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16 17:41

드라이브, 2011 대여점 (구작)


개봉 당시 극장에서 봤던 영화. 칸에서 극찬을 받았다는 말과 그럼에도 장르가 다른 것도 아닌 '액션'이라는 말에 아리송함을 가득 안고 가서 봤던 영화. 대체 액션 영화로 칸에서 극찬을 받으려면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 것인가, 어디 가서 확인해보자! 라는 마음가짐으로 가서 봤었는데 막상 보고 나서는 놀랍도록 그저 그랬던 영화기도 하다. 근데 그것보다 더 놀라운 건 나중에 블루레이로 다시 보고 기겁을 했었다는 거. 너무 좋아서.

넷플릭스의 <겟어웨이 드라이버>와 에드가 라이트의 <베이비 드라이버>가 있기 이전에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이 영화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테다. 애초에 '겟어웨이 드라이버'라는 직종을 내게 알게해준 작품이니. 초반부에 겟어웨이 드라이버로서 주인공의 활약을 보여주는데, 당시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덨던 <분노의 질주> 시리즈와는 여러모로 결이 다른 카체이스라 신선했던 기억이 있다. 카체이스 영화들은 대개 빠른 질주의 쾌감을 동력삼아 앞에 놓인 장애물들을 무수히 부숴대며 전진하는 통렬함으로 관객들을 달래는데, 이 대신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드라이브>는 시기적절하고 리드미컬한 기어 변속으로 보는 이를 가슴 졸이게 한다. 까놓고 말해 진짜 겟어웨이 드라이버라면 이 쪽이 좀 더 사실적이다. 현실의 겟어웨이 드라이버가 도미닉 토레토 마냥 이것 저것 다 부수고 다니면 GTA 게임 오버창 비슷한 상황을 맞게 될테니까. 그에반해 <드라이브>의 주인공은 변속의 쾌감으로 사실성과 더불어 긴장감을 제대로 낼 줄 안다.

그에반해 영화 내용과 플롯은 삼선짬뽕 같은 클리셰 투성이 범벅 우라까이다. 이 영화 내용만 읽고도 비스무리한 설정을 가진 영화들을 열댓개는 댈 수 있겠다. 근데, 그 단순함이 좋다. 애초에 주인공의 본명 마저 알려주지 않을 정도로 불친절한 영화이다 보니 관객들이 대략적인 전개 만이라도 익숙하게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했을 거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성공이다. 어떤 영화들에서는 뻔한 설정과 플롯이 무조건적인 단점으로만 결부 되진 않는 것이다.

오스카 아이작을 처음 본 영화기도 하고, 영화 속 론 펄만의 몇 번째 죽음인가를 손꼽아 세어보게 했던 영화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김갑수와 저쪽 나라의 숀 빈을 합쳐 통계내어 봐도 재미 있을 텐데. 캐리 멀리건은 너무 예쁘고 그 특유의 차분한 연기 톤이 마음에 들었다. 브라이언 크랜스톤 역시도 멋지고. 하지만 이 영화는 누가 뭐래도 라이언 고슬링의 영화이겠다. 여전히 이목구비가 정중앙에 몰려있어 신동엽 같은 느낌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그 과묵함이 멋지고 예뻤다. 맞다, 라이언 고슬링이 참 예쁘게 나왔던 영화다. 순정과 낭만 넘치던 그 예쁜 남자가 돌연 잔혹한 괴물로 변이할 때의 그 쾌감. 

주인공이 옆집의 그녀와 함께 도피해 새로운 인생을 살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지극히 <라라랜드>스러운 나만의 결말을 생각해보곤 한다. 하지만 순정파라 해도 그 정도로 폭력적인 삶을 살았던 남자 옆에서 평생을 함께하는 건 여자로서 힘들겠지. 영화를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한다. 평생을 기다리던 백마 탄 왕자를 만났는데, 그 왕자가 흉폭했을 때의 당혹감이란 이런 것일까, 하는.

그 때 그 수퍼마켓에서 옆집 여자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 모든 건 지금과 달라졌을까. 그는 그 잔인무도한 버니가 투자한 레이싱카로 레이싱 대회에 나가 우승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럼 버니의 잔인한 일면을 목격할 일도, 그저 먹고살만한 삶을 원했던 섀넌도 그 꿈을 이룰 수 있지 않았을까. 인생이란 참으로 혼란스러운 것이고 우연과 사랑이란 참으로 엿 같은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속 키스 중 하나.

뱀발 1 - 촬영과 조명이 진짜로 죽여준다.
뱀발 2 - 생각해보니 이후 오스카 아이작과 캐리 멀리건은 <인사이드 르윈>에서 재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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