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10 20:23

헌터 킬러 극장전 (신작)


그 이상의 나이대를 가진 사람들이 더 심하면 심했겠지만, 어쨌거나 80년대와 90년대 초반 태생의 영화 팬들은 모두 동네마다 하나쯤은 있었을 비디오 대여점에 대한 추억이 있을 것이다. 방과후 집으로 가는 길이나 주말이라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되는 날이면 언제나 집 앞 1분 거리의 비디오 대여점엘 갔다. 새로 출시된 신작 영화들의 포스터가 덕지덕지 발라져있던 유리문을 통과해 들어가 칸칸마다 아름답게 정리되어 있던 비디오들 앞에 앉았었지. 기대했던 신작의 비디오 테이프 케이스는 보란듯이 얄밉게 뒤집어져 있기가 일쑤였고, 아직 선택받지 못한 비디오들을 고르고 고르고 또 고르다가 그 중 하날 집어들고 집에 돌아왔던 기억들. 아- 다시 떠올리기만 해도 좋다. 어쨌거나 갑자기 추억팔이 오프닝이 되어버렸는데, 그 정도로 이번 영화는 올드하다. 근데 그래서 좋아. 쌈마이 같은 포스터에 북미 흥행 폭망, 썩어들어가는 로튼 토마토 지수와 더불어 요즘 B급 영화를 전전하며 제 2의 니콜라스 케이지가 되어가고 있는 듯한 제라드 버틀러 주연의 영화라서 기대 1도 안 하고 봤었는데... 끝나고 나서 드는 생각. '상영관 찾기 힘들어 명동 CGV까지 부러 찾아와 본 영화인데 안 봤으면 어쩔 뻔 했어!'


이런 영화엔 스포가 중요하지 않습니다만.


본격 잠수함 영화인 줄로만 알았는데 정작 영화는 양동 작전을 펼친다. 러시아 영해에서 활약하는 잠수함의 이야기와 더불어 헤일로 점프를 통해 러시아 본토에 들어선 네이비실 특수부대원들의 비밀작전이 그것. 사실 후자는 전혀 생각 못했던 부분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두가지 이야기가 적절히 교차편집 되었기 때문에 이 정도의 재미가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내내 잠수함만 보여줬으면 답답했을 것.

이미 <위도우 메이커>나 <크림슨 타이드> 등의 유명 잠수함 영화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헌터 킬러>의 함내 묘사는 흥미롭다. 솔직히 이전 잠수함 영화들이 간과했던 디테일 같은 것들이 꽤 많았을텐데 이 영화는 그걸 다 살려놨더라. 대표적인 건 역시 잠수함이 수면에 머물러 있다가 잠항하는 부분에서의 묘사겠지. 여기선 잠항할 때 마이클 잭슨 댄스마냥 승무원들이 죄다 몸을 뒤로 살짝 기울어 눕힌다. 따지고 보면 당연한 부분인데 왜 지금까지의 잠수함 영화들은 이런 걸 안 다뤘을까- 하는 지점. 디테일한 연출을 위해 감독과 배우들이 제작 전에 실제로 잠수함 생활을 체험했다고 하는데 아주 좋은 태도였다고 생각한다.

잠수함을 활용한 액션 역시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될 수 있을 것 같음. 어뢰 등을 활용한 기본적인 함대함 전투가 있을 거고, 두번째는 함정을 피해가며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이른바 침투 액션. 역시 둘 다 잘했다고 생각한다. 전투에 임하는 인물들의 내면을 다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쨌거나 이런 트리키한 액션들로 눈요기를 좀 해줘야하는 것 아니겠나. 그 점에 있어서는 충분히 만족함.

반면에 이야기는 단순하다. 러시아가 주요 배경인지라 구 냉전 구도의 재탕인가 싶기도 하지만 한 편으론 또 군부 세력의 쿠데타가 결합되어 있음. 물론 이마저도 뻔하긴 하다. 까놓고 말해 8,90년대에 제작된 미국 액션 영화들의 대부분이 모두 이 스토리 우려먹잖아. 근데 웃긴 건, 요새 이런 영화 못 보고 있다가 2018년 막판에 보게 되니까 오히려 반갑더라 이거야.

최근 <아이 인 더 스카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좋은 전쟁 영화는 스펙터클한 눈요기와 더불어 그 중심에 항상 인간들 놓아야한다 라는 요지의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영화의 타겟층과 목표가 워낙 다른 영화라 <아이 인 더 스카이>의 그것에는 채 미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인간 캐릭터들을 막 다룬 것 같지는 않아서 좋더라. 특히 주인공인 제라드 버틀러의 캐릭터는 작전을 수행하며 갖가지 위기와 여러 딜레마에 처하게 되는데 마초스럽고 뚝심있게 무한돌파. 그 모습이 엄청 매력있게 나옴. <300> 이후로 가장 멋진 제라드 버틀러의 모습이었던 것 같다. 

하여간에 엄청 재미있게 봤다. <호두까기 인형과 4개의 왕국> 보러 갔을 땐 디즈니 영화였던만큼 상영관에 아이들과 가족단위 관객들 천지였는데, <헌터 킬러> 상영관에는 4,50대로 보이는 아저씨 관객들이 많았다. 근데 그게 좋았다. 나이차도 꽤 나고 그들도 그저 영화를 보러 왔을 뿐이지만. 영화의 분위기와 내용 때문인지 왠지 모르게 전우애가 느껴지더라. 어쩌면 그런 상영 환경 자체가 90년대 비디오 대여점의 감성 같았기도 했고. 하여튼 영화가 세련되지 못하고 투박하지만. 그래서 시대에 뒤떨어진 영화처럼 보이지만. 원래 로망이란 건 시대착오적인 법 아닙니까.

뱀발 - 게리 올드만 5분 정도 나오는 듯. 그래도 좋다.
뱀발2 - <미션 임파서블 - 고스트 프로토콜>과 <존 윅>으로 멋진 카리스마를 선보였던 미카엘 뉘크비스트의 유작. 폐암으로 2017년 6월에 떠나갔으니 사후 1년 6개월만의 유작이다. 이 영화에서 품위 있게 나와서, 마지막 쇼트에서 웃어주셔서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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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초 토니 스콧은 물러설 곳 없는 공간에서 부딪히는 두 남자의 얼굴이 보고 싶었던 것일 뿐. 때문에 잠수함을 다룬 액션 영화로써는 차라리 최근의 &lt;헌터 킬러&gt;가 좀 더 나아보이기도. 다른 의미로는 덴젤 워싱턴과 진 핵크만의 맞다이가 대단하게 느껴지는 영화이기도 하다. 요즈음의 덴젤 워싱턴이야 나이가 있으니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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