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영화는 끝나고 난 뒤에도 진한 여운과 더불어 무거운 질문을 남긴다. 이 영화를 보고 딱 두가지 생각을 했다. 첫째는 당연하게도,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둘째는 '시발 내가 당직 근무자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스포일러의 눈!
영국과 미국, 케냐 3개국의 합동작전을 다루고 있는 통에 꽤 많은 교차편집점을 갖고 있는 영화다. 런던에서 작전을 총지휘하는 책임자로서의 장군과 각료들 + 영국 군사기지에서 실질적으로 지휘하는 대령과 그 부하들 + 미국 공군기지에서 드론을 조종하는 조종사와 그 부관 + 하와이 진주만에서 자료를 식별하는 정보장교 + 케냐의 특수부대 주둔지에서 현장지휘를 하는 사령관 + 밴으로 위장한 현장기지에서 소형 드론을 조종하는 조종사 + 최전선 현장에서 뛰고 구르는 공작원 + 목표물의 옆집에 살고 있는 가족들. 후... 더 웃긴 건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잠깐이긴 하지만 호주와 중국도 오갔다 옴.
하여튼 여기저기 뻔질나게 비춰줘야해서 다소 산만하고 정신 없게 느껴질 수 없는데, 놀랍도록 잘 봉합해내서 전체적인 흐름이 부드럽다. 단 한 번도 복잡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각자의 파트에서 뽑아낼 건 다 뽑아낸다. 스릴이면 스릴, 서스펜스면 서스펜스, 정치풍자면 정치풍자, 게다가 쉽게 해결될 수 없는 딜레마까지.
잘 만든 전쟁 영화는 그 자체로 모두 반전(反戰) 영화이고, 눈요기의 스펙터클을 과시하면서도 그 중심에 항상 '인간'을 놓는다. 이 영화가 그렇다. 다른 거대 예산 블록버스터 전쟁 영화들에 비하면 다소 볼거리가 떨어진다고 느낄 순 있지만, 드론을 통한 감시전이라는 포인트에서 뽑아먹을 수 있는 것은 그래도 어느 정도 뽑아 먹는다. 하지만 중요한 건 바로 그 다음에 거대한 딜레마를 던져 놓는단 거다. 확실한 한 명의 피해를 감수할 것이냐 vs 불확실한 다수의 피해를 감수할 것이냐의 선택. 콜래트럴 데미지를 다루는 대부분의 영화들이 동일하게 던지는 화두이지만 이 영화는 그걸 좀 더 직접적으로, 그러면서도 확연하고 깔끔하게 배치했다.
빵 파는 소녀의 존재로 굉장한 심적 안타까움과 스릴을 뽑아내는데, 막판엔 반전 아닌 반전도 따라오더라. 여성의 교육이 일종의 금기처럼 작용하는 극단주의 이슬람 세력권 안에 살면서도 남몰래 딸의 교육을 멈추지 않던 남자는 결국 '자유 진영'이라고 일컬어지는 서방 세계에 의해 그 딸을 잃는다. 폭격에 의해 죽어가던 소녀를 안고 달리던 남자가 테러 단체의 극단주의자들과 마주쳐 '살려달라, 병원에 가야한다'라고 외칠 때, 솔직히 그들이 도와주기는 커녕 그 남자에게 총구를 겨누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여겼었다. 근데 그 때, 그들이 남자와 소녀를 자동차에 실어 나른다. 그 때 멍했다. 물론 이 영화가 그런 과격분자들을 옹호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나 역시도 '아, 저들도 사람이구나. 저들도 알고보면 착한 사람들이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은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멍했던 지점은, 소녀의 아버지가 결국 테러 조직에 몸담아 서방 세계를 몰아내는 데에 투신할 것이라는 게 너무나도 자명하게 느껴져서였다. 영화적 재미와 도덕적 딜레마는 물론이고 폭력과 복수의 사슬 같은 매커니즘까지 보여주는 영화.
그냥 존나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한다.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다.
뱀발1 - 감독이 <엑스맨 탄생 - 울버린> 만들고 <앤더스 게임> 만든 양반이라 기대 안 했었는데 뒷통수 맞았다. 이런 뒷통수라면 언제나 환영이다.
뱀발2 - 언제 보아도 아련한. 알란 릭맨이 그립다.
덧글
로그온티어 2018/12/09 05:05 # 답글
그나저나 생각해보니 반전영화치곤 상당히 유순하고 부드러웠다고 생각합니다 (...) 고전 반전영화는 트라우마를 줄 정도로 문제제기를 너무 심각하게 한 영화드이 많았던 지라;
CINEKOON 2018/12/09 16: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