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10 15:31

글래디에이터, 2000 대여점 (구작)


고증따윈 쌈싸먹었지만 여실히 전해지는 스펙터클. 근데 생각해보면 리들리 스콧 이 영감탱이는 나중에 찍을 <킹덤 오브 헤븐>에서는 미친 수준의 고증을 선보여놓고 왜 이 영화에서는 그렇게 대충 대충 했던 걸까. 의복이나 무기 같은 시대적 고증은 그렇다쳐도 첫번째 콜로세움 씬의 전투 마차 뒤 가스 제어기 장면은......


그저 안습. 이거 왜 안 지웠을까. CG로 지울 수 있었을텐데. 한 1,2초 나오는 장면이라 프레임 50여개 정도만 만지면 되었을텐데. 촬영 중 사망한 올리버 리드의 마지막 씬을 CG로 만드느라 예산이 그 정도도 없었던 걸까.

우스갯소리로 시작했지만 고증이나 옥의 티 따위의 아쉬움을 빼면 크게 나무랄 데가 없는 영화다. 다소 정석적이긴 해도 영웅의 여정을 건실하게 따라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이런 게 오디세이가 아니면 무엇이 오디세이인가 싶은 생각도 들고. 하여간에 이야기가 별로 어려울 것 없이 기름기를 쫙 빼 담백해서 좋다. 정치적 중상모략과 코모두스의 시스터 콤플렉스 같은 요소들이 있긴 하지만 그런 거야 싹 다 제하고 보더라도 상관 없는 거고.

실상 영화의 제목은 검투사를 뜻하고, 주인공의 신분 역시 한 군대를 통솔하는 장군에서 노예 수준으로까지 끌어내려지지만 막시무스는 근본적으로 농민이라는 묘사가 계속해 등장한다. 서구권에서는 밀밭이 천국을 뜻하는 이미지라고도 하지만 그걸 떠나서 보아도 어쨌든 농촌의 이미지잖나. 그리고 싸움이 시작되는 중요한 순간들마다 막시무스가 바닥의 흙을 손으로 매만지는 것도 그렇고.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그의 아내와 어린 아들을 상징하는 토템들이 흙에 덮여 묻혀지는 묘사가 의미심장하다.

의외로 종교적 묘사도 조금씩 들어있는 모양새. 로마 제국 당시의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니까 당연한 부분도 있겠지만 상술했던 밀밭의 이미지도 그렇고, 작중 두 번이나 반복되는 막시무스의 휩쓸려 땅과 분리되는 듯한 묘사의 촬영도 그렇다. 무엇보다 계속 환영을 보기도 하잖아? 아내와 아들이 보이니 그들이 기다리고 있던 천국이라고 봐도 무방하고. 근데 스콧 이 영감님은 이런 영화와 <킹덤 오브 헤븐>을 거치더니 어째 점점 조물주에 대해서 부정적인 이야기만 만들고 앉았냐. 잘 만들면 또 몰라...

지금 기준에서 보면 싱거운 부분들이 분명 있다. 생각보다 싱겁게 끝나는 두번째 콜로세움 검투 장면도 그렇고, 무엇보다 결말부가 그런 경향이 좀 강한 듯. 어릴 땐 황제가 직접 검투 시합에 나서고 아무리 목숨을 건 시합이라지만 그 결과로 황제를 죽이는 모습까지 보며 이해가 안 되기도 했었다. 물론 지금도 깔끔하게 납득 되지는 않지만. 어쨌거나 초장부터 대규모 전투 씬으로 시작해서 그런지 갈수록 이야기의 규모가 작아지는 느낌의 영화.

나에게 러셀 크로우의 최고작은 커티스 핸슨의 <LA 컨피덴셜>이지만, <글래디에이터>가 결국 러셀 크로우의 가장 멋진 시절을 담고 있던 영화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겠다. 아, 진짜 이 영화 속 러셀 크로우는 최고였다. 근데 특유의 야성적인 이미지 때문인지 선망의 대상인 장군으로 나올 때보다는 거친 느낌의 노예 검투사로 나올 때가 더 멋있는 게 함정.

그나저나 아우렐리우스는 좀 멍청한 거 아니냐? 하여간에 정통성 있는 후계자인 자신의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줄 것이 아닌 현 왕들은 다 멍청하기 짝이 없어. 공화정 선언하고 막시무스를 후계자로 등용할 것이었다면 좀 공개적인 자리에서 그 지랄을 떨었어야지, 지 아들이 야망가인가 뻔히 알면서 단 둘만 있을 때 그따구로 지껄여 명을 재촉한다. 무능력한 게 아니라 그건 멍청하고 눈치 없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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