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28 15:16

카우보이의 노래 극장전 (신작)


안 그래도 꼬인 상황이 갈수록 더 꼬여가는 이야기라든지, 아니면 우연과 운명이 적절히 혼합되어 탄생된 비극의 이야기라든지, 그도 아니면 이야기 구조 자체를 뒤섞어나 전위적으로 해석해내 새롭게 탄생시킨 이야기라든지. 코엔 형제의 영화들은 언제나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였다고 생각한다. 근데 이번 영화는 아예 책 펴고 관객에게 읽어주는 듯한 느낌에다가 심지어 구성도 옴니버스다. 이 정도면 코엔 형제의 취향이 극에 달했다고 느껴지는 부분.

이야기 순서는, '카우보이의 노래' - '알고도네스 인근' - '밥줄' - '금빛 협곡' - '낭패한 처자' - '시체'


스포일러의 노래!



0. 카우보이의 노래
장르를 굳이 따지자면 액션과 뮤지컬이 짬뽕된 희극이라고나 할까. 누가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하는 양반들 아니랄까봐, 첫번째 에피소드부터 주인공이라는 양반이 카메라를 노골적으로 응시하며 관객에게 말을 건다. 팀 블레이크 넬슨은 <인크레더블 헐크> 이후 오랜만에 보는 느낌이었는데 필모그래피 검색해보니 그동안 아예 쉰 건 또 아니었네. 분명히 내가 본 영화들에도 나왔다고 표기되어 있는데 기억이 안나는 건 뭔지. 뭐, 하여튼.

코엔 형제의 전작들 중에서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인사이드 르윈>에 가장 가까워 보였던 영화다. 물론 분위기는 정반대로 많이 다르지만, 우연이 중첩되어 전개되는 구성이나 수미상관처럼 느껴지는 오프닝&엔딩 등. 다른 옴니버스 구성들 중 가장 코미디 연출이 돋보이는 영화이기도 한데, 별 거 아니라고 느껴질 수 있지만 주인공 버스터 스크럭스가 살롱에 들어서며 자신의 옷에 묻는 먼지 털 때 실루엣처럼 공기 중에 남는 그 뿌연 이미지가 좋았다.


1. 알고도네스 인근
근데 이 영화를 보며 제일 현웃 터졌던 연출은 여기에 있음. 아이언맨 마냥 온몸을 냄비로 두른 노인네가 연속으로 내뱉는 "냄비를 맞혔군!" 이 대사는 정말... 아, 여기가 내 취향이구나- 라고 절실히 느꼈던 순간이었다.

제임스 프랭코의 무기력한 표정이 잘 남는 영화고, 역시 구성면에서는 우연의 힘과 그 공포를 잘 묘사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비슷한 느낌. 주인공이 나름 은행 강도인데 처음 시작부터 끝까지 남들에게 무시 당하는 전개가 웃김. 


2. 밥줄
가장 비극에 가까운 이야기가 아닐까, 싶은데. 규모를 많이 줄인만큼 코엔 형제의 연출력이 빛을 발하는 작품인 동시에, 부분 부분 디테일이 좀 과시적이고 전형적이라 아쉽기도 한 작품. 

연출하면서 코엔 형제가 가장 즐거웠을 거라 느껴지는 작품이기도 한데, 주인공이 남들에게 썰푸는 걸로 먹고 사는 연사이기 때문이다. 퍼시 셸리의 소네트인 '오지맨디아스'를 읊어대는 부분에서는 이 영화와 감독 특유의 허무주의까지 느껴져서 좋았다. 그나저나 씨바, 곱셈능력을 가진 치킨에게 교체 당하다니 여간 비극적인 게 아니다.


3. 금빛 협곡
금광에 대한 한 노인의 집착 내지는 사랑을 묘사하다가 막판에 액션 하나 넣어주는 영화. 그래서 이야기를 잘 끌어가되 긴장감을 계속 유지시켜 별 사건이 없음에도 관객들에게 불안감을 가중시키는 코엔 형제 특유의 연출이 잘 드러나는 영화다. 

자연 풍광을 담은 와이드 쇼트의 매력이 잘 담겨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다'와, '확인 사살은 중요하다'는 교훈을 함께 주는 영화. 뒷치기범에게 부엉이가 보낸 울음소리는 경고였을까, 아니면 미리 보내는 애도였을까. 


4. 낭패한 처자
코엔 특유의 허무주의 끝판왕. 내 이 양반들 언젠가 이런 영화 한 번 더 만들 줄 알았는데 그 타이밍이 이 타이밍이었네. 알고도 당한 더러운 기분. 하지만 구성 자체는 맘에 듦. 


5. 시체
연출력과 연기력은 돋보이는 에피소드인데, 정작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는 에피소드. 아니, 그래도 한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닫는 에피소드인데 구성이 좀 잘못된 거 아니냐. 그런 생각도 들더라. 이거 이미 죽은 망자들 옮겨 담는 사탄의 마차 아닌가- 하는. 마차 안에서 할 수 있는 앵글이 다 거기서 거기인지라, 타란티노의 <헤이트풀8> 생각도 나더이다.


개인적인 선호도는 '시체' < '금빛 협곡' < '낭패한 처자' < '밥줄' < '알고도네스 인근' < '카우보이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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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sid 2018/12/28 17:18 # 답글

    저도 재밌게 봤어요. 서부극 매니아가 아니라서 평은 참고 있었는데.ㅎ

    옛날 얘기 들려주는 것 같은 느낌이었지요. 옴니버스 구성도 그렇고 책 펼쳐지는 장면이 매번 들어간 것도 그렇고. 단, 얘기들이 하나하나 다 무섭게 현실적이라 어린이였으면 무섭거나 슬퍼할 그런 얘기들.ㅋ

    맨 마지막 에피소드는 저도 비슷한 추측을 했네요ㅋㅋ
    뭐 이젠 연륜도 있고 하니 마지막 건 좀 애매-하게 남겨볼까 한건가 싶기도. .
  • 로그온티어 2018/12/28 17:51 # 답글

    아하 뭔가 했더니 그거구나!
    저것때문에 또 결제를 할까 생각중인데... 기묘한 이야기 시즌3 나오면 그때 결제해서 같이 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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