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야기의 구조가 재미있다. 이미 범인을 특정해 감옥에 가둬놓고, 주인공 형사와의 대화를 가장한 심리게임를 통해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방식. 뭐, 그렇다고 해서 이런 미스테리 스릴러 장르에서 처음 보는 방식은 또 아니다. 이미 일본 미스테리 소설들에서 많이 접해왔던 상황 설정이기도 하고. 하지만 최근 공장에서 찍어내듯 만들어지는 한국 스릴러 영화들에 비하면 꽤 흥미로운 방식인 건 사실이잖아?
암수스포!
구조 자체에서 오는 재미가 있다고 했는데, 웃기게도 스릴러로써 장르적인 재미는 생각보다 없다. 범인과 형사 두 인물 사이의 심리 게임이 생각보다 많이 강조 되지도 않고, 그렇다고해서 소소하지만 찰진 액션이나 추격전이 있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범인을 이미 찍어놓고 가는 상황이다보니 미스테리로 풀어낼 수 있는 구석도 별로 없고. 심지어 희생자들과 주인공이 감정적으로 크게 연결되어 있는 것도 아니라서 감정적인 동기도 그리 세지 않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지지한다. 열렬히는 아니지만, 이 영화의 메시지에 결국 탄복하고 만다. 여러모로 <극비수사>와 비슷한 영화인데, 일단 제작사가 같고 주연배우도 동일. 제목도 4글자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극비수사>와 비슷한 점은, 두 영화 모두 인간이 숭고해지는 순간을 담는다는 것이다. <극비수사>가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상황 속에서 오로지 '소신' 그 하나만으로 자신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갔던 인물들에 대한 연가였다면, <암수살인>은 모두가 끝났다고 하는 상황 속에서도 자신이 아니라 이미 생을 마감 해버린 타인들을 위해 마지막까지 뚜벅뚜벅 걸어가는 인물을 위한 헌사다. 이 영화의 의미는 거기에 있다.
15년 뒤에 풀려난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범인은 잡혔고 그 죄값을 조금이나마 받을 것이다. 물론 15년 뒤 그가 세상 밖으로 다시 나와 또다른 살인을 저지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주인공과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다. 오히려 이미 잡혀 들어간 놈에게 무기징역을 선사하고자 백방으로 노력해봤자 돌아오는 건 주위 동료들의 따가운 시선과 이러다 인생 말아먹는 것 아닌가- 하는 스스로의 걱정뿐. 그러나 그 모든 걸 다 이겨내고 자신의 길을 간 주인공의 진심 어린 마지막 발걸음에 마음을 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김윤석이야 뭐 잘하니까 크게 할 말 없는데, 주지훈은 한 마디 해야겠다. 생각보다 괜찮다는 그 말. 아마 요즘 최고의 1년을 보내고 있지 않을까 싶은데, 나는 <신과 함께> 시리즈도 그렇고 <공작>에서도 그렇고 연기들이 다 별로였거든. 근데 이번 영화에서는 괜찮더라. 물론 아주 잘한 것은 또 아닌데, 그래도 그동안 해왔던 것에 비하면 많이 괜찮아진 것 같더라고. 이와중에 한 씬 제대로 따먹는 고창석
<극비수사>와 동류로 묶어 걸작은 못 되겠으나, 그래도 수작 언저리에 놓인 영화. 그래, 차라리 이런 게 낫다. 스릴러와 미스테리적 요소를 강화해 아주 장르적 재미를 절실하게 줄 게 아니라면, 차라리 이렇게 메시지 하나 묵직하게 던지는 편이 낫다. 이런 거라도 감지덕지다.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