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16 12:45

결과가 아닌 상태 객관성 담보 불가


원조 스파이더맨 수트 기념품을 사려는 2대 스파이더맨 마일즈 모랄레스는 수트가 본인 사이즈에 맞을지를 걱정한다. 이에 스탠 리의 얼굴을 한 기념품 가게 점원이 말한다. "걱정마렴, 그건 언제나 결국엔 맞게 된단다."

군 입대를 하곤 팔자에도 없을 줄 알았던 신병교육대 조교로 배치받았었다. 자원해서 된 게 아니었기 때문에 조교를 하기엔 스스로가 너무 허접하다고 생각해 자신감이 없었고, 그래서 스스로를 미운 오리 새끼라 생각했었다. 아직 조교 시험을 보지 않은 상태의 나에게, 바로 위 선임이 자신의 조교 모자를 내게 씌워보곤 말했었다. "진짜 안 어울리네." 그리고 거둬가던 빨간 모자. 내겐 아직 허락되지 않던 그 조교 모자. 선임의 그 멘트에 나는 조금 슬펐었지. 하지만 그 옆에 있던 다른 선임이 방을 나가면서 한 그 다음 말 때문에 난 아주 짧은 시간동안 행복했었다. "근데 쓰다보면 어울려져."

세상에 당신이 해내지 못할 일은 없다. 당신이 되고자 하는 어떤 '상태'라는 것은 결코 목적지가 아니다. 그저 그 곳에 도달하는 데까지의 과정이다. 물은 끓기 때문에 100도인 것이 아니라, 차츰 뜨거워져 100도에 이르렀기 때문에 끓는 것이다. 마일즈는 결국 정말로 '좋은' 스파이더맨이 되어 세상을 구하고, 나는 결국 조교가 되어 무사히 전역했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타인을 돕는 자는 모두 수퍼히어로'라는 스탠 리의 말에 감사했고 그 말로 이 영화가 끝나서 기뻤다. 영웅이라서 남을 돕는 게 아니라 남을 돕기 때문에 영웅인 것이다. '좋은 사람'은 결과가 아니라 상태다. 그리고 조지 클루니 말마따나 해피 엔딩은 없지만 행복한 여정은 존재한다. 우리 모두에게 그런 행복한 여정이 허락된다면 정말이지 좋을 것 같다.

덧글

  • 포스21 2018/12/16 18:44 # 답글

    훈훈한 이야기였죠.
  • 로그온티어 2018/12/16 19:08 # 답글

    참 재밌군요. 아니, 이거 뭔가 비꼬는 말투에서 종종 나오는 말이긴 한데, 그게 아니라 진짜로요. 왜냐하면 저는 저 장면에서 제 현실을 대입해서 몰입하며 봤기 때문입니다. 저는 누구든지 하면 할 수 있다보다는, 대를 잇는다에 집중하며 봤습니다.

    그런거죠. 개인들은 각자 사연이 있어요. 그런데 가끔 스파이더맨을 보면, 지금 말하고 있는 뉴유니버스를 떠나서, 아주 가끔은 '엇,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란 느낌이 든단 말이죠. 스파이더맨이 그렇게 자신을 대입할 수 있는 히어로라서 이렇게 인기 있는 것일 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제 경우엔 내면의 찌질함과 '이대로 놔둘 순 없다'며 타인을 위해 있는 힘껏 일어나려는 부분에서 공감합니다. 그래서 나만의 경험일 것 같지만, 또 얘기해보면 누구나 그러더라고요. 누구나 찌질한 부분이 있고 미성숙한 부분이 있지만, 나쁜 걸 그대로 묵과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이번 뉴유니버스의 마일즈도 누구나 자신을 끼워넣을 수 있는 그런 틀이 있었던 셈이죠.
  • CINEKOON 2018/12/18 14:25 #

    그만큼 스파이더맨이라는 캐릭터가 범용성 있느 캐릭터란 반증이 아닐까요. 우리 모두 백만장자였던 적도, 참전용사였던 적도, 천하제일 과학자였던 적도, 심지어는 신이었던 적도 없지만 누구나 학생이었던 적은 있고 짝사랑 앞에서 찌질했던 적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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