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11 13:56

마녀 극장전 (신작)


사실 미국의 수퍼히어로 장르보다는 일본 망가들이 전통적으로 다루는 소재인 개조인간 작품들에 더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영화다. 그럼에도 관련 일본 만화책들은 읽어보지도, 잘 알지도 못하니 그냥 그렇다 치고. 수퍼히어로 장르와도 어쨌든 교집합이 있는 영화. 하지만 장르 자체에 대한 신선함보다는, 이젠 점점 실망감만을 안겨주고 있는 박훈정이라는 연출가의 신작이라는 점이 좀 더 와닿는 영화였다. 솔직히 이 영화, 후반부 액션 시퀀스에서의 스턴트나 CGI 등 기술적인 성취와 김다미라는 신인 배우를 발굴해낸 부분 외에는 전혀 장점이라곤 없는 영화다.


열려라, 스포천국!


어차피 먼치킨 수퍼히어로 주인공 컨셉으로 밀고 나갈 것이었다면, 세공에 더 신경 썼어야 하는 건 주인공 친구나 주인공 친구의 아버지나 주인공이 외상 해달라고 사정하는 사료 가게 사장님 같은 쓸데없는 캐릭터들이 아니라 바로 악당들이었다. 이 영화엔 메인 악역이 셋 등장하는데 하나는 조민수의 매드 사이언티스트요, 둘은 박희순의 허세 빼면 시체 총잡이요, 마지막 셋은 최우식의 아메리칸 아이돌이 되시겠다. 셋 다 문제가 한 가득이다. 조민수의 캐릭터는 말 그대로 설명충이다. 이토록 영화 내의 핵심 설정들을 모두 말로 때려박는 캐릭터는 처음이다. 타란티노가 있지 않느냐고? 그럼 타란티노처럼 연출이라도 졸라 잘하던가. 애초에 그런 것 없이 그냥 설명 해야겠다는 마음가짐 하나로 만든 캐릭터니 더 잘 해봤자 거기서 거기였을 거란 비관적 생각만 들고. 박희순은 정말 좋아하는 배우인데, 이상하게 박훈정만 만나면 재미없어진다. 특히 이번 캐릭터는 전사도 잘 이해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무식하게 폼만 잡다가 실로 어이없게 리타이어. 그리고 가장 할 말 많은 건 최우식의 귀공자 캐릭터인데... 그냥 막판에 등판시키는 게 훨씬 더 낫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 캐릭터가 애초에 서울행 KTX 열차 안에서 첫 등장해야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고 거기서 뭔가 대단한 걸 보여준 것도 아니고. 아, 지나가던 아저씨 하나 죽인 거? 그거야 말로 정말 쓸데없고 비효율적인 캐릭터 소개다. 아니면 진짜로 구자윤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일종의 서운한 감정을 갖고 있다가 어깨빵 친 아저씨가 일방적으로 시비 터니 그 화풀이의 일종으로 능력을 발현해 죽이는 걸로 가던지. 하여간에 지금 버전은 그냥 웃기기만 하다.

영화의 발동이 너무 늦게 걸리는 것도 문제인데, 사실상 본격적인 영화적 재미가 시작되는 게 후반부기 때문에 앞의 지루한 전반부가 거의 그 후반부에 종속되어 끌려다기니만 한다. 아, 그냥 간단히 말해 초중반부가 겁나 지루하다고.

연구소 다 터뜨리고 자신이 죽인 거나 다름없는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동생인지 클론인지 모를 존재를 찾아가 맞이하는 영화의 엔딩도 다소 뜬금없다. <반지의 제왕 - 반지 원정대>의 엔딩이랑 비슷한 느낌인데, 애초에 시리즈로 기획된 영화란 건 알겠지만 3부작을 모두 한꺼번에 촬영한 <반지의 제왕>과는 조금 다른 상황이잖아. 그렇다면 적어도 한 편 한 편에서 일관된 재미와 완성도, 그리고 무엇보다 그 안에서의 기승전결은 제공했어야지 않나. 지금은 그냥 닥치고 다음 편 보라는 거잖아.

워너가 충무로로 들어와 여러 한국 영화를 제작하고 있는 것에 대해선 불만이 전혀 없다. 오히려 환영하는 위치지. 걔네들 들어오고부터 한국에서도 여러 장르 영화들이 만들어지고 있으니까. 하지만 워너와 박훈정 라인은 보면 볼수록 영 아니올시다란 말이지. 이렇게 혀가 긴 중2병은 난생처음 봤다.

뱀발 - 양부모가 입양한 자녀의 초능력을 숨기려고 하는 점과 시골 생활을 하고 있다는 부분에서는 <맨 오브 스틸>을, 구자윤의 태생 설정 자체는 <기묘한 이야기>를, 병원 안에 갇혀서 염동력 쓰는 묘사는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져>의 스칼렛 위치 쿠키를, 생체병기로 마개조 당하다가 연구소를 탈출하는 부분은 <엑스맨 탄생 - 울버린>을... 아, 떠오르는 거 겁나 많다. 우라까이가 꼭 나쁜 건 아니고 그냥 그렇다고.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