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15 17:02

핵소 고지, 2017 대여점 (구작)


내 비록 기독교 신자는 아니지만, 멜 깁슨이 연출한 영화들을 좋아한다. 그건 그가 종교적 색채를 떠나 그냥 영화를 잘 만드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가 그랬고, <아포칼립토>가 그랬듯이. <핵소 고지> 역시도 딱 그런 기대감 하나 때문에 본 영화다. 물론 전쟁 영화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어찌되었든 이건 집총을 거부한 기독교 신자를 다룬 멜 깁슨식 영화니까.

종교 영화라는 프레임, 아니면 적어도 기독교 신자를 다룬 영화라는 프레임 덕분에 꽤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반감이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저 종교 영화이기 때문에 받는 악평은 이해할 수 없기도 하고, 무엇보다 사실 이 영화가 딱히 종교 영화란 생각이 또 안 들거든. 물론 주인공이 너무나도 명백한 기독교 신자이기 때문에, 그리고 감독인 멜 깁슨 역시도 그러할 것이기 때문에 딱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좋은 영화인 것은 맞다. 하지만 <핵소 고지>는 그 무엇보다도 신념의 영화다. 그게 종교든, 아니면 종교 외에 존재하는 믿음이든 간에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면 개인 스스로는 물론이고 더불어 사회 공동체도 구원에 다가설 수 있다고 이 영화는 믿는다. 

데스몬드는 총을 만지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인물이지만, 그럼에도 굳이 자원 입대해 당시의 일본군과 맞선다. 비록 무기를 들지 않아 적을 죽이거나 스스로를 적으로부터 보호할 수는 없지만, 다치고 불구가 된 이들을 어떻게든 구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 덕분에 데스몬드는 두려움 속에서도 고지를 오르고 전쟁터를 살핀다. 종교를 떠나 가장 인간적인 감동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타인을 구하는 그 숭고하고도 너무나도 명백해 진실한 감동.

하지만 멜 깁슨의 영화들치고는 좀 아쉬운 편에 속하는데, 일단 주인공의 캐릭터를 쌓아가기 위해서 전반부가 너무 늘어진다. 물론 이해는 한다. 일반적인 전쟁 영화들이 주인공 소개를 채 끝마치기도 전에 그들을 전쟁터에 몰아넣어 거기서부터 캐릭터성을 다시 쌓아가는 반면, 어찌되었든 이 영화 속 주인공인 데스몬드가 이후 벌어질 전투에서 행할 행동들에 대한 동기를 그 전에 명백하게 셋팅해놨어야 하거든. 그런 점은 이해하긴 하지만 어쨌거나 저쨌거나 후반 전투 장면이 전반적으로 급하다는 인상을 지우기는 어렵다. 전체적인 전황 중계가 디테일하지도 않고. 

종교의 여부를 떠나서 <아포칼립토>처럼 스피디한 전개와 쾌감이 다른 방식으로라도 존재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밍밍해서 놀람. 이 양반 차기작도 2차 세계대전 배경이던데 그건 또 어떠려나 모르겠다.

뱀발 - 나오는지 몰랐는데 빈스 본이 나온다. 요즘은 코미디 연기보다 이런 연기를 더 좋아하는 것 같더라. 물론 여기서도 좀 이상하게 웃김.

핑백

  • DID U MISS ME ? : 아메리칸 스나이퍼, 2014 2020-07-28 17:08:25 #

    ... 웅적으로 그리잖아. 그리고 적국의 테러리스트들을 딱히 인간적으로 묘사하는 것도 아니잖아. 그럼 완전히 반대로,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할리우드에서 많이 만들어졌던 미국 우월주의 영웅 서사인 건가?'라고 또 생각하게 되지. 근데 존나 웃긴 건 그것 역시 아니라는 거다. 주인공을 영웅으로 그려내고 있기는 해도 그가 겪는 실존적 ... more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