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26 15:53

아쿠아맨 극장전 (신작)


그동안 DC가 별였던 썩은 영화들 만드는 행각은 모두 <아쿠아맨>이라는 추진력을 얻기 위한 희생이었을까. 정의연맹 멤버들 중 가장 애매한 포지션을 가진, 그리고 비인기 캐릭터라는 설움을 씻으며 그가 왔다. 그래서 더 웃기고도 짠해. 다른 동료 수퍼히어로들은 물론이고 민간인들에게 마저 물찐따라 놀림받던 그가 이렇게 구원투수로 등판한 것 자체가. 이건 뭐 영화 기획 자체가 메타 유머네.


열려라, 스포 천국!


물맨 붐은 왔는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YES. 하지만 침착하게 생각해보아야할 것은, 그렇다면 파도에 비유 했을 때 이 붐은 쓰나미급인가? 거기에 대해서는 단연코 NO. 그러니까 짧게 요약하면 그동안의 DC 영화들에 비해서는 썩 괜찮은 게 사실이나, 타사의 기존 수퍼히어로 영화들 내지는 일반적인 액션 영화들과 비교했을 땐 간신히 턱걸이 수준 정도라는 거다.

일단 주요 액션 장면들의 패턴화 문제가 있다. 이건 각본을 그야말로 게을리 썼다는 반증인데, 이런 식으로 스토리 운용할 거면 못할 사람이 없을 것 같은 정도다. 이 영화의 주요 액션 패턴들은 대부분이 이렇다. '유머를 곁들인 인물들의 대화 -> 어디선가 시밤쾅! -> 추풍낙엽 마냥 나뒹구는 주인공들 -> 간지나게 등장하는 악의 세력 -> 교전'의 패턴으로 고착화 되어 있다. 이미 이런 패턴 자체가 액션 영화의 한 클리셰인지라 한 영화에서 한 번만 나와도 조금 뻔한데, 이 영화는 그걸 세 번 정도 반복 하더라. 초반부 과거 썰 푸는 장면에서 주인공 부모가 아틀란티스 군부대의 습격을 받는 장면에서 한 번. 아틀란티스 내부 안전가옥에서 주인공 파티가 아틀란티스 친위대에게 들키는 게 또 한 번. 시칠리아에서 썸 타던 주인공과 메라를 블랙 만타 일당이 습격하는 걸로 한 번 더. ...... 이 정도면 각본 너무 대충 쓴 거 아니냐고. 아니면 각본가들이 시밤쾅 전개를 좋아하나보지

덩달아 하나 더 꼬집자면 현대화의 문제가 있다. 사실 이건 전작이라고 볼 수 있는 <저스티스 리그>에서부터 느꼈던 건데. 경쟁사인 마블 스튜디오가 자사 캐릭터들을 영화화할 때 모두 현대적인 리뉴얼을 거친 것과는 다르게, DC는 자존심 때문에 따라하기가 싫어서 그런 건지 뭔지 의상이나 프로덕션 디자인을 원작과 거의 유사하게 가려는 부분이 있다. 마블이 현대화 과정을 거친다면 DC는 노골적인 복고풍 신화화를 하고 있다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자체로는 별 반감이 없다. 잘하면 뭐가 문제야. 잘만하면 멋있지. 근데 다른 걸로 잘 매혹 시키지도 못하면서 의상 디자인 따위는 모두 원작을 쓸데없이 그대로 계승해 촌스러움만 유발. 물론 후반부 진정한 아틀란티스의 왕으로 각성한 아서 커리의 아쿠아맨 코스츔은 맘에 들었다. 그것 역시도 누군가는 촌스럽다고 말했지만, 그럼에도 이 정도면 원작 코스츔의 매력을 잘 리디지인 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근데 블랙 만타 뭐야, 시발... 원작 제일주의 진성 덕후 관객들은 좋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나 스스로가 원작 제일주의자가 아닌지라 그 가분수 수트 대가리만 봐도 소름이 돋더라. 애초에 만화와 애니메이션에서 봤을 때도 구렸다고 생각했었는데 정작 이렇게 실사화 된 걸 보니 이건 뭐 일본 특촬물도 아니고... 솔직히 그건 무조건 리디자인 했어야 된다고 봐. 더불어 아틀란티스인들의 강화복 디자인도 심히 불만. 아니, 굳이 따지자면 디자인 자체는 괜찮은데 그 질감이 너무 별로더라. 값비싼 코스프레용 장난감 같음. 

하지만 이 영화에 대한 가장 큰 불만은 사실 따로 있다. 그건 바로 아틀란티스가 오직 힘과 템빨만 숭상하며 따르는 미개한 문명이라는 것. 왕을 모시는 전제주의 국가로 표현된 것이 무조건 싫다는 게 아니다. 그럴 거면 이미 마블의 아스가르드와 와칸다도 비호감이지. 문제는 지금이 21세기라는 것이다. 전제주의 국가? 그래, 좋아. 엑스칼리버와 아서 왕의 전설 마냥 진정한 왕위 계승자를 증명하는 삼지창의 존재? 그래, 그것도 인정. 근데 최소한 이게 21세기 관객들에게 먹히려면, 그리고 명색이 수퍼히어로 영화인데 주인공의 도덕성 뽐뿌 한 번 거하게 넣어주려면 후반부 전투 장면에서 최소한 아쿠아맨이 한 번쯤 이 모든 걸 대화로 풀려는 시도가 있어야 하지 않았겠나? 아니,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거대 규모의 전투씬 넣는 건 당연한 거니까 싸움 벌이기는 벌이는데 진정한 왕으로 각성하려는 주인공의 모습으로 연설 한 번 때리고 평화적인 방법을 강구하는 묘사 정도는 한 번 해줘도 괜찮잖아. 케네스 브레너의 <토르 - 천둥의 신>도 그랬다. 힘만 믿고 까불던 주인공이 진정한 왕으로 각성 하면서는 동생놈과의 전투를 피하려 했었다. 오히려 동생놈을 설득하려고 했었지. 물론 그 설득이 통하지 않자 바로 뚜까 패긴 하지만. 그럼에도 그 시도가 중요한 거잖아. 그냥 제왕적 캐릭터가 아니라 수퍼히어로인데. 아니면 그딴 거 안 통한다는 느낌으로 악당인 오션 마스터를 악랄하게 묘사 하던가. 옆동네 왕도 죽이고 측근도 가두고 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뭔가 주인공 이부 형에게 측은지심도 느끼는 것 같더만. 심지어 친엄마 등장하자 싸움도 접고. 뭐야, 이게. 이럴거면 아틀란티스인들도 민주화 운동 한 번 거세게 해줘야 한다. 아니면 오히려 아쿠아맨이 힘들 걸, 이런 멍청한 백성들 이끄는 게 보통 일은 아닐 것 같단 말야.

열라 까기만 했네. 하지만 그럼에도 이제와서? 영화가 괜찮다. 오히려 아쉽기 때문에 저렇게 깐거지, 막상 영화는 재밌음. 비교적 배우들의 매력이 좋고, 특유의 들쭉날쭉한 유머 포인트가 괜찮다. 중간에 아틀란티스에서 탈출한 아서와 메라가 사하라 사막으로 향하기 위해 바다에서 해변으로 올라오는 장면 있는데. 대부분의 관객들은 거기 이상하다고 까더라. 근데 난 좋음. 노래방가면 반주기 화면에서 나오는 90년대 감성 영상 같아 좋음. 그냥 그 병맛 코드가 좋았다. 설사 제임스 완이 의도한 게 아니라 할지라도.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은 의외로 근접 격투 묘사. <토르> 시리즈에서 그토록 원했지만 결국 받을 수 없던 그것. 진짜 박진감 넘치고 수준급이더라. 특히 옴과 아서가 불의 고리에서 벌이는 글래디에이터 장면은 대단했다. 망치들고 적들을 깡깡이 쳐부수는 북유럽 신이 나온 에선 타격감이 0이었는데, 오히려 여기서 그걸 제대로 느끼고 가네. 그리고 블랙 만타 대가리는 여전히 못 봐주겠지만, 그럼에도 시칠리아에서의 전투도 굉장했다.

아참, 전체적으로 촬영도 잘 된 영화라고 생각한다. 롱테이크를 적절히 썼고, 강조할 부분에선 신명나게 강조도 할 줄 아는 촬영. 같은 감독의 블록버스터 전작인 <분노의 질주 - 더 세븐>과 비슷한 촬영들이 많아서 확인해봤는데 촬영감독은 다른 사람이네. 그냥 제임스 완이 그런 걸 좋아하는 것 같다.

이 영화의 최고 장면은 역시 트렌치 장면. 누가 공포 영화 전문 감독 아니랄까봐 여기서 그냥 폭주했네. 촬영 좋은 영화라고 이야기 했었는데, 이 장면의 롱테이크는 정말이지 공포스러워 훌륭했다. 제임스 완 이 양반이 여기 연출하며 좋아서 날뛰었을 게 눈에 선함.

굉장한 영화까지는 아니지만 괜찮은 영화다. 누가 알았겠어, 수퍼맨이나 배트맨이 아니라 아쿠아맨으로 DC가 일어날 것을. 심지어 바로 다음 차기작도 트리니티 영화가 아니라 <샤잠>이지 않나. 정말로 사람 일은 모를 일이다.

뱀발 1 - 물맨 붐은 몰라도 메라 붐은 확실히 온 것 같다.
뱀발 2 - 브리 왕국의 갑각류 리더는 목소리가 <반지의 제왕> 시리즈 김리 배우네. 졸지에 용맹한 호전광.
뱀발 3 - 나름 수퍼히어로 주인공인데 이부 동생한테 공개적으로 털리고 도망가는 모습은 참으로 모양 빠지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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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포스21 2018/12/26 16:43 # 답글

    크크 , 재밌긴 했지만 확실히 좀 여기저기 아쉬운 영화 였죠, 아틸란티스 국민성 내지 정치 묘사 같은 부분은 확실히... 차기작 쯤에서 아쿠아맨이 탄핵위기 같은 거 당하는게 아닐지? ^^
  • CINEKOON 2018/12/27 00:54 #

    비선실세 메라가 있으니 그럴만도...
  • ㅁㅁㅁㅁ 2018/12/26 16:54 # 삭제 답글

    그리고 높은 확률로 원더우먼 1984에 이어서
    두번째로 후속작을 낼 DCFU영화라고 봅니다.
    맨옵스2는 어느 세월에....
  • CINEKOON 2018/12/27 00:54 #

    맨옵스2는 이제와서 나와도 별 감흥 없을 것 같습니다.
  • 로그온티어 2018/12/26 19:03 # 답글

    스튜디오가 노력한 게 아니라 감독이 노력해서 여기까지 올라온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작품은 다시 망하겠죠
  • ㅇㅇ 2018/12/26 20:32 # 삭제

    감독이 쌓아올린 탑을 스튜디오가 부숴버리는건 쌍팔년도 배트맨 시절부터 면면히 이어내려온 전통 아니겠습니까. 이쯤되면 그냥 워너 종특이라고 생각해야.....
  • CINEKOON 2018/12/27 00:55 #

    마블은 케빈 파이기라는 긍정적 파시스트가 주도하는 반면 확실히 DC는 감독 선정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 이게 참 2018/12/26 21:19 # 삭제 답글

    제임스완인데 이거밖에 못해? 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저는 되려 제임스완이라 이렇게나마 뽑아냈다...라고 생각되더군요.
  • CINEKOON 2018/12/27 00:56 #

    전 애초 제임스 완에 대한 기대감이 그리 크지 않아서... 그럼에도 이 영화에서 그의 공은 인정할 수 밖에 없군요.
  • RuBisCO 2018/12/27 09:10 # 답글

    그래도 좀 냉정히보면 끽해야 PC뽕 못맞은 흑표 수준인데 그나마 이게 가장 낫다는게 DC영화들이 참 슬프네요.
  • 炎帝 2018/12/27 10:07 # 답글

    내용을 어느정도 듣다보면 히어로무비치고는 평작인거 같은데
    그럼에도 DC영화들 사이에서 돋보인다는건 그간 영화가 얼마나 망작이었는지 짐작이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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