던 기억이 나네. 한석규는 좋은 부분과 싫은 부분이 분명한데, 그 와중에 친구였던 CIA 요원의 죽음을 목격하고 그 시체 옆에서 분을 삭히는 그 한 쇼트의 연기 때문에 모든 것이 다 용서된다. 물론 그럼에도 영화에서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쇼트는 맥심 커피 광고 같긴 하지만.
그나저나 이거 속편 언제 나오냐. <군함도> 다음이 이거 속편이라고 했었던 것 같은데, 빨리 좀 만들어줘요, 애탄단 말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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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온티어 2018/02/19 19:47 # 답글
CINEKOON 2018/02/21 10:5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