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16 12:33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극장전 (신작)


<모글리 - 정글의 전설>에 이어 어째 넷플릭스 특집이 되어가는 느낌이네. 하지만 <모글리 - 정글의 전설>이 이제 막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따끈따끈 신작이었다면,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는 8월 공개된 작품이라 딱히 연이어 볼 명분이 없었다. 장르가 비슷한 것도 아니었고. 넷플릭스에 항상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있긴 하지만 솔직히 말해 오리지널 영화들의 퀄리티는 한심한 수준이었잖아. 그럼에도 이 영화를 본 이유는, 다 필요없고 속편 소식이 들려올 정도로 평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스포는 미세.


호러를 빼곤 딱히 장르 편식이 없는 편이지만, 그럼에도 로맨틱 코미디 + 학원물의 조합은 내게 있어 장애물이었다. 딱히 싫어하는 건 아닌데 막상 보자니 너무 재미있는 다른 장르들이 많았던 그런 느낌. 상술했듯 좋았던 평 그거 딱 하나만 믿고 봤던 영화인데 역시 생각보다 괜찮았다.

모든 장르의 영화들이 그렇지만 특히 멜로나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느끼는 것은 아니, 우리가 살아가는 실제 삶에서도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시도'의 힘이다. 할까말까 할 땐 해야한다. 특히 인간관계에선. 우물쭈물하다간 놓쳐버린다. 우리네 인생은 이제 100년이다. 인생을 퍼센티지로 구분한다면 딱 100%인 건데, 좋아하는 마음을 누군가에게 고백할까 말까 하는 고민은 그 중 1%도 되지 않는다. 그냥 지르면 된다. 고백하면 된다. 하지만 모든 인생이 상대적이듯, 그리고 나도 겪어봤듯 막상 그게 내 입장이면 잘 안 되지.

그래서 김춘수 시인의 <꽃>을 좋아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그건 정말이지 맞는 말이다. 모든 것에는 시도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끝내 실패하더라도 그 시도는 아름답다. 애초 인간이란 게 불완전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존재인 거잖아. 시도는 그 아름다움을 표출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이다.

때문에 이 영화 속 주인공인 라라의 동생 케이티가 벌인 일련의 짓들을 끝내는 옹호하고 싶다. 물론 당사자 입장에서는 빡치지. 한 때 좋아했던 남자들에게 속마음을 담아 부치지 못할 편지를 썼는데 동생이란 놈이 귀신같이 찾아다 우표 찍고 발송해버렸으니. 처음에는 나도 빡쳤다. 하지만 그것이 결과론적인 태도든, 그게 아니라 모든 시도를 중히 여기는 태도든 간에 결국에는 좋은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 케이티가 아니라 라라 본인이 했으면 더할나위없이 좋았겠지만.

이 계열 장르의 클리셰들이 어김없이 번복되는 영화이기도 하다. 여성 주인공에 쿨한 아버지, 그 옆을 지키는 든든한 남사친과 게이 친구, 학교 킹카와의 로맨스, 나를 괴롭히는 악랄한 년 등등. 뻔하지만 이 모든 걸 극복하는 건 안정적인 연출이다. 막 과시하지도, 전위적이지도 않지만 그게 좋았다. 든든히 이 영화를 받치고 있는 듯한 바로 그 느낌. 특히 과거 회상 무도회 장면에서의 카메라 움직임이나 복도를 액자화 시키는 구성 등이. 진짜 별 것 아닌데, 가장 별 것 아닌 '기초'를 잘 다지는 게 중요하다는 진리를 시각적으로 목도하고 있는 느낌도 좀 들었고.

근데 또 영화의 클라이맥스 겸 결말은 또 안 뻔해. 이런 영화에서는 으레 많은 군중들 앞에서 주인공이 상대에게 사랑을 다시 고백하며 맺어지는 게 일반적일 텐데, 이 영화는 군중을 싹 배제한채 주인공과 상대 남성 캐릭터의 대면만으로 끝이 난다. 웃기게도 그게 좋았다. 아무도 없는, 과시적이지 않은 그 고백이 좋았다. 둘이 격렬히 부둥켜 안는 것도, 타액을 교환해가는 키스를 한 것도 아닌데. 그게 그렇게 좋았다. 때로는 손 잡고 함께 걷는 게 가장 근사할 때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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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로그온티어 2018/12/16 15:09 # 답글

    넷플릭스 가입하면 뽕뽑으려고 이 영화 저 영화 보게 되고, 보고나면 할말이 생겨서 어쩌다보니 넷플릭스 특집으로 블로그를 꽉 채우게 되더라구요
  • CINEKOON 2018/12/18 14:25 #

    그거 아시죠? 영원히 줄어들지 않는 내가 찜한 콘텐츠 목록이라는 블랙홀... 채워지기만 하고 줄어들지는 않는...
  • 로그온티어 2018/12/18 17:28 #

    아... 그거 알죠. 으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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