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09 18:53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져, 2013 대여점 (구작)


개인적으로는 <아이언맨3>도 별로 좋아하지 않고, 나나 다른 사람들이나 <토르 - 다크 월드>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심지어 교과서 보면 각 단원 끄트머리 마다 있는 복습코너처럼 올스타전으로 짜여있는 <에이지 오브 울트론>도 MCU 내에서는 가장 떨어지는 편이라고 생각하고. 돌이켜보면 그야말로 MCU의 페이즈 2는 여러모로 아슬아슬했다. <토르 - 천둥의 신>이나 <아이언맨2>의 완성도가 아슬아슬 아쉬워도 어쨌거나 첫번째 <어벤져스> 영화로 가는 떡밥으로써의 의미가 강했기 때문에 호기심이 동해 그냥저냥 넘겼던 게 페이즈 1의 흐름이었는데, 그 바로 뒤에 나온 페이즈 2의 영화들은 어째 다 별로... 그러던 와중에 이 페이즈 2를 구한 게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바로 이 영화 되시겠다.

마블 영화들이 다 그렇긴 하지만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야말로 장르 묘기를 가장 잘 부리는 시리즈라고 생각한다. 1편인 <캡틴 아메리카 - 퍼스트 어벤져>는 제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주인공인 수퍼히어로에게 오바로크친 군복까지 입혀가며 수퍼히어로 장르 아래에 서브 장르로 전쟁 영화의 숨결을 불어 넣었었다. 그리고 그게 적어도 내게는 잘 먹혔다. 근데 속편인 이번 영화에선 수퍼히어로 장르에 에스피오나지 장르를 섞는다. 여러모로 세계사와 장르사의 이치에도 맞는다. 미국의 제 2차 세계대전 승전 이후 재편된 세계 무대에서 가장 큰 화두였던 것은 미국 vs 소련의 구도로 나뉜 냉전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냉전 시대의 미묘하고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건조하고 차갑게 그려냈던 게 에스피오나지 장르 아니였던가. 

하지만 재밌는 건, 주인공인 캡틴 아메리카를 그냥 스파이로 두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전편에선 수퍼솔져로서의 능력을 제외하면 전형적인 군인이었던 캐릭터가 바로 스티브 로저스였는데, 속편인 <윈터 솔져>에서는 에스피오나지 장르의 틀과 분위기를 가져오되 주인공은 더더욱 수퍼히어로다워졌다는 것. 마블에 이 영화가 있다면 DC엔 놀란의 <다크나이트>가 있고, 대개 후자를 전자 보다 높게 친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물론 <다크나이트> 훌륭하지. 모던 클래식이지. 하지만 그 영화는 수퍼히어로 장르의 정체성 보다는 범죄 느와르 장르의 정체성이 더 짙었다. 하지만 <윈터 솔져>는 좀 다르다. 에스피오나지 장르의 정체성 보다는 수퍼히어로 장르의 정체성이 더 강한 것이다. 고로 수퍼히어로 영화로만야 따진다면 <윈터 솔져>가 조금 더 우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다 떠나서 액션이 쩔어준다. <어벤져스> 1편 개봉 당시 많은 사람들이 툴툴댔던 캡틴의 '약함'이 이 영화를 위대하게 만들어줬다. 헐크도 있고 토르도 있는데 왜 스티브 로저스가 이 팀의 캡틴이냐고? 쌈 잘하면 대대장 하고 사단장 하냐? 완력으로만 따지자면야 헐크와 토르에게 밀리고, 장비 운용으로 따지면 아이언맨과 호크아이, 블랙 위도우에게 밀리는 게 사실이다. 전기 밖에 모르는 바보 하지만 캡틴에겐 전략을 세우는 이성이 있고, 싸움의 투지를 불태우는 도덕성과 의리도 있다. 그래서 대장인 거. 그리고 그 맛을 이 영화가 잘 살린다. 전략을 세우는 모습이 많이 부각 안 되긴 하지만 적어도 다찌마리 상황에서 우위를 점하는 파워와 전체 싸움을 이끌어나가는 투지가 대단하다. 그리고 그런 부분을 살리는 기가 막힌 연출. 중반부 팀 캡과 윈터솔져 & 하이드라 일당들의 고가도로 액션 시퀀스는 첫 관람 때 진짜 입을 헤- 벌리고 봤고 지금도 블루레이로 가끔 꺼내서 보며 입을 헤- 벌리고 본다. 수퍼히어로 장르를 통틀어 이토록 상호 간에 총알을 많이 교류한 시퀀스가 있었을까. 

개인적으로 수퍼히어로 장르와 더불어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처럼 현실에서 조금 붕 떠있는 장르들을 좋아하는 반면에, 한편으로는 성룡이나 견자단 같은 무술인들의 합과 액션을 좋아하고 <히트>처럼 훌륭한 시가전을 가진 건파이트 영화도 좋아한다. 은근히 전쟁 영화 좋아하는 것도 그것의 영향. 근데 까놓고 말해 수퍼히어로 장르 영화에서 그런 요소들을 품기가 꽤 어렵거든. 토르 데려다가 견자단이랑 붙일 수도 없는 노릇이고, 헐크 데려다가 건파이트 영화 찍을 수도 없는 거잖아. 근데 <윈터 솔져>는 그걸 다 해줬다. 수퍼히어로 장르로써의 스펙터클한 눈요기는 팔콘이 해주고, 성룡+이연걸 영화의 아기자기하면서도 박력 넘치는 다찌마리는 캡틴이 해주고, 총알 빗발치는 것들은 다 윈터 솔져랑 블랙 위도우가 해주거든. 아... 다시 쓰고 봐도 진짜 완벽한 삼위일체다.

고가도로 전투 시퀀스와 더불어 닉 퓨리의 자동차 추격 시퀀스도 손에 꼽는 명장면. 카체이스도 진짜 좋아하거든. 어째 좋아하는 게 너무 많은 것 같은데 더불어 이 장면에서 윈터 솔져라는 메인 빌런도 꽤 멋지게 첫 소개 되고 있기도 하고.

페이즈 2의 <아이언맨3>, <토르 - 다크 월드>,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져> 이 세 영화에 대해서 항상 제기되는 의문이 하나 있는데. <아이언맨3>에서 토니가 그런 위기를 겪고 있었고, <토르 - 다크 월드>에서는 토르와 말레키스가 영국에서 세계의 운명을 건 대결을 하고 있었으며, <윈터 솔져>에서는 쉴드가 타락하고 붕괴되는 상황이었는데 왜 어벤져스가 출동하지 않았냐는 의문. 나는 이것을, 이 세 영화의 타임라인이 어느정도 겹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쉴드가 붕괴되어 캡틴이 고생하는 동안 토니랑 토르 둘 다 연락이 안 된 거지. 그 같은 시간동안 토니는 올드리치 킬리언에게 쫓기고 있었고, 토르는 말레키스 쫓고 있었고. 뭐 대충 그런 상황이라고 생각하면 편하긴 하다. 그럼 헐크는?

하여간에 멋진 영화. MCU 통틀어서 가장 상위에 있는 영화 중 하나기도 하고 볼 때마다 끝까지 계속 보게 되는 마법의 영화기도 하다. <시빌 워> 빼고 이런 영화 딱 한 편만 더 만들어주면 소원이 없겠다.

뱀발 1 - 배우들의 연기는 전부 굉장하지만 내게는 로버트 레드포드가 나오는 수퍼히어로 영화로써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제프 브리지스나 미키 루크, 안소니 홉킨스가 이 장르에 출연하는 것도 굉장 했었는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로버트 레드포드라니. 게다가 존나 멋져. 

뱀발 2 - 다시 생각해보면 이 영화에 이어 <시빌 워>까지 연출한 루소 형제의 인장이 연장되어 보이기도 한다. <윈터 솔져>나 <시빌 워>나 모두 통제에 의한 질서 vs 불완전하지만 추구되어야할 자유의 논리를 이야기하고 있는 거거든. 물론 캡틴은 언제나 후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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