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16 18:41

칠드런 오브 맨, 2006 대여점 (구작)


불임이 만연한 디스토피아를 다루고 있는 것 자체도 비교적 신선한데, 그 소재 보다도 그걸 담고 있는 형식미가 더 중요하고 돋보이는 영화. 예컨대 이런 거다. 우리나라에선 쉽게 식재료로 쓰지 않는 두리안 같은 걸로 기가 막히게 예쁜 음식을 만들었는데, 그 음식을 담은 접시도 기가 막히게 예쁜 거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막상 먹어보니 그 맛도 기가 막히게 아름답다는 것.


스포일러 오브 맨!


항상 그런 생각을 해왔다. 모든 세대의 희망은 그 다음 세대에 있다고.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고귀한 임무는 조금이라도 더 좋은 세상을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는 것이라고. 그런 신념이 있지 않으면 세상은 딱 여기까지일 거라고. 최근에 봤던 <7년의 밤><콰이어트 플레이스>, 그리고 예전 영화인 봉준호의 <설국열차>가 부분적으로 그래서 좋았다. 아이를 살리는 영화들이었기 때문에. <7년의 밤> 속 '최현수'가 일말의 고민도 없이 아들을 살려서, <콰이어트 플레이스> 속 '리'가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다른 전략없이 우직하게 자신을 희생해서, <설국열차> 속 '남궁민수'와 '커티스'가 둘의 갈등이 극에 달한 상태였음에도 열차가 폭발하기 시작하자 두 말 할 것도 없이 아이들을 껴안아서. 그래서 그 장면들이 좋았었다. 근데 <칠드런 오브 맨>은 그런 장면들만 똘똘 뭉쳐 만든 영화 같다. 거의 십 년만에 다시 봤는데도 그 감흥과 감동이 여전하다.

다 떠나서 테크닉으로 조지고 부시는 영화인데, 이미 유명하지만 엠마누엘 루베즈키의 촬영은 역시나 탁월하다. 롱테이크에 유독 집착하는 몇몇 사람들 때문에 이골이 나긴 했지만 그럼에도 그의 롱테이크는 눈부시게 아름답다. 스타일과 테크닉을 각각 한 손에 각목처럼 쥐어들고 관객들을 뚜까 패는 장인을 보는 것 같다. 이유없는 롱테이크 남발에 반발하는 기질이 조금 있는데, 삶의 연속성을 보여주는 롱테이크라 생각했기에 그런 기질 발휘할 시간이 없었다.

무기력한 삶을 살아가는 '테오' 주변에 동물들이 몰려든다는 설정, 그게 재미있다. 편안한 죽음을 주장하고 권하는 사회에서 강아지와 고양이들이 유독 그를 잘 따르는 그게. 어쩌면 '삶'이라는 추상적 개념이 테오에게 자꾸 말을 거는 것 같아 좋았다. 더불어 이 영화의 후반부를 볼 때마다 생각하는 건데, 하나의 희망은 여러 희생을 통해 옮겨 붙는다는 것이 바로 그것. 내가 '테오'나 '키'도 아닌데 도와주다가 죽거나 피해보는 주변 사람들한테 그렇게 고맙고 미안 하더라. 

희망은 항상 미래에 있지만, 그 희망을 유지하는 원동력은 과거에서 온다. 전 부인 때문에 팔자 사납게 꼬여 말년에 고생한다 느꼈던 주인공은 결국 끝까지 아이를 지켜낸다. 그건 그가 과거에 아들을 잃어본 적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실수를 되풀이할 수는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테오에게 키는 방금 낳은 딸에게 테오가 잃은 아들 이름을 따서 붙이는 것으로 보답한다. 테오는 결국 눈을 감지만, 그 덕분에 '미래호'는 키와 '딜런'을 찾는다. 그렇게 딜런은 미래를 맞이한다. 썩 멋진 결말이 아닐 수 없다.

뱀발 - 만들어진지 10년도 넘은 영화인데 어째 몇 년전 유럽 난민 사태와 브렉시트를 일찍이 예견한 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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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ID U MISS ME ? : 캡티브 스테이트 2019-09-17 08:07:36 #

    ... 고 싶었던 건지 모르겠다. 로그라인은 기가 막히게 잘 잡아놓고, 정작 그걸 재밌게 써먹을 생각 1도 안 한 느낌. 그냥 존나 있어보이려고, 존나 &lt;칠드런 오브 맨&gt; 느낌 낼려다가 미적지근하게 말아먹은 느낌. 루퍼트 와이어트는 &lt;혹성탈출&gt;은 연출 그렇게 잘 해놨으면서 왜 이 꼴 만들어놨지?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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