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악한 백인 개척자들이 선량하고 죄없는 신대륙 원주민들을 가해자로서 괴롭히는 모습들을 통해, 미국이라는 국가의 그 근본에 배어있는 부도덕함을 고발하는 것이 이른바 요즘 유행하는 수정주의 서부극들 되시겠다. 사실 요즘이라고 해서 그렇지 이 시각을 견지한 서부극 작품들이 나온지는 꽤 되었고, 웨스턴이라는 것 자체가 수퍼히어로 장르나 SF 장르에 밀려 점차 할리우드에서 씨가 말라가던 형국이기 때문에 그나마 제작된 웨스턴들 중에도 그 대다수는 모두 수정주의 서부극들이었다.
근데 이 영화는 오프닝 프롤로그부터 좀 남다르다. 외딴 집에 살고 있는 백인 가족들을 애 어른 가릴 것 없이 원주민들이 무자비하게 학살하는 장면으로 시작. 여기까지 보여주고 딱 타이틀 뜨던데, 뭔가 좀 뜨악 하더라. 아직도 이런 시각을 가진 서부극이 만들어지고 있는 건가 싶어서. 원주민들의 손에 죽어나가는 백인들의 모습으로 시작하는 그 패기. 하지만 끝까지 보니 역시 아니었어.
열려라, 스포천국!
원제인 'Hostile'은 적대적인 관계를 의미하는 영단어. 때문에 미개한 원주민들을 백인 영웅들이 혼내주는 고전주의적 서부극이라기 보다는 수정주의 서부극이긴 하되 백인 원주민 가릴 것 없이 모두가 엮여버린 복수의 굴레를 멀찍이서 보여주는 정도의 영화라 할 수 있겠다. 유럽에서 건너온 백인 개척자들이 원주민들 삶의 터전을 빼앗고 그들을 몰아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가해자라고 해서 복수라는 이름으로 모두 학살해버릴 순 또 없는 거잖아. 한마디로 원주민들이 가진 고유의 분노도 이해되고, 개척민들이 가진 고유의 혐오도 이해되는 영화. 어쩐지 스필버그의 <뮌헨> 생각이 나는 건 나뿐인가. 원래 서부극이 다 그런 주제로 굴러가고 있는 장르라고 따진다면 할 말 없다
허나 적의를 품은 관계에서 점차 서로를 믿고 의지해가는 인물들 간의 그 과정이 조금 뭉뚱 그려진 것은 아쉽다. 호송 임무 초반만 하더라도 주인공인 '블로커'는 '옐로우호크' 추장에게 소리를 지르고 막 대하는데, 몇 번의 위기를 함께 넘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막판 옐로우호크가 죽어갈 땐 금세 또 친구 타령. 크리스쳔 베일의 연기로 어느정도 커버 가능한 수준이지만 전체적으로 좀 더 긴 호흡을 담아 연출 했다면 더 좋았겠다. 누구 말마따나 진짜 드라마 포맷이 더 어울릴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요즘 누가 서부 드라마 만들어
벤 포스터는 또 이런 사고뭉치 폭발직전 위험한 캐릭터로 나오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양반 필모 털면 그 중 2/3은 다 이런 역할일 걸. 근데 뭐 어떡해, 잘하는데. 그나저나 벤 포스터가 크리스쳔 베일과 독대하는 장면은 제임스 맨골드의 <3:10 투 유마> 속 그것을 보는 것 같아 진짜 반가웠다. <3:10 투 유마> 진짜 재밌었지. 거기서의 벤 포스터는 진짜 최고였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영화 속 악당들 중 하나.
그 외에도 티모시 샬라메나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슬립낫'도 나오는데 전자는 초반에 사망, 후자는 영화 끄트머리에서 죽긴 하지만 별다른 활약 없음. 배우 보는 맛은 딱 크리스쳔 베일과 벤 포스터까지다. 솔직히 로자먼드 파이크는 뭘해도 <나를 찾아줘>가 떠올라서 이입하기가 힘듦.
영화 전체의 느린 전개와는 별개로 엔딩 하나는 정말 좋은데, 그건 내가 혈연 보다는 인연으로 이어진 유사 가족 관계를 좋아하기 때문이겠다. 블로커 대위, 앞으로도 자네 앞에 많은 난관들이 있겠지만 어찌되었든 뒤늦게라도 그 열차를 탄 것은 잘한 결정이야. 누구나 한 번쯤은 행복해질 권리가 있으니까 말이야.
뱀발 - 한국판 제목을 잘 만들었고 아니고-를 떠나서 화면에 뻔히 'Hostile'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자막으로는 '몬태나'가 뜨는 그 당혹감. 하여간에 절대 익숙해지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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