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26 23:50

끝을 알고도 모든 걸 시작할 수 있을까? 객관성 담보 불가


사실 <컨택트> 역시도 본 이후 꽤나 시간이 흘렀다. 허나 이것은 평범한 게으름 때문이 아니라고 당당하게 자문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를 부지런히 분석했다는 것 역시 소심하게 부정할 수 있다. 다만, 나는 이 영화를 구체적으로 분석하기가 싫었을 뿐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눈물이 났다. 외계 종족과 인간 사이의 이야기를 다룬 <E.T>를 봤을 때의 수줍고 동심어린 감동의 눈물과는 많이 멀었다. 사실, 완전히 그 반대편에 놓여있는 눈물이였다. 그건 너무 많이 알아버린, 어른의 눈물에 가까웠다고 하겠다.  


시니컬한 친구와 그런 말장난을 많이 친다. 
“아, 힘들어 죽을 것 같아.” / “그럼 죽어.”
“그냥 힘들다는 말인데 왜 죽어야 돼?” / “어차피 나중엔 죽을 거잖아. 지금 죽어도 돼.”

우리 모두의 삶의 종국엔 결국, 죽음이 놓여져 있다. 그렇담 우리는 어차피 죽을 필멸의 존재들인데, ‘죽음’이라는 영겁의 시간 앞에선 초침의 째깍보다도 짧고 의미없을 우리의 ‘삶’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최근 블록버스터들 중, 시간을 의미있게 다뤘던 또다른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가 떠오른다. 그 영화 속의 악당은 ‘시간’을 적으로 보았다. 우리를 피해갈 수 없는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시간’이 우리에게 무자비하고 불공평한 존재라고 여겼다. 그래서 ‘시간’을 몰아내고 모두가 지속적인 삶의 상태를 맞이할 수 있게 하려 주인공을 위협했다. 
주인공인 스트레인지 역시 거만한 천재 외과의사 시절엔 그와 다를 바가 없었다. 수술대 위의 환자 목숨을 자기 손으로 좌지우지했던 이 남자는 같은 수술실의 동료 의사에게 손목시계 소리가 거슬리다며 치우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 남자에게도 역시, 시간은 아무 소용 없는 것이었다.


스트레인지는 계속 시계와 엮이게 된다. 그는 영화 초반 값비싼 명품 시계들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가 ‘카마르 타지’를 찾아갔을 때 만난 강도들에게서 가장 먼저 빼앗긴 물건은 역시 시계였다. 

허나 그는 한 여자로 인해 달라진다. 그 여자가 그 남자에게 준 손목시계의 뒤쪽에 음각으로 새겨져 있던 문구는 다른게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 나의 사랑을 알게 될거야.’였다.

함께 보내며 퇴적된 시간은 ‘감정’의 전제이며, 필수적인 요소다. 그 누구도 만난지 하루가 채 되지 않은 사람에게서 깊은 우정과 신의를 느낄 수는 없다. 난 ‘첫 눈에 반했다’라는 표현 역시 믿지 않는다. 그것은 그저 본능적인 이상형 찾기에 불과하다. ‘사랑’이라는 ‘감정’ 역시도, ‘시간’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다시, <컨택트>로 돌아와서.

이처럼 우리에겐 시간이 필요하다. 무언가를 느끼기 위한 시간이 간절히 필요하다. 고민과 선택의 시간은 갑작스레 찾아올 것이기 때문에.

갑작스레 찾아온 상대 앞에서 고민을 했던 적이 있다. 
‘나랑 맞지 않으면 어떡하지? / 결국 우린 헤어지고 말거야.’

누구나 다 그럴 것이다. 이혼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결혼을 왜 하는가. 일을 그르칠지도 모르는데 왜 착수해야하는가. 무너질지도 모르는데 왜 지어올려야 하는가. 우리 모두는 죽을 텐데 그렇다면 왜 살아가야만 하는가.

<컨택트>는 말한다. 모든 좋은 순간만을 골라 살아갈 순 없다고. 우리 모두의 끝에, 진짜 ‘끝’, 진짜 ‘종국’, 진짜 ‘파국’, 진짜 ‘실패’, 진짜 ‘죽음’이 당연하게 놓여있다 하더라도, 그 사이사이에, 그 순간순간에 스며들어 있는 행복과 기쁨을 포기하진 말자고. 별처럼 반짝반짝이는 그런 순간들을 놓치지는 말자고. 우리는 계속 살아가야만 한다고. 살아갈 수 있다고-.

그래서 <컨택트>는 내게 약속의 영화다. 


- 작년 연초에 썼던 글인데 이제와서 한 번 더 옮겨 적어본다.


덧글

  • 지나다 2018/03/05 22:21 # 삭제 답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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