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23 12:32

로마 극장전 (신작)


관람 환경은 대한극장. 


스포일러는 아주 미세하게.


영화를 발명한 뤼미에르 형제는 말했다. "시네마토그래프(영화)는 과학의 산물이다." 영화가 탄생한지 100년이 훌쩍 넘어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영화의 시작을 '오락적 흥미'로 볼 것인지 아니면 '현실의 묘사'로 볼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는데, 저 말에 따르면 적어도 발명가인 뤼미에르 형제 입장에선 후자가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그 관점에서 본다면, <로마>는 대단히 흥미로운 영화가 아닐 수 없다.

까놓고 말해 없어도 이야기 진행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는 요소들이 프레임 곳곳에 산재해있는데, 그게 이 영화의 대단한 지점이다. 사실 촬영적인 측면에서나 이야기적인 측면에서나 딱히 높은 예산을 필요로 하는 시나리오가 아니라고 느껴지거든. 그런데도 넷플릭스가 한화로 따지면 150억 원이 넘을, 작은 흑백 영화에 투자 하기엔 꽤 큰 돈을 넣어 만든 영화인데 그 예산들이 모조리 당대의 현실 공기를 묘사하기 위한 것으로 쓰인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는 거다. 

동네 극장 앞에서 시종일관 떠드는 사람들의 소소한 모습부터 꽤 큰 규모의 시위와 그 진압 과정까지. 영화는 별 거 아니라는 듯 당시 시대 상황을 관객들에게 툭툭 던져주고, 그런 시대 상황 한 가운데에 서 있는 주인공의 이미지를 통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시작'과 '끝'을 잘 묘사 해낸다. 이제 막 태어난 신생아들의 둥지를 비춰주고는 지진을 통해 곧바로 죽은 자들의 무덤이 연결 된다든지, 자의든 실수든 한 생명을 잉태하게 만든 장본인이 그 생명을 다시 앗아가는 이미지로 귀결 된다든지, 아니면 하다못해 이혼의 풍파를 겪어내는 가족들 옆에서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혼부부의 이미지가 프레임에 함께 놓인다던지 하는 그런.

세상사 모든 것이 본인 뜻대로 되지는 않는 법이다. 특히 그 시작과 끝은 더더욱. 우리들 중 누구도 원해서 태어난 사람 없으며,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 이상 스스로의 죽음을 멋대로 선택할 수도 없는 법이다.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는 그 지고지순 하리만큼 당연하고 단순한 진리를 설파 하면서도, 그럼에도 그 안에서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고 보듬어 안아줄 수 있다 이야기하는 영화다. 그 자체로 각각 시작과 끝인 탄생과 죽음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중간 과정인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인지하는 영화다. 그래서 후반부 바다 장면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다. 

뱀발 - 페르민은 올해의 쌍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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