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29 17:24

아웃로 킹 극장전 (신작)


중세 시대 전투를 다룬 수많은 영화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오르지만, 그럼에도 가장 먼저 언급되어야할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브레이브 하트>일 것이다. 일단 시공간적 배경이 거의 동일하니까. 연작으로 놓고 봐도 좋을만한 구성.


스포일러 킹!


요약하면 독립하려고 깽판 치다가 결국 지고 복속되어 폭군의 종 아닌 종으로 살다가, 항복한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반란을 위해 자신들끼리의 왕을 옹립하고 다시 전쟁 벌인 이야기. 다행히 두번째 판에서는 이겼다.

영화의 첫 쇼트부터 9분짜리 롱테이크로 시작하는 영화. 그만큼 감독인 데이비드 멕킨지의 야심이 돋보이는 영화다. 사실, 개인적으로 꽤 좋아하는 감독이다. 최근작인 <로스트 인 더스트> 때문은 아니고, 순전히 <퍼펙트 센스> 때문에. 그 영화는 진짜거든. 하여튼 꾸준히 훌륭한 연출력을 선보이던 감독답게, 이번 영화에서 역시 연출이 좋다. 프로덕션 디자인도 뛰어나고, 전체적인 전황 중계와 더불어 전투의 세밀한 면까지 놓치지 않는 전쟁 묘사도 역시 괜찮음. 하지만 가장 공 들였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캐릭터를 관객들에게 어떻게 각인 시킬까 하는 부분이다. 꽤 많은 등장인물들이 등장하는 영화인지라, 각 캐릭터에게 물리적인 비중을 고루 배분 하기가 꽤 어려운 부분이 있었을 거다. 이에 감독은 각 캐릭터의 특징을 몇 가지로 추려 박아넣고 그 이상의 구체적인 묘사를 하지 않는다. 이게 썩 효과적이다. 그 한 두 가지로 추려 박아넣은 특징들이 꽤 강렬한데다, 배우들이 잘 연기하고 있거든. 특히 아론 테일러 존슨이 연기한 더글라스가 그렇다. 영화를 다 본 사람 입장이라면 이 인물 이름을 절대 까먹을 수 없을 것. 영화내내 시종일관 본인 이름 외치는데 어떻게 까먹나. 근데 그런 이유 때문만이 아니라, 캐릭터 자체가 단순한데 재미있다. 항상 하는 이야기지만, 단순할수록 좋은 시나리오가 있는 거다.

주인공인 크리스 파인의 연기가 뛰어나기 때문에 몰입하는 부분도 있지만, 그가 연기한 로버트 브루스의 꼴이 심히 말이 아닌지라 더 공감하게 되는 것도 있다. 아니, 생각해보자. 다들 잘 먹고 잘 살아보자고 반란 일으키려 하는 건데, 따지고 보면 스스로를 왕이라 부른 게 팩트란 말이지. 주변 사람들이 정당성을 따지며 안 따라줘도 할 말 없을 지경인데 여기에 신사적으로 싸워보려다 뒷통수 맞고 야간기습까지 당한다. 겨우 야반도주에 성공해 살아남긴 했는데, 시발 뒤돌아보니 남은 군사가 50명이네. 

로버트 브루스의 주변엔 항상 시선이 존재한다. 그게 충성스러운 부하이든, 경멸어린 적이든, 일반 백성들이든 가리지 않고. 그가 존재하는 대부분의 프레임엔 항상 누군가의 시선이 동반된다. 심지어 저 야반도주 이후 장면에서 부하가 그런 대사도 하잖아. "부하들한테 힘나는 말이라도 좀 하죠?" 

공감 가더라. 애초에 본인 스스로도 인정 못하고 있는데다 실패했다는 이유로 엄청 자괴감에 시달리고 있을텐데. 자기 자신이 엄청 초라하게 느껴질텐데. 거기다 대고 무슨 말을 할 수 있냐. 왕이란 작자도 아내와 딸 간수 못한채 튄 마당인데. 시발, 생각만해도 존나 암담하다.

그와중에 유일하게 로버트 브루스를 믿어주고 밀어주는 자가 있는데, 바로 그의 새 아내이자 왕비인 엘리자베스. 어딘가 익숙한 얼굴이라 했는데 플로렌스 퓨였네. 박찬욱의 그 신작 드라마는 잘 나왔으려나.

후반부 전투 묘사를 좀 더 길게 가져 갔으면 어땠을까 싶지만 그럼에도 재미있다. 큰 그림과 밑그림 모두 쉽게 놔주는 일이 없다. 500명의 군대로 3,000명의 군대와 맞서야 하는 상황인데, 그 전술과 전략이 현명 하면서도 납득하게 연출 됐다. 맞다, 말타고 있는 게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다. 

뱀발 - 오프닝 롱테이크에서 크리스 파인이 검을 놓치는 묘사가 있다. 여유롭게 다시 줍긴 하지만, 의도치 않았던 부분이었을까? 아마 그렇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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