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29 18:19

범블비 극장전 (신작)


디셉티콘으로부터 사이버트론 수복하기 보다 더 어려운, 망해가는 프랜차이즈를 구해야한다는 미션을 부여받은 새 시리즈이자 오토봇의 막내. 과연 이번 영화는 최소한 영화 다울 수 있을 것인가!


열려라, 스포천국!


영화가 선택한 방법은 원점으로의 회귀다. 2007년의 <트랜스포머>가 그랬던 것처럼 아니, 그 영화가 완전히는 해내지 못했던 바로 그 것으로. 그것은 바로 총괄 제작자인 스티븐 스필버그 식으로의 회귀다. 비상한 능력을 지녔지만 마음과 행동은 어리숙하기만한 외계 존재와, 가족들 사이에서 마음을 정착시키지 못하고 방황하는 어린 소년or소녀의 만남. 그리고 이 관계를 파탄내려는 군 세력. 여기에 배경은 80년대 미국. 이 영화를 보며 스필버그를 떠올리지 않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영화는 그걸 썩 잘 해냈다. 물론 아직 부족한 부분도 많고, 중간중간 늘어지며 덜컹 거리는 부분들도 있지만. 그럼에도 액션과 스펙터클에 함몰되지 않고 영화의 감성적인 면을 잘 쌓아냈다. '변신 로봇'이란 소재 때문인지, 기존 시리즈는 스펙터클에 집착 하느라 가장 기본적인 드라마조차 놓쳤었는데, 최소한 그리 되지는 않았다는 인상이다.

헤일리 스탠필드의 캐스팅이 꽤 정확해 보이는데, <비긴 어게인>과 <지랄발광 17세>에서 보여주었던 이미지가 이 영화에 잘 맞는다. 그리고 진짜... 뻔하다고 해도 할 말 없긴 하지만 그 드라마가 좋더라. 가족들은 죽은 아빠를 가슴에 묻고 잘 살아가는 것 같은데, 자기 자신만 그렇지 못하고 아직까지 아빠를 놓지 못해서 나오는 그 고립감. 그리고 그 트라우마가 터져나오는 다이빙 장면들에서의 설정이 정말이지 강력했다. 사실 이런 종류의 이야기에 사족을 못 쓰는 경향이 내게 있긴 하다. 어릴 때부터 스필버그 영화들을 보며 자라와서 그런 것이겠지만 때문에 에이브람스의 <수퍼 에이트>도 눈물겹게 보았었고, 넷플릭스의 <기묘한 이야기>도 감정적으로 많이 와닿았었지. 가족들 사이에서 어린 아이가 느끼는 고립감만으로도 내게 충만한데, 더 웃긴 건 비범하지만 순수한 거대 존재가 인간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는 이야기 역시도 내가 사족을 못 쓰는 이야기거든. 근데 그 두 개가 결합되어 있으니 어찌 감동하지 않으랴.

의외로 감정이 북받쳐 올랐던 장면은, 주인공이 비틀을 달라고 했을 때 생일 축하한다며 가져가라고 했던 정비소 아저씨 장면이었다. 그냥... 그런 게 좋더라. 생각해보면 <트랜스포머> 1편에서도 버니 맥이 했던 역할 좋아했었는데 여기에도 그런 게 있네. 그냥 그 담백한 맛이 너무 좋더라. 근데 이 아저씨 <스포트라이트>에선 변태로 나왔었는데

마지막 다이빙 장면은 그 자체로 좋지만, 좀 더 설득력 있는 전개가 뒷받침 되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까놓고 말해 주인공이 다이빙해 범블비가 살아난 게 아니거든. 애초에 그냥 바닥에 누워 있었는데 주인공 보고 일어난 정도더만. 하지만 이런 거 트집 잡을 생각은 딱히 없다. 영화의 나머지 부분들이 다 걱정했던 것보다 괜찮아서.

스펙터클보다 감정적인 묘사에 더 집중한 영화라고 했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의 액션이 구린 것은 또 아니다. 물리적인 분량에서야 기존 시리즈에 비해 떨어지지만, 그 자체의 질로는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일단 기존 시리즈 액션 장면들의 가장 큰 단점은 액션의 합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데에 있었다. 때문에 두 CG 덩어리가 엉겨붙어 싸우고 있다는 느낌만 들지, 딱히 어느 캐릭터가 어떤 동작으로 딜을 넣어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라는 게 잘 안 보였었거든. 이건 의외로 액션 영화에서 중요한 부분인데. 근데 이 영화는 그걸 잘 보여준다. 그리고 주위 지형지물을 잘 이용하는 액션을 선보이기도 하고. 아니, 일단 다 떠나서 악역의 존재감이 적지 않다. 까놓고 말해 <트랜스포머>에서 첫 등장했던 메가트론 이후, 최소한 두렵다는 느낌을 주는 악역이 크게 없었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나름 무섭게 묘사 되더라. 디셉티콘 놈들 겨우 둘이 해봐야 얼마나 강하겠어- 했었는데 최후는 어이털릴지언정 호적수로서의 역할은 잘 해준 것 같아 다행.

아, 잠깐이지만 그래도 충실히 묘사되는 사이버트론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지. 마이클 베이 식의 리뉴얼된 디자인도 좋아했지만, 그럼에도 원작을 잘 계승한 이번 디자인이 싫을 수 없지. 콘보이의 진수를 보여주는 이번 옵티머스 프라임 짱.

영화가 비틀거리는 부분이 없지 않다. 두 꼬마가 군 시설에 쉽게 들락날락 대는 묘사도 어이가 없고, 아무리 귀엽다고는 하지만 범블비의 애교를 보여주는 장면들이 너무 많고 길다는 생각도 든다. 존 시나가 연기한 인물은 뻔하기도 했고. 그럼에도 영화가 주는 귀여움이 있고, 잔재미와 더불어 기존 시리즈에서 항상 아쉬웠던 점들을 보충했기에. 그리고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기에. 마냥 나쁘게 말할 수만은 없는 영화. 아니, 오히려 즐기면서 보았던 영화. <범블비>는 스필버그 식의 상냥한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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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로그온티어 2018/12/30 12:49 # 답글

    든든한 형보단 못말리지만 한 건은 제대로 해내는 막내가 더 귀여워..
  • ㅁㅁㅁㅁ 2018/12/30 17:27 # 삭제 답글

    완성도는 좋지만 흥행은 안좋군요.
    이제 트포는 완전히 침몰하는가.
  • 잠본이 2018/12/30 17:28 # 답글

    다이빙 장면은 땡벌이를 살리고 말고의 여부보다는 그전에는 트라우마 때문에 못했던 행동을 결국 극복하고 다시 할수 있게 되었다는 성장서사의 방점으로서의 의미가 더 큰거 아닌가 싶더군요. 저도 무난하게 봤습니다.
    액션은 G1 오프닝에서 줄창 틀어줬던 '적에게 집어던짐을 당하자 변신해서 착지한뒤 달려들며 다시 변신하는' 그거 오마주 보여준거만으로도 꽤 점수를 주고 싶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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