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년에 알아주는 레슬러였던 유해진의 '강귀보'. 하지만 지금은 홀아비로서 아들이자 자신이 걸었던 과거의 길을 그대로 따라 레슬러의 길을 걷고 있는 김민재의 '강성웅'에게 모든 것을 걸고 있다. 여기까지만 듣는다면 코치 아버지와 선수 아들의 좌충우돌 스포츠 코미디인가, 싶기도 하겠지만 정작 영화는 하고 싶었던 것들이 더 있었던 모양이다.
열려라, 스포천국!
홀아비로서 아들을 키우는 그 고단함은 물론이고 그 윗세대와도 부딪혀 발생되는 부모자식 간의 갈등, 스무살 이상 차이나는 딸뻘 아가씨와의 로맨스 아닌 로맨스, 거기에 부모로서 자식에게 무엇인가를 강요하지는 않았던가- 하는 내적 고민. 영화는 애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진보적이다. 아, 여기에 해 꿔다 놓은 보릿자루 마냥 하나 더 넣은 게이 캐릭터도 있다. 여러모로 조금은 진보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반감이 들 수도 있겠다. 주인공인 중년 홀아비, 그것도 얼굴이 특출나게 잘생긴 것도 아닌 이 인물에게 영화 속 대부분의 여성 캐릭터들이 호감을 표한다. 불륜이나 치정이 아닌, 정말 스무살 이상 차이나는 딸뻘의 여자가 순수한 마음으로 날 좋아해준다는 그 중년의 판타지. 이 부분이 조금 몰입을 방해하긴 하지만, 또 따로 떼어 놓고 생각해 본다면 판타지라고 꼭 나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기라. 중년 남성의 판타지든 중년 여성의 판타지든 어쨌거나 영화란 건 판타지고 대리 만족이니까. 그것 자체로만 놓고 보자면야 꼭 나쁜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중년의 판타지를 이 영화가 완성시켜주지는 않는단 것이다. 굳이 게이 남성 캐릭터를 끌고와 그의 가족들로부터 게이로서의 정체성을 인정받은 에피소드를 가져왔다면, 스무살 딸뻘 아가씨와 중년 홀아비의 로맨스도 한 번 이뤄줄 수 있지 않은가. 게다가 전체적으로 진보적인 느낌인데! 근데 이 영화는 그걸 이뤄주지 않고, 끝내는 옳지 않는 관계라는 늬앙스를 띈다. 물론 단순하게 나이 차이 문제 뿐만 아니라 거의 가족과도 같은 유사 삼촌-조카 관계였다는 것도 문제라면 문제다. 하지만 이왕 진보적으로 판타지를 다뤘다면 차라리 그 둘이 잘 되는 결말이었다면 어땠을까. 이런 톤의 코미디 영화에서 그런 관계가 끝끝내 허락되는 영화가 거의 없었잖아.
중년의 판타지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그것보다는 사실 부모-자식 간의 딜레마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로써 더 많이 기능 한다. 그저 아빠의 관심이 필요했을 뿐이었던 아들에게 자신이 못 다이룬 꿈을 주입 시켰던 그 안타까움과 거기서 파생되는 억울함, 그리고 미안함. 이런 부분들을 영화가 생각보다 잘 다루고 있어 놀랐다. 물론 곁가지를 좀 많이 쳐내고 이 부분에만 좀 더 집중하는 영화였다면 좋았을 걸.
유해진이나 나문희의 연기야 이제 뭐 더 할 말 없을 것 같은데, 영화 보기 전부터 걱정했던 이성경과 김민재 등 청춘 배우들의 연기가 생각보다 좋아 놀랍다. 웨딩 드레스를 전시한 쇼윈도 앞에서의 이성경 씬과 후반 클라이막스 김민재의 레슬링 씬이 아직까지도 내 기억에 오롯이 남아있다는 게 좋다. 당연하지 어제 본 영화인데
연출 편집적으로도 어느정도 노력을 많이 한 영화라는 게 좀 보인다. 중초반부 성웅의 레슬링 몽타주 장면은 아주 새로운 아이디어는 아니였지만 타이밍이 좋았고 재미가 명확했달까.
어쨌거나 마동석의 <챔피언> 보다 못한 영화라는 소리를 어디에선가 들어서 걱정했었는데 단연코 그 정도는 아니더라. 물론 그건 비교대상인 그 영화가 너무 후져서 그런 것도 없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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