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28 16:05

오퍼레이션 피날레 극장전 (신작)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하면 바로 떠오르는 이름이 바로 아돌프 아이히만이다. 이 사람에 대해서야 워낙 많이 들었고, 이스라엘에서 받았던 공개 재판에 대해서도 이미 들은지 오래이니 이걸로 영화 하나 나오겠거니- 생각은 하고 있었지. 근데 정작 영화를 보니, 구성이 참 재밌더라. 두 시간여의 런닝타임 중에서 아돌프 아이히만을 납치?하는 시점이 클라이맥스일 줄 알았는데, 영화 중반부에 이미 확 사로잡아버림. 그럼 나머지 런닝타임 동안은 뭐함?


스포일러 피날레!


영화는 의외로, 스톡흘름 증후군과 리마 증후군의 발현 아닌 발현으로 진행된다. 물론 상대가 상대이다보니, 아돌프 아이히만에게 공감 하면서 그의 유대인 학살을 옹호 하려는 스탠스를 취하지는 않는다. 그건 당연한 거지. 다만 한 인간 대 인간으로서 인질이 된 아돌프 아이히만과, 포획자가 된 피터 말킨 사이에서 피어나는 이상 요상한 감정에 영화가 집중한다는 것.

작전이 꼬이고 또 꼬이다보니 웃기게도 사로잡힌 아이히만에게 이스라엘행 비행기를 타겠다는 자발적 동의서의 서명을 얻어야하는 상황이 온다. 여기에서 피터는 아이히만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갖은 애를 쓰는데, 그러다보니 아이히만의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밖에 없게 된 것. 사실 내가 아이히만이었어도 절대 서명하지 않았을 건데, 인간적인 썸씽이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마음을 돌린 거라고 본다. 

어쩌면 역사적으로 이미 너무 유명한 사건이다보니, 제작진들 입장에선 난감했을 것 같긴 하다. 그럴듯한 해외공작 작전을 다룬 에스피오나지 영화로 가기에는 결말이 너무 뻔하잖아. 때문에, 영화 중반부에 이미 아이히만을 사로잡는 것으로 전개하여 주인공인 피터의 트라우마를 적절히 건드림과 동시에 아이히만과의 인간적인 관계 묘사에 집중하기로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를 보며 진짜로 그런 생각을 했다. 한나 아렌트의 말이 맞구나. 악은 평범한 것이구나. 인류 역사에 남을 학살을 자행한 사람도, 집에서는 어린 아들과 창 밖으로 지나가는 기차를 보며 즐거워 하는 구나. 아들의 여자친구를 소개 받으며 기분 좋아하는 구나. 진짜 악이란 건 평범한 것이다. 다만, 그 묘사를 좀 더 오래 가져갔으면 좋았을 걸. 영화는 피터와 아이히만의 관계를 더욱 더 강조하려다 조금 오버를 한다. 뜬금없는 상황에서 아이히만이 피터의 죽은 친누나인 프루나를 들먹이며 어그로를 끈 것. 사실 그 전까지는 피터와 아이히만 관계가 좋았거든. 순풍에 돛 단듯. 근데 거기서 갑자기 헛소리를 해대니까 이건 각본상의 전개를 위해 만든 상황이 아닐까 싶어졌다는 것. 그냥 아이히만은 처음부터 끝까지 존나 뻔뻔한 인간으로 갔었어야 한다고 본다. "난 그냥 위에서 시킨대로 한 건데?" 이런 뉘앙스로. 그 부분에서 프루나 드립 치는 건 노골적으로 상대방 자극 시키겠다는 것 밖에 안 되잖아.

벤 킹슬리의 연기야 뭐 늘 좋지만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오스카 아이작이다. 좋은 배우란 건 알고 있었지만 요즘 작품들에서 많이 실망하고 있던 차였는데 여기서 유머러스하게 한 방. 캐릭터 자체가 건들거리고 재미지다가 할 땐 또 하는 캐릭터라 미울 수가 없기도 하지만. 

각본가이자 감독인 크리스 웨이츠는 <어바웃 어 보이>라는 괜찮은 영화를 만들었다가 이후 <황금 나침반>과 <뉴 문> 등으로 나의 신뢰를 잃었었는데, 이 정도의 연출만 해준다면 계속 만족하며 볼 수 있을 것 같다. 초반부 영화관 장면에서 나오는 영화와 중반부 어떤 장면이 살포시 포개지는 부분에선 좀 노골적이지만 그럼에도 그 직접성이 좋았다. 

핑백

  • DID U MISS ME ? : 레드 씨 다이빙 리조트 2019-08-06 00:54:19 #

    ... 보기관 모사드 요원들 활약을 다룬 실화 소재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대충 내용만 들어도 당장 떠오르는 영화가 &lt;아르고&gt;랑 &lt;오퍼레이션 피날레&gt; 등등 수도 없다. 하지만 역시 가장 가까운 건 벤 애플렉의 &lt;아르고&gt;겠지. 기시감 쩌는 이야기여도 서스펜스 만들어 ... more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