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31 15:47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극장전 (신작)


극장에서 처음 봤을 때. 좋았다. 하지만, 편집의 리듬을 따져보았을 때 쓸데없이 들어있는 장면들이 너무 많았고, 배우들의 연기 마저도 불필요해 보이는 부분들이 있었다.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극장에서 두번째 보고서는 깨달았다. 그게 감독이나 편집자의 실수가 아님을. 배우의 과도한 연기도 아님을. 그것 자체가 첫사랑의 기억임을. 


스포일러 유 바이 마이 리뷰


우리 모두의 첫사랑엔 불순물들이 많다. 필요 이상의 감정들과 필요 이상의 밀고 당기기. 상대의 별 것 행동에도 어떤 의미를 찾으려 무던히도 애쓰던 그 시간들. 어쩌면 이 영화가 그런 모든 부분들까지도 캐치해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때문에 비록 조금 과하게 느껴질지언정 엘리오가 올리버의 반바지를 머리에 뒤집어쓴 순간이나 영문도 모르고 끝도 모른채 올리버의 '응답'을 기다리던 순간들은 모두 필요했다. 우리의 첫사랑과, 우리의 인생이 그렇기 때문에. 영화처럼 구조적으로 쓰여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의 감정만큼이나 섬세한 촬영과 편집을 가진 영화다. 인물의 감정을 드러내기 위한 심도 조절을 잘 쓴 영화. 아웃포커스를 이토록 잘 쓴 영화가 최근에 또 있었던가. 계절감과 패션, 그리고 그에 따른 색감들이 심미적인 아름다움을 뿜어내는 영화이기도 한데, 영화 보고 웬만해서는 촬영지에 가보고 싶다-이런 생각 잘 안드는데 이 영화 보고는 이탈리아 북부 어딘가로 당장 떠나고 싶더라. 물론 스크린을 통해 보는 청량한 여름과 직접 체험하는 후덥지근한 여름은 천지차이겠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겠지만, 감히 말하건대 티모시 샬라메는 조만간 대성할 거다. 아미 해머는 이토록 매력있게 나온 영화가 있었던가 싶을 정도. 출연작들 대부분을 다 봤는데 어째 이 영화만큼 아미 해머를 잘 살려내지들 못했던 것일까. 이상하게 드는 의문.

후반부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은 채 서로를 마음껏 탐하고 사랑하는 엘리오와 올리버의 폭포 등반 장면도 좋고, 대한민국에선 절대 나올 수 없을 아버지와의 대화 장면도 좋았지만, 누가 뭐래도 최고의 엔딩 쇼트를 가진 영화라고 하겠다. 마지막 쇼트 전까지만 해도 '좋은 영화네'라는 생각이었는데, 엔딩 쇼트를 보고서는 '진짜 좋은 영화네'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그만큼 강한 감정선을 진하게 드러내는 엔딩 쇼트였다고 생각한다. 전화통화를 통해 전한 올리버의 마지막 선언이 이해가 간다. 영화 초반부에 그 스스로 말했듯 그는 자기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이다. 스스로 자제하지 않으면 끝까지 갈 것임을 알기 때문에 그는 엘리오를 포기했다. 어쩌면 엘리오를 위해서이기도 했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엘리오의 표정은 한없이 안쓰러웠다. 끝내 엔딩 쇼트의 롱테이크 말미에 희미하게 옅은 미소를 지어보이긴 하지만.

원작자이기도 한 각본가와 감독은 최소 한 편의 속편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데 글쎄. 이 정도의 퀄리티만 보장해준다면 속편도 환영이긴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이 영화의 마지막 엔딩 쇼트가 가진 응집력이 조금 해산될 것 같아 불안하기도 하네.

뱀발 - 근래들어 본 영화 제목 중 가장 마음에 든다. 그래, 이런 게 진짜 잘 지은 영화 제목이지. <기억의 밤> - <사라진 밤> - <7년의 밤> 이런 건 연작 같기도 할 뿐더러 10년만 지나면 기억이 제목들을 야바위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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