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9/03 15:08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2013 대여점 (구작)


월터 같은 버릇이 나한테도 있다. 가끔 공상을 한다. 뭐, 누구나 그렇겠지만 예전엔 좀 심했다. 카페 테라스에 앉아 멍을 때리며 갑자기 <아마겟돈>스럽게 운석들이 마구 쏟아내리면 어떻게 될까- 같은 공상부터 시작해 어제 지하철역에서 나와 부딪힌 그 남자가 북한의 스파이라면 어떨까 같은 것들까지. 심지어는 사람 많은 백화점이나 마트에 가서 그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갈 때 스스로가 제국군 타이파이터 사이를 스치며 도망치는 밀레니엄 팔콘이 되는 상상까지 했으니까. 요즘은 많이 줄었다만. 

하여간에 여러모로 공감갈 만한 요소들이 산재한 영화다. 주인공의 버릇과 나의 버릇이 뜨겁게 공명하는 걸 제외하더라도, 누구나 한 번쯤 하던 일 시원하게 다 때려치고 해외로 도피성 여행 가고 싶어하잖아. 실제로 실행에 못 옮겨서 그렇지. 이 영화는 그런 것들을 대신 해준다. 심지어 이 장르에선 이례적이게도 꽤 높은 제작비를 책정해 화려한 비주얼도 시원시원하게 보여준다. 

사실 좀 뻔한 구석이 있기도 하다. 멋진 대사이긴 하지만 후반부 숀 펜의 대사는 좀 오그라드는 느낌이 들고, 억울하게 실직자가된 소심남이 좋아하는 여성에게 고백해가는 과정도 다른 로맨틱 코미디에서 많이 보여줬으니까. 하지만 그 소심남의 얼굴이 벤 스틸러라 좋았다. 아, 벤 스틸러. 내가 아는 남자 중 제일 멋진 소심남의 얼굴을 가진 남자! 좋아하는 여자의 집 앞에 스케이트 보드를 놔두고 저리로 달려가는 뒷모습이 어찌나 아련하고 아리던지.

다만 코미디 감각은 확실히 떨어진다. 벤 스틸러 영화치고 웃음기가 많이 없다. 그나마 한 번 제대로 웃은 게-


아... 이건 진짜 희대의 명짤이라 생각한다. 저 점프하는 포즈 보소.

그러나 다 떠나서 중반부 아이슬란드에서의 Space Oddity 장면과 후반부 결말 때문에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는 영화다. 다 떠나서 앞의 내용이 어찌되었든 그 두 장면이 모두를 용서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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