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26 10:28

블랙팬서 극장전 (신작)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에서 스파이더맨 보다 블랙팬서가 더 돋보였던 건, 그저 단순히 첫 실사화된 캐릭터라서가 아니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 영화에서의 블랙팬서는 MCU 내에 캡틴이나 블랙 위도우와 필적해 체술로 상대할 수 있는 또다른 수퍼히어로가 존재한다는 선언 같은 것이었다. 냥냥미 넘치는 육체파 수퍼히어로의 또다른 데뷔 같았달까. 좋아는 하지만, 나에게는 애초에 MCU 내에서 가장 정 붙이기 어려운 캐릭터가 아이언맨이랑 헐크였다. 질량감과 현실감 없는 CG 덩어리 캐릭터들의 혈투에 항상 제대로 이입하지 못하고 있었고, 어린 시절 보고 자라온 성룡과 이연걸, 견자단 영화의 영향으로 인해 공중 회전 날라차기를 하는 캡틴과 블랙팬서의 모습은 나에게 있어 제대로 취향저격이였던 셈이다. 그래서 블랙팬서의 솔로 영화를 더 기대했던 게 있었다. 근데 어째, 개봉한 영화는 뭐랄까 조금 미묘하다. 싫지는 않은데, 모자란 부분들이 조금 넘치게 있다고 해야하나. 


열려라, 스포 천국!


본의아니게 연상호 감독의 <염력>과 비슷한 지점이 있다. 수퍼히어로 영화라는 장르 말고도, 두 영화 다 일종의 사회적 메시지를 집어넣으려고 했다는 점이 그렇다. <염력>은 '용산 참사'를 소환해내는 의식 같은 영화였다면, <블랙팬서>는 그게 흑인 인권에 대한 부분들이다. 애초에 이런 식으로 영화가 전개되지 않을까- 하는 예상은 있었지만 이렇게도 노골적으로 적중할 줄이야. 와칸다 내의 왕위계승 암투에만 국한될 줄 알았던 액션과 이야기가 전지구적 흑인들의 인권으로 넓어진다. 메인 빌런이라 할 수 있을 에릭 킬몽거의 과거 뿌리와 미래 지향점이 그러하며, 마블 영화들에서 항상 중요하게 다뤄졌던 요즘엔 아니던데 <홈커밍><라그나로크>의 통수 인내심! 쿠키 영상에서조차 주인공의 연설을 통해 그 가치가 더 부각된다. 사실 영화의 핵심적인 갈등 자체가 요즘의 아프리카 제 3세계 국가들이 하는 고민과 일맥상통하네. 전통을 유지하는 대신 세계화의 물결에서 뒤쳐질 것인가, 아니면 세계의 한 일원으로 인정받기 위해 전통을 포기할 것인가.

문제는 그 자체도 연상호의 <염력>과 비슷한 결과를 맞았다는 것이다. 메시지? 좋아. 장르 영화의 철학? 대단히 좋아. 하지만 이건 어쨌거나 장르 영화인 거다. 메시지와 철학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건 택시의 추가 요금과도 비슷한 거다. 낼 수도 있고 안 낼 수도 있지만 기본 요금은 꼭 내야한다는 거지. 그럼 장르 영화에서 기본 요금이 뭐냐고? 당연히 장르적인 쾌감과 재미 아니겠어?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와 루소 형제의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져>가 대단했던 것은 당대의 사회적 분위기와 문제들, 그리고 여러 딜레마와 철학적 명제들을 녹여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전에 바로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염력>보다 심하진 않았지만, <블랙팬서>엔 그 장르적인 재미가 조금 부족하다. 그래서 굳이 꼬집은 현실의 그 문제들도 확 와닿지를 못한다. 일단 영화의 재미가 미묘 하거든.

상술했듯, 육체파 히어로로서의 면모를 기대했던 것이 사실이다. 허나 <블랙팬서>의 액션은 실망스럽다. 찰지고 강력했던 <시빌 워>의 체술 액션은 온데간데 없고 기 모았다가 터뜨리는 충격파의 액션은 쾌감이 없다. 애초에 설정상 액션을 보여줄만한 구멍이 없는 거다. 우주에서 제일 딴딴한 금속인데 그리 데미지도 없을 거고, 그냥 가만히 서 있는채로 쳐맞고 있다가 게이지 꽉 차면 충격파 써서 날려버리면 그만. 이런 설정을 가진 수트인데 뭣하러 <시빌 워>때 마냥 구르고 할퀴고 그러겠어. 가만 있어도 이기는데. 그 충격파 액션은 딱 1회성의 쾌감이 적당했을 것이다. 광안대교에서의 그 장면은 멋지더구만, 그걸 또 와칸다에서까지 계속 쓸 줄이야.

후반부 와칸다에서의 클라이막스 액션 시퀀스도 대단히 실망스럽다. 크게 두 가지 양상으로 전개되는데, 킬몽거를 따르는 와카비의 병사들 vs 오코예가 이끄는 친 티찰라 파 / 블랙팬서 vs 골든 재규어. 이 두 가지 각각 다 실망스럽다. 일단 대규모의 백병전은 그 규모 자체가 크지 않다. 하지만 그건 괜찮다. 이게 뭐 <어벤져스> 같은 팀 업 무비도 아니고 첫 데뷔한 수퍼히어로의 솔로 영화인데 그 정도는 이해할만하다. <아이언맨1>도 클라이막스 액션 시퀀스 대단하지 않았다. <토르 - 천둥의 신>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관객들이 이입하고 응원하지 못하게 하는 부분이 분명 있다. 나름 정의의 편이라고 할 만한 오코예의 친 티찰라 파를 잘 공감하지 못하겠거든. 물론 누가봐도 테러리스트인 놈을 왕으로 앉혀놨으니 여간 불안한 게 아닐 게다. 대통령이면 탄핵이라도할 텐데 이건 그냥 빼박 왕이잖아. 정당한 혈통. 그래서 빡치는 건 알겠는데, 왕의 친위대가 갑자기 왕을 배반해 버린다. 킬몽거 입장에선 나름 정당한 방식으로 왕위에 올랐는데 갑자기 뒷통수 맞은 격이다. 여기에서 온전히 주인공 편을 응원하지 못하는 벽이 생겨버린다. 교차편집 되는 블랙팬서와 골든 재규어의 1vs1 액션 시퀀스도 대단히 불만인데, 두 캐릭터의 합이 명징하게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그렇다. <트랜스포머>의 악몽이 떠오르더라. 대체 둘이 어떻게 싸우고 있는 거야, 그냥 엉겨붙어 있는 것 같은데. 솔직히 영화를 본지 일주일이 넘었건만 왜 아직도 티찰라가 이겼는지 모르겠다. 킬몽거는 왜 또 그걸 보고 예상 못했는데 대단하다 라고 칭송하는 건지는 더 모르겠고. 하여간에 이 비브라늄 광산 대결 시퀀스가 전체적으로 대단히 구림.

그럼에도 이 영화가 평균치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조연 캐릭터들의 활약이 대단하다는 점. 대신 주인공의 존재감이 옅... 그리고 걱정했던 부산 시퀀스가 전체적으로 매끄럽게 잘 나온 동시에 영화 속 가장 재미있는 액션 시퀀스라는 것. 당연하지 클라이막스가 그 모양인데... 부산은 정말 잘 나왔더라. 괜히 광안대교 한 번 더 가보고 싶어졌다.

흑인들의 문화를 잘 캐치해 넣었다는 점에 있어서는 각본과 프로덕션 디자인, 음악을 칭찬해주고 싶다. 아프리카 특유의 에스닉한 디자인으로 치장된 와칸다 중심지의 모습은 참으로 흥미로운 구경거리다. 다만 그 현실성에 있어서 왜인지 너무 영화적으로만 느껴지는 것은 아쉬울 따름. 각본은 재미있는 부분이 많은데 흑인이라서 가능한, 또는 흑인이라서 잘 어울리는 세밀한 부분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건, 죽은 줄 알았던 티찰라가 살아 돌아오자 그걸 본 킬몽거의 리액션. 일반적인 악역이라면 '도대체 어떻게 네놈이?!' 정도의 리액션이 나올텐데, 킬몽거는 별 일 아니라는 표정으로 'What`s up?'을 외친다. 캐릭터의 성격을 잘 보여주기도 하고 흑인들의 문화와 생활을 잘 녹여낸 부분인 것 같아 칭찬. 음악이야 뭐 끝판왕이더라. 켄트릭 라마의 주제곡 요즘 계속 듣고 있으니.

하여간에 전체적으로 보면 만듦새는 꽤 나쁘지 않은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가장 기대했던 부분에서 가장 실망을 하게 되어 조금 평가가 낮아지게 된 듯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감독이 달라진다고 액션이 이 정도로 달리질 줄이야. 루소 형제의 쫀쫀했던 액션이 <인피니티 워>에서는 다시 돌아오기를 바란다.

뱀발 - 다들 에릭 킬몽거 극찬하던데, 솔직히 잘 모르겠음. 애초에 첫 등장하고 50분동안 부재중이다가 급 등장하다보니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장악력도 별로 없다. 그저 마이클 B 조던이 겁나 멋지게 생겼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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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포스21 2018/02/26 16:06 # 답글

    전 , 오코예 나 슈리 , 전여친... 같은 여성 캐릭터들의 활약이 인상적이더군요.
  • CINEKOON 2018/02/26 23:20 #

    흑인들을 넘어 여성 캐릭터들의 활약으로도 충분히 인상적인 영화더군요. 대신 조연들의 매력이 넘치다보니 주인공의 존재감이 희미해졌...
  • 포스21 2018/02/27 14:11 # 답글

    주인공 존재감이 희미해진 건 확실히 아쉽습니다만, 블랙팬서와 와칸다 라는 나라를 마블 월드에 편입시키기 위한 장치라고 보면 납득이 가능하더군요.
  • CINEKOON 2018/02/27 14:18 #

    블랙팬서라는 아이덴티티 자체가 곧 주인공인데 왠지 그 두 개가 잘 안 붙고 주인공에게는 계속 '왕'이라는 아이덴티티만 느껴져서요. 그래도 간지는 터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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