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9/28 19:11

안시성 극장전 (신작)


여러모로 <명량>과 비슷하다. 각자 고구려와 조선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은 다르지만 전체적인 틀로 보았을 땐 시대극이고, 무엇보다도 한 전투를 다룬다. 전쟁 전체를 다루는 게 아니라 딱 한 전투를 다루는 그 지점. 심지어 런닝타임 배분도 좀 비슷하지 않나. <명량>도 전반부 한 시간 정도는 캐릭터 소개와 빌드업을 다루다 나머지 후반부는 몽땅 전투 스펙터클. <안시성>도 비슷하다. 적당히 인물들 좀 소개하다가 후반부에 쾅! 하고 터뜨리는 방식. 둘 다 고예산의 블록버스터라 망하면 절대 안 된다는 것도 비슷하고.


우리는 스포일러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스포없단 소리


전쟁 시대극으로써 가장 기본적인 그림은 두 진영을 데려다가 들판에서 싸움 붙이는 것이다. 말도 타고 활도 쏘고 뭐 그런 거지. 실제로 이 영화 초반부에 그런 그림 보여주긴 한다. 하여간에 영화든 TV 드라마든 많이 보아왔던 방식. 그와중에 <명량>이 보기 드물게 디테일한 '해전' 묘사로 구미를 당겼다면, <안시성>은 '공성전'을 배경 삼는다. 사실 공성전만큼 감질나고 재밌는 전투가 또 없지 않나. 그리고 이 영화는 그걸 나쁘지 않게 해냈다. 보는내내 그런 생각 들더라. 감독이 안시성 전투, 특히 공성전에 대해서 많이 공부했겠다- 하는.

컨셉으로써의 비교 대상은 <명량>일지언정 사실 더 가까운 비교 대상은 <반지의 제왕> 시리즈, 특히 <두 개의 탑> 헬름 협곡 전투와 <왕의 귀환> 미나스티리스 전투다. 실제로 보는 동안 <반지의 제왕>의 기시감이 자꾸 들었다. 둘 다 공성전을 다루니까 그런가 보다 싶으면서도 <안시성> 후반부 연개소문이 지원군을 끌고 당나라 군대 쓸어버리는 장면의 타이밍과 묘사는 그야말로 헬름 협곡 전투의 클라이막스라 할 수 있을 로한 기마대 귀환(feat. 간달프)을 보는 듯하다. 뭐, 이걸로 베꼈네 마네 하며 시비를 걸 생각은 추호도 없다. 애초에 장르 영화란 게 다 그런 거니까.

보다보면 그냥 멍청하게 돈만 때려 박았구나-라는 생각은 크게 들지 않는다. 중간중간 안시성 파티원들의 대인격투 액션이 마이클 베이 영화마냥 슬로우모션으로 펼쳐지는데, 조금의 기시감은 들지만 최소한의 노력과 궁리는 했다는 게 느껴지거든. 그 자체로 쾌감도 좀 있고. 특히 주인공이라 할 수 있을 양만춘의 근접거리 화살신공 장면은... 무기가 권총에서 활로 바뀌었을 뿐이지 거의 댕댕이들의 수호자 존 윅 같더라. 아주 새로운 아이디어들은 아니더라도 적용 타이밍과 센스가 좋단 소리.

다만 영화가 너무 길다. 진짜 너무 길다. 두 시간 반 정도 하는 것 같던데, 체감 시간은 거의 세 시간에 가까웠던 것 같다. 무슨 소린고 하니, 전체적으로 영화의 리듬감이 무너져있다는 소리. 일례로, 양만춘이 당나라 군대불행하게도 이 당시의 당나라 군대는 그 당나라 군대가 아니였고의 공성탑을 파괴하기 위해 기름주머니에 불을 붙여 폭파시키는 장면은 자그마치 네 번이나 연속해 등장 하는데, 시나리오 '3'의 법칙을 적용한다 해도 너무 나갔다. 이쯤되면 양만춘이 전략도 좋고 활솜씨도 죽여준다는 거 알겠으니까 그만 좀 보여주라고! 정도의 느낌. 하여간 이건 정말 대표적인 예시 중 하나일 뿐이고, 이처럼 영화 전반적으로 쓸모 없는 쇼트와 씬들이 너무 많다. 조금만 줄였어도 좋았을 것. 보다가 지친다, 내가.

조인성의 연기는 나쁘지 않으나, 이상하게도 이런 역할엔 잘 붙지 않는 느낌. 뭘하고 싶었던 것인지는 알겠다. 애초에 양만춘이라는 인물 자체가 진짜인지 허구인지도 모를 정도로 미스테리한 인물이다보니, 창작자로서 어느 정도 재창조를 하고 싶었다는 그 마음도 알겠다. 백성들의 편에 선 개혁 군주인데 심지어 젊어. 얼마나 좋아. 보통 이런 영화에서 등장하는 왕이나 대장군들은 죄다 중년 이상으로 묘사 되니까. 젊은 액션 히어로로서 캐릭터를 재창조 해보고 싶었던 마음은 극히 이해한다. 허나 조인성이라는 배우 자체가 잘 안 붙더라. 이 배우는 딱 이 정도까지인가- 싶기도 하고. 오히려 파소로 나오는 엄태구 같은 배우가 양만춘 역할을 맡았음 어땠을까. 물론 지금의 엄태구 캐릭터도 좋긴 하지만. 

배성우는 너무 귀엽다. 이 영화 보고 배우는 배성우 밖에 안 떠오름. 설현은 큰 관심이 없었지만 최근 어떤 영화에서의 누군가를 본 이후라 콩깍지가 씌었는지 괜찮아 보였다. 다만 캐릭터를 그렇게 활용할 줄은... 그리고 정은채? 캐릭터도 고구마인데 연기도 고구마.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은 박성웅이 연기한 이세민인데... 연기 나쁘지 않다 이거야. 하지만 그 정도의 큰 역할이라면 이제 그냥 중국인 배우를 캐스팅하면 안 되는 걸까? 물론 중국 입장에서는 역사적으로 예민한 아이템이라는 거 안다. 그래도 지금 버전은 좀 배우가 힘들어보인다. 그 역할에 온전하게 몰입하며 영화를 봐야하는데, 영화 속에서 박성웅이 당나라 말을 읊어대는 내내 '힘들었겠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이건 연기의 문제라기 보다는 캐스팅의 문제다.

2018 추석 한국영화 BIG3 중 한 편이고, 그 중에서도 그나마 가장 흥행하고 있는 영화인데 셋 중 중박은 치는 듯 하다. 완벽하고 좋은 영화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미덕이 있다는 것. 요즘 한국 영화 돌아가는 꼴을 보면 그마저도 어려운데 이 정도이길 다행인 거지.

핑백

  • DID U MISS ME ? : 유랑지구 2019-04-19 18:17:56 #

    ... 은 것들도 많다. 이 정도면 괜찮다. 특히 어떤 캐릭터가 담배갑에서 부모의 짧막한 편지를 발견하는 장면이 있는데, 여기서 진짜 신파로 빠질 거였다면 애초 그 부모를 영화 초반 소개 했던가, 아니면 갑자기 과거 회상으로 갔던가 했을 것이다. 근데 그딴 거 없고 그냥 거기서 딱 끝냄. 뭐, 사람에 따라 과하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 more

  • DID U MISS ME ? : 2018 영화 결산 2019-11-12 20:29:58 #

    ... - 폴아웃 / 신과 함께 - 인과 연 / 공작 / 너의 결혼식 / 메가로돈 / 서치 / 업그레이드 / 더 프레데터 / 익스팅션 - 종의 구원자 / 물괴 / 명당 / 안시성 / 협상 / 배트맨 닌자 / 베놈 / 곰돌이 푸 - 다시 만나 행복해 / 암수살인 / 복수의 사도 / 스타 이즈 본 / 오퍼레이션 피날레 / 퍼스트맨 / 미 ... more

  • DID U MISS ME ? : 강릉 2021-11-17 16:43:34 #

    ... 것이다. 캐스팅부터가 뭔가 올드하잖나. 장혁은 그렇다쳐도, 유오성이라니. 조연이나 카메오 아닌 명실공히 주연으로서는 꽤 오랜만이다. 당장 기억나는 최근작은 &lt;안시성&gt;. 그나마 그 영화에서도 특별출연의 느낌이었지. 하지만 과연 유오성이라는 이름을 듣고 사람들이 &lt;안시성&gt;을 가장 먼저 떠올릴까? 당연히 아니 ... more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