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10 14:29

완벽한 타인 극장전 (신작)


<대학살의 신>이 바로 떠오르는 단촐한 소동극. 실제로는 이탈리아 영화의 리메이크라고 하는데, 검색력이 짧아 사실은 귀찮아 실제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연극화해서 무대 올리기 딱 좋은 포맷이다. 더불어 형식면에서는 전혀 다르지만 올해의 발견이었던 <서치>와 비슷한 소재를 공유하는데, 문자 메시지와 통화 내역, 심지어는 SNS 상의 비밀들까지 담고 있는 21세기 우리들의 스마트 생활에 대한 고찰이 바로 그것. 물론 <서치>는 추적 스릴러로, <완벽한 타인>은 블랙 코미디 소동극으로 풀어냈지만 결과론적으론 둘 다 엄청난 호러다. 부모나 친구, 어줍잖게 아는 사이의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통해 나를 들여다볼 수 있다니, 이건 그냥 호러도 아니고 코즈믹 호러가 아닌가.


완벽한 스포일러!


다 떠나서 그냥 존나 웃긴다. 근래 극장에서 본 영화들 중에 이 정도로 빵 터진 영화가 있었나 싶을 정도. 그것도 큰 한 방이 아니라 여러 방, 그리고 그 사이사이 틈새를 작은 잽들이 밀도 있게 잘 채워준다. 등장인물이 결코 적은 영화가 아님에도 단순하면서도 영리하게 캐릭터 설정들을 잘했고, 대사를 비롯해 시나리오를 깔끔하게 잘 썼다. 물론 감독이 드라마 PD 출신이라 TV 단막극 같은 느낌이 드문드문 드는 건 사실. 결과적으론 다른 요즘의 영화들에 비해 영화적인 느낌이 조금 떨어지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 퀄리티라면 그딴 게 다 뭐냐- 앗쌀하게 다 눈감아줄 수 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디테일하게 심리를 잘 쌓아가는 영화이기도 한데 스마트폰 공개 게임을 제안해 만악의 근원으로 몰린 김지수의 캐릭터를 처음 보면서는 '자기도 바람 피우는데 왜 저런 게임을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결과론적으로 보면 그의 불륜 상대가 바로 그 자리에 함께 있었으니 따지고 보면 그녀는 잃을 게 없었다. 사실상 쌍방 불륜 상태인 건데 둘 다 파트너가 이 자리에 있으니 자기들은 딜이 들어올 일이 없다고 판단한 거지. 그리고 자신들 역시 불륜을 비롯해 그렇게나 많은 비밀들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합법적 혼인 대상의 비밀은 또 캐내고 싶고. 하여간 징글 징글 하다 싶을 정도로 지독하다. 

배우 운용도 기가 막히게 한다. 유해진은 평소 검증된 코믹 연기를 더 밀어붙일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줘 배우 스스로가 마음껏 날뛸 수 있게 하고, 요즘 다소 진지하기만 한 연기로 일종의 부담감을 주었던 조진웅은 그 진지함과 뜨거움을 마구 표출 해도 괜찮을만한 배역을 던져줬다. 여기에 이서진은 평소 로맨틱하지만 느끼한 여유로움을 벗어 던지고 반 양아치 연기를 보여주는데 초반엔 좀 아슬아슬 하더라. 근데 나중엔 그냥 다 극복. 김지수는 특유의 TV 탤런트스러운 이미지를 아예 고착화해 잘 써먹더라. 물론 그렇다해도 얼마 전의 사건 때문에 그리 좋게 보이지만은 않지만. 여기에 염정아 이야기는 꼭 해야겠다. 원래 좋아했던 배우였는데 요즘 활약이 뜸해서 아쉬웠었지. 근데 이 영화에서의 염정아는 진짜 영화 배우더라. 혼자 안쓰럽고 슬프고 화내고 당황하고 그걸 다 하더라. 그리고 관객에게 전부 다 납득 시키더라. 근래 들어 본 염정아의 모습 중 가장 만족스러웠던 모습.

스마트폰을 바꿔 만든 작은 소동들부터 점차 파국으로 치달아가는 과정의 디테일이 좋다. 사실 결말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는 영화이기도 하지. 크리스토퍼 놀란 식의 팽이 돌리기가 있고 난 후 영화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뻔뻔하게 보여주는데, 이 점이 재미있다. 관객들이 취향에 따라 마음껏 취사선택할 수 있는 엔딩이라고나 할까. 엔딩 직전까지 있었던 그 모든 소동들이 실제로 벌어졌으나 만약 그들이 그 게임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되었을 것이라는 엔딩이 될 수도 있고, 그들이 그 게임을 시작하지 않아 영화 결말부의 그 엔딩을 맞이했지만, 만약 그들이 그 게임을 시작했더라면 그런 비극이 벌어졌을 것이다-가 될 수도 있는 엔딩. 개인적으로는 맘 상하고 찝찝한 게 싫어서 후자를 선택했지만 그거야 뭐 보는 사람 마음대로니까.

이서진 캐릭터의 전화 수신음이 결정적으로 재등장할 때의 연출 센스도 기가 막히지만, 가장 좋은 건 결말부 염정아 캐릭터의 시 낭송 리바이벌이다. 영화 초반부터 계속 시를 읊어대길래 '이거 굉장히 촌스러울 수 있는 연출인데 대체 어떻게 회수하려고 그러지'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걸 후반부에서 그대로 만회. 아니, 그대로 만회 정도가 아니라 소름이 돋더라. 염정아 캐릭터의 마음이 거기서 터져나올 줄은 몰랐다. 

하여튼 영화 좋다. 그러니까 규모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이 양반들아. 빌라 한 채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든 드넓은 전쟁터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든 상관없이 일단 이야기가 깊어야 할 것 아니야.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